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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지구 최초의 인간
앞서 묘사한 휴양실 할리스에 도착해 편하게 자리를 잡자 타오는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셸, 정확히 135만 년 전 켄타우루스 성운의 바카라티니 행성에서 지도자들이 수많은 회의를 열고 여러 차례 정찰대를 파견한 뒤에 어떤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곳 주민들을 우주선에 태워 화성과 지구로 이주시킨다는 결정이었어요. 이유는 단순했어요. 그들의 행성이 내부적으로 식어가고 있었고, 500년 안에 거주가 불가능해질 것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주민들을 같은 범주에 속하는 젊은 행성으로 대피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내린 거예요.
“‘같은 범주에 속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나중에 설명 할게요. 지금은 너무 일러요. 그들 얘기로 돌아가자면, 그들은 매우 지능이 높고 고도로 진화된 인간들이었어요. 흑인종이었지요. 두툼한 입술에 납작한 코, 그리고 곱슬머리 등. 그런 점에선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흑인들과 닮았어요. 그들은 바카라티니 행성에서 800만 년 간 살아왔어요. 황색 피부의 인종도 함께 살았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 황인종이 바로 지구에서 중국인이라고 불리는 종족이에요. 그들은 흑인들보다 약400년 먼저 바카라티니에서 살았어요. 두 인종은 그곳에서 살면서 수많은 혁명을 겪었어요. 우리는 때론 그들을 구조하고 도움을 주며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 노력했지요. 하지만 우리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주기적으로 일어났어요. 게다가 자연재해도 여러 차례 발생하면서 두 인종의 수는 줄어들었지요.
결국에는 대규모 핵전쟁이 발발했어요. 행성 전체가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기온은 섭씨 영하40도로 내려갔어요. 방사능뿐만 아니라 혹독한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대다수 인간들이 죽었어요. 기록에 따르면 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흑인 150명, 황인 85명에 불과했어요. 핵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인구는 흑인이 700만 명, 황인은 400만 명이었지요. 생존자 수의 기록은 그들이 서로 죽이는 행위를 중단하고 다시 번식을 시작하기 직전에 작성됐어요.
“‘서로 죽이는 행위’ 란 무슨 의미인가요?"
“전체 상황을 설명해 줄게요. 그러면 좀 더 이해가될 겁니다. 먼저, 생존자들은 지도자들이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해요. 특수하게 설계된 대피소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뜻이에요.
생존자들은 흑인 세 그룹과 황인 다섯 그룹이었어요. 일부는 민간 대피소에서, 나머지는 대규모 공공 대피소에서 살아서 나왔지요. 물론 핵전쟁 당시에는 그 235명보다 많은 사람들이 각종 대피소에 있었어요. 아마 모두 합해 80만 명 이상이 될 거예요. 그들은 여러 달 동안 어둠과 혹한 속에 갇혀 있다가 마침내 대피소 바깥으로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흑인들이 용감하게 나왔어요. 그들이 살던 대륙 위에서는 나무, 식물, 동물 등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어요. 산속의 대피소에 고립돼 있던 한 그룹이 처음으로 사람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식량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약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체를 먹었어요. 그러다가 나중엔 먹기 위해 서로를 죽여야 했어요. 그것은 그 행성에서 일어난 최악의 재앙이었지요.
바다 근처에 있던 또 다른 그룹은 몇몇 살아남은 생명체들을 먹으며 가까스로 연명했어요. 심하게 오염되지 않은 연체동물, 몇 종류의 물고기 갑각류 같은 것들이었어요. 이들은 또 지하 깊은 곳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매우 정교한 기계장치 덕분에 오염되지 않은 식수도 구했어요. 물론 행성 위에 남은 치명적인 방사능 때문에 이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죽어갔어요. 방사능으로 가득한 물고기를 먹어서 죽기도 했어요. 황색인 지역에서도 거의 똑같은 상황이 전개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살아남은 사람이, 아까 말한 대로, 흑인 150명과 황인 85명이에요. 그리고 마침내 전쟁으로 인한 죽음이 끝나고 번식이 다시 시작됐어요.
이 모든 사태는 그들이 온갖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났어요. 거의 멸종되다시피 한 그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두 인종은 모두 매우 높은 수준의 기술 문명을 누렸어요. 사람들은 무척 편안한 삶을 영위했어요. 그들은 공장, 민간 회사, 정부 기관, 사무실 등에서 일했지요. 지금의 지구상황과 똑같아요. 그들은 돈에 강한 집착을 가졌어요. 돈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을 의미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복지를 의미했어요. 후자는 좀 더 현명한 경우지요. 그들은 일주일에 평균12시간을 근무했어요.
바카라티니 행성에서는 일주일이 6일이고 하루는 21시간입니다. 바카라티니인들은 정신적인 측면보다는 물질적인 측면으로 기울었어요. 그리고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거듭 기만당하고 휘둘리며 살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어요. 지구인들처럼요. 지도자들은 공허한 언변으로 일반대중을 우롱했지요. 지도자들은 탐욕과 자존심 때문에 국민들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어요.’
이들 두 인종은 점차 상대방을 부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러움과 미움은 서로 종이 한 장 차이지요. 결국 서로 미워했고, 미움은 극도의 증오로 변해 핵전쟁까지 일어났어요. 양측 모두 첨단무기를 보유했던 만큼 공멸하고 만 겁니다.
우리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그 재앙의 생존자 235명 중 여섯 명은 아이들이었어요. 이 통계치는 핵전쟁 발발 5년 뒤에 기록된 겁니다. 그들의 생존은 식인풍습과 몇몇 해양생명체 덕분이지요. 생존자들은 자녀를 낳았지만 늘 ‘성공적이었다.’ 고 할 수는 없었어요. 끔찍하게 기형적인 머리, 또는 피고름을 흘리는 흉측한 상처를 갖고 태어나는 아기들이 흔했어요. 그들은 핵 방사능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을 감수해야 했지요.
150년이 지난 후 흑인은 성인 남녀와 아이들을 포함해 19만 명으로 늘었고, 황인은8만5천명이 됐어요. ‘150년’ 의 기간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때부터 두 인종이 복구를 시작했고 우리도 그들을 물질적으로 도울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무슨 뜻인가요?"
“몇 시간 전, 우리 우주선이 아레모 X3 행성 상공에 정박해 토양· 물· 공기 샘플을 채집하는 모습을 봤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타오가 말을 계속했다. “거대한 개미떼가 그곳 마을 주민들을 공격하자 우리가 개미들을 간단하게 몰살하는 모습을 봤을 겁니다.”
“그랬지요.”
“그것은 특별한 경우로 우리는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도왔어요. 당신도 봤다시피 그들은 거의 원시 상태로 살고 있었지요.”
“맞아요. 그런데 그 행성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핵전쟁이지요. 항상 반복되는 현상이에요. 미셸,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원자이며 만물은 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당신의 몸은 원자들로 구성돼 있어요. 내 말의 요점은, 모든 은하계에서 한 행성에 인간들이 살기 시작할 때마다 진화의 특정 단계에 이르면 원자의 존재가 발견된다는 거예요. 물론 원자를 발견한 과학자들은 원자의 붕괴가 강력한 무기로 사용될 수 있음을 조만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지도자들은 그 무기를 사용하고 싶어지죠. 마치 아이들이 성냥갑을 갖고 있으면 호기심에서 건초더미에 불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다시 바카라티니 행성 얘기로 돌아가죠. 핵 재앙이 있은지 150년 뒤 우리는 그들을 돕고 싶었어요.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식량이었어요. 그들은 여전히 해산물에 의존해 살았어요. 때론 잡식성 욕구 때문에 식인(食人) 행태를 보이기도 했어요. 채소와 육류가 필요했어요. 채소, 과일, 나무, 곡식, 동물 등 식용 가능한 모든 것이 사라졌어요. 대기 중에 산소를 공급할 식물들은 남아 있었지만 먹지 못하는 것들이었지요.
지구의 사마귀 같은 곤충도 살아남았어요. 핵 방사능 때문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거대한 크기로 진화했지요. 길이가8m 정도로 커져서 인간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존재였어요. 게다가 천적이 없기 때문에 급속히 번식했지요.
우리는 행성 상공을 날아다니면서 그 곤충들이 있는 곳을 찾아냈어요. 우리가 태고 적부터 갖고 있던 기술 덕분에 그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지요. 곤충들을 찾아낸 뒤에는 제거하기 시작했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완전히 절멸시켰어요.
‘지구의 사마귀 같은 곤충도 살아남았어요. 핵 방사능 때문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길이가 8m 정도로 커져서 인간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존재였어요.’
다음에는 가축과 식물을 다시 도입해야 했어요. 핵전쟁 전에 특정 지역의 기후에 적응한 종(種)들을 가져왔지요. 그 작업 역시 비교적 쉬웠어요.”
“그런 작업을 하려면 여러 해가 걸렸겠네요!”
타오의 얼굴에 큼직한 미소가 나타났다. “이틀밖에 안 걸렸어요. 하루 21시간씩 이틀이요”
믿지 못하겠다는 내 표정에 타오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혹은 그가 하도 포복절도하듯 웃는 바람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사실을 약간 과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은 여전했다.
내가 뭘 알겠는가? 내가 듣는 얘기 자체가 어차피 환상적인 내용이 아니던가! 내가 환각을 일으키고 있든지 아니면 약물에 중독돼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지구의 내 침대에서 곧 ‘깨어날지도’ 모른다. “아니에요, 미셸.” 타오가 내 생각을 읽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의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텔레파시만으로도 확신을 갖기에 충분하지 않나요.”
그녀의 말에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무리 정교한 속임수라도 이처럼 많은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다 갖추기는 불가능하리라. 타오는 내 마음을 속속들이 읽을 수 있었고, 그걸 여러 차례 증명했다. 라톨리는 내게 손을 얹는 동작만으로도 지극한 행복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나는 그런 증거들을 인정해야했다. 내가 엄청난 환상적인 모험 여행을 하고 있음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완벽한 결론이군요.” 타오가 말했다. “얘기를 계속할까요?”
“그러세요.” 나도 기꺼이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을 물질적으로 도왔어요. 하지만 우리가 개입할 때는 늘 그렇듯이 우리의 존재를 알리지는 않았어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는 보안 때문이고 둘째는 심리적인 이유에요. 저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되면 즉 우리가 자신들을 도우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저들은 수동적으로 도움만 받으려하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게 됩니다. 이는 그들의 생존 의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요. 지구에서도 그런 말이 있지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유가 중요합니다. 우주의 법칙은 확고하다는 것이에요. 행성들이 항성 주위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전하듯 엄격히 적용된다는 뜻이에요. 당신이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해요. 그것이 즉각적이든, 10년 뒤든, 아니면 10세기 뒤든, 반드시 치르게 된다는 얘기에요. 물론 우리가 가끔 허락이나 충고를 받아 도와줄 때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밥을 떠먹여 주는’ 식의 도움은 금지됩니다.
그래서 이틀 동안 우리는 그 행성에 몇 쌍의 동물들이 다시 살게 하고, 다양한 식물들을 다시 자라게 했어요. 언젠가는 그들이 다시 동물을 사육하고 식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그들은 원점에서 새로 시작해야 했어요. 우리는 그들이 발전하도록 꿈이나 텔레파시로 이끌었지요.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 그렇게 할 때도 있었어요. 다시 말해 그 ‘목소리’ 는 우리의 우주선에서 보냈지만 그들에게는 ‘하늘’ 에서 나는 소리였지요.”
“당신들을 신으로 여겼겠군요.”
“맞아요. 그런 식으로 전설이나 종교가 만들어지지요. 그러나 그 행성에서처럼 상황이 급박한 경우에는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요.
몇 세기 뒤, 그 행성은 핵 재앙 전의 상태로 거의 회복됐어요. 일부 지역에선 사막이 확실히 형성됐지만, 영향을 덜 받은 지역들에서는 각종 식물상과 동물상이 잘 발달됐어요.
15만 년 뒤에는 고도의 문명이 생겨났어요. 하지만 이번엔 단순히 기술적으로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다행히도 그들은 과거의 교훈을 잊지 않고 정신적 영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도달했어요. 이런 현상은 흑인과 황인 모두에게 일어났고 두 인종은 끈끈한 우정을 맺었어요.
평화는 오래도록 지속됐습니다. 과거 역사의 대부분이 기록으로 남아 확실히 전승됐기 때문이에요. 후세들은 무엇이 핵 재앙을 초래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를 알게 됐지요.
앞서 얘기했듯이, 바카라티니인들은 자기네 행성이 500년 안에 살수 없는 곳이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은하계 안에 생명제가 살고 있는, 혹은 살 수 있는 행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진지한 탐험 여행에 나섰습니다.
결국 그들은 당신네 태양계로 진출했어요. 첫 방문지는 화성이었지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었고, 실제로도 당시에는 인간이 살고 있었어요.
화성의 인간들은 기술은 없었지만 영적으로는 고도로 발달 했어요. 키는 120~150cm로 매우 작고 몽골인종처럼 생겼고, 부족 단위로 석조 오두막에서 살았어요.
화성의 동물상은 빈약했어요. 작은 제구의 염소, 대형 산토끼처럼 생긴 짐승, 몇 종류의 쥐 등이 있었고, 가장 큰 동물은 버펄로처럼 생겼는데 머리는 맥(tapir)을 닮았지요. 몇 종류의 새와 세 종류의 뱀도 있었고 어떤 뱀은 독성이 강했어요. 식물상 역시 빈약했어요. 가장 큰 나무도 높이가 4m밖에 안 됐어요. 메밀처럼 생긴 식용 식물도 있었지요.
바카라티니인들은 탐사를 계속했어요. 그러나 화성 역시 내부 온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4,000~5,000년 뒤에는 거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또 기존의 동식물 자원으로는 기존 주민들의 식량을 충당하기에도 충분치 않았어요. 그러니 대규모의 바카라티니인 이주민을 감당하기는 불가능했지요. 게다가 화성은 매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두 대의 이주민 우주선은 지구로 향했어요. 첫 착륙지는 오늘날의 호주 지역이었지요. 당시 호주, 뉴기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모두 한 대륙에 속해 있었어요. 그리고 오늘날의 태국 지역에는 폭300km의 해협이 있었지요.
당시 호주에는 거대한 내해(內海)가 있었고, 거기로 여러 개의 큰 강이 흘러들었어요. 그런 만큼 다양하고 흥미로운 동식물상이 번성했지요. 바카라티니인들은 모든 점을 감안한 뒤 호주지역을 첫 이민지로 선택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흑인종은 호주를 택했고 황인종은 오늘날의 미얀마 지역에 정착했어요. 미얀마 지역에도 야생 생물이 풍부했어요. 벵골 만 주변에 정착 기지들이 신속히 세워졌지요. 한편 흑인들은 호주 내해 주변에 첫 정착 기지를 건설했습니다. 나중에는 더 많은 기지가 뉴기니 지역에 세워 졌어요.
그들의 우주선은 초광속으로 비행할 수 있었는데, 약 50년에 걸쳐 흑인과 황인 이주민들을 각각 360만 명씩 지구로 실어 날랐어요. 이는 두 인종이 서로를 철저히 이해하고 단합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행성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남기로 결심했어요. 양측의 합의 하에 노약자들은 바카라티니에 남았어요.
바카라티니인들은 정착 기지를 건설하기 전에 지구 전체를 샅샅이 탐사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도착하기 전의 지구에는 인간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인간처럼 생긴 생명체들을 자주 보긴 했지만 좀 더 자세히 조사해본 결과 대형 원숭이 종류였음이 확인됐어요.
지구의 중력은 바카라티니에서보다 강해 처음에는 상당히 불편했지만 두 인종은 훌륭히 적응해 나갔습니다. 도시와 공장을 건설할 때 그들은 바카라티니에서 매우 가벼우면서도 강한 자재들을 들여왔어요.
아직 설명하지 않은 게 있는데, 당시 호주는 적도 지역에 있었지요. 지구는 오늘날과는 다른 축을 중심으로 회전했는데, 자전 주기는 30시간 12분, 공전 주기는 280일이었어요. 당시 적도의 기후는 오늘날과는 달랐어요. 대기 상태가 변한 오늘날보다는 훨씬 더 다습했어요.
거대한 얼룩말 떼가 평원을 돌아다녔고, ‘도도’라고 불린 거대한 식용 새와, 초대형 재규어도 있었어요. 또 지구인들이 ‘거대 모아 새’ (Dinornis)라고 부르는4m 높이의 새도 당시에 존재했어요. 어떤 강에는 길이 15m짜리 악어와 25~30m의 뱀이 살았는데 이따금 이주자들을 잡아먹었지요.
동식물상의 대다수는 바카라티니와 완전히 달랐어요. 영양학적 생태학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해바라기, 옥수수, 밀, 사탕수수, 타피오카 같은 식물들을 지구의 기후에 적응시키려고 수많은 실험농장들이 세워졌어요.
이들 식물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했다 해도 원시 상태였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지요. 염소와 캥거루는 바카라티니에서 수입됐어요. 이주민들이 유달리 좋아해서 바카라티니에서 즐겨 먹던 동물들이었거든요. 그들은 특히 캥거루 사육에 열성적이었어요. 하지만 지구 생태계에 적응시키는 데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지요.
가장 큰 문제 중하나는 먹이였어요. 바카라티니에서 캥거루는 ‘아릴루’ 라는 가늘고 질긴 풀을 먹고 살았는데, 이 풀은 지구에는 없던 것이었어요. 그 풀은 이주민들이 재배하려고 애썼지만 번번이 미세한 진균류(眞菌類)의 공격으로 죽었어요. 그래서 캥거루는 몇 십 년 동안은 사료를 먹고 살았지만 점차 지구의 토종 풀들에 적응해 갔지요.
흑인들은 아릴루 재배 노력을 계속해 결국 성공했어요. 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난 터라 캥거루들은 이미 토종 풀에 적응했기 때문에 성공의 의미가 퇴색됐어요. 훨씬 더 긴 세월이 흐른 뒤 일부 아릴루 종은 지구 토양에 뿌리를 내렸지만 이를 먹는 동물이 없다 보니 호주 전역으로 퍼졌어요.
