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팡팡
이미영
아르바이트를 다녀온 나와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의 네가
난간에 두 팔을 걸고 스크럼을 짠다
제깟 것이 튕기면 얼마나 튕기겠냐는 심정으로 아니면
한 번 튕겨져 보는 것도 좋겠다는 배짱으로
빙글빙글 돌다가 팡! 팡! 팡!
몇 번의 충격에 함께 매달려 있던
붉은 사과들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다
발랄한 비명이 난무하는 여기는
즉석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
관절인형 같은 애인의 다리가 공중에서 춤을 추고
방금 전 맹세했던 너와 나의 다짐은
깍지 낀 손을 놓쳐버린다
아, 내 손아귀 힘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너는 데굴데굴 굴러서 건너편 남자의 품에 안기고
내게 다시 오려고 애쓰는 너
그럴수록 경천동지, 진도 9의 강진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붉은 알몸의 마음들이
알알이 바닥을 뒹굴고 있다
명랑하게 뒤집히는 치마와 발라당 벗겨지는 슬리퍼
야바위꾼의 다트판인지,
디스코 음반이 돌아가는 턴테이블인지 알 수 없는
그 한복판으로 사과는 언제든지 끌려나온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털면 터는 대로 우르르 쏟아지는 붉은 여름
기진맥진한 낙과들의 표정은 사정없이 깨지고
해질녘, 쥐고 있던 무언가를 놓친 기분으로
꼭지에서 멀어진 나는 굴러 굴러서 혼자
일요일 저녁 속으로
웹진 『시인광장』 2022년 9월호 발표
이미영 시인
서울에서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졸업. 2019년 제8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등단. 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 수상. 2020년 경기문화재단 문학-유망, 우수작가 선정 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