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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추억의 만화
1. 1909 이토 히로부미(암살 당시 전임)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909년 10월 26일 러시아 제국 하얼빈의 하얼빈역에서, 대한제국 출신의 안중근이 일본 제국의 제4, 6대 내무경, 초대 내각총리대신, 초대 귀족원 의장, 초대 추밀원 의장, 초대 한국통감을 역임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한 사건이다.
2. 1921 하라 다카시(암살 당시 현직)
총리 재직 중인 1921년 11월 4일에 도쿄역에서 나카오카 곤이치(1903년 ~ 1980년)라는 청년의 칼에 찔려 죽었는데, 극우 범죄 단체의 소행이었다. 조금 황당하게도 하찮은 민간인이 천황가의 혼인 문제에 관여했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당시 황태자비 선정에 불만을 가진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배후에서 방해 공작을 펼쳤다. 이것이 발각되어 야마가타가 난처해지자 평소 친분이 있었던 하라가 해명하고 중재를 해준 일이 있었다.
이후 나카오카는 무기 징역을 선고받지만 사건 당시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15년으로 감형되었고 1934년에 사면되었다. 이후 이슬람교로 개종했다고.
3. 1930 하마구치 오사치(암살 당시 현직)
1930년 11월 14일, 하마구치 총리는 도쿄역에서 천황의 통수권을 침범했다면서 우파 청년 사고야 도메오의 총에 맞는다.(이후 1933년에 사형 판결, 34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 1940년 11월에 가석방된다.) 즉시 도쿄제국대학병원으로 이송되어 장의 30%를 적출하는 대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지게 된다. 입원 중에는 당시 외무대신이 총리 권한대행을 맡았다. 상처가 호전되면서 1931년 1월 21일 하마구치 총리는 퇴원하였으나 야당의 등원 요구를 받았고, 3월 10일 완치되지 않은 몸으로 중의원에 등단, 11일에는 귀족원 회의에도 참석하였으나 이게 무리가 되어 다시 상처가 악화, 4월 4일 재입원하고 5일 수술을 받으면서 총리직 속행 불가능을 인정하고 사퇴하였다. 이후 완치를 위해 요양하는 등 노력하였으나 차도가 없어 8월 26일 결국 사망한다.
4. 1932 이누카이 쓰요시(암살 당시 현직)
5.15 사건(쿠데타)
우유부단한 총리에게 정권을 맡겨둘 수 없다고 판단한 젊은 해군 장교(와 육군 사관생도)들에 의해 암살당하고 말았다.
당시 해군 군인들은 수상 관저의 정문과 후문으로 나눠 들어왔는데, 정문으로 들어온 장교가 먼저 총리를 발견하고 권총을 쐈지만 불발이었다. 식사 직전이었던 총리는 "기다려, 총은 언제든지 쏠 수 있네. 말로 하면 알아듣네!"라고 하면서 응접실로 이들을 안내했다. 하지만 후문으로 들어온 군인들이 응접실에서 총리를 발견하자마자 "문답무용, 발사!"라고 명령을 내렸고, 이번엔 불행하게도 불발이 아니어서 그대로 유언이 되어버렸다. 이후 주모자 11명은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전국적인 구명 운동과 35만 명의 서명으로 사면되었다.
하마터면 찰리 채플린이 이 사건에 휘말릴 뻔했다. 당시 찰리 채플린은 자신의 일본인 비서의 조언에 따라 휴가차 방일했었는데, 이에 이누카이 쓰요시는 찰리 채플린을 초청하고자 비서격이였던 아들 이누카이 다케루를 찰리 채플린에게 보내 수행을 지시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원래 총리만 암살하려다가 하마터면 같이 있는 찰리 채플린까지 휘말릴 뻔했다... 라고 여기기 쉽지만, 반란장교들은 이누카이 총리와 같이 있을 찰리 채플린도 동시에 암살할 계획이었다. 찰리 채플린은 미국인이므로, 찰리 채플린을 죽이면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서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찰리 채플린은 미국인이 아니라 영국인이었다. 다만 채플린은 희극단 단원으로 시작했다가 미국으로 넘어가 영화 배우로 데뷔한 케이스라 사실을 잘 모르면 미국인으로 오해할 구석은 있었다. 반란 장교들이 국제 정세 감각이 전혀 없었음을 보여주는 대목. 만약 진짜로 죽였다면, 그렇지 않아도 1931년에 터진 만주사변 때문에 서먹해진 영일관계가 제대로 틀어져버렸을 것이다. 그것까지는 반란장교들이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찰리 채플린이 무사했던 이유는 비서가 이누카이 쓰요시와의 접견 전에 이미 스모 경기를 관람하고 덴뿌라를 시식하는 일정을 잡아두었기 때문. 이 덕분에 수행하러 간 이누카이 다케루까지 찰리 채플린과 함께 일정을 수행하여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아들로서는 아버지를 잃은 불행을 겪긴 했어도 찰리 채플린 덕에 자기 목숨은 건진 셈.
아이러니하게도 암살을 당할 뻔했던 채플린은 1936년 2월 하순에 다시 방일했는데, 공교롭게도 2.26 사건이 터졌다. 다만 이때는 채플린이 암살을 당할 뻔하거나 한 일은 없었지만.
5. 1936 사이토 마코토(암살 당시 전임)
2.26 사건(쿠데타)
이 사진은 1936년 2월 20일에 찍힌 것으로, 6일 후 2.26 사건 으로 두 사람은 손잡고 나란히 황천길로 간다.
