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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앞 풍경... 이 산 위에서 해가 돋고 달이 뜨고 별이 반짝입니다. 서면 낮은 산, 앉으면 담장 밖 100m. 동북으로 난 고갯길 따라 아직도 고요한 그린벨트.. 낮에는 두견이 밤에는 소쩍이, 낮에는 물까치 밤에는 호랑지빠귀를 들으며 난 이 마을에서 십 사년 째 살고 있다.
칠월
고춧잎 따다가 풋고추도 땄다. 호박잎 담다가 애호박도 담는다.
한 떼의 소낙비가 쌍무지갤 끌고 언덕을 오른다.
먼 잿빛 추억에 끌리어 내가 차암 곱다 바라보는데
그 눈길로 뻐꾹새 한 마리 울며 난다.
무슨 일인지 뒷산에선 한바탕 뻐꾸기타령 불고
문득 산아래 마을이 섬처럼 고즈넉하다.
너와 나 은성했던 날개들도
마을을 지나 표표히 언덕을 넘고 마침내
모든 일상의 색이 적이나 논 가운데 돌아온
쇠백로처럼 선연해졌다. 밭두렁 에돌아오는 걸음마다 산개구리들이 얼룩덜룩 웅덩이를 파고들고 섬서구 따위가 달아 바짓부리에 차인다. 쓸데없이 하루살이떼는 마을귀까지 따라왔다.
삶이란 종종 귀갓길의 저녁달 같다고, 언제는 쓸쓸하고 언제는 또 달금하다며 네게 이르고 싶었다.
오는 길에 공연히 들깻잎을 따다 모싯잎에 대본다.
고새 잎새 뒤에 숨어 퍼들 놀래는
큰줄흰나비도 한 쌍 꼬나보았다.
앞 논 둔덕에 까칠하게 뾰족이는 것들은 이 마을 아르바이트 상품 모싯잎.. 요새는 메주마을로 특화하려는 여러 관광사업을 위해 꽃단장이 한창이더니 연방죽에 다리를 놓고, 특용 콩작물 시범재배도 하며 복작인다. 내 지난 10 여년의 고요가 깨어지고 있는 순간들...
거실에서 바라다보이는 건너편은 이번에 크게 짓고 이사 온 도예가 후배의 '광주도예문화센터'와 '영어마을'. 영어마을은 이 압촌의 정서와는 실로 무관한 조금 이상한 '마을'이다.
오월과 교육과 문학과 미술을 돌아나와 풀과 사귀면서 은신처로서 내심 자랑스러웠던 내 작은 집의 작년 겨울이다. 난 백사십 평의 이 작은 공간에서 십 수년 들꽃을 배웠다. 심고 거두고 먹는 공간으로서 난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쩌기 쪼끄만 개. 집 짓고 일년 뒤에 굴러 온 찰수(察守)다. '찰수'는 내 개에 대한 정서가 잘 반영된 이름으로서, 중학교 때 내 이름의 '지킬 수'에 '살필 찰' 자를 앞세워 지은 개 이름..
아내는 어디서 '건강 지압길' 을 걷고 돌아와 우리집에도 하나 있었으면 했다. 말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나는 당장 마당귀에 흩어졌던 돌들을 모으고 나가서 시멘트와 쇠손을 사왔다.
아침노을에서 초저녁별까지 한여름의 땡볕을 짊어진 사나흘이었다. 이 집은 내 나이 마흔을 기념하며 아내에게 준 선물이었으니 나로선 그 주인의 뜻을 잘 살펴 일구월심 따를 따름이다.
대문 밖으로 뽑은 저 고개는 흰눈이 소복 쌓이면 나를 많이 설레게한다. 두 아이와 아내와 강아지 함께 고개를 넘으면 천지가 하얀 설원이다. 눈싸움, 눈사람, 갈대 키재기 그리고 돌아올 땐 마른 강아지풀을 뽑아 질화병에 꽂았다.
