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초기에는 '현실에 안주해 진화는 포기하고 오히려 퇴화한 생물'로 인식되었으나 사실 기생물은 극도로 복잡하게 진화한 생물이다. 이들이 특정 종에 기생하려면 숙주의 해부학적 구조와 내분비계, 면역계, 생식 등에 맞게 자신을 뜯어고쳐야 하며, 숙주가 피해를 주는 기생물에 대응하여 진화하기에 기생물이 현실에 안주해 있을 수도 없다. 감각기관 등은 실제로 퇴화되긴 했지만 이것 역시 숙주 몸 속 지독한 환경을 버티기 위한 진화다. 예를 들어 엄청 쓰다 쓴 쓸개 안에서 쓸개즙만 먹으면서 사는 간흡충들이 만약에 감각기관이 발달했더라면 사방에서 풍기는 엄청난 쓴맛이랑 역겨운 냄새를 버티지 못하여 진작에 멸종했을 것이다. 식육목 동물에 기생하는 심장사상충이나 곤충에 기생하는 연가시도 특정 동물에만 특화되도록 진화한 나머지 원래 숙주와 매우 차이가 큰 생물인 인간에게는 별 해를 끼치지 못한다.
물 속이나 흙 속의 영양분을 집어먹고 살아가는 생물이 있다고 해보자. 반대로 척추동물의 영양분을 빼돌려 사는 생물이 있다. 전자는 천적이나 다양한 세균, 영양분 부족과 싸워야 한다. 반면 후자는 숙주의 장 속에서 이들의 면역기전과 수많은 분해 효소랑 화학물질들, 그리고 산소부족증까지 회피하면서 살아야한다.
양쪽 모두 생존이 단순하다고 보기 어렵다. 방향이나 방법은 많이 다르지만 나름대로 살아남으려 변화한 종이라는 점은 똑같다. 그리고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다. 그저 무수히 많은 시간 속에 무수히 많은 우연이 겹쳐 그 시대의 생존에 적합한 형태로 변화해나가는 것이다. 자세한 건 진화 문서 참고.
기생충학 전공자 정준호 씨는 책을 펴내고 대중강연을 하기도 했다. '설마 이렇게 살까' 싶은 요상한 생태를 상상해서 조사하면 항상 하나쯤은 실제로 존재할 정도로 특이한 생태를 보인다고 한다.
연가시는 곤충의 뇌를 조종하는 단백질을 분비하기도 하며, 기생된 놈이 도리어 기생동물을 살신성인 시켜서라도 지키도록 한다.
고치벌은 나비 유충을 숙주로 하는 기생충이다. 고치벌 유충이 고치를 틀기 위해 숙주 밖으로 나오는데, 이 때 숙주가 죽도록 양분을 다 빨아먹고 나오는 종도 있고 숙주를 조종해 고치벌 유충이 고치를 틀 때까지, 혹은 그 고치더미에서 고치벌들이 나올 때까지 지키게 만드는 종도 있다.
일부 기생물에 감염된 개구리는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더 달리거나, 감염된 물고기는 자꾸 수면 위로 올라와 새들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이후 그 기생물은 새의 뱃속에서 살다가 알을 낳고, 알은 새의 배설물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 사람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톡소포자충을 들 수 있다. 쥐 등을 중간숙주로 해서 고양이를 종숙주로 삼는 기생물인데, 쥐에 기생하면 고양이에게 먹히게 하러 쥐의 겁을 없애고 고양이의 냄새를 좋아하게 만들며 고양이를 만나도 도망을 덜 가게 만든다. 그런데 이게 사람에 기생해도 비슷한 효과를 일으킨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었다. 다만 사람은 고양이에게 잡아먹히는 동물이 아니니까 건강한 성인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붉은 여왕 효과는 숙주와 기생생물의 관계를 역설한다. 한 마디로 생태계의 군비경쟁을 가리키는 말. 숙주가 기생을 피하려 개발한 방법과 기생물이 기생하려 꾀한 전략을 나열하면 그야말로 영원한 전쟁이란 말이 아깝지가 않을 정도.
기생물 연구자들에 따르면 기생물은 숙주 유전자풀의 질병 저항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질병의 저항력이 떨어지는 개체가 기생물에게 감염되어 약해지면 포식자에게 일찍 잡아먹혀 도태된다. 기생물에 강한 저항력을 가진 숙주는 다른 질병에도 강할 확률이 높고, 그렇게 강한 개체가 살아남아 후손을 남기게 된다. 결론적으로 기생물이 사라지면 자연도태 사이클이 느려진다. 즉 기생물 역시 생태계에 기여하는 바가 큰 것이다.
