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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一. 모압 암몬 자손을 철저히 분리시켜라.
1절-14절: 그 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이는 저희가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였는지라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또 기명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었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 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갖춘 악한 일을 안지라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명하여 그 방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기로 내가 모든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그 처소에 세웠더니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로 고지기를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으로 버금을 삼았나니 이는 저희가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모압: 롯의 큰 딸. 암몬: 롯의 둘째 딸.
모압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이다.
이들의 특성은 세상의 누림성인데 우상숭배와 잔인하고 무정하고 오만하고 교만하고 자기 만족 자기 도취자들이다.
택한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해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 양식과 물로 영접치 아니하고 도리어 미디안과 함께 이스라엘을 저주케 하고,(민22:4) 미인계를 동원시켜 이스라엘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여 많은 젊은 이스라엘을 죽게 했고, 그 후에도 아말렉족을 도우고,(삿3:13) 잔인한 조약을 제안하고,(삼상11:1-3) 다윗을 대항하고,(삼하10:6) 갈대아인을 도우고,(왕하24:2) 유대인을 괴롭히고(느4:3, 7, 8) 하였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미인계를 써서 우상제물을 먹여 저주를 받게 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고 한 것을 생각하면 원한이 맺혀서 이가 갈린다. 그런데 이들의 후손이 지금 하나님의 택한 선민 틈에 끼어 있다.
느헤미야가 모세의 그 사건의 책을 낭독하기 전에는 유대 사람들이 그 사건을 몰랐었다.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제사장 엘리아십과 도비야가 절친하게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지내고 있었고, 또 민장들이 그들을 자랑하고 칭찬했기 때문에 옛날 일은 옛날 일이고 지금은 또 지금 일이라서 옛날 일은 그대로 두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도 성곽 낙성식에(12:27-43) 들어와서 만나자 마자 서로 ‘할렐루야’ 하며 인사들을 하고, 남녀노소 틈에 끼어 찬양을 하고 기뻐하니 택한 선민으로 알았지 누가 모압 암몬자손으로 알았느냔 말이다.
느헤미야가 모세의 책을 낭독하니 그 사건을 알게 되고 감화가 오고 이제는 구별이 온다. 그 같은 후손들이 백성들 틈에 끼어 있다는 것을 느헤미야로 통해서 말씀으로 알았다.
그들이 끼어 있으면 모압 암몬사상이 물이 든다.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들이 하는 짓이 무엇이겠느냐? 모압 암몬이 성전에 들어와서 욕심낼 것이 무엇이 있느냐? 말씀? 아니다. 택한 선민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저주가 온다.
그들을 철저히 골라내어라! 백성들 속에 있다. 역사적이며 미래적 영감의 감화를 받은 택한 백성은 철저히 구별하고 가려내야 한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모세의 글을 읽고 그 사건이 나올 때 마음속에 제일 싫어하는 자들은 누구냐? 모압 암몬자손들이다. 철저히 가려내라고 하니까 느헤미야를 죽이고 싶지! 모세가 써놓은 그 율법책을 없애고 싶고!
성전을 짓고 성곽을 짓고 각 부서를 분담하고 직분을 맡기고 하는 게 다가 아니다. 신앙적인 면에서 사상과 정신을 분별하고 구별해야 한다. 성경은 단순히 존재적 구별(신, 불신구별)만이 아니다.
‘세상과 구별하고 살자, 소돔 고모라와 구별하고 살자, 기복주의 현세주의와 구별하고 살자’ 할 때 듣기 싫은 것은 전부는 모압 암몬이다. 축출해야 한다.
도비야를 내어 쫓아라.
3절-9절: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또 기명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었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 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갖춘 악한 일을 안지라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명하여 그 방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
1. 아까는 백성들 틈에, 백성들 속에 있는 모압 암몬을 철저히 구별시켜 축출했다.
2. 이제는 성전 안이다.
느헤미야는 성전 안이라고 해서 가만 두지 않는다. 모압 암몬이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분별 구별해야 한다.