그 식물은 ‘크산토로에아’ 라는 학명으로 아직도 존재하는데, 일반적으론 ‘그래스 트리’ (grass tree: 백합과의 상록 관목. 저자의 원고에는 ‘black boy’ 로 돼 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인종적인 합의 때문에 호주에서는 기피하는 표현이다.)로 불리지요.
호주에서 흔히 ‘풀 나무’ (grass tree)로 불리는 식물. 학명은 크산토로에아 (Xanthorrhoea). 지구상에서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이 식물은 캥거루와 마찬가지로 바카라티니 행성에서 들어왔다.
이 식물은 바카라티니에서보다는 지구에서 훨씬 더 크고 두텁게 자랍니다. 식물종이 다른 행성으로부터 도입되는 경우에 자주 있는 일이지요. 이 식물은 고대의 흔적을 보여주는 드문 경우에 속해요.
이 식물은 캥거루처럼 호주에서만 발견됩니다. 그것은 바카라티니인들이 지구의 다른 지역들로 진출하기 전에 아주 오랫동안 호주에서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이 점에 관해 설명 할게요. 하지만 먼저 그들이 적응을 위해 극복해야 했던 문제들을 당신에게 좀 더 잘 이해시키려고 캥거루와 크산토로에아의 경우를 언급하고 싶었어요. 물론 그것은 수많은 문제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황인종은 앞서 말했듯이 벵골 만의 내륙지대에 정착했어요. 대다수는 지금의 미얀마 지역에서 살았지요. 그들 역시 도시들을 건설하고 실험농장을 운영했어요. 채소류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어요. 그래서 바카라티니로부터 양배추, 상추, 파슬리, 고수풀 등을 수입했어요. 과일로는 체리나무, 바나나, 오렌지 나무 등을 들여왔지요. 바나나와 오렌지는 재배하기가 어려웠어요. 당시 기후가 지금보다는 추웠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바나나와 오렌지 나무 일부를 흑인들에게 넘겨줬는데, 흑인들은 재배에 성공했어요.
밀 재배에서는 황인들이 훨씬 더 성공했어요. 사실, 바카라티니산 밀은 낟알이 매우 커서 커피콩 크기만 했고, 이삭의 길이도40cm나 됐어요. 네 가지 품종의 밀이 재배됐는데, 황인들은 얼마 안 돼 아주 높은 수준의 생산력을 갖게 됐어요.”
“바카라티니인들이 쌀도 지구에 도입했나요?”
“아뇨. 쌀은 순전히 지구의 토종 식물이에요. 하지만 지금 같은 종자가 된 것은 황인들이 여러 차례 품종을 개량한 덕분이에요.
거대한 식량창고들이 건설됐고, 곧이어 두 인종 간 교역도 시작됐어요. 흑인들은 캥거루 고기, 도도 새(당시에는 새끼를 많이 낳았다), 얼룩말 고기를 수출했어요. 흑인들은 얼룩말을 사육하는 과정에서 맛은 캥거루 고기와 같지만 영양가는 더 높은 품종을 개발했지요. 교역은 바카라티니 우주선을 이용해 이뤄 졌고, 곳곳에 우주선 기지들이 세워졌지요.
“타오 잠깐만요. 당신 얘기는 지구 최초의 인간이 흑인과 황인이었다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내가 백인인 것은 어떻게 된 건가요.”
“미셸, 너무 앞서 나가지 마세요. 지구에서 최초의 인류는 분명히 흑인과 황인이었어요. 일단은 어떻게 그들이 사회를 조직하고 살아갔는지부터 설명할게요. 그들은 물질적으로 성공했어요. 하지만 거대한 집회장을 건설해 종교 생활을 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그들에게 종교가 있었어요?”
“예, 그래요. 그들은 모두 ‘타키오니’ 이었지요. 다시 말해 환생(reincarnation)을 믿는 사람들이었어요. 오늘날 지구의 라마교도의 신앙과 비슷한 것이에요.
두 나라 사이에는 왕래가 잦았어요. 지구의 다른 지역을 좀 더 깊이 탐사하려고 공동으로 노력하기도 했지요. 어느 날 흑인과 황인의 합동탐사대가 남아프리카 끝에 착륙했어요. 오늘날 희망봉으로 불리는 곳이에요. 그 시절 이후 아프리카는 거의 변하지 않았어요. 사하라, 북동부 지역, 홍해는 제외하고요. 그곳들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별도의 얘기로 나중에 설명해줄게요.
탐사대가 그곳에 착륙한 때는 이미 바카라티니인들이 지구에 정착한지 300년이나 흐른 시점 이었어요.
아프리카에서 그들은 코끼리, 기린, 버펄로 같은 새로운 동물과, 전에 본 적이 없었던 토마토 같은 새 과일을 발견하였습니다. 미셸, 그 토마토가 당신이 알고 있는 토마토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처음 발견됐을 때 토마토는 매우 작은 건포도 크기에 신맛이 강했어요. 황인들은 그동안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그 후 몇 세기 동안 토마토 품종개량에 나섰어요. 벼 품종을 개량한 것과 마찬가지였죠. 그 결과 당신이 알고 있는 토마토가 생긴 것입니다. 그들은 바나나나 무를 처음 봤을 때도 놀랐습니다. 자신들이 수입해온 바나나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바나나를 들여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아프리카 바나나는 식용에 적합지 않은 데다 속에 큰 씨앗들이 가득 들어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아프리카 탐사대는 흑인 50명과 황인 50명으로 구성됐는데, 코끼리와 토마토, 그리고 많은 몽구스를 가지고 귀국했어요. 몽구스들은 곧 뱀의 천적임이 밝혀졌지요. 불행하게도 그들은 요즘 ‘황열병’ 이라고 불리는 끔찍한 바이러스성 질환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매우 짧은 시간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심지어 의사들조차 어떻게 병이 퍼졌는지를 몰랐어요. 황열병은 모기에 의하여 주로 퍼졌고 적도 지방에는 모기 수를 줄일 겨울이 없어 모기들이 더 많았지요. 그 결과 호주의 흑인들이 더 많이 희생됐어요. 황인보다 희생자가 네 배나 많았어요.
바카라티니의 황인종은 의학과 병리학 분야에서 늘 뛰어났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질병의 치료제를 발견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 사이에 수십만 명이 끔찍한 고통 속에 죽어갔어요. 마침내 황인들은 백신을 만들어냈고, 흑인들에게도 즉시 백신을 보내줬습니다. 두 인종 간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졌지요.”
“흑인의 체격은 어땠나요?”
“바카라티니에서 왔을 때 흑인의 키는 약 230cm이었고, 여성도 비슷했어요. 그들은 아름다운 종족이었어요. 황인들은 상대적으로 작았어요. 남자는 평균 190cm, 여자는 180cm 이었죠.”
“하지만 당신은 현대 흑인들이 그들의 후손이라고 말했는데, 후손들이 훨씬 더 작은 이유는 뭔가요?”
“중력 때문이죠. 바카라티니보다는 지구의 중력이 더 강해 두 인종은 점차 키가 작아졌어요.”
“당신은 또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준다고 했는데, 황열병이 발생했을 때는 왜 도와주지 않았나요? 당신네도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나요?”
“도울 능력은 있었어요. 우리 행성에 와보면 우리의 능력을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개입하지 않았어요. 예정된 프로그램에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이미 말했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개입하지 못하게 돼 있어요. 특정 상황에선 도와주지만 그 외에는 안 돼요.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도움을 주는 것이 법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어요.
간단한 예를 들어보죠. 배우기 위해 매일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생각해 보세요.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이가 숙제를 도와달라고 합니다. 현명한 부모라면 아이가 과제물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숙제는 혼자 힘으로 하도록 합니다. 반면에 부모가 숙제를 대신 해주면 아이는 배울 기회를 놓치게 되겠죠. 그러면 아이는 같은 내용을 다음해에도 반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할 도리가 아니죠.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당신이 지구에 존재하는 목적은 어떻게 살고 고통 받고 죽느냐 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지요. 동시에 영적으로 최대한 발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죠. 나중에 ‘타오라’ 가 당신과 대화할 때 이 점을 다시 얘기할 겁니다. 지금은 이 사람들에 관해 더 얘기하고 싶어요.
그들은 황열병을 이겨내고 지구에 뿌리를 더욱 깊이 내렸어요. 호주뿐만 아니라 오늘날 남극대륙으로 알려진 지역에도 많은 인구가 살았어요. 물론 당시 그 지역은 적도 쪽으로 좀 더 가까이 있었으므로 기후가 온화했어요. 뉴기니에도 많은 사람이 정착했어요. 황열병 전염이 종식될 무렵 흑인 인구는 7억 9500만이었어요.”
“나는 남극대륙이 실제로는 대륙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그것은 호주에 붙어있었고 요즘보다 훨씬 따뜻했어요. 지구가 다른 축을 중심으로 회전했기 때문이지요. 당시 남극대륙의 기후는 지금의 러시아 남부와 비슷했어요.”
“그들이 바카라티니로 돌아가지는 않았나요?”
“아뇨. 지구에서의 생활이 안정되자 그들은 아무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엄격한 규칙을 제정했어요.”
“그들의 행성은 어떻게 됐나요?"
“예상대로 냉각되다가 사막으로 변했어요. 화성처럼.”
“그들의 정치제도는 어떤 것이었나요?”
“매우 단순했어요. 손을 들어 찬반을 표시하는 선거로 마을이나 구역의 지도자를 뽑았어요. 그리고 구역 지도자들이 모여 시장을 선출하고, 동시에 지혜, 상식, 성실성, 지성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들 중에서 8명의 원로를 뽑습니다.
재산이나 가문을 기준으로 뽑는 경우는 결코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이는 모두 45~65세입니다. 도시나 지방(한 지방은 8개 마을로 구성된다)의 지도자는 8인의 원로와 의논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 8인으로 구성되는 원로회의는 주(州) 평의회 모임에 참가하는 대표를 선출합니다(비밀투표로 하며 의결 정족수는 7명 이상이다).
예컨대 호주에는 8개 주가 있었고, 각 주는 8개 도시나 지방으로 구성됐습니다. 따라서 주 평의회 모임에는 각자 특정 도시나 지방을 대표하는 8명의 대표자가 참석했습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현인이 주재하는 주 평의회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어떤 정부나 직면하는 일상적인 사안들을 의논했습니다. 예컨대 상하수도, 병원, 도로 같은 문제들이죠. 도로 교통의 경우, 흑인과 황인들은 수소 발동기로 작동하는 매우 가벼운 차량을 이용했어요. 반자기력과 반중력에 입각한 시스템 덕분에 지면 위로 부상한 채 이동하는 차량이었지요.
정치제도 얘기로 돌아가서, 소위 ‘정당’ 같은 조직은 없었어요. 모든 것이 인격과 지혜에 대한 평판에 달려있었죠.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들은 오래 지속될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선 공정성과 원칙이라는 두 개의 핵심 요소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들의 경제 및 사회 조직에 관해선 나중에 얘기하고, 지금은 사법제도를 간단히 소개할게요. 예를 들어 절도범으로 확인된 사람은 새빨갛게 달군 쇠붙이로 평소 사용하는 손의 등에 낙인을 찍습니다. 오른손잡이는 오른 손등에 찍는데, 도둑질을 또 하면 왼손을 잘라 버립니다. 최근까지도 지구의 아랍인들 사이에서 유지되는 오래된 관습이지요. 도둑질을 계속하면 오른손마저 절단하고 이마에도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찍습니다. 양손이 없어졌기 때문에 절도범은 식사를 비롯해 만사를 가족이나 행인들의 자비와 동정심에 의존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낙인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절도범의 인생은 매우 힘들어졌어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절도범은 이런 식으로 상습범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본보기가 됐어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절도는 희귀한 범죄였지요.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살인 역시 드물었어요. 살인 용의자는 특별실에 데려가는 데 커튼 뒤에는 ‘독심술사’ 가 있었어요. 독심술사는 특수한 정신감응 재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특수 교육기관에서 그런 재능을 부단히 증진시킨 사람이었지요. 그의 임무는 용의자의 생각을 간파하는 것이었어요.
훈련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비우는 일이 가능하다고 반박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6시간 내내 그렇게 하기는 불가능해요. 게다가 용의자가 생각을 비우려할 때마다 특정한 음향이 들리면서 그의 정신 집중을 방해합니다.
예방책으로 6명의 다른 ‘독심술사’도 동원됐어요. 멀리 떨어진 다른 건물에서는 목격자에게도 동일한 절차가 적용됐어요. 말은 한마디도 필요 없었습니다. 다음 이틀 동안에도 같은 절차가 반복됐는데, 그때는 8시간씩 했어요.
나흘째 되는 날 독심술사들은 판사 세 명으로 구성된 재판부에 각자의 보고서를 제출하고 판사들은 피고와 목격자들을 상대로 신문과 반대신문을 합니다. 변호사나 배심원은 없었습니다. 판사는 사건에 관한 모든 세부적인 정보를 확보한 후 범죄 사실이 절대적으로 확실할 때에만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살인죄의 형벌은 죽음 그것도 끔찍한 죽음이었거든요. 살인자는 산채로 악어들에게 던져졌어요. 강간은 살인보다 더 나쁜 범죄로 간주됐는데 그런 만큼 형벌도 더 잔인했지요. 강간범은 온몸에 꿀을 바른 뒤 개미굴 근처의 땅속에 어깨까지 파묻혔어요. 죽을 때까지 1O~12시간이 걸렸지요. 이제는 이해하겠지만 두 나라의 범죄율은 지극히 낮았어요. 그래서 교도소를 지을 필요도 없었지요.”
“형벌이 지나치게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예를 들어, 강간당한 뒤 살해된 16살짜리 소녀의 어머니 심정을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는 가장 잔인한 고통을 견뎌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바라지도 않았던 일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반면 범인은 자기 행동의 결과를 알고 있어요. 따라서 매우 잔인하게 처벌받는 게 정당합니다. 그러나 이미 설명했듯이 범죄 행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종교로 돌아가죠. 앞서 말한 대로 두 인종은 환생을 믿었어요. 하지만 그들의 신앙에는 분파들이 있었고, 그래서 때론 그들을 분열시켰어요. 다양해진 교파의 성직자들은 신도들을 자신의 지도력 아래로 끌어들였어요. 흑인종 내부의 교파 분열은 재앙을 낳았어요.
결국 약 50만 명의 흑인이 성직자들을 따라 아프리카로 이주해갔습니다. 지금의 홍해 지역이었어요. 당시에는 홍해가 존재하지 않았던 만큼 그 지역은 아프리카 땅이었어요. 그들은 마을과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여러 면에서 공정하고 효율적이었던 그 정치제도는 폐기됐어요. 성직자들이 정부 수장들을 직접 선정했어요. 결국 정부 지도자들은 성직자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로 변해 갔어요.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패 매춘 마약을 비롯한 온갖 비리들을 겪어야 했어요. 오늘날 지구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문제들이지요.
황인종의 경우는 매우 잘 조직화되었습니다. 약간의 경미한 종교적 왜곡이 있긴 했지만 그쪽 성직자들은 국사에 대한 발언권이 없었어요. 황인들은 평화를 누리며 풍요롭게 살았어요. 아프리카로 떠나간 분리론자 흑인종과는 매우 달랐지요.”
“그들은 어떤 종류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나요?”
“아주 단순한 무기였어요. 단순함이 복잡함보다 우월한 경우가 많듯이, 그 무기는 매우 효과적이었어요. 두 인종은 일종의 ‘레이저 무기’를 가져왔습니다. 무기는 특수 집단의 통제 아래 있었고, 그 집단은 각국 지도부의 통제를 받았어요. 양측은 합의에 따라 100명의 ‘참관인’을 상대국에 상주시켰어요. 참관인들은 자국을 대표하는 대사와 외교관들로서 상대국이 과다한 무기를 보유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도 맡았어요. 그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했고, 평화가 3,550년 간 유지됐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로 이주한 흑인들은 분리주의 세력이었던 만큼 레이저 무기를 갖고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서히 퍼져나가면서 지금의 사하라 사막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당시 그 지역은 온화한 기후의 비옥한 땅이었어요. 많은 동물의 먹이가 되는 식물이 풍부한 곳이었어요.
성직자들은 사원들을 건설하도록 시켰고, 부와 권력에 대한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람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가난을 몰랐던 사람들 사이에서 이제 두 개의 계층이 명확히 형성됐어요. 아주 부유한 계층과 아주 가난한 계층이지요. 물론 성직자들은 전자에 속했고, 그들을 도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한 사람들도 부유층에 속했어요.
종교는 우상숭배로 변질됐고, 사람들은 돌 또는 나무로 만든 신들을 숭배하면서 제물을 바쳤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직자들은 인간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분리가 시작됐을 때부터 성직자들은 일반대중을 가능한 한 무지 속에 가둬놓으려 애썼습니다. 사람들의 지적, 물질적 발전 수준을 낮춤으로써 그들에 대한 지배를 더 쉽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성직자들이 말하는 ‘발전한’ 종교와, 애당초 분리 독립에 영감을 준 ‘종교 의식’ 사이에는 이제 아무런 공통점도 없어졌습니다. 그런 만큼 일반대중을 통제하는 일은 필수적인 과제였어요.
우주의 법칙이 명령하는 바, 인간의 으뜸가는 의무는 그가 어느 행성에 살든 영적으로 발전하는 일입니다. 이들 성직자는 전체 국민을 무지 속에 가두고 거짓으로 이끌며 정신적 수준을 떨어뜨림으로써 그 보편적인 근본 법칙을 어겼습니다.
우리는 그 시점에서 개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개입하기 전에 성직자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정신감응과 꿈을 통해 그들의 최고 성직자에게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인간 제물 관행을 종식시키고 국민들을 다시 올바른 길로 인도하라. 인간은 오로지 영적 발달이라는 목적을 위해 물질적으로 존재한다. 당신이 하는 일은 우주법칙에 위배된다.’
