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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예레미야 3:6-10
" 6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7 그가 이 모든 일들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아직도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9 그가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용분해 : A.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대한 남유다의 목격 지적 (6-7절)
1.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행한 바를 보았느냐(6a절)
2.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6b절)
3. 그가 이 모든 일들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아직도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7a절)
4.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7b절)
B. 북이스라엘의 패망 목격에도 불구한
남유다의 북이스라앨 우상 숭배 답습 지적 (8절)
1.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8a절)
2.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8b절)
C. 영적 경박함으로 인한 우상 숭배 만연과
요시야 시대 대중들의 위선적 회개 지적 (9-10절)
1. 그가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9절)
2.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10a절)
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b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은 특별히 설 명절 연휴중에 예배를 드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설 명절을 맞이할수 있음은, 큰 기쁨이요 행복인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 다함께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새로운 한해를 하나님안에서 맞이하고 지낼수 있게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아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예레미야 3:6-10절 말씀으로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답습하는 남유다의 타락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본서 본론부 2-25장은 다양한 측면에서 선민에 대한 심판의 원인과 결과를 강조한 열두 편의 단편 예언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수록된 열두 편의 예언들은 그 선포된 시기나 배경이 각기 다른 독립된 예언들이며, 이 예언들은 선포된 시기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배열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두 편의 예언들은 그 소재만 다를뿐, 모두 선민의 언약의 파기, 불순종, 우상 숭배, 도덕적 타락 등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 더욱이 여기서 선민에 대한 심판의 원인으로 제시되는 것들은 서로 독립된 것들이 아니라 그 강조점만 다를 뿐, 서로 밀접한 상관성이 있는데, 이러한 맥락하의 6-6 30은 열두 편으로 이루어진 본론부인 2-25 장의 연속 부분으로 제2예언입니다. 이러한 제2예언은 남유다가 북이스라엘의 죄악을 답습한 것과 관련한 심판 예언으로, 이러한 제2예언은 제1예언과 마찬가지로, 요시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제1예언이 요시야의 종교 개혁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제2예언은 요시야의 종교 개혁 이후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고, 또한 제1예언이 주로 유다의 죄의 고발과 심판에 보다 강조점을 두고 있다면, 제2 예언은 진실된 회개의 촉구에 보다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제2예언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제2예언이 선포된 배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민 자손들의 나라의 하나였던 북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앗수르에 의해B.C. 722년 멸망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북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유일하게 선민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주는 교훈을 기억하고 우상 숭배를 멀리해야 하였으나, 남유다는 히스기야 이후 남유다의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하였던 왕으로 평가받는 므낫세(B.C. 697-642년)와 그를 이은 아몬 (B.C. 642-640년)의 약 60년의 통치기를 지나면서 극심한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고, 그러던 차에 유다의 마지막 선왕이자 히스기야와 더불어 유다의 가장 선한 왕으로 평가받는 요시야 (B. C. 640-609년)가 즉위하여, B.C. 629년에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 B.C. 622년에는 성전 수리 도중 율법책을 발견함으로써, 개혁에 가일충 박차를 가하게 되었는데(왕하 22 : 3-23 : 25). 그러나 요시야의 개혁은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즉 요시야의 개혁은 위로부터의 개혁으로서 므낫세와 아몬의 오랜 통치기를 지나면서 백성들 사이에 뿌리깊게 내린 우상 숭배를 온전하게 척결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유다 백성들은 요시야의 종교 개혁에 동참하는 듯하였으나, 그들은 성전 예배를 회복하고 요시야와 언약을 맺고 일단의 우상들도 척결하였지만, 그들은 앞에서는 우상을 척결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진정한 회개와 순종없이, 이전의 우상 숭배를 계속함으로써, 율법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예언을 통하여, 북이스라엘을 본받아, 우상 숭배의 죄악을 답습하며 진정으로 회개하지 아니하는 남유다를 향해, 엄중한 심판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예언의 내용을 개관하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6-10에서는 남유다가 북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 하였음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답습한 사실을 지적하며 책망 하고 있습니다. 이어 3:11-4:4의 두 문단에서는 종말론적 회복 약속을 제시하고, 남북 선민을 향하여 회개할 것을 촉구하며, 참된 회개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참된 회개의 조건은 네 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다시 우상 숭배의 미혹에 빠지지 아니하는 것,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는 것,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아니하는 것, 마음 가죽을 베고, 하나님께 속하는 것입니다.
