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14~21 /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신 예수님
(요 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요 7: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요 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요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요 7: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요 7: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요 7: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세상에는 많은 고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이 세상의 교훈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왜 우리가 성경 말씀에 나의 인생을 거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책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책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책입니다. 그 말씀을 통하여 많은 사람은 변화되고 예수님의 말씀은 세계 역사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줍니다.
14~15 초막절 명절은 7박 8일 동안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초막절이 시작되고 3~4일이 지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가서 공개적으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놀랐습니다. 어떻게 배우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을 잘 가르치는지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말씀을 은혜롭고 권세 있게 전하는지 놀랐습니다.
이런 현상은 사도행전에도 나타납니다. 베드로가 성령 강림 후에 그리고 앉은뱅이를 고친 후에 공개적으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수천 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배우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저리 말씀을 잘 전하는지 놀랐습니다.(행 4:13,14)
16~17 예수님은 자신의 교훈이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서 온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서 교육받아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 말씀을 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말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18절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셔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였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다 보면 거짓됩니다. 하나님만이 참되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져도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의 삶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자신을 맡기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반석과 같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19~21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정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니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긴다고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이 다섯 번이나 반복하여 나옵니다. 안식일 날 불도 피우지 말라고 나옵니다. 이들이 안식일 법을 이렇게 지키고자 하는데 예수님은 안식일 날 병자를 고쳤습니다. 자리까지 들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은 서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이 충돌하였습니다. 그러면 과연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종교 지도자들과 예수님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첫째, 긍휼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긍휼의 법은 최고의 법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9:13)
예수님이 안식일 날 병자를 고친 것도 긍휼의 마음입니다. 그는 병으로 38년 동안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병을 고쳐서 그가 참 안식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둘째, 상위법을 앞세우는 차이입니다(22~23).
예수님은 안식일에 할례를 하는 것을 예로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할례는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이 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안식일도 하나님이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법이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할례를 8일 만에 하라고 하셨는데 8일이 안식일인 경우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할례를 해야 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할례를 상위법으로 놓았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법과 사랑하라는 법이 있을 때 어느 것이 우선이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하면서 정말 너무나 작은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것은 넘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큰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셋째, 공의롭게 판단하는 차이입니다(24).
예수님은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 판단하라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 법을 어기는 것만을 가지고 판단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 있는 긍휼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중심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하위법에 매여서 상위법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하위법에 기초하여 판단하지 말고 상위법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하위법은 행동을 보고 판단하지만, 상위법은 중심을 보고 판단합니다.
우리는 중심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공의로운 판단은 시람 중심을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나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