그 최고 성직자는 몹시 혼란스러워 했어요. 그래서 다음날 성직자 회의를 소집해 꿈 얘기를 공개했습니다. 일부 성직자는 그가 배신하려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가 너무 노쇠했다든가 환각에 빠졌다고 매도하는 성직자들도 있었어요. 여러 시간에 걸친 토론 끝에 참석자 15명 중 12명은 기존의 종교 관행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일반대중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면서 ‘복수심에 불타는 신’ 에 대한 믿음과 두려움을 심화시키고, 그런 신의 대리인이 바로 성직자라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성직자들은 최고 성직자가 자신의 ‘꿈’ 에 관해 해준 얘기를 한마디도 믿지 않았어요.
우리의 입장이 매우 미묘해질 때가 있어요, 미셸. 우리가 그들 앞에 우주선을 타고 나타나 성직자들에게 직접 얘기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도 분리하기 전에 우주선을 갖고 있었던 만큼 우리 우주선을 식별할 수 있었지요.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즉각 우리를 공격했을지도 모릅니다. 의심이 많은데다, 자신들이 ‘국가’ 안에서 차지하고 있던 우월한 지위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또 혁명이 발생할 경우 진압하기 위해 군대와 강력한 무기도 보유하고 있었어요. 물론 우리는 그곳 주민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성직자 세력을 제거하고 직접 주민들과 대화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 경우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어요. 주민들은 성직자들에게 순종하는 데 길들여졌고 자기네 나라 일에 우리가 개입하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우리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어느 날 밤 우리는 ‘소형 구체’를 타고 날아가 그 나라의 상공 1만m 높이에 정박했습니다. 그들의 사원과 ‘성스러운 도시’는 도시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었어요. 우리는 텔레파시로 최고 성직자와 그를 따르던 두 명의 성직자를 깨웠어요.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성스러운 도시’ 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걸어가게 했습니다. 그런 후 우리는 교도소 교도관들에게 집단 환각을 일으켜 교도소 문을 열고 수감자들을 풀어주게 했습니다. 시종들과 군인 등 사실상 ‘성스러운 도시’ 의 모든 주민을 대피시켰어요. 그 12명의 사악한 성직자들만 제외시켰지요. 하늘에서 보이는 이상한 ‘환영’ 에 감을 잡은 주민들은 도시 변두리로 피신했어요. 밤하늘에는 밝게 빛나는 백열 구름 주위를 날개 달린 존재들이 떠다니고 있었지요.”
“그건 어떻게 한 것인가요?”
“집단 환상 작용을 일으킨 겁니다, 미셸. 그렇게 해서 매우 짧은 시간에 ‘성스러운 도시’ 에는 12명의 사악한 성직자만 남게 됐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소형 구체’는 사원을 비롯한 모든 건물을 파괴했습니다. 당신도 이미 본적이 있는 무기를 사용했지요. 모든 구조물이 파괴되고 무너지면서 약 1m 높이의 폐허로 변했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죄악’ 의 말로를 보여주는 증거였지요.
사실 그런 폐허마저 남아있지 않게 파괴했다면 사람들은 곧 잊어버렸을 겁니다. 원래 사람들은 쉽게 잊지요…….
더 나아가 주민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백열 구름으로부터 경고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신의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환기시키면서, 최고 성직자에게 순종하고 그가 안내하는 새로운 길을 따라가라는 내용이었어요.
그것이 끝나자, 최고 성직자가 주민들 앞에서 연설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가엾은 주민들을 향해 그동안 자신이 잘못 했으며 이제는 모두 합심해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그는 두 명의 성직자의 도움을 받아 일을 했어요. 물론 어려운 때가 많았지요. 하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성스러운 도시’를 파괴하고 나쁜 성직자들을 죽인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면서 용기를 얻었어요.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사건’은 신이 일으킨 기적으로 간주됐지요. 그 다음날 인간 제물로 바쳐질 예정이었던 200여 명의 수감자들이 풀려났다는 사실도 기적으로 간주됐어요.
그 사건의 모든 내용은 자세히 기록됐습니다. 하지만 여러 세기에 걸쳐 신화와 전설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왜곡되기도 했지요. 어떻든 그 사건은 즉각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어요. 주민 착취에 가담했던 부자들은 ‘성스러운 도시’ 와 사악한 성직자들에게 일어난 일을 목격한 뒤부터는 자신들도 같은 운명에 처하지 않을까 두려워했어요. 그들은 상당히 겸손해진 태도로, 새로운 지도자들의 개혁을 도왔습니다.
점차 주민들은 분리하기 전과 같은 만족스런 삶을 되찾았어요. 산업화한 도시보다는 전원적인 분위기를 좋아해서 그 후 수 세기 동안 아프리카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갔어요. 인구도 수백만 명으로 늘어났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홍해 지역과, 아프리카 중앙을 관통해 흐르는 큰 강의 양쪽 둑을 따라서만 세워졌어요.
그들은 영적인 능력을 고도로 발달시켰어요. 가까운 거리는 공중부양으로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어요. 정신감응의 중요성도 다시 강조되면서 흔히 사용되는 능력이 됐지요. 상처 부위에 손을 얹기만 해도 치료가 되는 경우도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호주와 뉴기니의 흑인들과도 우호 관계가 다시 수립됐어요. 그들은 정기적으로 ‘불의 전차’를 타고 아프리카를 방문 했지요. 아프리카 흑인들은 호주 흑인들이 여전히 이용하는 우주선을 그렇게 불렀어요.
가까운 이웃인 황인종이 소규모로 북아프리카에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불의 전차를 탄 하느님의 강림’ 전설에 매료됐지요. 우리의 개입은 그런 식의 전설로 전해졌어요.
황인종과 흑인종 사이에 처음으로 육체적 결합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바카라티니에서도 인종간의 결합은 있었지만, 지구에서만큼 광범하게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인종학자들은 그 결과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 대규모 교배로 지구상에 새로운 종족이 생겨났습니다. 이 ‘헌혈 종족’ 은 흑인보다는 황인 피와 더 많이 섞였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흑인이나 황인보다는 자기네끼리 어울려 사는 것을 좋아했어요. 결국 그들은 함께 모여 살면서 지금의 알제리와 튀니지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이렇게 새로 탄생한 인종이 바로 아랍인이죠. 하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지금의 아랍인과 같은 모습을 하지는 않았어요. 오랜 세월과 기후의 영향이 있었지요. 나는 단지 지구의 인종이 어떻게 상호 교배를 통해 형성됐는가를 간단히 설명하는 것뿐이에요.
그 후 지구의 주민들은 오랫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냈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요……. 천문학자들에게는 큰 걱정거리였지요.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에 접근하고 있었어요. 아직은 너무 멀리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지구를 향하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것을 처음 관측한 것은 호주 중부에 있는 이키리토 천문대였어요. 몇 달 뒤 소행성은 육안으로도 보였어요. 몹시 불길하게도 선명한 붉은 빛을 내며 다가왔지요. 몇 주 뒤 소행성은 훨씬 더 쉽게 눈에 띄었습니다.
호주, 뉴기니, 남극의 각국 정부들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황인종 지도자들도 곧 그 결정에 동의했어요. 소행성과의 필연적인 충돌이 있기 전에 비행 가능한 모든 우주선이 의사와 기술자 같은 전문가들을 최대한 많이 태우고 지구를 떠난다는 결정이었어요. 그들 전문가는 대참사 이후의 문명 재건에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이었어요.”
“그 우주선들은 어디로 갈 예정이었나요? 달인가요?”
“아니에요, 미셸. 당시 지구에는 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우주선이 시간적으로 공중에 떠 있을 능력은 12주뿐이었어요. 장거리 우주여행 능력을 상실한지 꽤 오래됐어요. 그들의 계획은 지구 궤도에 머물면서 가능한 한 빨리 착륙할 준비를 하고 가장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어요.
호주에서는 우주선 80대가 엘리트 집단을 운반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엘리트 집단은 밤낮으로 열린 수많은 회의에서 선발됐어요. 황인종도 비슷한 절차를 밟아 98대의 우주선을 준비했어요. 물론 아프리카지역엔 우주선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어요. 각국의 최고 지도자를 제외하고 어느 ‘각료’ 에게도 탑승 자격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당신에게는 낯설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오늘날 지구에서 동일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많은 정치인들이 자기네 목숨부터 구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테니까요.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 때서야 일반대중에게도 임박한 소행성과의 충돌을 알렸어요. 그러나 우주선의 역할에 대해서는 비밀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국민은 지도자들에게 배신당했다고 믿을 테고, 그러면 공황상태가 조성되면서 우주선 발사기지가 공격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어요. 같은 이유에서 지도자들은 충돌로 초래될 재앙의 위기를 축소해 알렸어요. 국민의 공포심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지요.
소행성의 속도로 볼 때 이제 충돌은 거의 임박했고 필연적이었어요. 겨우 48시간 남았죠. 대다수 전문가가 그런 계산에 동의했어요. 우주선들은 예상 충돌 시간 2시간 전에 일제히 이륙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늦게 출발하는 이유는 재앙 발생 후 우주에서의 체공 가능 시간인 12주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였어요. 충돌 지점은 지금의 남미 지역으로 예상됐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고, 이륙 지시는 호주 중부 시간으로 예정일 정오에 내려지기로 결정됐어요. 그런데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계산 착오가 있었는지, 아니면 소행성의 속도가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원인으로 빨라졌는지 소행성이 예정일 오전 11시에 오렌지색 태양처럼 빛을 내며 하늘에 나타났어요. 황급히 이륙 명령이 떨어졌고 모든 우주선이 하늘로 날아올랐죠.
지구의 대기권과 중력을 빨리 벗어나려면 ‘워프’ 를 이용해야 합니다(여기서 워프[warp]는 중력이 약한 지역인 이른바 ‘중력 구멍‘ 을 의미한다. 저자의 설명에 입각한 편집자 주). 당시 워프는 오늘날의 유럽 상공에 있었지요. 우주선들은 최대 속도로 워프를 향해 날아갔지만,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때까지 그곳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소행성은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세 개의 거대한 덩어리로 부서졌어요. 가장 작은 덩어리는 직경이 수km이었는데 홍해 지역에 떨어졌습니다.
훨씬 더 큰 또 다른 덩어리는 오늘날의 티모르 해(Timor Sea)에 떨어졌고, 가장 큰 덩어리는 갈라파고스 섬에 충돌했습니다.
그 충격은 끔찍했어요. 태양은 흐릿한 붉은색으로 변했고, 떨어지는 풍선처럼 지평선 쪽으로 미끄러져 내리는 듯이 보였어요. 그리고 곧바로 멈췄다가 다시 천천히 올라가더니 절반쯤 가다가 다시 ‘떨어졌어요.’ 지구 축의 기울기가 갑자기 변했던 것이에요! 두 개의 큰 소행성 덩어리들이 지각을 뚫고 들어가면서 엄청난 위력의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호주, 뉴기니, 일본, 남미 등 사실상 지구 전역에서 화산들이 폭발했습니다.
산맥이 치솟았고, 높이가 300m 이상 되는 파도가 호주의 80%를 휩쓸었습니다. 태즈메이니아가 호주 대륙에서 떨어져 나갔고, 남극대륙의 상당부분이 물에 잠겼어요. 그러면서 호주와 남극 사이에 두 개의 거대한 해저 협곡이 생겼어요. 남태평양 한가운데에서는 광활한 대륙이 솟아올랐지요. 미얀마의 일부는 가라앉아 지금의 뱅골 만이 됐습니다. 또 다른 분지가 가라앉아 홍해가 형성됐어요.”
“우주선들이 빠져나갈 시간이 있었나요?”
“아뇨, 미셸. 전문가들은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어요. 그들을 변호하자면, 사실 무엇이 일어날지는 예상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지축이 기울어질 것이란 점은 예측했지만 지구가 진동하리란 점은 예측할 수 없었지요. 우주선은 소행성의 지구 대기권 재진입으로 야기된 ‘역류’ 에 휘말렸어요. 게다가 소행성을 따라다니는 수백만 개의 암석 조각들이 우주선들을 폭격하다시피 했어요.
흑인 우주선 3대와 황인 우주선 4대 등 겨우 7대의 우주선만이 간신히 재앙을 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눈앞에서 지구가 파괴되는 모습에 몸서리를 쳤을 거예요.”
“태평양에서 당신이 언급한 대륙이 솟아오르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몇 시간 정도에요. 그 대륙은 지각변동 때문에 지구 중심부에서 솟구쳐 올라온 가스층에 의해서 들어 올려졌어요.
지각변동은 여러 달 계속됐습니다. 세 개의 소행성 덩어리가 충돌한 지점에는 수천 개의 화산이 형성됐어요. 유독성 가스가 호주의 대부분 지역으로 퍼지면서 흑인 수백만 명이 몇 분 만에 사망했어요. 우리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호주에 살던 인간과 동물이 거의 멸종됐어요. 상황이 진정됐을 때 조사해 보니 겨우 180명이 살아남았습니다.
사망자가 이렇게 많았던 주된 원인은 유독 가스였어요. 가스가 비교적 적게 퍼졌던 뉴기니에서는 사망자가 더 적었어요.”
“타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네, 그러세요."
“호주의 흑인이 뉴기니와 아프리카로 퍼져나갔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오늘날 애버리지니(호주 원주민의 생김새가 여타 지역의 흑인들과 그토록 다른 까닭은 무엇인가요?”
“좋은 질문이에요, 미셀. 저의 설명이 충분치 못했군요. 지각변동으로 지표면의 우라늄에서 강력한 방사능이 방출됐어요. 호주에서만 그랬죠. 생존자들은 그 방사능에 심하게 노출 됐어요. 마치 원자폭탄이 터진 것 같았지요.
유전자도 영향을 받았어요. 아프리카 흑인의 유전자와 애버리지니의 유전자가 다른 까닭이지요. 게다가 환경과 음식도 완전히 변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호주의 바카라티니인 후손들은 오늘날의 애버리지니 인종으로 ‘변형’ 됐어요.
지각변동이 계속되면서, 때론 갑작스럽게, 때론 며칠에 걸쳐 산들이 형성됐습니다. 지면이 갈라져 도시 전체를 삼키고는 다시 닫히면서 문명의 흔적을 사그리 없앴어요.
그 모든 끔찍한 사태도 부족해 이번에는 지구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홍수마저 일어났어요. 지구 전역의 화산에서 공중 높이 동시에 분출된 화산재 때문에 하늘이 어두워졌어요. 바다에서는 수천 평방km 넓이의 바닷물이 도처에서 끓어오르면서 증기를 발생시켰어요. 그 증기와 화산재 구름이 뒤엉키면서 두터운 먹구름이 형성됐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내렸어요…….”
“지구 궤도를 돌던 우주선들은 어떻게 됐나요?”
“12주 후 지구로 귀환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들은 지금의 유럽 지역을 향해 하강하기로 선택했어요. 지구의 나머지 지역은 가시도가 제로였어요. 7대의 우주선 중 착륙에 성공한 것은 한 대뿐이었어요.
나머지는 지구 전역에서 몰아치는 강풍에 휘말려 추락했어요. 시속 300~400km의 태풍이었어요. 강풍 발생의 주된 원인은 갑작스런 화산폭발로 인한 현격한 기온 차이였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우주선은 지금의 그린란드에 간신히 착륙했어요. 황인 95명이 탑승한우주선인데, 다수는 의사와 각 분야 전문가들이었어요. 지극히 나쁜 상황에서 착륙하다 기체에 손상을 입는 바람에 우주선이 다시 이륙하기는 불가능해졌어요. 하지만 피난처로는 쓸 만했죠. 식량 등 보급물자는 오래 버틸 만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최선의 상태로 조직하려 애썼어요.
그런데 약 한 달 뒤 지진이 일어나 그들과 우주선을 몽땅 집어삼켰습니다. 그 마지막재앙으로 지구 문명의 모든 흔적이 파괴됐어요. 소행성과의 충돌 이후 발생한 일련의 재앙으로 뉴기니, 미얀마, 중국 등지에서 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채 사라졌어요. 사하라 사막 지역은 여타 지역보다 충격이 덜했어요. 그렇다 해도 홍해 지역의 모든 도시와 마을은 물속으로 잠겼습니다. 간단히 말해 지구상에서는 단 하나의 도시도 남지 않았고, 수백만의 사람과 동물이 죽었어요. 얼마 안 있어 대부분 지역에서 기근 사태가 발생했어요.
말할 필요도 없이 호주와 중국의 놀라운 문화는 전설을 통해서만 기억됐습니다. 그리고 (지표면이 갈라지고 새로운 바다가 생기면서 갑자기 뿔뿔이 흩어지게 된) 사람들은 지구 최초로 식인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4장
황금빛 행성
타오의 얘기가 끝날 무렵 내 관심은 그녀의 좌석 부근에서 빛나는 상이한 색상의 빛들에로 쏠렸다. 그녀는 이야기를 마치고 손짓을 했다. 휴양실의 벽면중 하나에 문자와 숫자들이 나타났다. 타오는 그것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잠시 후 빛이 꺼지고 문자와 숫자도 사라졌다.
“타오.” 내가 말했다. “방금 환각과 집단 환상에 관해 얘기 했는데, 어떻게 수많은 사람이 환영을 보게 만들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눈 속임수 아닌가요? 마치 무대 위에서 마술사가 10여 명의 ‘미리 선택된’ 동조자를 이용해 관객을 현혹시키는 것처럼?”
타오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감돌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 말이 옳아요. 요즘엔 지구에서 특히 무대 위에서 진정한 마법사를 찾기가 정말로 어렵기 때문이죠. 우리는 온갖 심령 현상의 전문가라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우리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에요. 왜냐하면…….”
그 순간 엄청난 세기의 충격이 우주선을 뒤흔들었다. 타오는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안색이 완전히 변해있었다. 공포에 사로잡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름끼치는 파열음과 함께 우주선은 여러 조각으로 박살났다. 승무원들의 외마디 비명이 들리면서 우리는 튕겨져 나갔다. 타오가 내 팔을 꼭 붙잡았지만 우리는 현기증 나는 속도로 우주 공간 속으로 던져졌다. 우리의 속도로 보아 잠시 뒤 한 혜성과 부닥칠 판이었다. 몇 시간 전에도 비슷한 혜성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타오의 손이 내 팔에 닿는 것을 느꼈지만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혜성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있었다. 곧 혜성의 꼬리와 충돌할 판이었다. 벌써부터 그 끔찍한 열기가 느껴졌다. 얼굴 피부가 터져버릴 듯했다. 이젠 죽었구나…….