동그란 가운데의 흰 돌들은 버린 어항에서 얻은 것이고 그 둘레엔 내 그리도 외로움을 탔던 복직 1년, 우수영 시절, 해거름이면 홀로 바닷가를 거닐며 주머니에 담던 그 암갈색의 조약돌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오륙학년이던 그 무렵에 동네방네 농구붐이 일었고 보채지만 않았지 아들은 매일매일 작은 골대를 갖고 싶어했다. (급기야 아들은 철사가닥을 서넛 구부려 림을 만들더니 방에서 혼자 공을 던졌다. 던질 때마다 쫓아가서 꺾인 림을 다시 일으켜세우는 짓을 반복하면서...) 어느 날 마트의 벽걸이용 골대 앞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는 모습이 가엾어 나는 그만 학교에서 내다버린 저 거대한 농구골대 하나를 업어오고야 말았다.
용달 운송비에 1제곱미터의 시멘트 기초비에 세 인부의 품삯, 설치하다 실수로 무너진 담장 보수비 등 값비싼 댓가를 치른 것에 비해 그러나 아들은 너무도 빨리 성장해버렸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늘어선 쉰 세개의 멧돌을 건널 땐 차마 살짝살짝 걷는다. 멧돌이 닳아 그냥 맨돌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앞마당을 가슴에 깔고 밤낮으로 시를 썼다.
70년대, '중 3 생활' 이라는 학원사에서 나오는 잡지에 '나의 찰수'를 기고하여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죽은 개(찰수)와의 헤어짐을 가슴 아프게 그린 이야기였다. 이놈과는 그 아픔을 재현하지 않기로 하여 늘 적당한 눈높이의 쓰다듬기로 산다.
초인종은 곧 내가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길의 끝에 붙어있다. //
...... 바로 요놈! 마루!! ...... 굴러 온 돌이 굳은 돌을 제치고 이 집마당의 왕자가 된 놈. 당연히 십 사년을 살아 온 찰수가 자유의 몸이고 이 녀석은 아이들의 성원에 힘입어 들어오긴 했으나 곧 묶여지내야 할 처지인데, 입장이 바뀌어버린 까닭이 있다. 찰수는 이놈을 결코 가만두지 않지만 이놈은 될수록 피해다닐 줄 알기 때문이다.
영리하고 이렇게 내게 지금은 기죽은 듯 이쁜 표정을 짓지만 어제 20만원 짜리 온돌마루를 '갈가리' 찢어 논 대죄를 지은 놈이다. 경험 없는 젊은 배달꾼이 개들이 있는 집 담 너머로 이 비싼 물건을 던져넣은 것이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찰수는 한번도 저지른 적이 없는 이 거사를 이놈은 벌써 몇번 째 획책하고 말았던 것.
덩치는 이래도, 이제 겨우 어미 뱃속에서 나온 지 1년 짜리가 허긴 뭘 알까... 묶었다.
이 늙은 개도 전과 10범 쯤 된다. 지 성질 개 못 준다더니... ^^ 짐승들에는 가혹하여 매년 꽃뱀을 평균 5 마리 정도 잡았으니 평생 70 마리? 그래도 그것은 함부로 남의 집에 쳐들어온 천지분간 못하는 어리석은 뱀의 운명이라 치더라도 고양이 3 마리에 닭 30 마리, 생쥐 어미쥐 새끼쥐 포함 20 마리, 두더지 2 마리, 소쩍새 1 마리, 물까치 2 마리, 개구리 50 마리, 벌 100 마리, 나비 굼벵이 박각시 풍뎅이 거저리 집게벌레 사슴벌레 딱따기 콩중이 사마귀 방아깨비 섬서구...
(이놈 죽어서 좋은 데 가긴 폴쎄 틀렸어요.. 동안 먼저 간 놈들이 저승에서 벌떼처럼 달겨들며 따라다녀싸면 제깟 게 몰래 천당에 들었다고혀서 거기가 온전히 천당이 되겄어요?)
그래서 이렇게 둘 다 처량히 묶이고 말았지요... 자업자득!!
한나 더. 이놈이 그래도 덩치 값 한다고 어느 날 늙은 진돗개 찰수와 감히 일전을 벌였는데 몸을 던져 엉덩이로 깔고 앉은 그 순간 찰수가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오도독" 깨물고 말았지요... 그 후 오른쪽 앞 발에 심한 부상을 입고 여름내 절뚝거리더니 지금은 비가 올 때나 날이 추워지면 가끔 다리 한짝씩을 들고 다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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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릴 적 동네어귀에서 "차알~수' 이렇게 부르고 다니면 동네 귀한 아줌마들이 야아, 똥개 이름 한번 멋지다야~ 했댔지요.. 무슨 '찰스 황태자' 이런 '차알스' 인줄 알았나봐요. 매리 워리 쫑 하던 때니 차알스는 대단했지요^^ 나중에 알고나서는 "흥, 밥값하란 이름이었구만그래" 하며 빙긋거렸답니다.
