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3]
2019. 06. 13(목)
영화 ‘안녕, 헤이즐’을 보고
‘안녕, 헤이즐’을 보면서 오랜만에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중3 때 나털리 우드가 주연한
‘초원의 빛’을 극장에서 숨어보다 울었던 기억 이후, 이렇게 아름다우면서도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본적이 까마득합니다. 2014년 개봉됐는데 뒤늦게 보석 같은 영화를
만났습니다. 원작은 존 그린의 소설 ‘the fault in our stars’
남녀가 합쳐 폐는 하나 반, 다리는 세 개...
영화는 설정부터 부조화로 시작됩니다.
골육종으로 의족을 찬 거스, 폐암으로 코에 호흡기를 달고 산소통을 끌고 다니는 헤이즐.
말기암을 투병하고 있는 10대의 젊은 남녀가 담담하게 펼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입니다.
짊어지기에 벅찬 죽음이란 문제를 당당하게 끌어안고 죽음과 사랑을 동시에 완성해 가는
모습이 애련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축제의 삶을 준비할 나이에 죽음을 기억하는 어린
남녀의 애틋한 시선이 6월의 하늘처럼 눈부시더군요.
크게 예쁘지도 않고 잘 생겨 보이지 않은 배우들이 후반 들며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이 영화가 갖는 힘입니다.
여행 가방처럼 산소통을 끌고 다니는 귀엽고 씩씩한 아가씨. 걸음걸이가 경쾌한 매력의
의족청년. 이들이 꾸며나가는 담대한 시랑이야기는 허구의 영화 속으로 몰입시켜 버립니다.
뉴욕타임스가 “그들의 삶은 짧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 모은 한 장의 사진”이라고 격찬했죠.
둘은 시한부 삶을 사는 젊은이들 모임에서 만납니다. 거스는 헤이즐에게 친밀감을
느끼지만, 상처를 주기 싫어 거스를 밀어내려합니다.
그러던 헤이즐이 마음을 연 것은 거스의 집 현관에 걸린 무지개 액자를 보면서입니다.
“무지개를 보려면, 내리는 비를 이겨라.”
거스는 헤이즐을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와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네덜란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둘이 가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행입니다.
이후 거스는 비로소 자신의 온몸에 암이 퍼진 것을 털어놓습니다. 죽는 것보다 잊어지는 게 더 두렵다는 것까지.
짧은 생을 살면서 무한대를 꿈꾼 이들이 죽음을 기억하며 나누는 대사마다
하늘의 별로 반짝입니다. 헤이즐이 전하는 위로의 말도 아름답습니다.
“거스, 넌 모든 사람들로부터 기억되길 원해? 아니야. 나를 가졌고 부모님을 가졌고
이 세상을 가졌어. 이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작지 않아. 난 네가 이것들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들은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듯 준비합니다. 마치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거스의 요청으로
교회에서 장례 리허설이 열립니다. 그녀가 추도사를 할 차례죠. 거스는 늘 하던 대로 피지
않는 담배를 꼬나물고, 헤이즐의 추도사를 듣습니다..
“거스는 나의 삶 속에 순식간에 들어왔어. 그리고 한편의 서사시를 만들어냈지. 하지만
우리들 이야기는 곧 사라지겠지. 수학 얘기 하나 할게. ‘0과1’사이에는 무한한 숫자들이
있어. 0.1 0.01, 0.0011... ‘0과2’ 사이에는 더 ‘큰’ 무한대의 숫자가 존재해.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 보다 더 크다는 걸 작가 하우텐이 알려 주었지.
하느님, 제가 가진 무한대의 날보다 더 많은 날을 원합니다. 거스에게도 더 많은 숫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내 사랑 거스, 우리의 작은 무한대에 대해 네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말로 다할 수 없어. 그것이 우리의 우주였어. 오래 사랑하진 못했지만 깊게 사랑했어.
너는 유한한 날 속에서 내게 영원을 주었어. 영원히 고마워할 거야. 정말 사랑해 거스.“
얼마 후 진짜 죽음이 거스를 덮치고... 그녀의 고통은 순간순간 커집니다.
헤이즐은 그동안 수없이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도 통증의 정도를 묻는 구급대원에게 늘
열 손가락 중 아홉만 펴 보였습니다. 왠지 10은 아껴두고 싶었던 거지요. 그런데 지금
그 때가 온 것입니다. 열손가락을 다 펴도 모자랄 통증이 온몸을 덮칩니다.
거스의 장례식 날.
헤이즐이 그가 상징적으로 물고 다닌 담배 한 갑을 조화 속에 묻고, 추도사 첫 구절인
“무지개를 보려한다면 내리는 비를 이겨내야 한다”를 말하다 목이 멥니다.
“장례식은 죽은 사람의 자리가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의 자리”라며 자리를 떠납니다.
그때, 헤이즐이 펜인 작가 하우텐이 나타나 편지를 건네주며 말합니다. 암으로 눈을
잃은 한 청년으로부터 추도사 초고를 받게 된 이야기를...
“선생님은 사람은 별로지만 글 솜씨는 훌륭하고, 난 사람은 괜찮은데 글 솜씨가
엉망이죠. 둘이 합치면 멋진 글이 나올 것 같지 않을까요?”
차 안에서 거스가 남긴 글을 읽습니다.
마음에 파편처럼 박히는 편지의 끝 구절...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을지 피할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누구로부터 받을지는
고를 수 있어. 난 내 선택이 아주 훌륭했다고 생각해. 너도 내 선택이 맘에 들었으면
좋겠어. okay hazel grace?”
헤이즐이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답합니다. “okay(언제나)!”
*소설가 /이관순
첫댓글 아~감동적이겠군요
글 흐름도 쉽게, 섬세하게
감상 포인트를 잘 짚어주시니
영화를 꼭 보고싶게 만드는
영화평입니다
기회되면 꼭 봐야 겠어요^^
버티며 견디며 의지 하며
구구 절절한 사연속에
사랑이 흐릅니다
하여~
아프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고
슬프지 않으면 이별이 아니라했나 봅니다
영화 감상평이 기가 막히게
훌륭하십니다
다만 영화방에서 읽어 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살짝 내려 놓습니다~^^
저또한 초원의빛 보았지요
중학교시절 본 영화라
기억이 납니다
이리 아름다운 영화가 있었네요
감사요
영화방에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