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간 김에 영미씨한테 전화했다.
어젠 없더니 오늘은 받는다.
근데 곧 나갈 건가 부다.
그래도 차 마시러 오란다.
나도 시간 넉넉지 않고.. 해서
나오는 길에 밖에서 점심이나 먹자고..
도서관 앞에서 1시에 만나기로 했다.
광희씨하고 함께 나왔다.
남편 출장가는 데 같이 간단다.
아는 사람이 증평에 있어 사업차 간다고..
잘 됐다. 안그래도 광희씨한텐 인사도
못했는데.. 작년 문상 왔다간 다음에..
쌈 곁들인 우렁된장찌개 먹었다.
사업은 뭐 그럭저럭.. 되는가 보다.
쉽지는 않겠지.. 월급제 회사 다니다 그만두고
생명보험 회사로 옮긴 지, 한 일년 되나?
영미씨는 여전히 씩씩하게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것 같고. 어제도 복지관에서
하는 무슨 프로그램에 갔다고 하고.. 또 무료로
가르치는 요리도 신청할려고 한단다.
요가는 일주일에 두 번만 간대고.
영미씨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온 사람이다.
중증 근무력증이라고, 근육에 점점 힘이 빠지는..
그래서 결국엔 꼼짝할 수 없게 되는..
여러 가지 치료를 해보다가 수술을 하긴 했는데,
이후로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온다.
면역력이 떨어져 있어 늘 조심해야 하는데,
의욕적이라 웬만해선 가만히 있지 못할 테니..
그래도 덜 욕심부리고 몸관리하는 데 마음쓰고 있으니..
점심 먹고 헤어져, 도서관까지 슬슬 걸어왔다.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이제 거의 그쳤다.
온다고 하던 신선생은 일거리 없어 못 온단다.
....
저녁.. 해질 무렵에 산책하러 나갔다.
일 받고 나서 며칠 땡땡이치는 바람에 날짜만 가버려
오늘은 맘먹고 하루종일 일하기로 했다. 요가원도 빼먹고..
도서관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공원길이다.
오른쪽 길로 해서 설렁설렁 한 바퀴 돌았다.
비온 뒤라 초록물을 머금은 나무와 풀은 더 파릇하다.
꽃들도 반질반질 제 색깔을 한층 뽐내고 있다.
과천.. 참 좋은 동네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자연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도시라고는 해도, 정말
필요한 공간이다. 이렇게라도..
런던에서 길을 걷다 보면 쉽게 만나는 크고작은 공원들.
숲이 우거진.. 가장 부러웠다(오래된 낡은 건물과 함께).
오랫동안 공들인 결과겠지. 건물과 사람으로 꽉 막힌
도시가 그래도 숨쉴 수 있는 공간인데..
크기가, 넓이가 문제가 아닐 것이다.
비어 있는 공간을 그대로 두지 못하는 거..
빈 게 그냥 빈 게 아니지..
중학생 아이들 공놀이하고 있다.
오늘은 비온 뒤고 좀 쌀쌀해서 사람들 별로 없지만
유모차 탄 갓난아이부터 게이트볼 경기하는 노인들까지
함께하는 공간이다. 따로 있어도 또 같이..
떡 한조각 먹고 들어가서 마저 해야지.
....
한밤, 버스에서 내려 정류장 옆에 있는 약국에 들어갔다.
지난주부터 날이, 가을이 왔나 싶게 쌀쌀하더니
몸이 좀 표를 낸다. 며칠 잠도 모자라고 해서 그런지
입술에 물집이 잡혔다. 퍼지기 전에 초기에 잡아야지.
바이라미드(연고) 달라고 했다. 약사가 주면서 하는 말,
임신중엔 바르지 말란다. 딴 연고는 안 그런데 이 연고는
그렇다네? 태아에게 영향을 준단다.
딴 거보다 잘 들어 집에 연고 놔두고 일부러 사는 건데..
그만큼 독하다는 건가..
되도록 바르지 말아야겠다.
집으로 걸어올라오는 길..
참 오랫동안 이 언덕길로 다니는구나..
25년이 넘도록, 이렇게 똑같은 길로 똑같은 집으로..
지겹기도 하고 탈출하고 싶어했는데, 참 익숙해진다는 거..
암 생각 없이 걸어도 저절로, 발이 그냥 데려다주니..
가게 앞에 내놓은 과일이 보인다.
몇 걸음 지나치다 도로 돌아갔다.
토마토랑 비싼 귤도 몇 개 샀다.
약값 드는 거보다 그래도 싸겠지..
(약은 안 먹은 지 오래되지만)
중얼거리며..
첫댓글 푸렁콩님, 오랜만에 들어오니 읽을 거리가 많이 밀려 있네요. 잘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