드뎌 사부님댁을 공개하셨군요 참 애정이 많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찰수~~너무 좋은 이름인데요 ^^ 불쌍한 마루 .. 온돌마루 물어뜯어 "마루"가 되었나봐요?
아~ 감동적인 이야기 전개에 십수년을 그 곳에서 함께 지낸듯한 좋은 기분을 느꼈어요..'찰수'는 야무지고 '마루'는 정다워요...놀러갈께요.
으흐흐흐 좋다. 오메 요로콤 좋은집 그림같은 집에서 사시니 글도 시도 그림도 척척 이죠 나같으면 밥 안묵어도 배부르것네요. 어쩜 ...멋져요. 감사하무니다.
멋스럽고 보기에도 좋습니다. 형님 손이 많이 간 집이겠기에 더욱^^ 조경이며, 진돗개며, 돌멩이 하나까지...그러고보니 모든것이 형님을 닮은것 같습니다.그리여^^집도, 정원에 서있는 찰수도, 앞산도...
내가 동안 대문을 열어놓지 않았던 건(초기 화순팀은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지요), 언젠가 내 좋아하는 사람들과 놀다 소낙비를 피해 무지개로 달려갈 원두막 하나 있으면 좋겠다 아직도 꿈꾸기 떄문이에요.. 내 약도 침도 뜸도 곶감도 그림도 뭣도 널어놨다 이바지도 해주면 담에 또 오겄지 기다리며 말이죠.. 지금의 집은 거실이 좁아 밤에 단골손님 한나 보고 앉은 빠탠더 아가씨나 같아서리..^^ 한 식구 네 마리 포도시 들락거리는 비둘기집이라 함이..
천덕꾸러기로 내다 놓은 평상을 어찌 치울까 하다가 해와 달이 맨 처음 닿는 곳 언덕위 홍매화 아래로 초가 원두막을 올렸어요..지게차로 떠담아 갈까요?? 서넛이 차나 포도시 마실 수 있는...
읽어도 읽어도 재미있네요. 새삼스럽지만 참말로 글을 구성지게 잘 쓸까? 저 친구들도 들꽃 알겠지 시 잘 쓰겠지 서당개삼년이면..... 이쁘기도 하오. 참죽나무위에 올라가 다시 보았습니다.
종군이랑 선생님댁 쳐들어 가자 했는데.. 정원이 오밀조밀한게 예쁘게 꾸며져 있네요..작은 돌맹이에서도 선생님 손길이 느켜지구요..여름밤에 바베큐 파티해도 좋을거 같애요..초대좀 해주세요~^^
정원도 들의 꽃들이 들어오니 도로 들판이 됩니다. 세력이 좋은 놈과 약한 놈이 싸우면 말려주고, '잡초'가 기승을 부리는 걸 일년 내 잡아야 하며, 갈아서 먹으면 그 자리를 떼워야 하고, 그냥 놔두면 땅 속이 온통 뿌리들로 얼크러지고, 씨가 떨어지기 전에 갈무리해야 하니 백평짜리 하나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 자연이더군요... 찰수가 저지른 일화들은 '찰수의 일생' 책이라도 내줄만치 흥미진진한 것들이랍니다.^^ (예, 닭 30 마리 초토화 사건 : 이것은 2000년에 있었던 닭장 난입 강도견 살계사건으로 연 2회에 걸쳐 벌어졌는데 그 많은 주검을 넘고 넘어 오직 한 마리가 살아남은 아, 소설같고 기적같고 전설적인 닭장드라마죠..)