다음 5-18은 거듭된 회개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는 유다를 향한 비탄과 회개 촉구가 동반된 멸망 심판의 삼중 예언을보도하고 있으며, 4:19-31 은 다가오는 남유다 멸망의 현장의 참상과 그 환상을 보는 선지자의 비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5:1-19의 두 문단에서는 선민 심판의 불가피성을 이중적으로 강조하며(1 -9절), 선민에 대한 제한적 심판 선언과 그 사유를 교차 반복 제시하고 있고(10-19절). 또 5:20-31 에서는 선민의 타락과 그 결과에 대한 삼중 지적을 통하여, 책망과 경고를 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6: 1-30의 세 문단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북방 이방 세력을 통하여 심판할 것임을 다중적으로 예언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본문을 대할 때에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엄정성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열방 중에서 자신의 선민으로 부르신 이스라엘 자손들이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범죄하며 악을 행할 때에는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회개치 않고 계속하여 악을 행할 때에는 엄정하게 심판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라의 멸망과 이방의 포수라는 실로 엄청난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구약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은, 죄악으로 오염된 이 세상을 필히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민으로 택한 자들까지도 악을 행하였을 때, 엄정하게 심판하시었다면,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을 엄정하게 심판하실 것은 지극히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이 회개하여 구원 받기를 바라시고, 죄인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그 심판을 세상 끝 날의 때로 유보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거듭된 권고를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간과하고 악을 행하기에 여념이 없으나, 이제 이 세상의 마지막 때가 이르면 하나님은 마치 노아 홍수 때와 같이, 마치 죄악이 관영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듯이, 이 세상을 심판하여 멸하심으로 말미암아 악을 행하던 죄인들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이 사실을 명심하고 악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여 거룩 한 삶을 살므로써, 이 세상에 대한 심판 날에 노아 홍수 때의 노아 가족과 같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구원을 받은 롯과 같이 세상에서 건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한편 유다 백성들은 요시야의 종교 개혁에 즈음하여 성전 예배를 회복하고 우상을 제거하는 등의 나름대로 신앙의 모습을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참된 회개의 조건을 제시 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시고 심판을 예언하신 사실에서, 그들이 구원에 이르는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직시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회개는 단지 입술로 죄를 고백하거나 삶의 모습을 조금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원하시는 참된 회개는 마음의 완전한 변화이며, 삶의 완전한 전환입니다. 즉 이전의 죄악된 마음과 삶을 완전히 단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인이 구원에 이르는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바른 회개만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하여, 죄인을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참된 회개를 배우고 그러한 회개에 이르러야 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들 중 최우선의 것은 영적 순결과 거룩"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내가 패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 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물론 여기서 '간음'이란 우상 숭배를 말하며, '내어 쫓았다'는 것은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사로잡혀 간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혼서를 주었다'는 것은 누차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하고 밀접한 것인지를 신랑과 신부의 혼인관계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짧은 한 절의 말씀속에서 어쩌면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한 가지 질문, 곧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인 우리 성도들에게 무엇을 가장 원하고 계시는가, 다시말하면 우리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시 본절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분명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 백성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어 쫓았다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 백성을 내어 쫓으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게으르거나 능력이 부족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큼의 재물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쫓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결혼관계에 비유하자면 신랑되신 하나님께서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혼서를 주어 내어쫓으신 것은, 신부가 살림을 잘못해서 가정의 재산등에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음행, 곧 영적 순결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신약의 교회와 관련해서도 심대한 교훈을 준다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아직도 많은 성도, 심지어 적지 않은 목회자들까지 이를 모르고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려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구약신학자인 브루지만은 그의 저서 "비전을 향한 삶"에서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출애굽 이후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습니다. 즉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벽돌공장에서 고역에 시달리는 노예의 삶이요, 출애굽 이후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많은 벽돌을 만들라고 명령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내 백성으로 하여금 광야에서 희생을 드리고 절기를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던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출5:1-14).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박은 지상명령은 오직 '더 많은 벽돌을 만들라' 였고, 그렇기에 할당된 양을 채우면 쓸모 있는 종이요, 그렇지 못하면 바르게 살아도 쓰레기나 짐승 취급을 받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보면 이와 전혀 반대입니다. 곧 십계명을 비롯한 그 어떤 규례나 율법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산량을 채우라는 말씀은 없고, 오직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아름답고 거룩하게 살라는 명령들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벽돌을 잘만드는 종이 아니라, 신랑에게 헌신과 충성을 다하는 정결하고 거룩한 신부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무만 다한다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축복으로 저절로 풍성히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 땅의 것들을 더 많이 얻으려는 탐욕으로 우상을 좇아감으로써, 스스로 종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하나님의 신부된 자로서의 삶을 버림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격을 박탈 당하고 마침내는 쫓겨나기에 이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사실을 통해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세상적 의미의 출세나 성공, 혹은 우리들의 손에 들린 많은 양의 재물이 아니라 바로 신령한 우리들의 몸과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또한 혼탁한 영을 지닌 자들로 북적대는 크고 화려한 예배당이나 유능한 목회자보다는, 오직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충성하는 목회자, 순결한 영혼을 지닌 성도들의 모임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 속에서 무엇보다 의로움과 거룩함에 이르기를 힘씀으로써,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티없고 흠없는 모습으로 맞는 순결하고 아름다운 신부들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