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우리가 받은 복음은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쓰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요한은 힘센 천사의 말대로, 그 손에서 취한 작은 책을 가져다 먹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천사의 경고대로 요한의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은 후, 배에서는 썼습니다. 책이 입에 달았다는 말은, 요한이 주의 비밀스런 계시를 받은 즐거움과 기쁨을 누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인들에게는 큰 기쁨과 승리의 소리이기 때문에, 이보다 즐거운 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같이 달다고 말 합니다(시 19:10). 에스겔도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아먹으면서, 그것이 자신의 입에서 달기가 꿀 같다고 고백하였습니다(겔 3:3). 그러나 요한의 입에서 달았던 책은 배에서는 쓰게 되었습니다. 이는 요한이 받아먹은 말씀이, 11장 이후에 전개될 종말의 참혹한 대재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가 온 땅에 가득하고(계14:20), 세상이 천재지변으로 요동하며 (벧후 3:10), 전쟁과 기근, 전염병과 미움이 가득한 내용을 보고, 요한의 마음은 근심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이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믿는 자들에게는 입에 꿀이 단 것처럼 매우 기쁜 것인 반면에,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참혹한 재앙의 소식으로 들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 다. 그렇다고 성도가 이 환난의 시기를 고난과 고통 없이 지나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도나 불신자를 불문하고 환난의 시기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임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도 재앙의 쓴맛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없이 오직 멸망 받을 자들과 장차 구원의 소망을 품은 우리들이 겪는 고난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멸망받을 자들에게는 환난의 시기가 멸망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단계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잠시 동안 겪는 시련에 불과합니다. 즉 성도는 최후에 다가올 승리와 구원을 바라보기 때문에 한약이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은 것처럼 대종말의 환난에 관한 이 계시의 말씀이, 결국은 꿀과 같이 단 것입니다. 반면에 불신자에게는 최후의 멸망이 있기에 이 말씀이 독과 같이 쓰기만 할 뿐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사실을 잘 기억하여, 지금의 환난과 어려움을 기쁨으로 극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나 불신자에게 주어지는 환난과 고난에 차별은 없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음은 미래에 대한 소망 때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복음은 달고도 쓰고, 쓰고도 달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에 어떠한 맛을 느낍니까? 만일 꿀같이 달다면 이는 기뻐할 일이요, 혹 한약처럼 쓰다 해도,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