도비야는 암몬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성전의 성벽이 재건되므로 근심을 한 사람이다. 그리고 포로에서 같이 돌아왔지만 신분이 분명치 못 해!
이런 자가 어디에 살고 있느냐? 성전 골방 안에서 살고 있다.
도비야가 살고 있는 골방은 소제물 유향 기명 십일조 거제물들을 두는 방이다. 그런데 제사장도 아닌 도비야가 왜 거기서 살고 있느냔 말이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제사 드리는 것이 좋아서 자기 스스로 왔느냐, 아니면 누가 끌어 들였느냐?(13:4-5) 제사장 엘리아십이 끌어 들여 그 골방을 준 것이다.
그러니 그 방안에 있는 것 잘 먹고 살찌겠지. 하나님께 드릴 것, 하나님을 위해서 쓸 것을 도비야가 자기만을 위해서 잘 먹겠지!
암몬사람 도비야가 성전골방에 들어올 그 때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없었다. 바벨론에 갔다가 오는 동안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6절) 그것도 일반 평신도가 아닌 제사장이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얼마나 분통이 날 일이냐? 그래서 도비야의 살림살이를 문 밖으로 집어던져 버렸고 쫓아버렸다.
이 때 도비야의 마음은? 느헤미야에게 복수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제사장 엘리아십의 마음은 적으나마 사람 같으면 하나님 앞에 미안하고 죄송스러워서 회개를 할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은 고소하고 시원하겠지!
모압 암몬이 백성들 틈에 있어도 성경이 아니었으면 그들의 역사나 하는 짓을 찾기가 힘들다. 하물며 성전 안이랴! 성전의 골방 안에 틀어박혀 있으니 일반인은 모르고 알 리가 없고 유대인들도 잘 모르고 평신도도 모른다.
성전 안에서 살고, 성전 안의 물질을 먹고, 주소와 번지가 성전 안이고, 외출시 엘리아십 제사장의 옷을 빌려 입고 제사장과 함께 걸어가면 어떻게 알겠느냔 말이다. 하나님을 배경이 아닌 제사장 엘리아십을 배경하고 있으니 어떻게 알겠느냔 말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알고 있다.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다. ‘밖으로 집어던져 버려라! 엘리아십 제사장의 친구가 다 뭐냐? 쫓아내라!’ 이것이 있으면 성전 안에 모압 암몬이 또 몰려온다.
그런데 지금도 도비야를 잘 키우고 살찌우고 있다. 모압 암몬이 구더기처럼 득실거리고 있고, 서로 손에 손잡고 재미가 좋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상 정신이 보여지느냐? 구별 분별하고 살아라!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성전 안에서 수종 드는 레위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다 어디로 갔나’ 하고 알아보니까 전부는 자기 고향으로 가서 농사하며 자신을 위해 노후대책 세우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나’ 하고 알아보니까 그들에게 생활비를 주지 않은 것이다.
10장에 보면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서약하고 서명하기를 첫 열매, 십일조, 처음 난 아들, 처음 난 짐승, 성전세, 심지어 번제단에 쓸 나무까지 드리기로 했는데 그 서약을 한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잊어 버렸느냐? 그 속에 무엇이 들었기에 이렇게 되었느냐? 모압 암몬이다. 모압 암몬 귀신이 들어놓으면 이것은 누림성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다.
① 신자와 모압 암몬.
하나님께서 물질계를 창조하신 목적은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물로 지었다. 그런데 인간이(성도)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쓰지 않고 자기의 누림성과 노후대책을 위해 쓰는 것은 모압 암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놀고먹는 도적이다. 모압 암몬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쫓아내어라!
② 교역자 도비야.
들어온 물질로 수종 드는 자에게 생활비를 주어야 할 터인데 주지 않고, 주는데 인색하고 자기 누림성 자기 노후대책을 세우는 것은 역시 도비야다.
③ 성전 안의 도비야 모압 암몬.
하나님 앞에서 수종 드는 자들이 자기 고향에 가서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일이지 하나님 앞에 수종은 아니다.
