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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9일 토요일.
백두대간상의 매봉산 천의봉에서 가지를 친 낙동정맥은 역동적인 근골을 자랑하다가 결국은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서 마지막 끝자락을 장엄하게 가라앉힌다.대개의 산꾼들은 천의봉을
깃점으로 해서 낙동정맥을 주파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법(行法)인데, 이번에 작당을 꾸민 산꾼들은
고도가 가장 낮은 밑바닥(몰운대)에서 시작하여 해발1145m 높이의 천의봉까지
도상거리 351.2km의 정맥 구간을 주파할 계획이란다.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비교적 낮은 지역으로
이동을 하는 것이 대체적으로 산행이 수월한 편이지만 굳이 고집스럽게 따를 필요는 없다.
엎어치나 되치거나 별 뚜렷한 차이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첫 구간 출정치고 삼십여명 정도의 인원은 조금은 단촐한 편이다.그러나 산악회를 운영하는
집행부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만석(滿席)이 된 버스보다는 십여석 정도가 공석(空席)으로
남아있는 것이 혼탁하기 마련인 실내 공기가 한결 맑아지고 그 인원만큼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가
조성되기 때문에 참가한 산꾼들에게는 한결 번잡스럽지않은 안락한 여정이 기대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수출한국의 전진기지,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의 연고지역으로 상징되는
부산이다. 그런데 부산 갈매기라 불리는 부산(釜山)시민들은 스포츠중에 유독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연고 지역의 자이언츠팀에대한 사랑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성적이 좋으나 신통치 않은 경우를 불문하고를 떠나서 자이언츠팀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을 모른다.
야구에 대한 사랑인지 연고 팀에 대한 사랑인지 묻는 것 자체가 치졸하기는 해도
어쨋든 부산갈매기들의 야구사랑이 부산을 야구의 도시로도 자리매김 시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얼마전에 막을 내린 2010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준플레이오프전에서 롯데 자이언츠는
서울의 두산베어스에게 2연승후에 내리 3연패를 당하는 바람에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는
기껏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해야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부산갈매기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에도 불구하고 중도에서 무릅을 꿇고 말았으니
팀은 말할 나위 없을 것이고 부산 야구펜들에게도 많은 아쉬움이 남았으리라.
부산갈매기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다대포 몰운대 유원지에는 이미
열기가 식었는지 차분하기만 하고 비릿내가 잔뜩 묻은 바닷 바람만이 소슬하게 불어온다.
몰운대 유원지 앞에 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대략 오전11시 40여분 쯤 되었을 것이다.
주말을 맞아 야외를 찿은 근동의 관광객들과 산책을 즐기는 주변 인파들로 제법 유원지 분위기가
느껴진다. 텅빈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비린내를 가득 싣고 온다.
줄지어 늘어서있는 생선횟집들, 수족관 속에는 힘이 넘쳐보이는 줄돔이 산객의 시선을 잡아끌고
가을에 이것들의 머리에는 깨가 서말이나 들어있다고 했고,
이것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 잽싸게 돌아 온다는 것,지금 좁아터진 수족관 안에서 속없이
제 세상 만난 듯 은빛 비늘을 반짝이는 것들은 바로 전어,이것들을 어찌할까? 구미가 동할 수 밖에 없다.
산행은 몰운대 맨 남쪽 끝자락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정맥 구간을 꼼꼼히
챙겨 주파를 하려면 자신과의 진정성 있는 약속이 수반되어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
이 근방에서 대충 어영부영 구경만 하다가 다녀 온 셈 친다고 시비 걸 사람 아무도 없으니
굳이 허위단심 땀 흘리고 되돌아 올 길 무엇하러 가려고 야단인가.
하긴 그말도 일리는 있다. 틀린 말은 절대 아니다. 빠르고 편한 것,그리고 정확성이 천하의
이니셔티브를 쥐락펴락 하고 있는 21C에 편안하고 빠른 지름길만을 찾아 헤메는 것이 흉이 될 리는
없다. 차라리, 그동안 입맛 땡기던 전어 몇마리 썰어놓고 초장 듬뿍찍어 소주한잔 기울이는 것이
암만 생각해도 신선놀음이 따로 없지 싶다.그까짓 것 케이블카를 타고도 오를 수 있는 높은 산들이
앞으론 수두룩 할텐데 이 쯤 가지고 자책할 수는 더욱 없지도 싶다.
그렇다고 그렇게 신선놀음이라고 그냥 무질러 앉아버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오랜시간 차안에서 시달리며 불원천리 달려 온 정성과 시간이 너무 아깝긴 하다.
잘난 전어 몇마리가 천하에 둘도 없는 진미중의 진미라도 그렇지, 그것 하나 맛보러 이 먼 곳까지
새벽잠 설치고 왔단 말인가? 이곳에 온 목적중의 최고로 중요한 것은? 역시 낙동정맥의 길을
딴 맘 먹지말고 부단히 걸어 보는 것,이것이 오늘 이곳에 온 최고로 중요한 콘텐츠다.