“미셸, 괜찮아요?” 타오가 부드럽게 물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상태였다. 내가 미쳐 가는가 보다. 나는 그녀의 반대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구 최초의 인간에 관한 타오의 얘기를 들었던 바로 그 의자였다.
“우리가 죽은 건가요, 아니면 미친 건가요?” 내가물었다.
“양쪽 다 아니에요, 미셸. 지구에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속담이 있지요. 당신은 어떻게 수많은 군중이 동일한 환영을 보게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즉각 하나의 환영을 만들어 당선에게 보여준 겁니다. 좀 덜 무서운 환영을 체험하도록 했으면 좋았겠지만, 이번 주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 그랬어요.”
“정말로 환상적이군요! 그런 식으로 그렇게 갑작스럽게 체험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 모든 상황이 정말로 진짜 같았어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부탁할게 있는데, 다시는 그런 식으로 겁주지 말아요. 겁에 질려 죽을 뻔했어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의 육체는 의자에 남아 있었고, 단지 우리의... 편의상 ‘성심체’ (星心體 astropsychic body)라고 하죠. 그 성심체를 우리의 육체를 비롯한 다른 모든 몸(body)들로부터 분리시켰던 거예요.”
“우리의 다른 몸들이라뇨?”
“생리체(physiological body), 심형체 (psychotypical body), 성기체(astral body) 등등 다른 모든 몸들이요. 당신의 성심체가 내 두뇌의 정신감응 시스템에 의해 다른 몸들로부터 분리됐어요. 나의 정신감응 시스템이 일종의 전달매체로 작용한 것이죠. 그러면서 나와 당신의 성심체가 직접 연결 됐습니다.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이 당신의 성심체에 투영되면서 마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듯이 인식됐죠. 다만, 그런 체험을 하도록 만들려면 당신에게 준비를 시켰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매우 조심스러웠어요.
“무슨 뜻인가요?”
“음, 내가 어떤 사람에게 환영을 보여주려면, 먼저 그 사람한태 그것을 보고 싶은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에서 우주선을 보도록 만들려면, 먼저 그들이 그런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해요. 만일 그들이 코끼리를 보고 싶어 한다면 우주선은 절대로 보이지 않아요. 따라서 적절한 말과 교묘한 암시를 사용하면, 군중은 당신 주위에 몰려들어 우주선이나 흰 코끼리를 기대하게 됩니다. 혹은 파티마의 성모를 기대할지도 모르죠. 파티마의 성모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그런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지요.”
“1만 명의 사람들 보다는 한 명의 사람에게 환영을 보게 하기가 더 쉽겠네요.”
“그렇지 않아요. 반대에요. 사람이 많으면 연쇄반응이 일어나요. 사람들의 성심체를 풀어놓으면 한사람에게 환영을 보여줘도 자기들끼리 정신감응으로 정보를 교환합니다. 그 유명한 도미노효과와 비슷한 현상이죠. 첫 번째 도미노를 쓰러뜨리면 연이어 모든 도미노가 쓰러지는 것이죠.
당신한테 하기에는 매우 쉬웠어요. 지구를 떠난 이래 당신은 다소 불안한 상태에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지요. 당신의 그런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두려움을 이용했어요. 비행체를 타고 여행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두려움이죠. 공중에서 폭발하지 않을까, 추락하면 어쩌나 등등. 더욱이 당신은 이미 화면에서 혜성을 봤는데 왜 내가 그것을 이용하지 않겠어요? 혜성에 다가갈 때 당신 얼굴이 화염에 익어 벼린다고 믿는 대신, 혜성 꼬리 부분으로 진입하면서 얼어 죽는다고 믿게 만들 수도 있었죠.”
“요컨대, 나를 미치게 만들 수 있었군요!”
“시간이 너무 짧아서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어요…….”
“왜요, 환영이 5분 이상 지속됐었는데?”
“10초를 넘지 않았어요. 꿈이나 악몽에서처럼요. 악몽도 대체로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지금 수면 상태고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들판에 서 있는데 멋진 흰색의 종마가 보입니다. 다가가서 붙잡으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종마는 달아나죠. 대여섯 번 시도하는 동안 시간이 꽤 흘렀겠죠. 마침내 말 등에 올라타고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더욱 빨리 달리면서 당신은 속도감에 도취됩니다……. 종마는 너무 빨라 다리가 땅에 닿지도 않아요. 그러면서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전원풍경이 아래로 펼쳐집니다. 강, 벌판, 숲.
정말로 멋진 풍경이에요. 잠시 후 지평선에 산이 나타나고 다가갈수록 더욱 높아집니다. 산에 부딪치지 않으려면 종마가 좀 더 높이 날아올라야 합니다. 더욱 높이 오르면서 거의 정상을 넘어가려는 순간 말발굽이 돌에 걸려 균형을 잃습니다. 당신은 말에서 떨어져 추락하다가 마침내 끝없이 갈라진 땅속으로 곤두박질칩니다……. 그 순간 당신은 꿈에서 깨어나고, 침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
“그렇게 긴 내용의 꿈을 불과 몇 분 사이에 꾸었다는 말을 하려는 거지요?”
“4초 정도였을 거예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 꿈은 당신이 침대에서 균형을 잃었을 때부터 시작됐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그럴 거예요, 미셸. 완전히 이해하려면 그 분야를 좀 더 많이 연구해야 돼요. 현재 지구에서는 그 주제에 관해 당신을 교육시킬 만한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지금은 꿈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신은 깨닫지 못하겠지만, 우리와 함께 보낸 몇 시간 동안 당신은 특정 분야에서 많은 진전을 보였어요. 바로 그 점이 중요합니다. 이제 당신을 티아우바에 데려가는 이유를 설명해 줄 때가 됐군요.
우리는 당신에게 어떤 임무를 맡기려고 해요. 그 임무는 당신이 우리와 함께 지내는 동안 보고 듣고 체험하는 모든 것을 지구인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지구로 돌아가면 그 경험을 한권, 혹은 여러 권의 책으로 써서 공개하세요. 이제는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우리는 수십만 년 동안 지구인들의 행태를 관찰해 왔어요.
지구인의 일부는 역사상 매우 중요한 시점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을 도와줄 때가 된 것 같아요. 만일 그들이 우리의 충고를 경청하면 우리는 그들이 옳은 길을 가도록 보장할 수 있어요. 당신이 선택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
“하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에요! 왜 차라리 뛰어난 저술가를 선택하지 않았나요? 유명한 작가나 기자 같은 사람 말이에요.”
나의 격렬한 반응에 타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일을 할 만한 작가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플라톤이나 빅토르 위고 같은 사람들 말이에요. 설혹 그들이 그 일을 맡았다 해도 지나치게 장식적인 문체를 사용했을 거예요. 우리가 원하는 바는 가장 정확하게 사실을 기술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적임자는 언론계 기자겠네요…….”
“미셸, 당신도 알다시피 지구의 언론인들은 너무 선정주의에 물들어 있어 진실을 왜곡할 때가 많아요.
예컨대 특정 사건을 TV 채널마다, 혹은 신문마다 다르게 보도하는 경우를 자주 보지 않았나요? 지진 사망자 수를 한 매체는 75명으로, 다른 매체는 62명, 또 다른 매체는 95명으로 보도할 경우 누구를 믿어야 하나요? 정말로 언론인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절대적으로 옳은 말이에요!” 내가 외치듯 말했다.
“우리는 그동안 당신을 관찰해 왔고, 당신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요. 다른 몇몇 지구인에 대해서도 그랬어요. 그 중에서 당신이 선택된 거예요…….”
“하지만 왜 나죠? 지구에서 나만이 객관적인 사람은 아닌데.”
“당신을 안 뽑을 이유가 있나요? 당신이 선택된 주된 이유를 곧 알게 될 거예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내가 반대해 봤자 의미가 없었다. 이미 그 일에 연루된 데다 되돌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이 우주여행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와 같은 처지가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으려는 사람이 수백만 명은 될 것이다.
“타오, 더 이상 따질 생각은 없어요. 만일 이것이 당신의 결정이라면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겠지요. 다만 내가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99%의 사람들이 내 말을 한 마디도 믿지 않으리라는 점을 생각해 봤나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내용일 텐데요.”
“미셸, 약 2,000년 전의 사람들이 자신을 하느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예수의 말을 믿었나요? 절대로 안 믿었죠. 믿었다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지금,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이 수억 명이나 됩니다…….”
“누가 그를 믿지요? 사람들이 정말로 그를 믿나요, 타오? 그리고 도대체 예수는 누구였나요? 그보다 먼저 신(God)은 누구인가요? 신은 존재하나요?”
“그런 질문을 기대하고 있었어요. 미셸이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해요. 한 고대의 석판에, 내가 알기로 나칼(Naacal) 비문이라고 불리는데, 이렇게 씌어 있어요: ‘태초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둠과 침묵뿐이었다. 성령(The Spirit), 즉 초월적 지성(Superior Intelligence)은 세상을 창조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네 개의 초월적인 힘(force)에 명령했다…….”
정신적으로 아무리 고도로 발달한 인간이라도 이런 것을 이해하기란 지극히 어려워요.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능하죠. 반면에 인간의 영혼은 육체에서 해방될 경우 그것을 이해합니다. 얘기가 좀 빗나갔군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죠.
태초에는 어둠과 성령만이 존재했어요. 성령은 무한한 힘을 갖고 있었고, 지금도 그래요. 인간의 사고로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어요. 성령의 힘은 너무 강해 의지의 작용만으로 원자 폭발을 일으킬 수 있었어요. 상상할 수도 없이 강력한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죠. 성령은 자신이 창조할 세계를 상상했습니다. 가장 거대한 세계부터 가장 미세한 세계까지 상상했어요. 성령은 원자를 상상했어요. 상상 속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앞으로 움직일 모든 것, 즉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앞으로 살아갈 모든 것을 창조했습니다. 또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 혹은 그렇게 보이는 모든 것, 다시 말해 만물을 일일이 창조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아직 성령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습니다. 세상은 아직 어둠 속에 있었죠. 자신이 창조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상상이 끝나자 성령은 그 엄청난 영력(靈力)으로 우주의 네 가지 힘을 순식간에 창조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힘들을 이용해 최초이자 가장 거대한 원자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일부 지구인들은 그것을 ‘빅뱅’ 이라고 불렀죠. 성령은 그 대폭발의 중심에서 그것을 유도했어요. 어둠은 사라지고 우주는 성령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를 창조해 왔습니다.
성령은 아직도 우주의 중심에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왜냐하면 성령은 우주의 지배자이자 창조자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내가 끼어들었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하느님의 얘기네요. 나는 기독교인들의 터무니없는 얘기는 믿지 않았어요.”
“미셸, 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교들, 특히 기독교에 관해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지구상의 종교들과 내가 말하는 천지창조, 그리고 뒤이어 일어나는 명백한 사실들을 혼동하지 마세요. 그런 종교들에서 자행되는 비논리적인 왜곡과 진정한 우주의 섭리를 혼동하지 마세요. 이 문제에 관해 나중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지금은 천지창조에 관해 당신에게 설명하려고 해요. 학교에서 배웠겠지만, 수십억 년 동안(물론 조물주에게는 언제나 ‘현재’ 일 뿐이지만, 우리들 수준에서는 수십억 년으로 계산하는 게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모든 세계와 항성들과 원자들이 생성됐고, 행성들은 때론 위성들을 거느린 채 각자의 태양 주위를 돌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태양계에서는 일부 행성들이 식고 있어요. 그러면서 토양이 형성되고 바위가 굳어지며, 바다가 생기고, 땅덩어리는 대륙이 됐지요.
마침내 그런 행성들에서는 특정한 형태의 생명체들이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성령의 상상 속에 있었어요. 성령의 그 첫 번째 힘을 ‘원자력’ (Atomic force)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이 단계에서 성령은 두 번째 힘을 이용해 최초의 생명체들과 많은 식물들을 상상했습니다. 그런 것들로부터 나중에 아종(亞種)들이 파생됐지요. 이 두 번째 힘을 ‘난우주력’(Ovocosmic Force) 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이들 생명체와 식물은 단순한 우주선(cosmic ray)들에 의해 창조됐는데, 이 우주선들의 덩어리가 나중에 우주난(cosmic egg : 초고밀도의 에너지 질량 덩어리)이 되기 때문이에요.
또 태초부터 성령은 특별한 생명체를 통해 감정을 느끼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바로 인간을 상상한 거죠. 이때 이용한 세 번째 힘을 ‘난성력’ (卵星力, Ovoastromic Force)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이렇게 창조됐어요. 미셸, 인간이나 심지어 동물을 창조하는 데 어떤 지성이 필요한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온몸을 순환하는 혈액...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수백 만 번이나 박동하는 심장... 복잡한 시스템을 통해 피를 정화시키는 허파... 신경체계... 오감의 도움으로 명령을 내리는 두뇌... 극도로 예민한 척수 등. 뜨거운 난로에 데지 않도록 순간적으로 손을 빼게 만드는 기관이 바로 척수에요. 손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뇌가 그런 명령을 내리는 데는 0.1초밖에 안 걸릴 거예요.
지구 같은 행성에 사는 수십억 명 가운데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경이롭지 않은가요? 또 혈액의 ‘결정체’가 지문처럼 사람마다 독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구를 포함한 여러 행성의 전문가와 기술자들이 인체를 창조하려고 노력해 왔지요. 그들이 성공했나요? 그들이 만든 로봇의 경우, 가장 완벽하다는 것도 인간의 구조에 비하면 저급한 기계에 불과하죠.
방금 언급한 혈액 결정체 얘기를 다시 하자면, 그것은 개개인의 혈액에 고유한 진동이에요. 혈액형과는 상관이 없어요. 지구에는 수혈을 거부해야 한다고 철저히 믿는 종교가 여럿 있어요. 그들이 거부하는 이유는 종교적으로 그렇게 배웠고, 자신들의 경전과 해석서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들은 진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이유는 상이한 진동이 상대방에게 미칠 충격 때문이에요.
수혈량이 많을수록 수혈자에 대한 영향도 커집니다. 영향의 정도와 기간이 수혈량에 따라 다릅니다. 물론 그 영향은 결코 위험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한 달이 넘는 경우는 없는데, 수혈자 혈액의 진동이 제공자 혈액의 진동을 완전히 흡수해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이런 진동은 물질적인 육체보다는 생리체와 유체(f1uidic body)의 특정이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그러고 보니 원래 주제에서 많이 벗어났군요. 미셸.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다시 합류할 시간이에요. 티아우바에 도착할 시간이 다됐군요.”
나는 네 번째 힘의 본질에 관해 타오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그녀가 벌써 출구 쪽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 통제실로 돌아갔다. 그곳 화면에서는 천천히 길게 얘기하는 어떤 사람의 확대 영상이 보였다. 각종 숫자와 형상, 그리고 다양한 밝은 색상의 빛나는 점들이 여러 기호들로 가득한 화면을 끊임없이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타오는 내가 전에 앉았던 좌석에 나를 앉히고는 안전장치를 건드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승무원들을 감독하고 있는 비아스트라에게로 가서 뭔가를 의논했다. 승무원들은 각자의 데스크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타오가 돌아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죠?” 내가물었다.
“우리 행성에 다가가면서 속도를 점차 줄이고 있어요. 8억 4,800만km 떨어져 있는데 약25분 뒷면 도착할 거예요.”
“지금 좀 봐도 될까요?”
“참으세요, 미셸. 25분 뒤에 세상의 종말이 오지는 않아요!” 그녀가 윙크를 하며 농담조로 말했다.
화면에서는 근접 영상이 사라지고 원경 영상이 나타났다. 앞서 봤던 은하계 기지의 통제실이 훤하게 보였다. 우주선의 승무원들은 각자의 데스크에서 맡은 일에 더욱 집중했다.
‘데스크톱 컴퓨터’들의 대다수는 손동작보다는 음성 지시에 따라 작동됐다. 숫자들과 다양한 색상의 빛나는 점들이 빠른 속도로 화면을 가로질러갔다. 우주선 안에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갑자기 대형 화면 한가운데에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하기지가 사라진 자리에 마침내 티아우바가 나타났다!
내 짐작이 맞을 것이다. 느낌이 왔다. 타오가 즉각 ‘맞다’는 뜻을 텔레파시로 전해왔다. 이제는 확실해졌다.
우리가 접근하면서 화면의 티아우바도 커졌다. 나는 화면에서 보이는 형언하지 못할 아름다운 광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에 떠오른 표현은 ‘빛나는’ 이었고, 곧이어 ‘황금빛’이라는 단어도 생각났다. 하지만 그 색상이 연출하는 효과는 묘사하기 불가능했다. 가장 적합한 표현을 억지로 만든다면 ‘빛나는-증기 같은-황금빛’ (lumino-vapour-golden) 정도일 듯했다. 실제로 빛나는 황금빛 증기탕 속으로 뛰어드는 느낌이었다. 그 행성의 대기 중에 아주 미세한 황금 먼지 층이 있는 듯이 보였다.
우주선은 티아우바를 향해 부드럽게 하강했다. 이제 행성의 윤곽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대륙의 윤곽이 보이다가 곧바로 바다가 나타났다. 바다 위에는 다양한 색상의 많은 섬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좀 더 자세한 모양들이 드러났다. 착륙 시에는 줌렌즈가 사용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됐다. 나를 가장 사로잡은 것은 눈앞에 보이는 색상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상이었다!