할수없이..고백합니다..몇 해전 이웃에서 허스키를 분양해 주었어요..성질이 '네오'같지도 않고 두 녀석이 서로 외롭지 않겠다 싶어 함께 키웠는데요..허스키와 풍산개의 특성으로 사냥기술이 탁월했어요..말썽꾸러기 땅 속 두더지를 어찌나 잘 잡는지..어느날 부터 닭사냥에 들어갔지요..친정엄마가 오신날..포동포동 암닭을 잡아 물고와서 "고놈 마음쓰는 거이 가상도 하다"했는디..어느날 탈출하여 닭장의 참사가 벌어졌어요..가족회의 끝에 이놈을 주인에게 다시 돌려보냈답니다.. '네오'는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사흘도 참는디..닭장에서 놀기도 하던디..이 녀석은 제똥 뭉개놓기로 아침마다 제가 구역질을 해야했어요..'하치'야 미안하다
난로가에 군고구마 먹으며 얘기 듣는것 같아요 ㅎㅎ 잼
ㅋㅋㅋ 개들의 스토리도 재미나네요 어릴적의 우리 백구는 따스한 추억인데...친정에 있는 "장미"란 개는 아주 자손이 번성한 늙은 개지요 원래 광주에서 언니네가 기르던 것인데 아파트로 가면서 시골로 보냈어요 늙어 죽을때까지 조용히 여생을 보낼수있도록 돌봐주고있지요
오늘은 귀갓길의 저녁달처럼 삶이 쓸쓸했는데 싸부님의 집구경에 달큼한 삶으로 변했어요... 나도 마흔인데 아직도 임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비우면서 살기 때문일까요? 여름날엔 지압돌길에서 책 한 권 들고 왔다리 갔다리 하고 싶구요.. 운동께나 좋아하는 저랑 세 아들이랑 비싼 농구대 제대로 활용도 가능할 것 같은디 어찌 제 임대 인생에 어찌 동참하실 생각은 없으슈? 다만 현재의 임대아파트가가 아직 5천이 조금 넘는다는 거 맹심하시구요. 임대 결정하셔야되요....
솔바람이 집을 지으면 집이 얼매나 튼튼할까이.. 곧 포크레인 들어다 파게 될거요.. 그나저나 27일 날 한번 놀러오지...
너무 예쁜 집이네요^^ 멍돌이들의 꺼벙한 표정들이 너무 귀여워요^^ 선생님글 읽고 있으면 오래도록 입가에 웃음이 번지네요! 내년 봄꽃 필때는 선생님댁 찾아 뵐께요.널찍한 평상하나 맞춰 갈까요?^^....그런데 저 멍돌이 녀석들이 한꺼번에 짖어 대면 다리가 후들후들~ 하겠는데요...>.<
그림이 그럴듯허지 쪼끄만 해.
그동안 선생님의 집구경 하느라 계속 들락날락 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 천천히 돌아보질 못했어요. 부러워라, 하고 시샘하는 중! 엊그제 독서동아리에서 '버킷리스트'라는 영화 감상을 하려다보니 그 이야기속에 하고 싶은 일 10가지를 기록한 얘기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그래 '꿈이 있는 자, 꿈을 이룬다더라' 하고 10가지를 적어보았답니다. 그곳에 자연속에 사는 집짓기도 기록했어요. 근데 강물님과 진수샘 댁을 보니 자꾸 눈높이가 높아져서 큰일이네요. 가랭이 찢어지겠어유^^
어허, 엄한 부인께서 '가랭이'라니요! ㅋ 자연 속에 집을 짓는 일은 큰 도전입니다. 하지만 꿈을 꾸면 곧 이루어질 거예요. 생각만 하다 지치면 이영 누릴 수 없어요. 쉿, 남편을 꿈꾸게 하면 더 쉬워요^^
사모님께서 마다하지 않고 이렇게 오래 사시는 걸 보면 잘 해 드리나 봅니다. 잔디마당을 저렇게 가꾸려면 정말 어려울테니까요. 두분 참 대단하시네요.
네, 처음 3년은 저도 '계절의 변화'를 몹시 타는 바람에 조금 쓸쓸하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담장이 낮아 '도선생'이 들까 염려도 했구요.. 한번 도선생이 들었지만 별로 돈 될 것이 없어서인지 이젠 안 들어옵니다. 제 '쓸쓸함'은 곧 '즐기는' 단계로 접어들었구요... 인기 없는 말이지만, 이상하게 저희들은 부부싸움을 (거의 한번도) 안하고 살았습니다. 교육장님, 나중에 우리끼리 혹 조촐하고 재밌는 '축제?' 같은 거 하게되면 꼭 모시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