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서 시인의 시집, 『광주의 푸가』(삶창). 2022년 1월 27일 간행.
시인 박관서
시인 박관서는 전라북도 정주시에서 태어나 호남선 목포역 등에서 30년 간 철도원 생활을 했다. 1996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시집 『철도원 일기』, 시노래 음반 『간이역 소식』, 『기차 아래 사랑법』을 간행하였다. 제7회 윤상원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작가회의 목포지부장과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광주의 꽃말
박관서
그대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망초꽃이라 전해다오
남도라 낮은 언덕길마다
서로 모여 하늘 우러르며
어굿어굿 돋아나 흔들리는
속삭임이라 전해다오
슬픔이 너무 길어
가늘어진 허리께
노란 덧니에 새하얀 얼굴들
얼척없이 비벼대며
스쳐 가는 바람에도
품을 내어주는
계란꽃이라 전해다오
항상 그대에게로만 가는
마음이 미어져 전할 말
없었노라고 전해다오
---------------------------언론 보도-----------------
박관서 시인 세 번째 시집 ‘광주의 푸가’ 출간
‘시의 마음’으로 노래하는 오월 광주
최명진 기자
1980년 5월 광주는 아직 우리에게 여지없이 되살아나지만 언젠가부터 ‘기념’을 통해 이야기되고 있다. 햇수로 40년이 넘은 사건이니 우리의 감각이나 문화가 얼마간 둔화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는 이들이 있다. 박관서 시인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한 박관서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광주의 푸가’(삶창刊)를 펴냈다.
이 한 권의 시집 전체가 광주를 노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잖은 작품들이 광주를 가리키고 있다.
‘짱짱하게’ 얼어붙은 전남도청 분수대를 보면서 시의 화자가 느낀 것은 도리어 뜨거움인데, 이는 얼어붙은 현실을 건너가고자 하는 마음의 다른 표현이다. 객관적 현실에 대한 감각과 인식이 시에서 무엇보다 우선이지만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의 마음’이 없다면 작품의 밀도와 긴장감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표제작인 ‘광주의 푸가’에서도 시인의 그러한 ‘시의 마음’이 읽힌다. 이 작품에서는 5월 광주의 학살자인 ‘독재자’가 죽고 나서 맑은 하늘이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기서 ‘시의 마음’은 그동안 ‘맑은 하늘’을 가리고 있던 존재가 단지 ‘독재자’뿐만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다. ‘독재자’가 살아 있는 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도 ‘독재자의 마음’을 받아들였다는 성찰을 통해 ‘맑은 하늘’이 등장하는 점은, 앞에서 말한 어떤 현실 극복 의지가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는 것을 증거한다.
박관서 시인에게 5월 광주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나 동시대의 사건과 뿌리 깊게 이어져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인 자신이 사는 지역의 정서를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시인의 역사 인식이 구체적 현실의 지반 위에서 세워졌음을 확인시켜준다.
강형철 시인은 “광주는 박관서에 이르러 오늘 우리 삶의 자리로 실감되며 확장되고 있다”며 “눈물과 한으로 저며진 시의 깃발로 ‘세상이라는 큰 역사(驛舍)’에 펄럭이고 있다”고 평했다.
한편, 박관서 시인은 정읍에서 태어나 호남선 목포역 등에서 30년째 철도원 생활을 하고 있다. 1996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시집으로는 ‘철도원 일기’와 ‘기차 아래 사랑법’이 있다.
- 출처: 광주매일신문 2022. 03.20(일) 18:39
시인 박관서의 다른 시집
기차 아래 사랑법 박관서 시집
푸른사상시선 43
박관서 지음 | 푸른사상 | 2014년 07월 30일 출간
박관서 시인의 시집 『기차 아래 사랑법』이 《푸른사상 시선 43》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첫시집 『철도원 일기』(2000년 간행) 발간 후 1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을 통해, 자신이 30년째 몸담고 있는 남녘의 선로변에서 이름 없이 명멸하는 존재들을 호명하고 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제 길을 오고가는 기차와 신호기 그리고 철도원과 역주변의 사물들을 불러들여, 그네들이 흘리는 땀과 눈물과 기쁨들을 사랑의 형식으로 드러냅니다. 삶이 부박해지고 땀에 대한 문학적 응시가 사라진 이 시대에 한 생애의 기간에 걸쳐 몸으로 써내려간 시편들이 저물녘에 번져가는 에밀레종의 무늬처럼 아득합니다.