사실 기생되는 숙주 입장에서도 기생물에게 어느 정도 적응하는 진화를 하기 마련인데, 이런 적응기제를 가진 채로 기생물이 없이 청결하게 지내면 알레르기에 걸릴 가능성이 증가한다. 이를 위생가설이라고 한다. 인체의 면역반응은 지속적 자극이 있으면 역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둔감해진다. 그리고 기생충도 걸리지 않거나 걸려도 죽지 않기 위해서 인체를 둔감하게 만드는 효소를 계속 생산하기도 한다. 즉 기생충이 발생시키는 효소까지 포함해서 정상적인 성체로 성장할 수 있는데 기생충이 없어지면 면역체계가 이상발현하게 된다. 따라서 어릴때 너무 청결한 환경에 있으면 일반적으로 무해한 정도의 자극에도 면역체계가 과잉반응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세균이나 기생충 같은 적들을 만나도록 설계된 면역세포가 지나치게 청결한 환경 때문에 이를 만나지 못하게 되면 오히려 유해한 단백질을 생성하는 악성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2
또한 성 분화가 일어난 원인에도 한 몫했다는 가설도 있다. 무성생식은 기생물 공격의 대비에는 한번 뚫려버린 취약점에 대비하기 어렵다. 유성생식은 수없이 많은 유전변이가 일어나므로 기생물 공격에 강하다. 기생충들도 여러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만큼 유성생식을 하며, 주혈흡충들은 아예 남녀로 성이 분화되었다.
날고기 섭취는 기생물에 노출되는 행위이므로 가능한 익혀 먹으라함이 현대의 상식이다. 이는 기생물 생태에 따르면 타당한 이야기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돼지고기를 구울 때 바싹 구워야 된다는 것. 돼지는 유구조충의 중간숙주인데, 이 유구조충이 들어간 고기엔 유구조충의 알이 있다. 사람이 이 고기를 먹으면 유구조충이 부화하는데 보통의 경우는 장에서 잘먹고 잘살지만 어쩌다가 이 알이 혈관벽을 뚫고 지나가서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면 문제다. 그러다 뇌까지 들어가면... 자세한 것은 낭미충증 참고.
다만 현대의 국내산 사육돼지는 과거처럼 사람의 분뇨를 먹지않고 사료를 주어 사육하므로 덜 익히도 유구조충에 감염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인분을 먹여 사육하는 돼지는 위험하다. 그래서 제주도 똥돼지가 사라졌다.[2]
드문 사례로 생고기, 생피를 섭취하는 이누이트 족의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섭취하는 해양포유류, 물고기 등이 가지는 기생물의 절대다수가 고래회충과 같은 해수 기반의 기생물이라 인체에 해가 덜하다. 그리고 생태를 건져놓으면 한 시간 만에 동태가 되는 극한지대라 찬 공기에 노출되면 기생물들도 맥을 못 춰서 비교적 안전하다. 또한 너무 추운 동네라 채소와 같은 안전한 비타민 공급원이 부족해 생고기, 생피 안 먹으면 비타민 결핍으로 인해 사망한다.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합병증은 기생물 관련 질환보다 훨씬 위험하다.
생존술에서 다급한 상황에서 영양 섭취를 위해서 생고기와 생피를 섭취할 때 기생물 감염에 걸리는 사례 등이 보인다. 당연하겠지만 기생물 감염을 피하기 이전에 열량을 공급하지 못하는 것이 더 생존에 위험하기 때문에 위생을 차순위로 미루는 것이고 불을 구할 수 있으면 최대한 익혀먹기를 권고한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화식은 인류와 기생충과의 전쟁에서 등장했다는 가설도 있다. 식품을 익히면 기생물과 세균을 사멸시키고 단백질 구조를 변형시켜 소화를 쉽게 해 그 과정에서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과거 기생물은 세포성 면역을 주요한 구제 방법으로 봤지만, 최근엔 일부 선충류 등에선 체액성 면역을 중요하게 보기도 한다. 원충류는 애초에 적혈구, 림프구, 대식구 등등에 막 기생도 했지만.
기생물이 숙주의 영양분을 빼앗아 먹는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다이어트 방법 중에 일부러 자신의 몸에 기생물을 심어서 다이어트를 하는 해괴한 방법도 등장했다. 하지만 괜히 기생물 감염에 따른 질환의 위험만 생기고 다이어트 효과는 미미하니 시도하지 말자. 프로아나와 더불어 날씬한 몸매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해 나온 결과물. 다만 이런 건 이미 유럽에서 19C말에 유행한 적이 있다. 조충 등에 일부러 감염돼서 영양실조에 걸려 날씬하게 하는 다이어트 아닌 다이어트. 그러나 실제론 기생물이 먹는 건 진짜 손톱만큼도 안 된다. 애초에 기생물의 사이즈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기생물이 정말 다이어트할 정도로 많이 먹는다면 아마 장을 꽉 채우게 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면 애초에 그 숙주인 인간이 죽는다. 오히려 상술한 대로 이 기생물이 몸속 다른 장기로 들어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만 더 크다.[4] 사실 생선을 날로 먹으면 매우 위험하다.# 구충약도 필수이다.
한편 국가 차원에서 기생충 감염에 강하게 대응하다 보니, 기생충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좀 다른 의미로 연구에 곤란을 겪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학계의 연구 방향이 감염의 예방 및 치료에 쏠려 있어서 생물학의 입장에서 기생충 자체를 연구할 여유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서민 교수의 칼럼
JSA 북한군 귀순 사건애서 1차 수술 당시 북한군 병사의 소장에서 수십 마리의 기생충이 나왔다는 뉴스가 나오자, 시중 약국의 구충제가 일시 품절을 기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