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41~50 / 참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요 6:42)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요 6:4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 6: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 6: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요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요 6: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요 6: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자기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살과 피를 내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살과 피를 먹는 자가 얻는 축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41,42절 무리들은 예수님에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매일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요 산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산 돌이라고도 하시고 산 소망이라고도 하시고 이제는 산 떡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떡으로 영생을 얻게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십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고향입니다. 가버나움에는 예수님과 그 가족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웃집 사람도 있고 친척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저귀 차고 어려서 똥오줌 싸는 것을 본 사람들도 있고 개구쟁이들과 함께 놀던 예수님을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너무나 예수님을 잘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늘에서 온 산 떡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인간적으로 대하지 말고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고 믿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나 그를 무시하는 교만을 극복해야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는 함부로 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서로 간에 존댓말을 쓰면 참 좋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도 함부로 말을 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일하시며 서로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산을 멀리서 보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온갖 오물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가까이서 보면 온갖 허물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가까이서 볼수록 더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서 오랫동안 본 사람들 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처음에는 모친과 아우들도 불신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예수님의 모친과 아우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고향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예수님의 열두 명의 제자는 대부분 갈릴리 사람입니다.
43~44절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고 수군거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이 예수님을 불신함으로 낙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사람만이 예수님께로 올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그들도 예수님께로 나올 것을 믿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사람만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보지 말고 사람 뒤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을 보아야 합니다.
45절 예수님은 하나님께 듣고 배우는 사람마다 예수님께로 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같이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인터넷 시대에 잡다하게 주워들은 것이 많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 똑똑한 것처럼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께 나갈 때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배고픈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배우는 사람이 무서운 사람입니다.
배가 고팠을 때 먹는 맛이 꿀맛이고 그것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이 율곡 이이를 방문하였습니다. 반찬이 형편 없었습니다. 밥을 먹기를 꺼리자 율곡 이이는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 먹지 말고 굶었다가 밤에 먹으면 맛이 있을 것일세” 여기서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대략 전해도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처럼 그들은 마음이 갈급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조금 잘살게 되면서 이런 영적인 배고픔을 잊어 버렸습니다.
예전에는 주일날 예배가 1시간 반 두 시간씩 드렸습니다. 그래도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영적인 배고픔을 되찾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배고픈 자는 주일 날 전하는 말씀이나 일대일 말씀이 꿀맛과 같을 것입니다.
46절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예수님만이 하나님을 보신 분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을 본 자입니다. 예수님이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온 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봅니다. 하나님에게서 온 자는 주의 종을 하나님이 보내신 종으로 봅니다.
47~48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예수님은 반복하여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임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님을 믿어야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현재도 영생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소유한 자는 영생인 성령을 주십니다. 영원한 기쁨이 있고 영원한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능력을 공급받고 예수님을 통하여 성장합니다.
이런 자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부활의 새 생명을 얻습니다.
49~50절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만나와 예수님을 대조하여 말씀하십니다.
만나와 예수님은 공통적으로 떡입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고 성장을 하게 하고 만족을 줍니다. 만나는 육체의 생명에 힘을 주십니다. 그러나 만나를 아무리 먹어도 언젠가는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 자도 육신은 죽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육신은 죽어도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잠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부활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죽음이 주는 두려움이나 슬픔이나 절망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마지막 날 다시 오시는 날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몸을 덧입습니다. 강하고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썩지 않는 몸으로 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