시세계
박관서의 시가 철도를 둘러싸고 있는 강한 금속성의 세계 속에서의 노동과 일상을 정념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그 시세계가 독자들을 향해 따뜻하게 개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물활론(物活論)적 약동감으로 충만해 있는 것은, 이런 감정이입과 공감적 연대감이 세계 속에서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결코 잊을 수 없는 철도를 둘러싼 기억과 정념들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그의 시를 전반적으로 통독하고 나서 느끼게 되는 전체적인 인상은 어떤 부드러운 살과 몸을 부비고 있는 듯한 감각의 마찰력이 도드라진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강철의 세계’라는 말은 물론 모순이지만, 박관서의 시 속에서는 살과 살이 서로를 주무르고 뒤섞이는 일이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쉬지 앉고 반복되고 지속되고 변주되고 있다.
그렇게 ‘세계의 육체화’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그의 정념은 가 닿는 대상 모두를 부드럽고 풍부한 육체의 탄성으로 출렁거리게 만든다.
시를 쓰는 친구 녀석은
싱건지가, 송이눈 내리는 겨울밤
벌거벗은 여자의 희뭉한 살빛 같다고 했지만
아서라, 옴쓰라미 뜬눈으로 버틴
야근을 마치고 퇴근한 아침
쏟아지는 햇살을 커튼으로 가리고
허리께 올라타 노곤노곤한 어깨와 등허리
애써 주무르는 아내의 손목을 타고 스며드는
스리슬슬 두루뭉실 달착지근 수수무리
허랑무봉인 요 맛, 싱싱한 건지의 맛
몽유도원인지 아수라 지옥인지
여름인지 겨울인지를 따지지 않고
제 육신을 놀려 한세상을 익혀내는
알타리무 말간 몸에서 우러난
그 맛이더라 싱건지의 맛.
- 「싱건지」 전문
이 풍부한 육체의 찰진 탄성의 감각은 위에서 시화하고 있는 “싱건지”로부터 “선로”와 “기차” “신호기”를 거쳐 타인과 세계 모두에 이어진다. 그것을 세계에 대한 시인의 낙천성이라고 본다고 해서 틀린 지적은 아니겠지만, 그보다는 물과 소금과 제 몸을 뒤섞으면서 곰삭아가는 “싱건지”와 같은 시간의 온축(蘊蓄) 속에서 체화된 그의 경험적 인식의 개방성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일까? 고통에 대해서 말할 때조차, 그의 시선은 비통함으로 내려앉지 않고 “복수하듯이” 잔을 부딪치며 “거”해진다.
으슬으슬 몸이 춥다고
그의 아내가 문을 닫아주라 한다.
그가 섬에서 사온 삼치와 숭어회를
소주를 곁들여 맛있게들 먹는 자리에서
내 이번 달 월급 40만 원 받아왔지만
동지들 함께하니 괜찮지 괜찮아, 하지만
일근을 마치고 섬에서 오도가도 못해
집 생각 아이들 생각이 밀물 칠 때면
소주병 나발을 불며 바닷가에서
거지반 미쳐간다는 한통 노조원인 그의
은근슬쩍 젖어가는 눈시울을 걷어내며
어이, 몬테크리스토 백작. 거 관두고
술잔이나 받소. 자- 어이 받으란 마시.
말간 소주잔 주고받으며 큰 복수하듯이
사내들 서넛이 거한 술판에 젖어갈 때
이제 한 마흔이나 되었을까, 선창가
김공장을 다니는 그의 아내는 자꾸만
춥다며 문을 닫아주라 한다.
-「문」 전문
위의 시에서 “자꾸만 춥다”는 “그의 아내”의 내면적 황량함은 아마도 노조활동으로, 형편없는 근무조건과 회사의 탄압 때문에 변변한 수입도 올릴 수 없는 처량한 “한통 노조원”의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그 풍경을 둘러싸고 있는 발설되지 않은 노동자의 내면적이면서 동시에 경제적인 절망의 밀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것이 숱한 역사의 비극과 고통 속에서도 민중들이 살아왔던 비극적 낙천주의에 대한 한 구체적인 시적 표현이라고 생각해보았다. 어떠한 미래에 대한 전망 없이 비틀거리며 “복수하듯이” 잔을 부딪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은 고립되어 있지 않다,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이 일상에서의 ‘연대감’이야말로, 소외된 노동과 자본의 압력 속에서 인간이 자신의 본래성을 지키고 회복하는 부정할 수 없는 핵심적 근거였던 것이다.
