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다를 리가 없는데
섬진강변 다압에 매화꽃이 지천으로 피었으니 한번 다녀가라고 그 근처 토굴에 사는 도반의 전갈도 이미 받아둔 터이다.
이런 봄날 매화 순례길을 나서지 않는다면 그건 운수납자의 본분을 저버리는 일이렷다.
노고단을 넘어 화엄사 가는 길에 매천사가 있다 .여긴 절이 아니고 사당이다. 일제에 의해 국권을 잃었을 당시 ‘등불 아래에서 책을 덮고 지난 역사를 되새기니, 인간세상에서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가 어렵기만 하구나’라는 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우국지사 황현 선생을 모신 곳이다. 호를 매천이라고 불렀다. 초상화가 남아 있다. 얇고 둥근 안경테 너머 쏘아대는 눈길이 여간 매서운 게 아니다. 어느 어른이 저렇게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매천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선비의 깐깐한 기개가 느껴진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주변에서는 매화가 샘물처럼 쏟아질 것 같다.
다압의 매화농장은 꽃도 꽃이지만 그 열매인 매실을 숙성시키는 장독들이 더 볼만하다.
‘매실이 익었구나’라는 말은 당나라 마조스님이 법상 스님을 인가해 줄 때 쓴 말이기도 하다.
물론 장독 안에서가 아니라 나무에 매달려 노랗게 익었다는 말이겠지만,
그리고 법상스님이 머물던 산꼭대기에는 큰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어 대매산으로 불리었다.
장독 속으로 들어가기 전, 혹은 나무에 매달린 채 덜 익은 청매실은 조선시대 인오스님의 청매라는 이름이 되었다.
맞은편 연곡사에서 입적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부도는 벽소령 너무 영원사에 모셔져 있다. 일설에는 그곳에서 열반하셨다고도 한다.
돌아가실 때 온 방 안이 환해질 만큼 방광을 하였고 싸놓은 똥마저 향기가 난 도인으로 전해진다. 똥에서 청매 냄새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반조하지 않는다면 경을 읽어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 괴각질을 한다면 대중 속에서 살지라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등의 『십무익송』을 남겨 수행자들을 오늘까지 경책하고 있다.
고목에도 꽃이 핀다는 말을 실감하려면 함양 단속시의 늙은 매화나무를 찾아갈 일이다.
이름 그대로 그야말로 세상을 끊고서 초연히 매화답게 홀로 서 있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절은 간 곳이 없고 탑만 남아 마을 안에서 어우러지니 매화 역시 마을 한 켠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마을 속에서 마을을 여읜 게지. 법상스님이 살던 대매산 꼭대기의 고고한 매화인 양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으리라.
매화 시의 압권은 아무래도 황벽 선사의 게송일 것이다.
티끌세상을 벗어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고삐 끝을 단단히 붙잡고 한바탕 일을 치루어라
형탈진로사비상
간파승두주일장
한번 뼛속을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야
어찌 매화향기가 코끝 찌름을 얻을 수 있겠는가
겨울도 예전만큼 춥지도 않고 방 역시 항상 따뜻하게 해놓고 지내는 편이라 매화를 봐도 예전 사람들이 뼛속을 사무치는 추위를 겪고 난 뒤 봄을 맞이하는 그런 절실함은 모자랄 수밖에 없다.
매화는 그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리 없건만.
매화 찾아 지리산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본래 자리로 왔다.
봄 찾아 길을 나섰다가 결국 봄을 찾지 못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이미 꽃이 피어 있더라는 고인의 일을 새삼 떠올린다. 내 방문 앞에도 몇 그루의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벙글고 있다.
출처 ; 원철 스님 / 모두 함께 꽃이 되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