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閑談)
청렴결백(淸廉潔白)-박수량과 백비(白碑)
박수량(朴守良-1491~1554)은 조선 중종·인종·명종 때 활동한 대표적인
문신이자, 청렴한 관리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청백리(淸白吏)입니다.
황희, 맹사성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청백리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1491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나, 1513년(중종 8)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14년(중종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광주향교 훈도를 시작으로 형조판서, 우참찬 등 조정의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또한 『중종실록』과 『인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했습니다.
30여 년이 넘도록 고위 관직을 지냈지만 서울에 자기 집이 없었습니다.
자녀들이 작은 집이라도 마련해 드리려 하자 박수량은 이를 만류했습니다.
"나는 벼슬 때문에 잠시 서울에 있을 뿐이며, 벼슬을 마치면 고향으로
돌아갈 사람이니 서울에 집을 지을 필요가 없다."
1554년 세상을 떠났을 때, 평생 청렴하게 살아 장례를 치를 비용조차 넉넉
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안 명종은 그의 청렴함을 높이 평가하여 국가에서
장례를 돕도록 하였습니다. 이 일화는 박수량의 청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박수량은 생전에 "묘를 크게 만들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명종은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우되, 오히려
글을 새기는 것이 그의 청렴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고 여겨 글자가 없는 흰
비석, 즉 **백비(白碑)**를 세우게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박수량은 공직자의
청렴성과 공직윤리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박수량의 묘와 백비
첫댓글 국무위원과 국회의원 수백 명 중 단 한 명만이라도 그런 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