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24년 8월 26일에 가진 루터칼빈신학회 제2회 공개신학세미나에서 '십자가 신학과 신앙'이란 주제로 발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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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신학과 신앙
목 차
Ⅰ. 서 론 : 들어가는 말
Ⅱ. 루터의 십자가 신학
1. 십자가 신학이 등장하게 된 시대의 배경
1-1. 십자가 신학이 형성된 사상적 배경
1-2. 십자가 신학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
Ⅲ. 십자가 신학에서 말하는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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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고하신 십자가
사복음서에서의 예수님의 행적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구속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절정에 이르게 된다. 예수께서 주기도에서 가르치신 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그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받들어 성취하시는 것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의 마지막 방문 길에 오르시게 되는데, 그 과정에 중요한 사역을 행하신다.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 땅에 세워나가실 교회에 품으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를 베드로에게서 신앙고백을 이끌어내시는 것을 통해서 행하신다(마 16:13-20).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 교회를 세우시는 것과 관련해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예고 – 예언 – 하여 주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에 있으신 것이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여 주신 것은 이후로도 세 번 더 있게 된다(17:22-23절, 20:17-19, 26:1-2). 이처럼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여 주시는 것은 앞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이끌어내시며 말씀하신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장차 성령께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복음 전도로 내세워서 교회를 세워나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흠 없는 거룩한 자로 구속하실 것인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따른 것으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실천해 나가신다(엡 1:4-5). 그리고 지금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이 일을 맡겨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여 나가시고 계신 것을 예고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알려 주신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아직은 이에 대한 이해에 서 있지를 못하였었다. 그런 그는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라고 하며 만류를 하였다. 이를 보시고 예수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마 16:23)라고 꾸짖으신 후 제자들 모두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1) 자기를 부인하고 (2)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이것은 ‘제자의 도’라고도 말해지고 있는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름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게 되는 일이다. 이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것에 대한 이해를 갖고 그리해야겠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여야 할 것’은 무엇이며, 또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할 것’은 무엇이겠는가를 본다.
1-1. 자기를 부인하여야 할 것
먼저 ‘자기를 부인하여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본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고하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관련하여 베드로가 보인 처신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을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 달려 죄인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시는 희생사역을 수행하고자 하신다. 이는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대속주로 보내신 이유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감으로써 짊어지고 거기에 달리게 되는 십자가에 의해서 죄인을 위하여 그들의 죄값을 담당하신데 따라 그들을 대신하여 죄값을 치르시는 속죄양이 되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속량, 곧 구속을 받는다. 그런데 베드로는 여기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아직 이해에 있지 못하여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 있어 예수님의 예루살렘 길을 나서서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부인에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고난을 통해 온 세상에 세워나가실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였던 그를 이제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일을 생각함으로 예수님을 따를 것을 말씀하시는 것에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일을 생각함에 있은 자신을 부인함에 있음은 사도 바울이 말한 바 “날마다 죽노라”에 있음에 다름 아니다.
1-2. 자기 십자가를 질 것
다음으로 예수께서는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8-40)라고 말씀하셨던 아들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일을 행해나가시는 것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시는 구주의 일을 하고자 하시는데, 이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그 생각에 있어 예수님과 함께 하며 그분의 뒤를 따라 예수님이 지시는 십자가에서 나타내 주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믿음을 가져나가는 것에 있어야 하는데, 베드로는 그 생각에 있지를 못함으로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가로막음에 있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여 예수님의 길을 막아 나설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여 나가는 예수님의 길은 막아서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 길에 오르셨으며,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 당하시는 고난에 있으셨다. 그리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라고 예고하셨던 대로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에 있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 죽음과 부활을 온 세상에 전파되는 복음이 되게 하셨다. 생명의 구원을 얻는 복되고 기쁜 소식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복음을 전파하여 생명의 구원을 얻은 자들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을 맡음에 있는 제자들은 이 일로 그들의 주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음에 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예수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라고 하신 말씀을 실현하여 그 성취에 있게 하신다. 종은 주인의 일을 하는 것에 있으며, 종은 주인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종은 그의 주인으로 말미암아 정해진 같은 운명에 있으니 주인이 짊어지고 달리신 십자가에 종 또한 함께 달린 자가 된다. 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자가 되셔서 구속 사역을 이루신 그 십자가를 육체에 짊어짐에 있어 그 흔적을 지니고 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자신을 “날마다 죽는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한 부자 청년에게서는 많은 재물이 그를 예수님을 뒤따름에서 돌아서게 하였다. 많은 재물에 꿈틀대는 욕망이 살아있어서는 그 탐욕으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다. 그의 손은 어느덧 탐욕에 이끌린 재물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것에서 있게 된다. 한 부자 청년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 그리고 나서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름에 있는 그에게서는 그가 따르는 주님이 그의 전부이다. 그 주님과 함께 기뻐하고 행복을 느낀다. 그는 주님이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의 일을 하였듯이 또한 자신의 몸을 바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에 있는다. 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일이 다름 아닌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인데, 그 십자가에 의해서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러한 그 또한 주님이 죽으신 그 십자가에서 죽는다. 이는 전에는 사람의 일을 생각함에 있었던 자신이 이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그 일을 하는 것에 하나님께 바침에 있는 것으로, 사도 바울이 말한 날마다 죽은 그가 “날마다 사노라”에 있음에 다름 아니다. 죄의 육에 대해서는 죽고 생명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산 자이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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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자 : 이 천 우(개혁성경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