그곳의 빛깔은 지구에 비해 생생한 색조감이 강했다. 예컨대 밝은 녹색은 녹색을 방출하는 듯했다. 어두운 녹색은 반대로 색깔을 ‘붙잡아뒀다.’ 묘사하기가 지극히 어려운데, 티아우바에서의 색깔은 지구에 존재하는 색깔과 비교하기가 어렵다. 붉은 색은 붉다고 인식되지만 우리가 아는 붉은 색이 아니었다. 타오의 언어에는 지구 같은 행성에서의 색깔 유형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는데 영어로 ‘흐릿한’ (dull)이라는 뜻의 ‘칼빌라오카’(Kalbilaoka)다.
반면 그들의 색깔유형은 ‘씨오솔라코비니카’ (Theosolakoviniki)라고 부른다. (‘씨오솔라코비니카’ 와 비슷한 효과는, 빛이 좁은 주파수 대역에서 진동할 때 순수한 단색에서 관찰된다. 저자는 이런 색깔들을 보여줬을 때 그런 효과를 확인했다. ‘Theos’ 가 그리스어로 ‘신’ [God]을 의미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이런 색깔들은 신처럼 ‘순수‘ 한가? 편집자 주).
내 관심은 곧 화면에서 계란처럼 보이는 물체들로 쏠렸다 (계란보다는 계란 반쪽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듯하다). 지면에는 그런 계란형 물체들이 산재해 있었다. 일부는 식물로 덮여 있었고, 나머지는 식물이 없었다. 또 일부는 다른 것들보다 크게 보였고, 일부는 옆으로 누워있었다. 다른 것들은 뾰족한 부분이 하늘을 향한 모양이었다.
너무 희한한 광경이라 타오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 ‘계란들’ 이 무엇인지 물어보려 했다. 마침 그 때 화면에 둥그런 형태의 구조물이 등장했다. 주변에는 크기가 다른 구체들이 몇 개 있었고, 약간 먼 곳에 또 다른 ‘계란’ 들이 있었다. 거대한 계란들이었다.
그 구체들은 우리가 타고 있는 구체처럼 우주선임을 알 수 있었다.
“맞아요.” 타오가 앉은 채로 말했다. “그리고 화면에 보이는 둥그런 물체는 격납고에요. 우리 우주선이 잠시 후 들어갈 곳이죠. 우리는 지금 착륙 절차에 들어갔어요.”
“저 거대한 계란들은 뭐죠?”
타오가 미소를 지었다. “건물이에요 미셸. 하지만 지금 그것보다는 더 중요한 점을 당신에게 설명해줘야 합니다. 우리 행성에는 놀라운 점들이 많은데, 그 중 두 가지는 당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요. 그런 만큼 몇 가지 기본적인 예방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티아우바의 중력은 지구와 달라요. 당신 체중이 지구에서는 70kg이지만, 여기에서는 47kg이 될 거예요. 우주선 밖으로 나갈 때 조심하지 않으면 동작과 반사 신경에서 균형감각을 잃을 위험이 있어요. 당신은 습관적으로 보폭을 넓게 취할 텐데 그러면 넘어져 다칠지도 모릅니다…….”
“이해가 안가요. 우주선 안에서는 괜찮은데.”
“그것은 우주선 내부 중력을 지구중력과 어느 정도 일치시켰기 때문이에요. 그렇다 해도 당신은 정상 체중보다 약 60kg 더 많아지기 때문에 매우 불편할 겁니다.
물론 이런 중력 아래에서는 우리의 체중이 늘어납니다. 하지만 약간의 공중부양 능력을 이용해 균형을 맞추기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아요. 게다가 당신이 편해지는 모습에서 우리는 만족을 느낍니다.”
우주선이 약간 덜컥거렸다. 도킹을 하는 듯했다. 이로써 나의 놀라운 우주여행은 일단락됐다. 드디어 다른 행성에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타오가 다시 말했다. “잠시 동안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것이에요. 이곳의 밝은 빛깔과 광도(光度)가 당신을 마취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말이에요. 빛깔은 일종의 진동으로 당신 생리체의 특정 부위에 영향을 미쳐요. 지구에서는 그런 부위들이 큰 자극을 받아 본 경험이 거의 없어요. 그런 만큼 이곳에서는 심각한 결과가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내 좌석의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다시 행동이 자유로워졌다. 대형 화면은 꺼진 상태였지만 승무원들은 여전히 분주했다. 타오는 나를 출입문 쪽으로 안내하다가 어떤 선실로 다시 데리고 들어갔다. 우주선에 처음 탔을 때 들어갔던 선실로 내가 3시간 동안 누워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타오는 안전모처럼 생긴 아주 가벼운 마스크를 내게 씌웠다. 이마에서 코밑까지 가리는 마스크였다.
“미셸, 이제 가죠. 티아우바에 온 걸 환영합니다.”
우주선 밖에서 우리는 아주 짧은 통로를 따라갔다. 나는 곧바로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기분도 무척 상쾌해졌다. 물론 약간 당황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몸의 균형을 잃고 타오의 부축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소 의외였다.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나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카메라 세례를 받았어야 했다. 아니면 그 비슷한 환대라도…, 예컨대 붉은 카펫 같은 걸로 말이다! 이곳의 국가 원수는 왜 안보이지? 이곳 주민들이 매일 외계 행성 사람의 방문을 받는 것도 아닐 댄데!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약간 걸어가 통로 옆에 있는 어느 둥근 플랫폼에 도착했다. 플랫폼 안에서 타오는 원형 좌석에 앉고 나를 맞은편에 앉혔다.
그녀는 워키토키 크기의 물체를 꺼냈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힘이 내 몸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우주선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 때, 겨우 들리는 윙윙 소리와 함께 플랫폼이 부드럽게 떠올랐다. 그러더니 지면에서 몇m 높이를 유지한 채 , 약800m 떨어져 있는 ‘계란’ 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약간 향기가 나는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의 노출된 부위에 부딪쳤다. 기분이 상쾌했다. 기온은 섭씨 26도 정도였다.
우리는 몇 초 만에 ‘계란’ 들 중 하나에 도착해 마치 구름을 뚫고 지나가듯 계란 벽을 통과해 들어갔다. 그 ‘건물’ 안에서 플랫폼은 비행을 멈추고 바닥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나는 사방을 둘러봤다.
터무니없는 얘기 같지만, ‘계란’ 이 사라졌다. 우리는 분명히 그 ‘계란’ 속으로 들어왔는데 주변에 보이는 것은 널리 펼쳐진 전원 풍경이었다. 도킹 상태의 우주선들과 착륙장도 보였다. 마치 우리가 밖에 있는 듯했다…….
“당신의 반응을 이해해요. 미셸.” 내 생각을 아는 타오가 말했다. “그 미스터리는 나중에 설명할게요.”
멀지 않은 곳에 20~30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마치 우주선 내부에서처럼 여러 색상의 불빛으로 빛나는 화면과 데스크 앞에 모여 상당히 분주해 보였다. 어떤 음악 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왔는데 내게 행복감을 안겨줬다.
타오가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작은 ‘계란들’ 중 하나를 향해 걸어갔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들어와 있는 큰 ‘계란’ 의 ‘내벽이 있어야 할 자리’ 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동안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여기서 언급해둬야 할 게 있다. 실내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타오와 나의 모습은 매우 어색한 커플처럼 보였다. 신장 차이가 크다 보니, 나란히 걷는 동안 타오는 아주 천천히 걸어야 했다. 내가 보조를 맞춘답시고 뛰지 않아도 되게 하려는 배려였다. 하지만 내 걸음새는 볼썽사납게 껑충껑충 뛰는 모습에 가까웠다. 걸음을 재촉하려 하면 더욱 꼴불견이 됐다 70kg을 운반하는데 익숙해진 근육을 이제 47kg을 운반하는데 적응하도록 조절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독자들은 우리 커플의 걷는 모양새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그 작은 ‘계란’ 의 외벽에서 빛나는 발광체를 향해 걸어갔다.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그 빛의 세기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그 발광체의 밑을 지나 벽을 관통해 실내로 들어갔다. 우주선의 화면에서 봤던 바로 그 방이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도 낯이 익었다. 내가 은하계 본부에 들어 와 있음을 깨달았다.
타오가 내 마스크를 벗겨줬다. “이제는 괜찮아요, 미셸. 여기서는 마스크가 필요 없어요.”
그녀는 그곳에 있는 12명의 사람들에게 나를 직접 소개했다. 그들은 모두 감탄사를 연발하며 환영의 뜻으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진지한 기쁨과 선의의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그들의 따뜻한 환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나를 가족으로 여기는 듯했다.
타오는 그들이 내게 갖는 큰 의문을 설명해줬다. ‘저 사람의 표정은 왜 저렇게 슬퍼 보이지, 어디 아픈가?’
“나는 슬프지 않아요!” 내가 항의하듯 말했다.
“알아요. 하지만 저들은 지구인의 얼굴 표정에 익숙지 않아요. 보다시피 이곳 사람들은 늘 행복한 표정에 익숙해 있거든요.”
맞는 말이었다. 그들은 마치 매순간 기쁜 소식을 듣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에게는 뭔가 이상한 점이 엇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갑자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그들은 모두 나이가 같아 보였던 것이다!
5장
다른 행성에서 사는 법 배우기
타오는 이곳에서 인기가 좋은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의 각종 질문에 그녀는 특유의 자연스럽고 환한 미소로 자세히 대답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 중 몇몇은 자신들의 업무로 되돌아가야 했다. 우리도 떠날 때가 됐다는 신호였다. 나는 마스크를 다시 썼고, 다정한 작별 인사말이 오가는 가운데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타오와 나는 플랫폼(일종의 쟁반형 비행체)에 다시 올라타고는 멀리 보이는 숲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플랫폼은 지상 5~6m 높이에서 시속70~80km 정도로 비행했다. 공기는 따뜻하고 냄새가 좋았다. 다시 행복감을 느꼈다. 지구에서는 경험한 적이 없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숲의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나무들의 거대한 크기에 강한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늘로 솟은 높이가 200m 정도는 되는 듯했다.
“가장 높은 나무는240m에요, 미셸.” 내가 물을 필요도 없이 타오가 설명했다. “그리고 밑동의 지름은 20~30m에요. 나무들 중 일부는 이곳 나이로 8,000년 정도 되죠. 이곳에서 1년은 333일, 하루는 26카르세에요. 또 1카르세는 55로르세, 1로르세는 70카시오에요. 1카시오는 지구의 시간 단위로 ‘초’ 와 비슷해요(자, 도량형 환산은 독자들께서 해보시기를……. ). 당신의 ‘아파트’ 로 가겠어요. 아니면 먼저 숲을 구경할까요?”
“숲을 먼저 구경합시다, 타오.”
플랫폼이 속도를 크게 줄였다. 우리는 나무들 사이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면,, 혹은 멈춘 상태에서 나무들을 더 가까이 관찰할 수 있었다. 플랫폼은 지면에 닿을 듯한 높이에서부터 10m 정도의 높이 사이에서 움직였다.
타오는 그 ‘나는 플랫폼’을 놀랄 정도로 정확하고 능숙하게 조종했다. 타오가 그것을 조종하는 방식을 보면 ‘나는 양탄자’가 연상됐다. 마치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아름다운 숲 바닥을 누비는 신비한 관광 여행을 하는 듯했다.
타오는 그 ‘나는 플랫폼’을 놀랄 정도로 정확하고 능숙하게 조종했다.
타오가 그것을 조종하는 방식을 보면 ‘나는 앙탄자’ 가 연상됐다.
타오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마스크를 벗겨줬다. 풀숲이 부드러운 황금색으로 빛났지만 나는 그 빛을 견딜만했다.
“빛과 색깔에 익숙해지기에 좋은 기회에요, 미셸. 저것 보세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높은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세 마리의 나비가 보였다. 날개의 색상이 생생하고 크기가 엄청났다.
양쪽 날개 길이가 1m는 됨직한 그 인시류(鱗翅類: 나비, 나방 무리)는 숲의 꼭대기 부근에서 날아다니다가 우리 쪽으로 다가 왔다. 날개는 파랑, 녹색, 주황색이 섞여 있었다. 마치 어제 일처럼 그 때 광경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비들은 가장자리가 묘하게 생긴 날개를 퍼덕이며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가슴이 뭉클하게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한 마리가 몇m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덕분에 녀석의 생김새를 자세히 감상할 수 있었다. 몸에는 은색과 금색의 동그라미 무늬가 있고, 더듬이는 비취색이었다. 주둥이는 황금색이고, 날개 윗면은 녹색이었는데 밝은 파란색 줄무늬와 어두운 주황색 다이아몬드 모양이 엇갈려 있었다. 날개 아랫면은 진한 파랑색이지만 빛이 났다. 마치 위쪽으로부터 영사기 불빛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듯했다.
그 거대한 곤충은 잎사귀에 앉아 있는 동안 부드러운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나로서는 몹시 놀라운 현상이었다. 지구에서 인시류가 소리를 내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우리는 지구가 아니라 티아우바에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 내가 겪게 될 많은 경이로운 현상의 시작에 불과했다.
숲 바닥에선 각양각색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모두 낯선 식물들이었다. 식물이 바닥을 완전히 뒤덮었지만, 그 중에 관목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나무들에 가려 발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때문인 듯했다.
지면을 덮는 이끼류부터 큰 장미나무까지 숲 바닥 식물들의 크기는 다양했다. 어떤 식물은 잎사귀의 두께가 사람의 손바닥 길이만큼 두꺼웠다. 잎의 생김새도 심장이나 동그라미 모양이었고, 어떤 잎은 아주 길고 얇았다. 색상도 녹색보다는 파랑색에 가까웠다.
갖가지 형상과 색깔(때론 순수한 검은색)의 꽃들이 서로 뒤엉켜있었다. 지상7m 높이에서 보이는 그 광경은 너무도 찬란했다.
플랫폼이 가장 높은 나뭇가지 수준으로 상승했다. 타오의 지시에 따라 나는 마스크를 다시 착용했다. 우리는 숲의 위쪽으로 올라가 거목들의 바로위에서 천천히 비행했다.
숲 위의 상공에서는 빛의 세기가 다시 강렬해졌다. 마치 순수한 크리스털 모양의 풍경 속을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경이로운 새들이 높은 나무의 꼭대기에 앉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우리를 지켜봤다. 새들의 색깔은 다양하고 풍부했다. 마스크 때문에 색채 효과가 약간 감소되긴 했지만 녀석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환상적인 축제였다. 마코앵무새의 종류도 다양했다. 깃털의 색깔은 파랑· 노랑· 분홍· 빨강이었다. 벌새 떼의 한가운데에서는 극락조가 날개를 펼친 채 거들먹거리며 걸어 다녔다.
벌새들은 눈부신 붉은색 바탕에 황금색 점들이 있었다. 극락조의 꼬리 깃털은 빨강· 분홍· 주황색이었는데, 길이가 2.5m 정도였고, 양쪽 날개 길이도 2m에 가까웠다. 이 ‘보석’ 같은 새들이 날아오를 때면 날개 밑면의 부드러운 분홍색이 드러났고 날개 끝은 선명한 파란색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색상이었다. 특히 날개 윗면의 주황색이 그랬다. 머리 깃털은 매우 컸는데 각각 노랑· 녹색· 주황· 검정· 파랑· 빨강· 흰색· 담황색 등이었다.
티아우바에서 목격한 색깔들을 정확히 묘사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표현력의 빈곤을 느끼며 어휘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곳에서는 빛깔이 사물의 내부에서 발산돼 나온다는 인상을 자주 받았다. 그곳의 색깔은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많았다. 지구에서는 빨강의 색조가 15 종류 정도만 알려져 있지만 그곳에서는 100종류가 넘는 듯했다.
내 관심을 끈 것은 색깔뿐만이 아니었다. 숲 위를 비행하기 시작한 이래로 계속 어떤 소리가 들렸다. 타오에게 설명을 듣고 싶은 부분이었다. 매우 부드럽고 가벼운 배경음악 같았다. 먼 곳에서 동일한 멜로디를 끊임없이 연주하는 플루트 소리와 비슷했다.
우리가 이동할 때는 음악소리가 변하는 듯 하다가 이내 원래 음조로 돌아왔다.
“저 소리는 음악 소리인가요?”
“수천 종류의 곤충들에게서 나오는 진동이에요. 햇빛이 특정 식물에 비칠 때 반사돼 나오는 색깔의 진동과 결합되면 그런 음악 소리가 나와요. 우리 티아우바인들에게는 의식적으로 신경 쓸 때에만 들립니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환경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잘 못 느끼죠. 어떻든 편안한 느낌을 주지 않나요?”
“정말 그래요!”
“전문가들에 의하면, 저런 진동이 사라질 경우 우리는 심각한 눈병에 시달린다고 해요. 진동이 눈보다는 귀에 감지되는 것 같은데 웬 눈병이냐고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문가들 얘기니까 맞겠죠. 어쨌든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요. 전문가들 얘기가, 진동이 사라질 확률은 내일 태양이 스스로 소멸할 확률만큼이나 낮다고 하니까요.”
타오가 플랫폼을 돌렸다. 잠시 후 우리는 숲을 떠나 평야지대 상공을 날아갔다. 밑에서는 청록색 강이 평야를 가로질러 흘렀다.
우리는 지상3m 높이까지 하강해 강물을 따라갔다.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의 움직임이 시야에 들어왔다. 물고기보다는 오리너구리에 가까운 동물이었다. 물은 수정처럼 맑았고, 아주 작은 조약돌마저 식별할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는 바다 쪽으로 가고 있었다. 황금빛 모래해변 가장자리에 높이 솟아있는 코코야자 나무들이 거대한 잎들을 손짓하듯 흔들어댔다. 해변 한쪽을 내려다보는 나지막한 바위 언덕들이 붉은색으로 빛나면서 파란 바다 색깔과 상쾌한 대비를 이루었다.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하거나 투명한 바닷물에서 헤엄을 쳤다. 모두 나체였다.
머리가 약간 멍해졌다. 끊임없이 겪는 새롭고 불가사의한 현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력 변화에서 비롯된 지속적인 경량감 때문이기도 했다. 경량감을 느낄 때 지구가 생각났다. 벌써 낯선 이름이 된 지구. 이제는 지구의 모습을 그리기도 어려워졌다!