자기를 위한 삶이니까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가 없다. 모압 암몬의 구별이 없다. 자타의 구원과 관계가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 그 종교성이 세상 물질적 위주 소원 목적 종교건설 목적이니 이것은 도비야 모압 암몬이다.
여기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타의 구원은 없다. 그 목적으로 하지 않았고, 구원을 모른다. 구별운동을 안 했다.
모압 암몬의 운동은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전진하지 못하게 했고, 우상제물을 먹여 하나님을 진노케 했고, 광야에서 심판을 받게 했다.
느헤미야는 민장들을 불러 모아 꾸짖고 레위사람들을 불러 모아 성전에서 수종 들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에 바칠 것은 바치게 하여 수종자들에게 생활비를 지급케 했다.
느헤미야의 기도.
14절: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우리가 느헤미야의 기도소리를 듣고 그의 한 일을 생각해 볼 때 느헤미야가 하나님 앞에 참 잘한 일이며 선한 일인가? 아멘이 된다. 그러나 도비야 모압 암몬자손은 아멘이 안 된다. 왜? 사상이 그 사상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二. 안식일을 철저히.
15절-21절: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유다 자손에게 예루살렘에서도 팔기로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하고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에 내가 명하여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내 종자 두어 사람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매 장사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므로 내가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 후부터는 안식일에 저희가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안식일은 창조 때부터 정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당신께서 쉬셨으니까! 그러니까 이 날은 하나님의 날이기도 하다.
물론 하나님 당신이 당신을 위해서 영광이 궁해서 영광을 받기 위해서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곧 우리 인간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위해서 먼저 물질계를 창조하셨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당신의 모양대로 지으시고 7일째 하나님이 안식하셨다. 이것이 기본창조이다.
이 기본창조 이후에 계속적으로 간접창조를 하고 계시면서 또 역시 인간(성도)을 당신의 성품대로 재창조 하신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역시 안식하실 것이다.(개인적으로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기본창조와 물질계의 간접창조, 그리고 택한 백성에게 6일 동안 힘써 일하고 제 7일은 안식일인즉 거룩히 지키라는 이 말씀을 종합해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하신 그 말씀의 뜻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짐승에게는 이런 명령이 없다. 인간에게만 이런 명령을 하신 것은 인간을 짐승보다 더 고통을 주기 위해서 하신 말씀은 아니다.
① 안식일을 안 지키면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에 위반이다.
② 안식일에 일한 것은 결과적으로 수입이 아니다.
③ 안식일 날 편안히 쉬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고통을 주는 일이 된다.
④ 안식일 날 일하는 그 자에겐 결국 안식이 없다.
⑤ 결국 심판이다.
왜냐하면 말씀무시는 하나님 무시이고 교회무시 주님무시이기 때문이다. 고로 하나님의 진노밖에 없다. 그 옛날 이스라엘의 열조들도 안식일을 범하여 모든 재앙이 내려졌던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이 본뜻은 모른 채 안식일 날에 이방인들을 끌어들여 장사케 하고, 택한 백성들도 덩달아 장사를 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가중시켰지 않았느냐’ 하며 꾸짖고 이방인들을 쫓아내었는데 쫓겨난 자들이 다시 들어올 기회를 엿보려고 밤중에 성 밖에 딱 엎드리고 있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하겠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거룩히 지키는 것이겠느냐?
① 모압 암몬을 철저히 색출하여 쫓아내고.
② 성전 골방에까지.
③ 전 안에 제물을 드리고.
④ 안식일 전에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가기 전에는 성문을 열지 말 것.(19절-)
세상이 못 들어오게 세상 쪽 문을 열지 말 것. 다시 말하면 미리 미리 마음을 모으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안식일 날 문 열린 성전에서 장사꾼이 장사를 한다는 것은 교회에서 교역자가 세상과 세상 것을 가르치고 교훈하는 것을 말한다.
장사꾼들은 물건을 가지고 온다. 물건을 가지고 오는 것은 팔아먹기 위해서이다. 물건을 팔아먹는 사람은 물건을 팔기 위해 간사스런 말을 많이 한다. 이들은 도비야와 엘리아십과 연결이 돼 있다. 물건자랑 물건소개를 할 때 누구의 말을 빌려 이용을 하고 성경구절을 이용을 한다.
