코인로커
두 시간 동안 코인로커 속의 어둠에 몰두했다.
어디에도 빈틈이 없는 세계는 서류와 비슷한가.
사과와 비슷한가.
사각형인가. 얼마나 붉은가.
어둠은 소중한 것과 훔친 것을 구분하지 않고
무심한 것과 슬픈 것을 가리지 않고
죽은 사람을 움직여서
생각하는 사람에게 겹쳐놓는다.
모퉁이마다 낯선 얼굴이 서 있는 밤
어둠의 입장에서 보면 목적지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계단 쪽일까. 비상구 쪽일까.
혹은 환승역.
오늘도 사람들에게는 자꾸 맡길 것이 생긴다.
의심스러운 봉투와 검은 가방.
음식물.
시신의 일부
코인로커 속에서는 어둠이 모든 것을 만들지만
모든 것에 유통기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터널 속을 달리는 나와 그대와 신문들
오해와 농담과 말다툼들.
어디에도 빈틈이 없는 세계란 그러니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나
사망신고서
손가락이 들어 있는 가방의 모습
나는 어둠 자체를 발견하기 위해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코인로커 속에서 가장 슬픈 자세는 무엇일까.
지금은 붉은 사과가 무릎을 모은 채
어둠에 몰두하고 있다.
캄캄해지는 것은
사과인가.
목적지인가.
누군가 코인로커의 비밀번호를 누른다.
사각형의 어둠 속으로 손을 뻗어
물건을 회수해 간다.
*** 어제는 커피집에 타짜가 다녀갔다
타짜는 외로운 법, 혼자였다
마누라가 암으로 죽은 이후 화투를 접은 타짜가 다녀갔다
지금은 도박낚시에 매진하는 옛날 타짜였던 그가 다녀갔다
도박에는 꼭 주먹이 낀다
그 주먹세계 얘기가 젤 재미있었다
그런 얘기를 주절주절하는 타짜가 다녀갔다
낼은 춘천으로 노가다 나가야 된다고, 이제 들어가 자야지
하면서 되돌아나가는 구 타짜, 멋있어 보였다
이빨 나간 게 있는지 말이 자꾸 샜지만 멋있었다
도박이라니, 그것도 주먹이 낀 도박이라니!
대구 칠성파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주먹모임이란다
그 타짜가 오늘은 오지 않는다
오늘은 그 타짜가 춘천으로 노가다 가시는 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