청각· 시각상의 진동은 나의 신경체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나는 대체로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지극히 느긋한 기분이 됐다. 마치 따뜻한 욕조로 뛰어들어 거품 위에 두둥실 뜬 상태에서 부드러운 음악을 듣는 기분이었다.
아니, 그 이상으로 느긋해졌다. 왈칵 울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해상 12m 높이로 드넓은 만(灣)을 가로질러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수평선에서 몇 개의 점들이 보였다. 몇 개는 다른 것들보다 컸다. 섬들이었다. 티아우바에 착륙하기 전에 봤던 바로 그 섬들이었다.
가장 작은 섬을 향해 날아갔다. 아래 물속에서는 많은 물고기들이 우리를 따라왔다. 녀석들은 수면에 드리운 플랫폼의 그림자를 교차해 헤엄치면서 즐거워하는 듯했다.
“상어들인가요?” 내가 물었다.
“아뇨, 다지크에요. 돌고래와 사촌이죠. 지구의 돌고래들처럼 놀기를 좋아해요.”
“보세요! 저길 봐요!” 내가 타오의 말을 가로막으며 소리 쳤다.
타오는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는 웃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아무런 운송체도 타지 않은 듯했다.
그들은 해상 2m 높이에서 똑바로 선 자세로 매우 빠르게 우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곧 양측이 만났고, 우정의 몸짓들이 오갔다. 그 순간 내 몸속으로 행복감이 흘러드는 느낌이 몇 초간 지속됐다. 전에 라톨리가 내게 보냈던 느낌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그 ‘나는 사람들’ 이 내게 보내는 환영의 신호였다.
“어떻게 저를 수 있죠? 공중부양술인가요?”
“아뇨, 저들은 허리에 ‘타라’를 차고, 손에는 ‘리티올락’ 을 갖고 있어요. (타라는 날고 싶을 때 혁대처럼 허리에 차는 장치이고, 리티올락은 손으로 작동하는 보조 장치다). 그 장치는 이 행성의 냉(冷)자기력(cold magnetic force)을 무력화하는 특정한 진동을 발생시켜 무중력 상태를 만듭니다. 그래서 심지어 수백만 톤의 무게도 깃털처럼 가벼워져요. 그런 후 초음파와 비슷한 진동을 이용해 지금처럼 원하는 장소로 정확히 이동할 수 있어요. 이 행성에서는 모든 사람이 멀리 가고 싶을 때 이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비행체를 타고 다니죠?” 내가 물었다. 그 비행 장치를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게다가 소음도 전혀 없지 않은가.
“미셸, 너무 조급해 하는군요. 당신을 플랫폼에 태우고 온 이유는 당신이 아직 리티올락을 사용할 줄 모르기 때문이에요. 숙달하지 않고 사용하다간 다칠 수도 있어요. 나중에 시간이 나면 사용법을 가르쳐 줄게요. 이제 거의 다 왔네요.”
우리는 어떤 섬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이 일광욕을 하는 황금빛 해변이 보였다. 어느 틈엔가 플랫폼은 야자수 잎사귀 아래의 넓은 길을 따라 날아갔다. 길 양옆에는 향기로운 관목과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그 일대는 각종 곤충과 나비와새들이 내는 음향과 빛깔로 활기에 넘쳤다.
플랫폼은 지면 가까이를 느린 속도로 이동했다. 마지막 모퉁이를 지난 뒤 마침내 작은 나무와 덩굴식물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계란’ 앞에 도착했다. 이 행성의 모든 건물이 계란 모양을 하고 있는 듯했다. 계란형 건물의 대다수는 ‘옆으로’ 누워있었지만, 일부는 앞서 말한 대로 뾰족한 부분이 하늘을 향한 모양으로 서 있었다. ‘껍질’은 회색 계열이었고 창문과 출입구가 없었다.
“저들은 허리에 ‘타라’를 차고, 손에는 ‘리티올락’을 갖고 있어요. 그 장치는 특정한 진동을 발생시켜 무중력 상태를 만듭니다. 그래서 심지어 수백만 톤의 무게도 깃털처럼 가벼워져요.”
이 계란형 건물은 옆으로 누운 형상에 절반은 땅속에 파묻혀 있었다. 길이는 30m, 직경은 20m쯤 됐다. 지금까지 봐왔던 것들에 비하면 상당히 작았다.
타오는 그 건물의 외벽 중앙에 있는 발광체 앞에 플랫폼을 세웠다. 플랫폼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가벼운 압력을 느꼈는데, 그 강도는 오리털 이불이 와 닿는 정도였다. 앞서 은하 우주기지의 외벽을 관통해 들어갔을 때에도 비슷한 압박감을 느꼈던 기억이 났다.
건물들에 출입구와 창문이 없는 것도 특이했지만, 내부의 풍경은 훨씬 더 이상했다. 앞서 말했듯이 전반적인 인상은 우리가 여전히 건물 밖에 있는 듯 하다는 것이었다.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빛깔들이 어디에서나 보였다. 푸른 잎, 짙은 자줏빛 하늘을 배경으로 뻗어있는 나뭇가지들, 나비, 각종 화초 등……. 건물의 ‘지붕’ 한가운데에 내려앉은 새 한 마리가 생각난다. 우리는 건물 내부에서 그 새의 발바닥도 볼 수 있었다. 마치 그 새가 신기하게도 허공 속에 멈춘 채 앉아 있는 듯했다. 그 광경을 보는 놀라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외부와 대비되는 부분은 카펫 같은 게 깔려있는 내부 바닥이었다. 실내에는 안락해 보이는 화석들과 외다리 테이블들이 배열돼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가구들은 ‘거구’ 의 주민들에게 맞게끔 대형이었다.
“타오,” 내가 말했다. “건물 벽이 투명한데 왜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나요? 우리가 외벽을 어떻게 뚫고 들어왔죠?”
“미셸, 먼저 마스크부터 벗으세요. 당신이 견딜 수 있도록 내부조명을 조절할게요.”
타오는 바닥에 있는 한 물체에 다가가 손을 갖다 댔다. 나는 마스크를 벗었지만 빛의 세기를 견딜 만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을 때의 느낌과 별 차이 없었다. 물론 주변이 반짝거리는 것은 여전했다.
“미셸, 이 건물은 특수한 자기장 덕분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자연의 힘과 창조물들을 우리의 목적에 맞게 복제했어요. 무슨 뜻인지 설명할게요. 인간이든 동물이든, 혹은 광물이든 모든 존재는 주변에 어떤 에너지 장(場)을 갖고 있어요. 예컨대 인체는 계란 모양의 에테르장(etheric force field)과 오로라(Aura)에 둘러싸여 있어요. 그 점은 당신도 알고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테르장은 약간의 전기와 상당량의 진동으로 구성돼 있어요. 그 진동을 ‘아리아코스티나키’ 라고 부릅니다. 이 진동은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 진동은 오로라의 진동과는 섞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주지에 자연을 복제했어요. 건물의 기점(基点) 둘레에 광물질적인 전기-에테르 진동 영역을 만들어냈지요.” 타오는 방의 한가운데 두 개의 좌석 사이에 있는 타조 알 크기의 계란을 가리켰다. “미셸, 이 좌석을 밀어주실래요?”
그 말에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좌석의 크기가 엄청난데다, 그녀가 내게 어떤 요청이든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부탁받은 대로 하려고 했지만 좌석이 너무 무거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럭저럭 좌석을 50cm 정도 움직였다.
“정말 잘했어요.” 타오가 말했다. “이번엔 저 계란을 내게 건네주세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 일은 비교적 쉬울 것 같았다. 한손으로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계란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들어 올리려는 순간…… 나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토록 무거우리라고는 예상치 못해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일어나서 다시 시도했다. 이번엔 온힘을 쏟았다……. 그러나 계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타오가 내 어깨를 만지면서 “보세요.”라고 말했다. 타오는 내가 간신히 움직인 좌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한 손을 좌석 밑에 넣더니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여전히 한 손으로 다시 내려놓았다. 별로 힘을 들이지 않은 듯했다. 다음엔 양손으로 계란을 잡고는 온힘을 다해 앞뒤로 밀거나 잡아당겼다. 너무 힘을 줘 목에 핏줄이 섰다. 그러나 계란은1mm의 10분의 1도 움직이지 않았다.
“계란이 방바닥에 용접돼 있군요.” 내가 말했다.
“아니에요, 미셸. 건물의 중심이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앞서 말한 기점이죠. 우리는 기점 둘레에 에너지 장을 만들었어요.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바람과 비도 침투하지 못하죠. 태양광선의 경우엔 침투할 수 있도록 에너지장의 세기를 조절하죠. 지붕에 앉은 새들 역시 에너지장을 통과할 정도로 무겁지는 않아요. 하지만 좀 더 무거운 새가 앉는다면 가라앉기 시작할 거예요. 그럴 경우 새는 깜짝 놀라 즉각 날아 가 버리기 때문에 아무런 해도 입지 않죠.”
“무척 교묘하군요.” 내가 말했다. “그런데 출입구의 발광체는 어떤 용도인가요? 우리가 선택하는 지점에서 외벽을 통과 할 수는 없나요?”
“할 수는 있어요. 다만 외부에서는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하므로, 아무데서나 들어갔다가는 내부의 가구에 부닥칠지도 모르죠. 그래서 안전한 입구를 표시하려고 외벽에 발광체를 부착했어요. 자, 내부를 둘러보죠.”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화려한 장식의 칸막이 뒤에는 정말로 멋진 실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녹색 반암(斑岩)으로 만든 모형 수영장이 보였다. 근처에는 주변 풍경과 어울리는 모양의 세면대가 있고, 그 위에는 반암 재질의 백조가 부리를 벌린 채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타오가 백조의 부리 아래로 손을 갖다 대자, 즉시 물이 나와 그녀의 손을 적시면서 세면대로 흘러내렸다. 손을 치우자 물도 멈췄다. 그녀는 내게도 해보라고 했다. 세면대는 실내 바닥에서 약 l .5m 높이에 설치돼 있었던 만큼 나는 팔을 높이 들어 올려야했다. 어떻든 손을 대자 다시 물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로 영리한 장치구먼!” 내가 말했다. “이 섬에는 식수도 있나요, 아니면 땅에 시추공을 뚫어야하나요?”
타오의 얼굴에 다시 즐거움의 미소가 번졌다. 내가 ‘기발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그녀의 얼굴에 나타나는 아주 낯익은 표정이었다.
“아니에요, 미셸. 우리는 지구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물을 조달해요. 돌로 만든 이 멋진 새 밑에 장치가 있어요. 외부의 공기를 끌어들여 식수로 변환시키는 장치에요.”
“놀랍군요!”
“우리는 단지 자연법칙을 활용할 뿐이죠.”
“뜨거운 물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전기-진동력을 이용해요. 온수가 필요하면 이쪽에 발을 얹고, 끓는 물이 필요하면 발을 저쪽에 얹어요. 석조 새 옆구리의 전지들이 그 장치의 기능을 통제해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단지 물질적인 세부사항일 뿐이고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타오는 내 시선이 머무른 곳을 가리키며 “여기 이곳은 휴게실이에요. 저쪽에서 마음껏 팔다리를 뻗을 수 있어요.”
그녀는 바닥에 놓여있는 두터운 매트를 가리켰다. 매트는 건물의 기저 부분에 좀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 드러누웠다. 곧바로 내가 지면 부근에서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타오는 계속 말을 했지만 내게는 그녀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안개 같은 커튼 뒤로 사라졌다. 나는 솜이불 같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는 느낌이었다. 음악 같은 진동음도 들렸다. 그 모든 상황 이 지극히 편안한 느낌을 주는 효과를 자아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초 후 타오의 목소리도 다시 들렸다. ‘안개’ 가 걷히고 완전히 사라지면서 목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미셸, 기분이 어땠어요?”
“편안함의 극치였어요!” 내가 흥분조로 말했다. “그런데 아직 못 본 게 하나 있어요. 주방 말이에요. 프랑스인들에게 주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죠?”
“이쪽으로 오세요. 타오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또 다른 방향으로 몇 걸음 옮겼다. “여기 투명한 서랍이 보이나요? 그 안에 칸이 여러 개 있어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생선· 조개· 계란· 치즈· 유제품· 야채· 과일이 들어있고, 여기 마지막 칸에 지구인들이 ‘만나’ 라고 부르는 게 있어요. ‘만나’는 우리들의 빵이에요.
“나를 놀리는 건가요? 서랍 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빨강· 녹색· 파랑· 갈색 등 온통 색깔들밖에 없는데…….”
“당신이 보는 것은 생선과 야채 등 각종 음식의 농축물이에요. 뛰어난 요리사들이 다양한 비법으로 만든 최상품질의 음식들이죠. 맛을 보면 매우 영양가가 높고 우수한 식품임을 알거예요.”
그러고 나서 타오는 자기네 언어로 몇 마디 말을 중얼거렸다. 잠시 후 내 앞에 쟁반이 나타났고, 그 속에는 보기 좋게 배열된 몇몇 음식물이 담겨 있었다. 먹어 보니 놀랄 정도로 맛이 있었다. 평생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이지만 정말로 맛있었다. ‘만나’는 이미 우주선에서 맛을 봤었다. 다시 먹어 보니 다른 음식물들과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빵이 지구에서는 ‘만나’ 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는데, 어떻게 그 음식이 지구에 존재하게 됐나요?”
“그것은 우리가 우주선으로 은하계를 여행할 때 늘 챙겨가는 식품이에요. 농축하기 쉽고 영양가도 높아 매우 실용적이지요. 사실상 완전식품이에요. 밀과 귀리로 만드는데, 그것만 먹고도 몇 달은 살 수 있어요.”
마침 그 때, 나뭇가지 아래로 지면 가까이에서 날아오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건물 입구에 멈춰 서서는 ‘타라’를 끌러 대리석 받침대 위에 얹어놓았다. 분명히 어떤 목적이 있는 동작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한 명씩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반갑게도 비아스트라와 라톨리 그리고 우주선에서 만났던 나머지 승무원들이었다.
그들은 우주선 유니폼 대신에 아랍인 스타일의 기다란 의상을 걸쳤는데, 옷의 색깔이 희미하게 반짝였다(옷의 빛깔이 그들을 달라 보이게 만드는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됐다). 그 때에는 그들이 우주선에서 대화하며 알고 지냈던 바로 그 사람들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라톨리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밝게 빛났다. 내 어깨에 손을 대고는 텔레파시로 말했다. “친구여, 조금 놀란 것 같군요. 우리들의 주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나요?”
그녀는 감동을 받았다는 나의 대답을 ‘읽고’ 는 기뻐했다. 그러고는 동료들을 향해 나의 반응을 전달했다. 모든 사람이 한 마디씩 언급하면서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잠시 후 모두 자리에 앉았다. 앉은 모양새들이 나보다는 훨씬 더 편안해 보였다. 큰 체구에 맞게 제작된 의자들인 만큼 내게 맞는 것은 없었다. 닭들 사이에 낀 오리새끼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타오는 주방에 가서 쟁반 하나에 먹을 것을 가득 담았다. 그녀가 뭐라고 한 마디 하자 모두들 쟁반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쟁반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쟁반은 방안을 빙 돌면서 각각의 손님들 앞에서 저절로 멈췄다. 마침내 내 앞에까지 왔다. 나는 쟁반이 떨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나의 이런 자세에 모두들 재미있어 했다) 꿀물이 담긴 잔을 들었다. 쟁반은 다시 저절로 이동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모두의 손도 내려갔다.
“어떻게 한거죠?” 내가 타오에게 물었다. 모두들 정신감응으로 내 질문을 알아들었고 폭소가 터져 나왔다.
“당신이 말하는 ‘공중부양술’ 로 했어요, 미셸. 우리는 몸을 쉽게 공중으로 들어 올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그냥 재미삼아 할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요. 다리를 포개고 앉아있던 타오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내를 한 바퀴 돌더니 마지막에는 공중에서 정지된 상태로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렇게 넋을 잃고 쳐다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음을 잠시 후 깨달았다. 내가 바보처럼 보였음에 틀림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고정돼 있었다. 분명히 그들에게는 타오의 행동이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그들은 나의 놀란 표정에 더 흥미를 느꼈다.
타오는 자기 자리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공중부양술은 지구인들이 상실한 많은 기술 중하나예요, 미셸. 지금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그런 능력이 있지요. 한때는 많은 지구인들이 그것을 포함한 많은 기술을 구사했어요.”
그날 오후, 나의 새 친구들과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텔레파시로 대화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태양이 지기 시작했다.
타오가 말했다. “미셀, 당신이 티아우바에 체류하는 동안 이 ‘도코’ 가 당신의 집이 될 거예요. 이런 계란형 주거지를 여기서는 도코라고 불러요. 당신이 잠을 잘 수 있도록 밤에는 우리가 떠나 있을 겁니다. 목욕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지 알거예요. 그리고 휴게실 침대에서 주무시면 됩니다. 그런데 취침 준비는 30분 안에 끝내도록 하세요. 이 집에는 조명이 없거든요. 우리는 밤에도 낮처럼 사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조 명이 필요 없어요.”
“이 건물은 안전한가요? 안심해도 되나요?” 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타오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이 행성에서는 도시 한가운데 길바닥에서도 잠을 잘 수 있어요. 그래도 지구에서 무장 경비원과 경비견과 경보장치가 지켜주는 건물 안에 있는 것보다 안전할 거예요.
이곳에는 고도로 진화한 사람들만 존재합니다. 지구의 범죄자 같은 사람은 없어요. 그런 범죄자는 가장 악질적인 짐승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럼 이제 좋은 밤 보내세요.”
티아우바 행성의 도코 앞에 서있는 타오와 미셀. 도코는 포스 필드로 둘러싸인 건물이다. 출입구와 창문이 없지만, 일단 내부에 들어가면 바깥이 전경으로 보인다.
타오는 뒤로 돌아 도코의 ‘벽’ 을 통과해 친구들과 합류했다. 타오가 그들과 함께 날아오른 것을 보니 친구들이 그녀의 ‘리티올락’ 도 가져온 것이 분명했다.
나는 티아우바에서의 첫날밤을 보내기 위해 준비했다.
