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삼위일체 하느님
천주교 신자라면 누구나 수도 없이 반복하게 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모든 기도의 시작과 끝에 바치는 성호경의 내용,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가 그것입니다. 저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만(특히 식사 전에) 무의식적으로 순식간에 할 때도 많아서 그 의미를 별로 생각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이 자체가 하나의 기도문이라는 것도 잊은 채 손은 이미 이마를 거쳐 가슴을 지나는 가운데 순식간에 외워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처음 그리스도교 신자가 될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세례를 시작으로 모든 성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집니다. 최근 교황청 신앙교리부에서는 성사 집행에 규정된 ‘동작과 말’에 대한 설명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고 하는 전례문을 집전 사제가 임의로 바꾸어 “창조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라는 식처럼 한다면 그 세례는 무효이며, 만약 그런 세례를 받은 이가 견진을 받는 경우 심지어 사제품을 받아도 모두 무효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습니다(미국에서 실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이신 하느님이심이 표현되어야 하며, “이름들”이 아닌 “이름”으로 한 분 하느님께서만 계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33항)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계시의 내용이며 우리의 신앙 고백인 만큼 삼위일체 신비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입니다. 우리가 믿는 교리들에는 ‘신앙 진리들의 서열’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삼위일체 신비는 모든 신앙 진리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교리이며, 다른 신비들을 비추는 빛(가톨릭 교회 교리서, 234항)으로 어떤 것들이 신앙 진리인지를 밝혀 주는 기준이 되는 교리입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어렵다, 인간은 본래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다. 그저 믿어야 한다. 삼위일체는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어, 하느님께서 계시하시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신비들”(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 헌장)이기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저 믿어야 한다며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적 신비에 대해 알고자 하는 모든 노력들을 막아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창조 업적과 구약의 계시 안에 그 자취를 남겨 두시고, 성자의 강생과 성령의 파견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하게 계시하여 주신(가톨릭 교회 교리서 237항) 이 신비를 교회의 역사 안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해 온 결과들을 마주하며 정말로 내가 무엇을 내 신앙이라고 고백하는가, 나는 매일 무슨 기도를 바치며 살고 있는가를 의식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짧은 지면에 삼위일체 신비를 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며 자칫 쉽게 표현하려다 오해를 낳을 수도 있기에 제게도 조심스러운 작업입니다. 여기에서는 교리 지식에 대한 우리의 ‘문해력’을 높여보자는 것이 목적이니 교회가 삼위일체 신비에 관한 신앙 교리를 정형화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여러 신학 용어들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우리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작업을 함께해보려고 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0~133쪽, 232~267항을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2024년 6월 30일(나해)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