사이토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황도파 청년 장교단이 1936년 2.26 사건으로 쿠데타를 일으켰고, 사이토는 77세를 일기로 결국 암살당하고 말았다. 이때 다카하시 대장대신과 와타나베 육군교육총감도 함께 암살당했다.
물론 그가 암살 기도를 받은 게 처음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대표적으로 1919년 강우규 의사의 폭탄 투척과 1926년 순종의 승하 때 송학선 의사의 기도가 있었지만(송학선의 경우는 닮은 사람을 사이토로 오인하고 죽였지만, 다행히도 민간인이 아니라 일제의 요인이었다.) 모두 실패했었는데(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던 김상옥 의사도 원래 사이토 총독 암살을 목표로 국내에 잠입한 것이었고, 1933년 만주국 일본대사 암살을 기도한 남자현도 1926년 사이토 총독 암살을 기획한 적이 있었으나 거사 직전 송학선의 의거로 경계가 강화되는 바람에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실패.)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민족인 일본인, 그것도 자신이 몸담고 있던 일본군에게 사살된 것이다.
여러 번 암살 시도를 넘겼던 사이토 제독은 제 명에 죽을 줄 알았지만, 총독도 총리도 다 그만두고 궁내성에서 궁내부대신으로 활동하던 도중 청년 황도파에게 친영, 친미파로 지목되어 죽게 되었던 것. 사이토 제독은 암살당했던 대신들 중에서 가장 끔찍하게 살해되었다. 집에 난입한 반란군 황도파 군인들이 47발이나 사격했다, 그중 몇 발은 장교도 아닌 증오심으로 가득찼던 일반 육군 병사가 자원해서 시행한 확인사살이었다.
암살 과정에서 사이토 제독의 처 하루코도 장교들에게 저항하다가 장검으로 토막났다는 와전된 야사도 전해지나, 실제로는 아니며 부상당했지만 살아남아 천수를 누려 1971년에 97세로 사망했다.
6. 1936 다카하시 고레키요(암살 당시 전임)
2.26 사건(쿠데타)
1936년, 2.26 사건 당시 여전히 대장대신이었던 그를 기습한 육군 황도파에 의해 자신의 집에서 암살당했다. 잠을 자고 있던 도중 그의 집에 침입한 황도파 장교가 "천벌을 받아라" 라고 소리치며 리볼버 권총을 겨누자 그도 "바보 같은 놈"이라고 일갈했고, 당당히 자신에 맞서는 다카하시를 보고 기가 질린 장교가 주저하자 다른 장교가 군도를 들고 덤벼들어 다카하시의 한쪽팔을 자르고 배를 찔러 장기를 헤집어놓는 통에 총에 맞는 것보다 더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86년 후
7. 2022 아베 신조(암살 당시 전임)
아베 신조 피살 사건
내용은 다들 너무 잘 알 거고
범인은 최소 징역 15년 이상 선고될 것이 확실하고
사형 선고도 가능해 보인다고 함
(일본은 사형 집행국
작년에도 교수형으로 사형을 집행했다고 함)
원래 일본에서 1명 살해는
사형을 반드시 선고해야 할 정도로
지나치게 명백한 가중사유가 없는 한
무기 혹은 10년 이상의 징역이 선고된다고 하는데
이번 사건은 인터넷으로 무기 제조 과정을 검색하고
복수의 사제 총기와 폭발물을 제조했으며
올해 봄부터 저격을 계획
사실상 테러에 가깝다고 봐서 사형 가능성 충분하다고
전현직 총리가 민간인에게 죽은 사건만 보면
2번 사건에서 무기 징역에서 15년으로 감형 후 석방
3번 사건에서 사형에서 무기 징역으로 감형
인데 2번 사건 범인은 당시 미성년자기도 했고
이전 사건들 전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이라 어떨지,,,
그나마 가깝고 비슷한 사건인
2007년 나가사키 시장 총격 암살 사건 범인은
1심에서 사형 선고 받긴 했는데
2심에서 무기 징역으로 감형됐다고 함
사실 이번 아베 사건 범인은 참 안됐다고 생각해서 선처해 줬으면 하는 맴 ㅠ
(아베 사건 범인 얘기)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ReHf/3946756
마무리는 영화 추천으로
첫댓글 역사가 깊었네..
남의 나라 침략하고 살육한 저주다
다음은 누구니
빨리도망가서 한국밀항하지
최초가 우리 선조라서 뿌듯 ㅋ
안중근 의사님은 차원이 다르니까 제외하고
나머지 일본인들은 다 우익세력인거 흥미돋 ㅋㅋ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어어맞어 조선총독했던놈 그래서 잔인하게죽었는데도 꼬시다싶더라🤭🤭
와 근데 진짜 시발 역사책에서 보던 총리 암살 이런겈ㅋㅋㅋㅋㅋㅋㅋㅋ 22년도에 내가 살아있을때 일어나다니..
보면 대부분이 지네 군인들한태 죽었네ㅋㅋㅋㅋㅋ
의.인.
이름 안불러서 경호가 안됐나봄
ㅋㅋㅋㅋ
아베야 억울하지?
길동무 하나 있는데 같이 가라
지들끼리 지랄이 났구나
말로 안통할 것 같으니까 그냥 죽여버리는건가?ㅋㅋㅋ
유서깊다 ♡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