6장
7인 지도자와 오로라
큰 불꽃이 파란색을 태웠다. 주황색과 붉은색 불꽃이 그 주위에서 타올랐다. 거대한 구렁이 한 마리가 불꽃 사이에서 나와 나를 향해 기어왔다. 난데없이 거인들이 달려와 구렁이를 잡으려 했다. 구렁이가 내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고 7명의 거인이 달려들었다. 갑자기 구렁이가 몸을 돌려 불꽃을 삼키더니 마치 용처럼 거인들에게 내뿜었다. 그러자 거인들은 구렁이의 꼬리 위에 올라탄 채로 거대한 석상으로 변해 버렸다.
그 파충류는 혜성으로 변해 석상들을 이스터 섬에 옮겨다 놓았다(이스터 섬: 칠레에서 수천km 떨어진 태평양상의 외딴 섬 나무가 없는 그 섬에는 거대한 석상들이 수없이 많다‘ 일부 석상은 높이가 50m나 되며 오래 전부터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간주됐다. 석상의 존재는 여러 세기 동안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저자의 승인을 얻은 편집자 주). 잠시 후 석상들은 이상한 모자를 쓴 채 내게 인사했다. 타오를 닮은 석상 하나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미셸 미셸……. 일어나세요”라고 말했다.
타오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이것 참!" 내가 눈을 뜨며 말했다. “꿈을 꿨어요. 당신이 이스터 섬의 석상이었는데 내 어깨를 불들고......”
“내가 이스터 섬의 석상 중 하나이고, 실제로 당신 어깨를 잡았어요.”
“어쨌든, 나는 지금 꿈속에 있는 게 아니죠, 그렇죠?"
“네, 그런데 꿈이 정말로 희한하군요. 왜냐하면 이스터 섬에는 아주 오래 전에 나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려고 내 이름을 붙여 만든 석상이 하나 있거든요.”
“무슨 말이죠?"
“그냥 사실을 말할 뿐이에요 미셸. 나중에 때가 되면 모두 설명할게요. 지금은 이 옷을 입어보세요. 당신을 위해 가져왔어요.”
타오가 화려한 색상의 긴 옷을 건네줬다. 무척 마음에 드는 옷이었다. 향내가 나는 온수목욕을 한 뒤 그 옷을 입었다. 예상치 못한 행복감이 온몸을 감쌌다. 그 느낌을 타오에게도 알렸다. 그녀는 내게 줄 우유와 약간의 만나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옷의 색깔은 당신의 오로라 색깔에 맞춰 골랐어요. 그래서 느낌이 좋은 거예요. 지구인들이 오로라를 볼 수 있다면 그들 역시 자신에게 맞고 그래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색깔을 선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아스피린보다는 색깔을 더 활용하게 되겠죠.”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예를 들게요. 누군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죠:
‘저 옷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패션 감각이 전혀 없네. 라고요"
“예, 자주 그래요.”
“대개 그런 사람들은 단지 옷을 다른 사람들보다 덜 세련되게 고르거나 코디를 잘 못해요. 배색이 어울리지 않는 경우인데, 자신의 시각보다는 타인들의 시각을 기준으로 삼죠. 그러나 그렇게 옷을 선택하면 좋은 기분을 느끼지 못하고, 그 이유도 몰라요. 그런 사람들에게 진정한 색상 조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 오히려 당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거예요. 옷색깔의 진동이 오로라의 진동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설명해줘도 믿지 않으려 할 거예요. 지구인들은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것만 믿지요 하지만 오로라도 볼 수 있어요…….”
“실제로 오로라에 색깔이 있나요?"
“물론이죠. 오로라는 끊임없이 진동하면서 색깔이 변해요. 실제로 당신의 머리 윗부분에는 꽃다발처럼 다양한 빛깔들이 몰려 있어요. 당신이 아는 거의 모든 색이 거기에 있어요.
머리 둘레에도 황금빛 원광(圓光)이 있어요. 하지만 원광은 영적으로 고도로 발달한 사람들과 타인을 도우려고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에게서만 명확히 보이죠. 원광은 황금빛 달무리와 비슷해요. 지구의 화가들이 그린 ‘성인’ 들과 그리스도의 광륜(光輪) 같은 것이죠. 옛날의 화가들이 원광을 그려 넣은 이유는 그들 중 일부가 실제로 원광을 봤기 때문이에요.”
“네, 나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당신에게서 들으니 좋네요.”
“오로라에도 다양한 빛깔이 있어요. 일부는 강렬하고 일부는 흐릿하죠. 예컨대 건강이 안 좋거나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나도 정말 오로라를 보고 싶군요. 그것을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아주 오랜 옛날에는 지구에서 오로라를 보고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요.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미셸. 보게 될 거예요. 한 가지 오로라뿐 아니라 여러 가지를요. 당신 자신의 오로라를 포함해서. 그러나 지금은 저를 따라오세요. 시간은 부족한데 보여드릴 게 많거든요.”
나는 타오를 따라갔다. 그녀는 내게 마스크를 씌운 뒤 전날 사용했던 비행 플랫폼 쪽으로 걸어갔다.
플랫폼에 착석하자 타오는 곧바로 이륙했다. 거리의 나뭇가지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능숙하게 조종했다. 잠시 후 우리는 해변에 도착했다.
태양이 섬 뒤편에서 막 떠올라 바다와 주변 섬들을 밝게 비췄다. 수면 위에서 보는 그 광경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해변을 따라 화초가 만발한 관목 숲 사이에서 다른 도코들이 보였다. 바닷가에서는 도코 주민들이 투명한 물에서 헤엄을 치거나 백사장을 산책했다. 그들은 비행 플랫폼을 보고 놀란 듯 우리를 따라오기도 했다. 그 섬에서는 플랫폼이 흔히 보는 교통수단이 아닌 듯했다.
한 가지 더 말해둬야 할 게 있다. 티아우바에서는 사람들이 늘 나체로 수영과 일광욕을 즐긴다. 그러나 비교적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산책할 때는 항상 옷을 입는다. 이 행성에서는 위선이나 자기과시, 혹은 거짓 겸손이 없다(이것은 나중에 설명하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섬의 끝에 도착하자 타오는 더욱 속도를 내 수평선에서 보이는 큰 섬을 향해 날아갔다. 타오가 플랫폼을 조종하는 솜씨는 정말로 뛰어났다. 특히 그 섬의 해안 지대를 이동할 때는 더욱 돋보였다.
해변에 접근하면서 거대한 도코들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뾰족한 부분이 하늘을 향한 도코 9개가 모여 있었다. 그러나 섬에는 숲속에 산재해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 좀 더 작은 다른 도코들도 있었다. 타오는 비행 고도를 높였고, 우리는 곧 ‘코트라 쿠오 도지 도코’ ('9개 도코의 도시’)의 상공을 날고 있었다.
타오는 도코들 사이를 솜씨 좋게 비행하다가 한가운데의 아름다운 공원에 착륙했다.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지만 나는 티아우바를 둘러싼 황금빛 기운이 이곳 도코들의 주위에 특히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타오는 내 판단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해줬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오는 푸른 잎으로 만들어진 아치형 문을 지나 이어진 길로 나를 안내했다. 길옆에는 작은 연못들이 있었다. 연못에서는 아름다운 물새들이 노닐고, 작은 폭포들이 속삭이듯 물소리를 냈다.
타오를 따라가느라 뛰다시피 걸어야 했지만 천천히 가자고 요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여념이 없어 보였다. 한 번은 내가 점프를 하려다 불상사가 일어날 뻔했다. 재미있게 타오를 따라가려고 시도한 점프였다. 중력의 차이를 간과하고 힘껏 점프를 했다가 연못 속으로 떨어질 뻔했던 것이다. 다행히 연못가의 나무를 붙잡은 덕에 화는 면했다.
마침내 우리는 ‘중앙 도코’ 에 도착해 출입구 발광체 아래에 섰다. 타오는 몇 초 동안 정신을 집중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내 어깨를 잡고 벽을 통과해 들어갔다.
그녀는 즉시 내 마스크를 벗기면서 눈을 절반쯤 감으라고 말했다. 반쯤 감은 눈 속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잠시 후 눈을 정상적으로 뜰 수 있었다.
이곳의 빛은 내가 묵는 도코보다도 황금색이 더 강렬해 처음에는 상당히 불편했다. 그리고 몹시 궁금한 점이 있었다. 평소에 타오는 매우 자유롭고 대인관계에서 격식을 따지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태도가 돌변해 있었다. 왜 그럴까?
중앙 도코는 직경이 100m 정도였다. 우리는 천천히 걷기는 했지만 건물의 중심부로 직행했다. 그곳에는 반원 형태로 배열돼 있는 7개의 좌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마치 석화(石化)된 듯이 앉아 있어 처음에는 석상인 줄 알았다.
외관상으론 타오와 닮았다. 다만 머리카락이 더 길고, 심각한 얼굴표정을 하고 있어 나이가 더 많아보였다. 그들의 눈은 내부로부터 조명을 받는 듯해 나를 약간 긴장시켰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실내의 황금빛 기운이 건물 바깥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는 점이었다. 그 기운은 그들의 머리 주변에 집결해 원광을 형성하는 듯했다.
나는 15세 이후로 인간에 대해 경외심을 느껴본 기억이 없다. 아무리 유명한 거물급 인사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나는 위압감을 느낀 적이 없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당당히 내 의견을 말해왔다. 내게는 일국의 대통령도 그저 또 다른 사람일 뿐이다 VIP 라고 자처하는 사람을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온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단순히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어서다.
나의 그런 태도는 중앙 도코에서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들 중 한 명이 타오와 나에게 앉으라고 손짓하는 순간, 나는 그들의 위엄에 짓눌려 목소리마저 기어들어갔다. 그토록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들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 조차 못했었다. 마치 그들 내부가 불타고 있고 거기에서 광선이 발산되는 듯했다.
그들은 등받이가 수직인 사면체 같은 좌석에 앉아있었다.
좌석들의 색깔은 서로 달랐다. 일부는 옆의 좌석과 약간 달랐고, 나머지는 크게 달랐다. 의복은 본인에게 완벽하게 어울렸지만 역시 서로 색깔이 달랐다. 모두들 지구에서 ‘결가부좌’로 불리는 자세로 앉아 있었다. 즉 부처님의 앉는 자세로 양 손은 무릎 위에 얹어놓았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반원 형태로 앉아 있고 모두 7명이었다. 따라서 한가운데의 인물이 가장 높은 사람이고 양쪽의 각 3인이 그 다음 서열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했다. 물론 당시에는 내가 압도된 상태라 그런 세부적인 것까지 생각하진 못했다. 나중에 떠오른 생각이었을 뿐이다.
바로 그 가운데 인물이 내게 말을 건넸다. 매우 선율적인 동시에 위엄 있는 목소리였다. 너무 당혹스러웠다. 더욱이 그는 완벽한 프랑스어로 말했다.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된 것을 환영해요, 미셸. 성령께서 그대와 함께 하고 인도하시기를!" 다른 사람들이 복창했다. “성령께서 그대와 함께 하고 인도하시기를!"
그의 몸이 결가부좌 상태로 떠오르더니 내게 다가왔다.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타오한테서 그런 공중부양술을 봤기 때문이다. 의심할 바 없이 위대하고 영적인 존재 앞에서 나는 진심으로 우러나는 무한한 존경심에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일어나려 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앉은 채로 마비된 듯했다.
그는 내 앞쪽 바로 위에서 멈춘 채 양손을 내 머리에 갖다 댔다. 두 엄지손가락은 나의 이마 한가운데(두개골 내부의 송과체와 수직선상으로 만나는 부위)에서 맞닿았고, 나머지 손가락들은 정수리에서 만나는 형태였다. 물론 이런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타오가 내게 설명해 준 것이었다. 당시에는 신묘한 느낌에 압도돼 그런 세부적인 내용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의 양손이 내 머리에 얹혀 있는 동안 나의 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몸속에서부터 부드러운 온기와 미묘한 향기가 파도처럼 퍼져 나오면서, 들릴 듯 말 듯한 부드러운 음악과 한데 어울렸다.
갑자기 내 앞에 있는 인물들을 에워싼 환상적인 빛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지도자’ 가 제자리로 천천히 돌아갈 때, 나는 그의 둘레에서 여러 종류의 찬란한 빛깔을 볼 수 있었다. 전에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빛깔들이었다. 주된 색상은 엷은 분홍색이었는데 일곱 명 전체를 구름처럼 감쌌다.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은 그 경이롭고 선명한 분홍빛이 우리도 에워싸도록 만들었다!
정상적인 감각을 되찾았을 때 타오 쪽을 바라보니 그녀 역시 신비한 빛깔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그 7인을 에워싼 빛깔들 보다는 강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이미 눈치 챘을 테지만 이 위대한 존재들에 관해 얘기할 때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 (She)보다는 ‘그’ (He)를 대명사로 사용한다. 굳이 이유를 설명하자면, 그들의 인성이 너무 강하고 태도가 너무 당당해 보여 여성보다는 남성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여성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나의 반응은 본능적인 것이었다. 그들을 여성으로 보는 것은 마치 므두셀라(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할아버지로 969세까지 살았다고 한다)를 여성으로 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들은 나를 변화시켰다. 그들을 에워싼 빛깔들은 그들의 오로라임을 알게 됐다. 나는 오로라를 볼 수 있게 됐고, 내가 본 것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지도자’ 가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 후, 모두의 시선은 내게로 고정됐다. 마치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은 듯했다.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끝없이 계속될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을 감싼 오로라의 다양한 색채가 진동하고 춤추는 것을 지켜봤다. 때론 오로라가 멀리까지 뻗치기도 했다. 타오가 말했던 ‘빛깔의 꽃다발’ 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윤곽이 뚜렷한 황금빛 원광은 이제 거의 셋노랑으로 변했다. 그들은 나의 오로라를 볼 뿐만 아니라 그 의미마저 해독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지(全知)적인 존재들 앞에서 내가 완전히 벌거벗은 채로 있는 느낌이었다. 뇌리를 떠나지 않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왜 나를 이곳에 데려왔을까?’
‘지도자’ 가 침묵을 깼다. “미셸, 타오가 이미 설명했듯이, 당신이 우리 행성을 방문하도록 선택된 이유는 나중에 지구에 돌아가서 우리의 메시지를 전하고 몇몇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지구인들을 계몽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특정한 사건들이 일어날 때가 다가왔습니다. 지구상에서 수천 년 동안의 어둠과 야만의 시대가 지난 뒤 이른바 ‘문명’ 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기술 발달은 지난 150년 사이에 급속도로 이뤄졌지요.
지구에서 기술 발달이 시작된 지 1만 4,500년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 기술은, 진정한 지식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지구상의 인류에게 해를 끼칠 정도로 발달 했습니다.
해로운 이유는, 그것이 영적인 지식이 아니라 오로지 물질적인 지식이기 때문이지요. 기술은 영적인 발전을 도와야 합니다. 사람들을 물질주의적 세계에 더욱 더 가두어 놓아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지금 지구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구인들은 오로지 한 가지 목표 즉 재산 축적에만 사로잡혀 있고,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재산 추구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모든 것과 관련돼 있습니다. 시기심, 질투, 부자들에 대한 증오, 가난한 사람에 대한 경멸 같은 것이지요. 다시 말해 현재의 기술은 지구에 1만 4,500년 전에 존재했던 기술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신네 문명을 끌어내리고 도덕적 영적인 파국으로 더욱 몰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이 위대한 인물이 물질주의에 관해 언급할 때마다 그의 오로라와 측근들의 오로라가 순간적으로 흐릿하고 ‘탁한’ 붉은색으로 번쩍이는 것을 목격했다. 마치 그들이 불타는 관목 숲 한가운데 들어가 있는 듯했다.
“우리 티아우바인들은 후견인 역할을 맡은 행성들의 주민들을 도와주고 인도하며 때론 벌을 주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티아우바로 오는 동안에 타오로부터 지구의 역사를 간략하게 나마 설명을 들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 지도자의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 ‘인류에게 해롭다’ 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대다수 지구인들은 핵무기를 가장 위험한 것으로 보지만, 그렇지 않아요. 가장 큰 위험은 ‘물질만능주의’ 입니다. 지구인들은 돈을 추구 하지요. 그들에게 돈은 권력이나 마약(또 다른 저주)을 얻는 수단이에요. 이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대형 상점 하나를 소유하고 있는 사업가는 상점을 두 개, 세 개로 늘리고 싶어 합니다. 소규모 기업 제국을 경영한다면 그것을 확대하고 싶어 합니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집이 한 채 있는 보통 사람도 더 큰 집을 갖고 싶어 합니다. 혹은 두 채, 세 채로 늘리고 싶어 합니다.
왜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할까요? 게다가 인간은 죽을 것이고 그 때는 축적해온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어쩌면 자식들이 유산을 탕진하고 손자들은 가난하게 살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의 생애는 순전히 물질적인 관심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영적인 문제에 할애할 시간은 부족하겠지요. 또 다른 부자들은 인위적인 지복(至福)을 얻으려 마약에 손을 댑니다. 이런 사람들은 더 끔찍한 대가를 치릅니다.”
“미셸" 그의 말이 계속됐다. ‘당신이 따라오기에는 내가 너무 빨리 나아간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당신은 따라올 수 있을 겁니다. 여기 오는 동안 타오에게서 이런 문제들에 관해 미리 들었을 테니까요.”
나는 부끄러워졌다. 학교에서 선생님한태 잘못을 지적당한 기분이었다. 학창시절에는 나도 이해했다고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그런 게 통하지 않았다. 그는 내 마음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황송하게도 그는 내게 미소를 보냈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그의 오로라가 원래의 빛깔로 돌아왔다. “이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프랑스인들이 ‘신비의 열쇠’ 라고 부르는 지식을 당신에게 알려주겠습니다.