세상자랑은 모두 장사꾼이다. 쫓아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말하는 곳이 아니고 세상 말 듣는 곳이 아니다. 세상 말을 들으려면 교회에 갈 필요가 없고, 교회에서 세상 말을 가르치면 그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
내가 교회에 왜 가느냐?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가지! 안 그러려면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
느헤미야가 성전 안에 장사꾼이 못 오게 하고, 장사꾼을 쫓아내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게 한 것은 참 잘한 일인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볼 때는 참 잘한 일인데 이방인들이 볼 때는 느헤미야가 그렇게 미운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는 백성에게 은혜를 주시고 아끼시겠느냐? 안식일 날, 주일날 성경보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심방하는 성도와, ‘6일 동안은 세상일을 했고 오늘은 일요일이니 세상일을 안 하는 내 자유의 날이다, 기회는 이 때다. 그러니 누구 찾아가고, 테레비 보자’ 하는 사람 중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고 아끼시겠느냐?(22절-)
三. 모압 암몬 이방여인을 쫓아내라.
23절-27절: 내가 또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는데 그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내가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로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 하지 아니하였느냐 저는 열국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 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모압 암몬이 백성들 틈에 있고, 제사장이 성전 골방에도 있고, 각 가정에도 버젓이 스며들어 있다.
모압 암몬이 들어 있으면 백성들이 타락이 되고, 제사장 성전이 타락이 되고, 지도자가 타락이 되고, 가정이 타락이 되고 만다.
느헤미야가 가만히 보니까 유다사람이 아스돗 모압 암몬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는데 그 자녀들이 각 족속의 방언은 잘 하는데 유다방언을 못 해. 세상소리는 잘 하는데 하나님 믿는 소리는 없고, 세상자랑은 잘 하는데 하나님 자랑이 없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분이 나서 남자를 책망하고 저주하고 때리고 머리털을 뽑아버렸다. 얼마나 분통이 터졌으면 이랬을까?
사실 이 행동은 하나님의 마음이 그런 가정에 그렇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20년 전에 에스라가 이방여인과 혼인한 것을 책망하고 이방여인과 그의 자녀들을 내어 쫓은 일이 있다.(스10:) 솔로몬 왕도 이방여인을 취했는데 이방여인들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이방여자로부터 우상섬김 세상 누림성이 감염이 되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남녀가 성은 달라도 그러나 그 속에 작용하는 사상을 보면 결혼은 끼리끼리 하게 된다. 세상은 세상끼리. 성질은 차이가 있으나 그 두 사람 속에 들어 있는 소원 목적은 똑같이 세상이다.
성도끼리 결혼을 했더라도 두 사람의 소원 목적이 각각 세상과 천국으로 되어 있다면 대립과 마찰과 충돌이 심하다. 고통이다. 어느 한 쪽을 따라가지 않으면 고통이 심하게 된다.
오리는 오리끼리, 닭은 닭끼리, 돼지는 돼지끼리, 개는 개끼리다. 닭과 오리를 짜매 놓을 수는 없다. 근본이 다르고 사는 생태가 다르다.
불신자와 성도의 결합은 참으로 고통이다. 마음이 편하지를 못하다. 둘 다 불신자였는데 누가 하나 먼저 믿었으면 어떤 방법으로서든지 하나마저 믿게 해야 한다. 믿을 때까지 고통은 따르겠지만!
왜 성도의 가정은 성도끼리 결혼을 시키느냐? 왜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느냐? 둘이 믿는 마음을 합쳐서 주의 일을 잘 하고, 구원을 잘 이루고, 자녀들로 마지막 그 날까지 구원운동을 잘 하고 구원운동을 잘 계승시키라고! 이것이 복음운동이다.
그런데 이방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놓으니 그 자녀들이 각 족속의 방언은 잘 하는데 유다방언을 못한다.
