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림수산식품부가 ‘3월의 원예농산물’로 추천한 채소입니다. 별명이 ‘컬러 피망’예요. 붉은색ㆍ녹색ㆍ주황색ㆍ노란색ㆍ보라색ㆍ회색ㆍ갈색 등 모두 12가지 색깔이 있어요. 여러 색이 얼룩덜룩 섞인 네덜란드 종(種)도 있습니다.
단맛이 피망보다 더 강합니다. 채소 맛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과일 쪽에 가까운 맛이에요.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느낌이 일품인데 맵지 않은 것은 고추의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이 거의 들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비 예방을 돕는 식이섬유, 혈압 조절에 유익한 칼륨이 상당량 들어 있다는 것이 영양상 장점입니다. 또 ‘비타민 캡슐’이라 불릴 만큼 베타카로틴(체내에 들어가서 비타민 A로 바뀜)ㆍ비타민 C 등 비타민이 풍부해요.
베타카로틴은 노화의 주범인 유해(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성분입니다. 지방에 녹는 지용성(脂溶性) 비타민이기도 해요. 나를 기름에 살짝 볶아 먹거나 샐러드로 만들 때는 식용유를 살짝 뿌려 먹으라고 권하는 것은 이래서죠.
베타카로틴은 특히 붉은색ㆍ주황색에 풍부합니다. 나를 삶거나 끓이면 베타카로틴은 대부분 파괴돼요. 그러나 가열해도 비타민 C(항산화 성분)는 많이 남습니다. 또 내 안엔 비타민 C가 산화되는 것을 막아주는 비타민 P도 들어 있어요. 나를 먹으면 비타민 C를 더 효율적으로 섭취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달래먹고 예뻐졌나?’라는 민요가 있는데 이를 ‘나 먹고 예뻐졌나?’로 개사(改詞)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아요. 피부 진피 층에서 콜라겐 합성을 도와주고 피부를 하얗고 깨끗하게 하며 피부 탄력과 수분유지를 돕는 비타민 C가 달래보다 더 많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내 비타민 C 함량은 100g당 162㎎(녹색)으로 달래의 5배 이상(33㎎), 토마토의 10배 이상(11㎎), 레몬의 2배(70㎎)에 달합니다. 또 내 안에 풍부한 비타민 A는 피부 각질을 줄이고 건성화를 막아준다고 해요.
최근 나는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맛이 달지만 100g당 열량은 11(녹색)~34㎉(주황색)에 불과해서죠.
나는 육류ㆍ생선ㆍ샐러드 등 거의 모든 요리에 잘 어울리지만 생으로 즐기는 것이 최선입니다. 가능하면 여러 색깔을 고루 섞어 먹는 것이 좋아요. 녹색엔 엽록소(클로로필), 보라색ㆍ갈색엔 안토시아닌, 노란색ㆍ주황색엔 베타카로틴 등 색깔에 따라 웰빙 성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과ㆍ레몬ㆍ토마토 등과 함께 주스를 만들어 마시는 것도 권할 만합니다. 마늘ㆍ올리브유ㆍ치즈ㆍ소금과 함께 믹서에 간 뒤 잼 대신 빵에 발라 먹는 것도 방법이에요. 곱게 채 썰어서 샐러드ㆍ잡채ㆍ냉채ㆍ피자ㆍ칼국수ㆍ도시락 반찬 등에 넣으면 눈이 즐거워지는 음식이 됩니다.
나는 겉 표면에 흠집이 없고 껍질이 두꺼우면서 윤기가 나고 골 사이에 변색이 없는 것이 좋은 상품입니다. 꼭지는 마르지 않고 색이 선명한 것을 고르세요. 약간 통통하고 모양이 반듯한 것이 더 맛있습니다. 열매에 반점이 있는 것은 낮은 저장온도, 일부 붉은 색을 띤 것은 과숙(過熟)이 원인이기 쉬워요.
나를 랩으로 싸서 냉장고에 두면 열흘 가량 보관이 가능합니다. 요리할 때는 꼭지부분을 잘라내고 꼭지에 붙어 있던 흰 부분을 자른 뒤 씨를 털어내고 이용하세요.
국내에선 1994년 제동흥산이 항공기 기내식용으로 공급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기르기 시작한 것이 처음입니다. 초기엔 국내 소비가 없어 생산량의 대부분을 수출했으나 최근 들어 내수시장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어요. 국내 생산량의 40%이상이 수출되는데 일본시장에선 네덜란드를 제치고 수입량의 70% 이상을 점유하는 수출 효자 식품입니다. 내가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것은 음식의 시각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일본인의 식습관과 잘 맞아 떨어져서 예요.
내 이름은 파프리카(paprika)입니다. 유럽에선 모든 고추를 통칭합니다. ‘파프리카=피망’이죠. 우리나라에선 매운 맛이 없는 ‘벨 타입’(bell type)의 고추(단 고추)를 파프리카라 해요. 일본에선 불어인 ‘piment’을 따라 피망이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