이미 들었겠지만, 태초에 성령이 있었습니다. 성령은 전능한 힘으로 모든 물질적 존재를 창조했습니다. 행성, 태양, 식물, 동물들을 창조했습니다. 목적은 오직 하나, 자신의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순수한 영적인 존재이므로 그것은 지극히 논리적인 행위입니다. 영적인 만족을 위해 사물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갈 겁니다. 그 점은 이렇게 설명하지요. 창조주는 물질세계를 통해 영적인 체험을 추구했다고.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당신은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기 위해 그 분은 자기 영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물질적 형태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4의 힘을 불렀습니다. 타오가 아직 당신에게 설명하지 않은 힘이지요. 그 힘은 오로지 영성(靈性, spirituality)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영역에서도 우주의 보편적 법칙이 적용됩니다.
우주의 기본 패턴은 9개의 행성이 자신들의 태양(항성) 주위를 공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때론 9개의 행성이 두 개의 작은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도 한다, 이런 태양을 쌍성이라고 한다. 편집자의 요청에 의한 저자의 설명). 이런 항성들 9개는 다시 더 큰 항성주위를 공전합니다. 후자의 큰 항성은 전자의 9개 항성과 각각에 부속된 9개 행성의 공전 중심인 셈이지요. 그런 식으로 계속 진행되다 보면 모든 천제의 공전 중심인 우주의 중심이 나오겠지요. 바로 그 우주의 중심에서 지구인들이 말하는 ‘빅뱅’이 일어났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때론 우연적인 사건도 일어납니다. 행성 하나가 어떤 태양계에서 사라지거나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태양계는 다시 숫자 9에 기초한 패턴으로 복귀합니다.
네 번째 힘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성령이 상상한 모든 것을 구현했습니다. 성령의 아주 작은 일부를 인체 속에 집어넣었지요. 그것이 바로 성기체(Astral body, 영혼체)입니다. 성기체는 인간 본질의 9분의 1을 형성하고, 동시에 ‘대아(大我, Higher self)의 9분의 1을 구성합니다. 대아는 ‘초월자아(overself)라고도 부릅니다.
다시 말해 초월자아는 자신의 9분의 1을 인체에 보내 그 사람의 성기체가 되게 합니
다. 동일한 초월자아의 나머지 부분들은 각각 다른 인체 속에 9분의 1씩 들어가 존재합니다. 그러면서도 원래 초월자아와의 통합성을 유지합니다(다시 말해 인간은 다른 8명의 인간들과 동일한 초월자아를 공유한다. 편집자의 요청에 따른 저자의 설명).
그리고 초월자아는 더 높은 단계의 초월자아의 9분의 1을 차지하고, 이는 다시 더 고차원의 초월자아의 9분의 1을 구성 합니다. 이런 구성 단계는 ‘근원’ 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면서 성령이 요구하는 영적인 체험의 방대한 여과장치 같은 게 됩니다.
첫 단계의 초월자아를 윗단계의 초월자아에 비해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낮은 수준에서 작용해도 그것은 매우 강력하고 중요합니다. 각종 질병을 치료하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릴 수 있습니다(지구에서는 심령치료[Spiritual Healing]로 알려져 있다. 치료사의 초월자아로부터 도움을 얻는 능력으로 환자가 현장에 없어도 가능하다. 유능한 치료사는 세계 어느 곳에 있는 환자도 도와 줄 수 있다‘ 불론 환자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저자주, 심령치료는 ‘에너지’ 의 교환이 아니라, 초월자아 차원에서의 ‘정보’ 교환이다 편집자 주).
의사들도 포기하고 임상적으로 사망선고가 내려진 사람들이 소생한 경우는 많습니다. 이는 그 환자의 성기체가 초월자아와 만났을 때 가능한 현상입니다. 환자가 ‘사망’한 시간 동안 그의 성기체는 육체를 떠나 있습니다. 성기체는 자신의 시신과, 그것을 되살리려 애쓰는 의사들을 내려다봅니다. 슬퍼하는 가족의 모습도 볼 수 있지요. 성기체 상태의 인간은 지극히 편안한 느낌, 심지어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대개의 인간은 자신의 육체와 고통의 원인을 버리고 떠납니다. 그리고 ‘영혼의 통로’ 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통로의 끝에선 찬란한 빛이 보이고, 그 너머에는 천상의 기쁨이 존재합니다.
통로를 지나 그 빛(이것이 그의 초월자아 입니다)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죽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인의 욕심이 아니라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예컨대 어린 자녀들을 위한 의지가 생기는 경우 그는 되돌아가기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요청이 받아들여집니다.
인간은 대뇌의 통로를 통해 항상 자신의 초월자아와 교신합니다. 그 대뇌 통로는 성기체와 초월자아 사이에서 특수한 진동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초월자아는 밤낮으로 당신을 지켜보면서 사고로부터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택시가 고장이 나고 갈아탄 택시마저 고장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만 생각 할 수 있을까요?
그 비행기는 30분 뒤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합니다. 또 류머티즘 환자로 잘 걷지 못하는 할머니가 차도를 건너갑니다. 갑자기 자동차의 요란한 경황없음과 급제동시의 타이어 마찰음이 들립니다. 그 순간 기적처럼 할머니는 성큼 뛰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합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할머니는 아직 죽을 때가 안됐고, 그래서 할머니의 초월자아가 개입한 것이지요. 0.01초 사이에 할머니의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안전 장소로 뛰어갈 힘을 근육에 제공한 것입니다. 혈액 속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 급박한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힘이 순간적으로 생깁니다. 혹은 분노나 공포심을 일으켜 ‘가공할 적’을 물리치는 일도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양의 아드레날린은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대뇌 통로만이 초월자아와 성기체 사이의 교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꿈이나 수면 속에는 또 다른 통로가 존재합니다. 잠자는 동안 초월자아는 성기체를 불러들여 지시사항이나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때론 특정한 방식으로 성기체를 혁신하기도 합니다. 성기체의 영적인 힘을 보충하거나 중요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음이나 악몽으로 잠을 설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악몽은 낮에 받은 해로운 인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밤은 충고를 준다.’ 는 프랑스 속담의 중요성을 이제는 더 잘 이해하겠지요.
인체는 그 자체로 매우 복잡합니다. 하지만 성기체와 초월자아가 상호작용하며 진화하는 과정의 복잡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평범한 지구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지요.
모든 정상인의 성기체는 육체가 평생 체험하는 모든 감각을 초월자아에게 전달합니다. 이 감각 정보는 9단계 초월자아의 방대한 ‘여과장치’ 를 통과해 성령을 둘러싼 에테르의 ‘바다’ 에 도달합니다. 이들 감각 정보가 본질적으로 물질만능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경우 초월자아는 이들을 여과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마치 깨끗한 물보다 탁한 물을 여과할 때 정수기가 더 빨리 막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생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 성기체가 영적인 감각 정보를 많이 얻을수록 영적인 이해력도 커집니다. 지구 시간으로 500~1,000년이 흐르고 나면 초월자아는 더 이상 여과할 것이 없어집니다.
미셸 데마르케라는 사람의 성기체에 구현된 이런 초월자아는 영적으로 매우 진보된 상태이므로 윗단계의 초월자아와 직접 교신하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 과정은 흐르는 물에서 9개 성분을 제거하는 9단계의 여과기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1단계에서 한 가지 성분이 완전히 제거되면 8개 성분이 남겠지요. 물론 그 성분 정보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나는 심상(이미지)을 적극 활용합니다.
첫 번째 범주의 초월자아에서 여과 장치를 통과한 성기체는 그 초월자아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킨 뒤 두 번째 범주의 초월자아에 합류합니다. 그리고 전체 여과 과정이 반복됩니다. 게다가 성기체는 영적으로 충분히 발전할 경우 다음 범주의 행성으로도 이동합니다.
당신이 내 얘기를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설명하는 모든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자신의 지혜 속에서 네 번째 힘을 이용해 9개 범주의 행성들을 만들었습니다. 미셸 지금 당신이 와있는 티아우바는 9번째 범주의 행성이에요. 가장 높은 단계의 행성이지요.
지구는 첫째 범주의 행성입니다. 가장 낮은 단계이지요. 그것은 무슨 뜻일까요? 지구는 기초적인 사회적 가치를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둔 유치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둘째 범주의 행성은 좀 더 윗단계의 가치를 가르치는 초등학교에 해당됩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어른들의 지도가 필수적입니다. 셋째 범주는 중등학교입니다. 형성된 가치관을 토대로 그 이상의 것들을 탐구하지요. 다음은 대학 과정입니다. 여기에서는 어른 대접을 받습니다. 특정한 양의 지식을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책임도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9개 범주의 행성들은 이런 식으로 그 발전 단계가 달라집니다. 영적으로 발전할수록 윗단계의 행성으로 가서 우수한 생활방식과 환경 속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됩니다. 음식을 조달하는 방법도 훨씬 더 쉬워지고 이는 다시 생활방식을 더욱 단순화시킵니다. 그 결과 좀 더 효과적으로 영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다섯째 범주의 행성에서는 자연(Nature)이 개입해 ‘학생들’을 도와줍니다. 그 이후 6~9번째 단계에서는 성기체만 고도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육체도 그런 발전에서 이익을 얻습니다.
당선은 우리 행성에서 목격한 것들에 이미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볼수록 당신은 바로 이런 세계가 지구인들이 말하는 ‘낙원’ 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수한 영혼이 되어 느끼는 진정한 행복에 비하면 여전히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설명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군요. 당신이 앞으로 쓰게 될 책에서 나의 말을 한글자도 바꾸지 않고 들은 그대로 기술해야 할 테니까요. 당신의 개인적 견해가 개입되지 않도록 기술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책을 쓸 때가 되면 세부 사항은 타오가 도와줄 겁니다…….
티아우바에서는 육체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에테르 형태의 위대한 성령과 재결합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을 마쳤을 때 지도자를 둘러싼 오로라는 여느 때보다도 밝게 빛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모습이 황금빛 안개 속으로 사라지더니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성기체는 육체 속에 거하면서 다양한 전생에서 획득한 지식을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사실을 이제 이해했을 겁니다.
성기체는 물질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만 풍요로워집니다. 육체는 단순한 운반체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죽을 때 육체를 버립니다.
‘대부분의 경우’ 라는 말이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군요. 자세히 설명하지요. 티아우바인들 가운데 일부는 신체 세포를 의지대로 재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다수의 나이가 같아 보이는 것을 이미 봐서 알 겁니다. 티아우바는 우리 은하계에서 가장 고도로 진화된 3개 행성 중 하나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위대한 에테르’ 와 직접 결합할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티아우바인들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거의 완벽한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맡겨진 임무가 있습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피조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조약돌 한 개를 비롯한 만물이 나름대로의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우월한 행성의 주민으로서 우리의 임무는 영적인 발전, 때론 물질적 발달을 지도하고 돕는 일입니다. 우리는 기술적으로 가장 우수하기 때문에 물질적 도움을 주는 위치에 있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나이 교육 조정 능력 등에서 자녀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다면 어떻게 정신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또 아이에게 육체적 처벌을 가하려면 부모가 육체적으로 더 강해야겠지요. 어른들의 경우도 올바른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고 고집만 부린다면 물리적인 방법으로 교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셸, 당신의 행성 지구는 ‘슬픔의 행성’ 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아주 적합한 표현이지요. 그런 별명이 붙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구인들은 경솔하게 자연에 역행합니다. 조물주가 맡긴 생태계를 보존하기보다 파괴합니다. 정교하게 설계된 생태계를 손상시킵니다. 당신이 사는 호주 같은 몇몇 나라들은 생태계를 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호주에서도 수질오염과 대기오염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가 취해지고 있나요? 최악의 오염에 속하는 소음 공해에는 어떻게 대처하나요?
‘최악의’ 라고 표현한 이유는 호주인들이 그 문제에 거의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교통 소음 때문에 괴로운지 물어보세요. 그러면 놀라운 답변을 듣게 됩니다. 답변의 85%는 이런 식입니다. ‘무슨 소음이라고요?’ ‘무슨 말이지요?’ ‘아, 그거요. 이미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익숙해졌다’는 사실이 위험합니다.”
바로 그 때 타오라(지도자의 호칭이다)가 내게 뒤를 돌아보라고 손짓했다. 내가 마음속으로 던진 질문에 답변하는 손짓이었다. ‘어떻게 그는 퍼센트 운운할 정도로 지구에 관해 그토록 정확하고 많이 알고 있을까?’
뒤를 돌아본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뒤에는 비아스트라와 라톨리가 서 있었다. 물론 그 자체만으론 놀랄 일이 아니었다. 내가 알기에 신장이 각각 310cm와 280cm이었던 그 친구들이 지금은 나의 비슷한 체구로 줄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타오라가 미소 짓는 것을 보니 내 입이 오랫동안 벌어져 있었던 듯했다.
“요즘은 일부 티아우바인들이 지구에서 인간들과 섞여 사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몰랐지요? 당신 질문에 대한 답변 입니다.
소음이라는 중요한 주제에 관해 계속 얘기하지요. 소음은 심각한 위험입니다.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재앙은 불가피합니다.
나이트클럽을 예로 들어 보지요. 그곳의 음악 소리는 일반적인 소음 기준의 세 배나 됩니다. 그런 소음에 노출된 사람들은 두뇌, 생리 시스템, 성기체에 아주 해로운 진동이 가해집니다. 그런 피해의 실상을 안다면 사람들은 화재가 났을 때 보다 더 빨리 나이트클럽을 빠져나올 겁니다.
진동은 소음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색깔에서도 나오지요. 지구에서도 이 분야의 실험이 실시된 적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후속 실험은 아직 없어요. 우리 ‘요원’ 들의 보고 가운데, 평소에 특정한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는 한 남성에 관한 실험이 있었습니다. 그 남자에게 분홍색 화면을 잠시 응시하게 한 후 측정했더니 물건을 들어 올리는 힘이 30% 감소했습니다.
당신네 문명은 그런 실험에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색깔은 인간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그런 영향을 통제할 때는 개인의 오로라 상태를 고려해야 합니다. 예컨대 침실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벽지를 붙일 때 당신에게 진정으로 맞는 색상을 사용하고 싶다면 먼저 본인 오로라의 주요색상을 알아야 합니다.
침실 벽의 색상을 오로라 색깔과 일치시키면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런 색감에서 나오는 진동은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데도 긴요합니다. 그런 영향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지속되지요.”
그러나 지구인들은 오로라를 볼 능력이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오로라 빛깔의 중요한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런 질문을 말로 하기도 전에 타오라는 즉각 대답했다.
“미셸, 이제는 지구의 전문가들이 오로라를 감지할 수 있는 특수 장비를 개발해야 합니다. 그런 장비는 앞으로 직면하게 될 중요한 갈림길에서 옳은 선택을 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줄 겁니다.
러시아인들은 이미 오로라를 촬영했습니다. 드디어 시작한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판독능력과 비교할 때 그들의 수준은 알파벳의 첫 두 글자를 읽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오로라를 판독해 신체 질환을 치료하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판독 능력으로 영혼체나 생리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로 이 영혼과 정신의 분야에서 지구인들은 가장 큰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인들이 맡은 대부분의 책무는 육체와 관련된 분야입니다. 이는 심각한 잘못입니다. 정신이 가난하면 외모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육체는 닳아 없어지고 언젠가는 죽습니다. 반면에 정신은 성기체의 일부로 결코 죽지 않아요. 오히려 정신을 고양시킬수록 육체의 부담은 덜어지고 윤회의 과정이 더 빠르게 진행됩니다.
우리는 당신을 성기체 상태로 티아우바에 데려올 수도 있었지만, 대신 육체 상태로 데려왔어요. 거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벌써 그 이유를 이해하는군요. 그래서 우리도 기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임무에 기꺼이 협조해 줘서 감사합니다.”
타오라가 말을 멈췄다. 생각에 잠긴 듯했다. 광채가 나는 두 눈은 내게 고정돼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행복감에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그들 7인의 오로라가 점차 변해갔다. 몇 군데는 더욱 선명해졌고, 다른 곳에서는 좀 더 부드러워졌다. 그러면서 윤곽은 안개처럼 희미해 졌다.
안개가 퍼지면서 황금빛과 분홍빛이 강해졌고, 7인의 형태가 점차 흐릿해졌다. 어깨에서 타오의 손길이 느껴졌다.
“미셸, 당신은 꿈꾸는 게 아니에요. 모두 현실입니다 그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녀는 내 어깨를 세게 꼬집었다. 꼬집힌 자국이 몇 주 동안 보일 정도였다.
“타오, 왜 꼬집었어요? 당신이 그런 폭력을 휘두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미안해요, 미셸. 하지만 나는 가끔 이상한 수단을 쓰기도 합니다. 타오라는 늘 이런 식으로 사라져요. 나타날 때도 그런 식인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당신이 꿈으로 착각할 수도 있어요. 내 임무는 당신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에요.”
그 말과 함께 타오는 내 몸을 돌렸고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우리는 왔던 길을 따라 그곳을 떠났다.
첫댓글 지난편들에 이어 너무도 흥미진진한 글 단숨에 잘 읽었습니다. 이글을 쓰신 미셸이란분, 받아쓴글이라고는 하지만 제가 전공한 전자장에 관한 이야기만으로도 볼때
전자장뿐만 아니라, 물리학, 우주론등 모두 알고 쓴글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중에 더욱 흥미로웠던 몃가지 .
1. 반자력 반중력에 입각한 수소발동기차, 허리띠 타라/리티올락 공중부양기
2. 혈액이나 인체 몸에서 나오는 고유진동
3. 물리학에서 내놓은 4 Forces of Nature (Strong, Electromagnetic, Weak, and Weak, Gravitational)
들과 비슷한듯 하면서도 차원이 또 다른 4 Forces (of Creation?) - Astromic, Overcosmic, Overastromic, and Overself
즐거웠습니다!
우주의 1/9의 원리, 지구가 그중에 가장 낮은 1단계, 1/9의 원리를 인간본질, 또 대아까지 적용했다는 말 흥미롭습니다.
스크랩 해 갑니다 d^^b
그런데.....무한사랑님 대체 어디서 무슨공부를 하시는분이세요? 엄청 궁금합니다ㅎ
혹시 지구거주 티아우바인??ㅋㅎ
아주 흥미진진한 내용이네요.
지난번 힉스입자 이야기에 이어서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