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으로 언제부터 오리지널 스코어가 작곡 되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 에이젠슈타인이었나 그보다도 전이었나 여튼 그 즈음일 겁니다 -
최초의 영화에 얹힌 음악들은 원래 오리지널 스코어는 아니고 클래식 곡들 중에서 감정이나 분위기 별로 골라내서 연주하는 형태였습니다. 말하자면 ‘삽입곡’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이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을 좀 더 주제적으로 써야겠다는 의식이 생겼고 오페라가 인물들의 주제를 다루는 방식을 차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려니 이미 있는 음악들만으론 영화내에서 위치에 따라 변하는 상황을 따라가기가 역부족이었고 일관성 있으면서도 변주된 음악을 만들 필요가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튼, 이미 유행했던 곡들을 골라서 영화음악으로 사용하는 방식 자체는 낯선 방식은 아니었는데, 그전까지는 그 고르는 음악들이 클래식곡 위주였다면, 1972년 ‘이지라이더(Easy Rider)’ 이후로 록음악나 팝음악들로 선곡된 사운드트랙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음악은 영화 내에서 엠비언스(Ambience)의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엠비언스의 기능은 공간을 설정하는 건데, 설정하는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도 있지만 시대적인 공간도 포함이 됩니다. 특정시대에 유행했던 음악을 사용하면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감상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지라이더' 이후부터는 이런 음악의 용법을 적극 활용하는데요,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가 예전 영화들을 보면서 삽입곡들을 들으면 ‘아, 이건 대략 언젯적 영화구나’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지금의 감각과는 동떨어져서 다소 촌스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1980년대에 나온 사운드트랙 몇 개를 링크합니다.
80년대 음악의 사운드라면, 뭐니뭐니해도 둔탁하지만 멀리 퍼지는 스테어 드럼소리입니다. 거기에, 요즘에 다시 각광받고 있는 인위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신서사이저가 섞이면 더 그럴 듯 하지요. 이런 드럼 소리와 신서사이저 소리가 일단 들리면 저는 ‘일부러 복고를 의도했거나 그 때를 회상하는 영화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어느 때에는 좋지만 그냥 그럴 때도 있는데, 최근 영화 중에 ‘싱 스트리트 (Sing Street)’ 배경은 요즘인 것 같은데 사용된 음악의 사운드는 복고를 의도한 감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80년대 당대에 만들어진 영화들에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회상적인 사운드로 고려하지 않았겠지요. 그 당시에는 그런 소리가 현대적인 소리였을 것입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Forest Gump)’에서는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서 당대에 유행했던 노래들을 시간순으로 들으실 수 있어요.
이렇게, 일종의 엠비언스로 작동해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전형적’인 삽입곡의 사용법 말고도, 예를 들면 주인공이 좋아했던 노래라던가, 드라마적으로 어떤 계기가 되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삽입곡이라던가 하는 식의 소재로써 삽입곡을 사용하는 방법도 일반적입니다.
가장 유명한 경우 중의 하나가 아마 ‘사랑과 영혼 (Ghost)’에 삽입된 ‘Unchained Melody’라는 노래가 아닐까 해요.
이 영화의 인트로에서 주인공의 집안 소품들을 보여주는 몽타주 컷들이 있는데, 거기에 이 노래가 희미하게 묻어있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이 노래가 나오면서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의 유령의 실체를 느끼게 되구요, 이후엔 아예 이 멜로디로 된 오리지널 스코어 음악도 나옵니다. 그냥 삽입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걸 위해서 전체 사운드 트랙을 디자인한 경우에요.
비슷한 경우를 ‘타이타닉 (Titanic)’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셀린 디옹이 부른 ‘My Heart Will Go On’의 주멜로디가 영화의 처음에 오케스트라로 나오고, 그러다 로맨스씬이라던가 배가 침몰한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사용되다가 마지막 크레딧에서 노래로 나옵니다. 이 경우는 삽입곡을 편곡한 게 아니라 오리지널 스코어의 멜로디로 삽입곡을 만든 경우긴 합니다.
최근 영화인 ‘마션 (Martian)’이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Guardians of the Galaxy)’에는 주인공이 좋아한다면서 삽입곡들을 많이 사용했던데 이런 건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미 설정된 것이라야 하겠지요.
주객이 전도된 경우도 있지요. 영화랑은 다소 상관없이 들어간 삽입곡인데 그 노래가 아주 유명한 경우가 있어요.
영화 ‘백야 (White Night)’의 마지막에 삽입된 ‘Say you, Say me’라는 노래는 영화 자체에선 들리지도 않고, 영화의 내용과도 상관이 없지만, 마지막에 삽입되었습니다. 노래 가사의 의미가 연관된 것이 있나 찾아봤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여운이랄까 그런 감상을 막연하게 회상시키는 기능은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이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또, 영화 ‘레옹 (Leon the Professional)’에 들어간 ‘Shape of My Heart’라는 노래도 영화내에선 마지막에 들릴 뿐인데, 영화 내내 관련된 음악적인 주제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영화도 영화지만 노래도 아주 인기있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심지어 사운드트랙에도 안들어가 있고 스팅의 앨범에만 있습니다.)
삽입곡들이지만 리메이크된 곡들로 구성된 사운드트랙을 가지고 있는 영화도 있습니다.
‘아이 앰 샘 (I Am Sam)’에 삽입된 노래들은 전부 비틀즈의 곡들입니다. 원곡을 그대로 쓰고 싶었을 텐데 이런저런 이유로 못하고 전부 리메이크한 걸로 알고 있는데 결과로 보면 그게 오히려 나은 것도 같습니다.
비틀즈의 리메이크곡만으로 된 영화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Across the Universe)’도 있는데이건 심지어 뮤지컬이에요.
이외에도 인물들이 따라 부른다던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다던지 하는 식으로 사용되는 삽입곡의 예는 무수히 많지만 삽입곡 만으로 사운드트랙을 잘 구성하려면 선곡도 잘하고 영화적인 이해도 갖고 있는 전문 코디네이터가 필요할 거에요.
그런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그래서 대부분은 감독이나 제작자의 취향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 같습니다만, 요즘엔 워낙 오픈된 정보들이 많이 있고 누적된 데이터들이 널려있으니 포커스를 두고 찾아서 구성하고 저작권 같은 법 문제를 잘 해결하면 상당히 효과적이면서 영화도 잘 살려주는 사운드트랙을 만들 수 있습니다. 때론 상업적인 의도로 의미없이 들어가는 삽입곡들도 있지만 그런 거야 제쳐두고, 삽입곡이지만 그 영화를 위해서 새로 작곡된 곡들을 사용하면 더 좋겠다라는 바람도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