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글을 읽다 보면 걸리는 게 있는데 성령 부분이야. 예수의 영을 성령이라고 혼동하는데 그렇지 않아. 신학에서는 삼위의 위격이 달라. 자네는 신학 공부를 할 필요가 있어.”
나는 그의 말이 확신에서 나온 것이고 선의라는 걸 알고 있었다. 동시에 법관 생활을 오래 한 그는 스스로 옭아맨 이론과 관념의 틀에 묶여있는 것 같기도 했다. 먼지 같은 인간과 신학에 의해 파악되는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이 아닐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일단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알겠어. 더 공부해 볼께. 나는 우기지 않을래.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 ”
나는 어떻게 하면 내 입장을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속으로 궁리하다가 이런 비유가 떠올라 말해주었다.
“벌판 한 가운데 산이 있어. 산 속에 있을 때는 산이 보이지 않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면 산의 윤곽이 보이지 않을까. 산에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하면 보는 위치에 따라 산의 모습이 다 다를 거야. 그리고 산 밑에 가서 볼 때와 중턱에 있을 때 그리고 정상에 올랐을 때 산의 광경이 다르지. 그때그때 보는 광경은 달라도 산은 하나이듯 하나님도 그렇지 않을까. 나 같은 어린아이가 보는 하나님과 자네같이 신학을 공부하고 성숙한 경지에서 보는 하나님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
그의 의식 중심에는 교리와 신학적 지식이 등뼈같이 주체성 같이 박혀 있는 것 같았다. 법원장을 했던 그에게는 법이론도 그를 고정시키고 있는 닻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이론을 담은 법서는 국회에서 법률이 바뀌면 휴지 조각이 되어 버렸다. 벽에 어른거리는 신의 그림자를 보고 추론하는 신학도 비슷한 건 아닐까. 고매한 신학 서적을 읽을 수 없는 무식한 할머니의 절실한 신앙은 무엇일까.
나는 항상 사고의 여백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성경의 한 귀절을 놓고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고민하고 연구한 게 신학이기도 하다. 판단을 보류하고 다른 견해들을 존중하려고 애쓴다.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들이 다양하다. 광복회를 이끌어가는 이종찬 회장은 내가 존경하는 고교 선배이고 오랫동안 만남을 가져온 분이다. 조선의 명문가 집안이고 독립운동에 대한 헌신도 역사에 남을 만하다. 그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일제시대 우리 국적이 일본이었다는 뉴라이트들이 이 사회에 포진하고 있어요. 우리는 1919년 상해 임시정부로 나라가 건국됐어요. 국적이 일본이었던 적이 없어요.”
우리의 정신적 정체성과 국가의 정통성이 상해임시정부에 있다는 말이었다. 이해가 간다. 그러나 당시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등을 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여권이 아니라 일본 여권이었다. 국제적인 승인을 받아야 국가로 인정되는데 그때 상해 임시정부는 그렇지 못했다. 당시 동아일보가 손기정 선수 사진 속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꾸었다가 곤혹을 당했다. 우리 민족의 꿈과 현실은 달랐던 게 아닐까.
국회방송에서 한 역사학자가 국회의원에게 호되게 당하는 장면을 봤다. 그 학자는 조선 말과 일제 초기 일본으로 쌀을 수출했다고 강연한 게 꼬투리를 잡힌 것 같았다.
“우리가 일본에 쌀을 수탈을 당했는데 그걸 수출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뭡니까?” 국회의원이 독기서린 얼굴로 물었다. 그 학자를 친일파로 몰아붙이려는 의도 같았다.
“조선 말이나 일제 초에는 형성되는 시장가격에 따라 조선에서 일본으로 쌀의 수출이 이루어졌습니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라니? 차라리 입을 다무세요.”
국회의원은 목소리를 높이며 길길이 뛰었다. 나는 그 국회의원이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나 의문이었다. 나는 일제시대의 역사에 대해 십년 정도 깊게 공부한 적이 있다. 농업학자들이 쓴 여러 논문들을 보면 조선 말과 일제 초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일본 농민들이 오사카 등에 도시공장 노동자로 유입되면서 식량문제가 대두됐다.
일본 국내의 쌀값이 폭등하자 일본은 조선에서 쌀을 수입해 갔다. 조선 말 고창의 김성수 집안은 일본에 쌀과 콩을 수출해서 부자가 된 집안이라고 논문들에는 기록되어 있었다. 국회의원의 인식과는 다른 수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안되는 것일까. 자기 생각과 다르면 용서가 안되는 사회인 것 같다.
모든 분야에서 우상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에서는 이념이 우상이고 역사에서는 민족주의가 우상이다. 한 가지 기준만 내세우고 거기에 맞지 않는 모든 것들에 칼질을 가한다. 우상들이 나타나 횡포를 부리고 있다.
어제는 ‘대통령의 품위와 자존심’이라는 제목에 대해 나의 개인 블로그에 의견을 올려봤다. 나는 좌우의 이념이 아니라 그때그때 내 속의 성령과 양심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그게 나의 가치관이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댓글들을 보기도 했다. 각자 다름을 인정하고 거짓 우상들과는 싸우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