이것은 누가 그렇게 교육을 시킨 것이며, 누구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각 족속의 방언을 잘 한 것을 보니까 그의 어머니가 유식하고 똑똑했던 모양이지? 유식하고 똑똑하니까 각 족속의 방언을 가르쳐 주었지.
각 족속의 방언을 배운 그 자식도 참 똑똑하지! 똑똑치 못하면 못 배울 테니까! 그러나 아무리 똑똑해도 유다방언을 못 해.
유다방언을 못하면 어떤가, 각 족속의 방언을 하면 되었지! 이것은 참으로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다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니 하나님을 믿는 가정의 그 자녀들의 입에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 성경의 얘기, 하나님 소리, 성경 하나님 말씀, 건전한 생각에서 나온 말이 나와야 할 텐데 자녀들의 입에서 세상 풍속적인 말, 세상노래, 세상 춤, 영화배우나 가수이름들이 풀풀 나오면 참으로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닌 말로 글자 그대로 각 나라 말은 다 잘 아는데 성경은 하나도 몰라. 이런 자녀 참 똑똑하지? 누가 이렇게 길렀는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똑똑이 아니라 세상보기에 똑똑이다.
이것은 모압 암몬의 어머니가 기른 자녀이다. 이것은 그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계대가 끊어진 것이며, 구원운동이 끊어진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이 끊어진 것이다.(창6:1-) 그래도 똑똑타 하겠지?
이방여자가 아무리 제 눈에 보기 좋아도 집안에 데리고 오지 말라! 가정이 뒤집어진다.
교회적으로 볼 때(사상적) 교회가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을 끌고 들어오면, 즉 교회 지도자가 세상을 끌고 들어오면 교인들은 성경에 대해 아는 건 없고 배운 그대로 세상에 대하여 아는 것뿐이다.
모압 암몬이 들어 있는 사람의 각 족속의 방언이란 세상이 가득한 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아는 말은 없다.
어쨌든 모압 암몬에게서 배운 것, 가르친 것은 개인이나 교회나 가정의 교육이나 모두 세상의 말이지 하나님에 대한 말과 정신은 하나도 없다.
대제사장의 가정부터 그렇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다야의 아들 하나가 호론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다.
산발랏은 유력한 사마리아인이요,(느2:10) 성벽재건을 방해한 사람이요,(느4:7, 8) 느헤미야를 암살하려 한 사람이요,(느6:1-4) 협박하던 사람인데(느6:5-14) 그의 혼합사상이 가득 찬 딸을, 세상이 잔뜩 찌들어 있는 딸을 데리고 온 것은 유다에 처녀들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 여자를 데리고 왔나? 산발랏의 속셈을 모르고 데리고 왔나? 왜 아내로 데리고 왔나? 어떻게 해서 데리고 왔든지 간에 자녀들의 교육이 어떻게 되었느냔 말이다.
남녀가 결혼을 할 때 보통 보면 자녀들의 교육까지 생각지 않는다.(하나님의 교육) 대부분 고깃덩어리 결혼이 많다.
엘리아십은 제사장 직분을 더럽히고, 성전을 더럽히고, 가정을 더럽히고, 구원계승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업인 여겼다. 다 쫓아내야 한다.
쫓아내려면 힘들 테지? 인정상 힘들 테고 사정상 힘들 테지? 모압 암몬이 ‘여보’ 하며 매달리고, 아이들이 ‘아빠’ 하며 매달릴 테니 정 떼기가 그렇게 힘들겠지?
그래도 쫓아내야 하느냐? 가만 두면 안 된다. 쫓아내야 한다.(28절) 느헤미야는 쫓아내 버렸다.
31절: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이방여자를 아내로 삼고, 그의 자녀를 그렇게 가르친 가정이 비록 제사장의 가정이라 할지라도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쫓아낸 일은 잘한 일인가? 아멘이 되느냐?
하지만 모압 암몬여인은 느헤미야에 대하여 어떤 마음이겠느냐? 모압 암몬여인들의 유다남편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겠느냐?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은?
모압 암몬사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유다지역 예루살렘 안에, 성전 안에, 가정 안에 모두 다 들어 있다.
[느헤미야 끝]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요약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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