박관서의 시에 재현되거나 묘사되고 있는 사람들은 목소리 큰 신념형이나 영웅형의 인물들이 아니다. “작업복”을 입으면 모두가 엇비슷해져서, 도무지가 철도원이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내면적 정념과 개성을 식별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김-모, 박-모” 하는 식으로 시인에게 호명되곤 하는, 그런 풀뿌리 민중들의 삶에 대한 정열과 노동과정에서 조우하게 되는 정념이 그의 시에는 과장되지 않게, 그러나 마치 잘 반죽된 효모처럼 부드럽게 발효되어 있다.
그는 이 시집의 제목을 “기차 아래 사랑법”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는 기관사도 아니고 승객도 아니다. 그는 그들의 뒤에서, 혹은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더 나은 세계를 향해 출발하는 기차를 배웅하고 증언하고 또 목격하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일원이다. 박관서를 통해서 비로소 저 차가운 금속성의 기차는 새로이 뜨거운 육체와 정념을 얻었다. 박관서의 시 속에서 기차는 과거처럼 직선적으로 앞을 향해 전진하는 역사의 은유 또는 추상이 아니다. 그의 시에서 기차는 선로와 신호기와 역사와 노동자와 승객들이 끝없이 교접하고 소통하는 ‘관계’의 총체이다. 이 관계에 천착하는 시적 태도 때문에 박관서의 시는 ‘정념의 철도’ 또는 ‘철도의 정념’이라는 것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진지한 감각과 사색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가 기차와 땀 흘리면서 사랑한 것의 결과로 출간한 이 시집을 읽다 보면, 독자들 역시 선로 변의 작은 잡초일지라도 실제로는 들끓는 정념 때문에, 바람에 이리저리 고개를 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시집 해설 부분, 이명원(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추천의 말
박관서 시인이 전호기를 들고 수신호를 보내는 간이역은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실망할지 모른다. 커피나 초콜릿 대신 기름통을 들고 기차 밑에 들어가 박박 기어야만 그 면모가 드러나는 예상치 못했던 간이역으로의 초대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 실망이 박관서 시인의 시편들이 꿈꾸는 장소로 들어가는 개찰구라면 어쩔 것인가. 우리가 예상하는 장소와는 다른 곳으로의 안내, 무릇 여행의 백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지금의 문학 지도 위에 바로 여기가 우리가 가볼 곳이라는 기름 묻은 목장갑으로 가리키는 간이역의 제시에는, 현실에서는 도착하기가 쉽지 않고 그렇다고 낭만을 매개로 도착해봐야 보이지 않는 특이한 장소의 실재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 점은 단순한 경험적 공간의 확장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으로서의 시적 세계의 창출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이것이 한국 현대시사에서 질투심을 일으킬 만한 박관서 시인만의 고유한 문학적 성취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조기조(시인)
박관서의 시는 흡사 몇 날 며칠을 걸려 달이고 달여 만든 맑고 검은 한약을 연상시킨다. 그의 시편들은 어느 것이나 가장 구체적인 일상의 ‘체험’, 그것도 시인 자신의 독특한 체험이 진득하게 녹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시들은, 지난 1970~80년대 시의 ‘노동’의 테제가 21세기의 밤중과 새벽과 대낮에도 여전히 생생한 리얼리티로 두 눈 번뜩이며 살아 있음을 새삼 환기시켜내는 힘을 발휘한다.
- 변지연(문학평론가)
시집에 담긴 시편들의 도처에서 확인되듯이 기차 혹은 열차는 단순한 무쇠덩어리가 아니라 시인 박관서에게는 대(對) 사회적 모든 행위와 모습들을 상징하는 분신이며 그것을 드러내는 자화상이다. 그리고 그의 몸이요 정신이며, 그가 달려갈 미래를 위한 패러다임의 압축적 상징물이다. 아무튼 그의 직업인 ‘철도원’ 생활은 그의 시적 체험과 미학의 거의 모든 부분을 지배한다. 아니 지배하는 게 아니라 시인인 그로 하여금 보다 더 아름다운 삶의 세계, 보다 더 광활한 인간세계로 나아가게끔 만들어주는 그런 야무진 역동성으로 작용한다.
- 김준태(시인)
-출처: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