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를 읽고서...........
허황된 꿈을 믿고 걸어간다면 그 꿈은 허황된 꿈이 아니라 진실이 된다.
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 최정수 옮김 출판 문학동네 펴냄 | 2001.12.01 발간
209741071 이벤트연출과
2학년 B반 유혜리
난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읽은 지 오래되었던 11분, 순례자, 악마와 미스프랭 등 연금술사를 제외 한 것들만 기억이 날뿐,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연금술사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내가 빠져들지 못 한 걸까? 아님 먼저 읽어버린 그의 소설들이 너무 강해서 그런 것 일까? 연금술사, 순례자, 11분, 악마와 미스프랭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들 불안정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자아를 완벽히 찾는 내용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었다. 그리고 사람은 언제나 자면서 꿈을 꾼다. 하지만 그 꿈속에서 보았던 것들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 생각을 맨 처음 하게 되었다.
한 장 한 장, 그리고 그럴 때마다 변하는 산티아고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인간의 심리를, 위기에 처했을 때 마다 변하는 인간의 마음을 잘 기술해 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 똑같은 꿈의 반복, 그 꿈을 믿지 못했지만 그는 그 꿈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여기서 나는 한 번 더 이 책의 내용을 그리고 언어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들 떠올려 보았다. 그렇다. 그는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꿈에 빗대어 자아의 완성을 그려내고 있던 그. 그리고 모두가 욕하는 자신의 이상향을 찾는 길이 아니었을까? 그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상향, 내가 꿈꾸는 미래, 내가 꿈만 꾸는 미래. 만약 난 이 작가를 만나지 못했다면 항상 그 꿈만 꾸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가는 자신의 모든 책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방법을 여러 시각에 서 그려놓았다. 꿈에서 그리고 순례의 길에서도 마치 사람이 한 평생 한두 번쯤 겪을 수 있는 그런 시련들을 다른 시각 속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지 모른다. 만약 아무 노력 없이, 얻은 성과는 결국 자만으로 파멸로 이끌어버릴 것만 같은 생각을 남기게 한 것이 아닐까?
돌을 금으로 만들고, 납을 금으로 만들고, 바람을 불게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것, 마치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 책은 코엘료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것 같다는 느낌? 아니면 나도 산티아고처럼 꿈에서 본 것을 찾아가야한다는 허황된 꿈? 하지만 산티아고의 꿈은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보물로 바꿔서 서술해 놓았고, 그 꿈을 위해 달려가는 그를 보며, 그가 처한 시련이 내가 미래에서 겪을 수 있는 시련과 맞먹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허황된 꿈을 쫓기기도 하고, 그 꿈을 따라가곤 한다. 그러나 중간에 닥친 시련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려도 순간의 감정으로 인해 불안해했지만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여기서 그는 사랑도 얻었고 자신의 꿈에 답도 얻게 되었다. 나는 그를 보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꿈만 믿고 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이다.
무장 군인의 우두머리가 떠나기 전 자신이 꾸었던 꿈을 이야기 해준다. 2년 전 그 곳에서 스페인의 쓰러져가는 교회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물을 찾는 꿈을 여러번 찾는 꿈을 꾸었지만 그는 그걸 찾기 위해 스페인으로 가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때 산티아고는 웃으며 그 곳이 어딘지 알고 있는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 대목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산티아고가 이집트까지 오지 않았다면 그 보물의 행방을 알지 못했을 것이며, 사랑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여기서 내가 배운 것은 허황된 꿈이라도 자신이 믿고 그 길을 걸어간다면, 자신 곁에 숨어있던 보물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 스스로가 찾을 수도 있고, 나 아닌 타인에게서 그 보물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산티아고처럼 말이다. 꿈은 허황된 것이지만 그 허황된 꿈을 믿고 걸어간다면 그 꿈은 허황된 꿈이 아니라 진실이 된다. 마치 내가 그 일을 예전부터 하기로 마음먹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