울창한 솔숲에서 풍겨나오는 솔향이 싱그럽다. 초등생들의 미술 전시회가 길섶에서
열리는 모양이다. 양 길가에 길게 줄을 매어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울창하게 하늘을 뒤덮은 솔숲이
운치가 가득하고 솔숲사이로 불어오는 바닷 내음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짙푸른 물빛에
산객의 오감은 힘없이 허물어지고 만다. 섬도 아닌 것이 섬 모양을 하고 있다.
바다 풍경을 흔히 볼 기회가 드문 내륙의 산꾼들은 대개 이러하지 않을까.
미술 전시회 작품을 관람하며 숲속 길을 걷다보면 커다란 건물이 앞을 막아선다.
다대포 객사인 회원관(懷遠館)이다. 조선후기 다대 첨절제 사영에 있었던 객사.
다대포는 옛부터 왜구를 막기위한 군사적 요충지로써 중시되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상좌도 7진중의 하나가 되었는데 부산진과 함께 다른 진보다 더 중시되어 다른 진보다
2배의 병선을 보유했으며 첨사는 정3품 당상관 이었다.그리고 이곳 객사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의
하나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보관하고 고을의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망배(望拜)를 드리던 곳이기도 하고 사신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하던 곳이다.
해변 절벽아래 바윗가에서 낚시줄을 드리우고 망중한을 즐기는 낚시꾼들이 한가하다.
철조망을 둘러쓰고 있는 작은 군 초소를 지나면 바로 육지의 끝자락 봉우리에 닿는다.
삐죽 솟아있는 바위에 올라 기념촬영이 한창이다.
세월이 흐르면 남는 것은 온데 간데 없고, 그나마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는 사실을 예전에
모두 체험한 사람들이 서로 먼저 사진을 찍으려고 작은 소란을 피운다.
점점이 바다위에 떠있는 작은 섬들, 파도에 부딪치는 해안 절벽에 하얀 포말이 쉼없이 명멸한다.
파란 바닷가 작은 섬 사이로 고깃배 한척이 한가롭게 뱃살을 가른다. 하늘빛은 회색의 침울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물빛은 찬란한 에매랄드의 화려함을 내뿜고 있다.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가야 한다. 조금 전보다 늘어 난 인파가 연신 몰려들어오기 시작한다.
몰운대 입구를 벗어나고 식당지구를 지나면 이내 주택들이 들어선 구간으로 정맥은 이어진다.
이제는 해변가를 등지고 낙동정맥의 끄트머리를 밟아 갈 참이다. 4차선 널찍한 도로를
건너가면 해변을 향해서 우후죽순처럼 빼곳하게 들어서 있는 아파트 단지가 우선 눈앞을
가로 막는다. 정맥을 따라가는 이속(離俗)의 산길은 분명 한 곳을 향한 단 하나의 길로 닦여져 있을텐데
주거지역으로 이미 변해버린 세속(世俗)의 한복판에서 정맥 등성이를 이어나가기란 실로
험난한 가시밭길보다 고난하고 복잡스러운 법이다.희뿌연 싸리버섯처럼 산등성이까지 가득 들어 찬
아파트 무리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기세도 당당하게 도열해 있다.
몰운대와 다대포의 이름을 딴 건축물들이 이어진다. 덩달아 산허리를 감돌며 정맥의 등줄기를 따라
산꼭대기까지 들어찬 아파트와 각종 건축물들을 위한 도로가 이어진다. 언덕빼기 네거리에
이정표가 반갑다. 홍티고개다. 이정표 뒤편으로 숲으로 들어가는 산길에 나무계단이 기다랗게
산객을 손짓한다. 솔향이 솔솔 풍긴다. 솔가지 사이로 부산 앞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이 자꾸만
시선을 잡아끈다. 내륙에서 산과 들판 그리고 세멘 콘크리트 구조물만 상대하던 눈망울이
배산임해(背山臨海)의 조망에 홀딱 빠져드는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등뒤로는 아름다운 산과 앞가슴에는 일망무제의 시원한 풍광 망망대해를 품고 있는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부산시민들이 내심 부럽게 생각되는 것은 이사람만의 부러움만이 아닐성 싶다.
솔숲길을 걷다보면 이내 산 정상에 다다른다. 해발233.7m의 아미산 응봉, 아미산 응봉이라는 것보다
응봉봉수대라고 하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봉수대가 정수리를 온통 접수해 버렸다.
응봉봉수대를 뒤로하면 정맥의 산길은 직진을 하지말고 우측의 가파른 내리막으로 꼬리를 늘인다.
뒤이어 작은 안부 삼거리에서 맞은편 봉우리 방면의 산길을 따르던지 좌측의 내리막길을 따르던지
결국에는 산아래 서림사 입구에서 맞닥드리므로 길 잃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절 입구 삼거리에 도착하니 절 입구에 "아미산 서림사"라는 명찰이 세워져있다. 자동차들의
엔진소음이 웅웅거리며 볼륨을 더해간다. 좌측으로 성보냉장 입구를 지나면 바로 4차선 대로변이다.
도로를 건너서 우측으로 두 번째 골목으로 접어 들어야 한다.
낮으막한 비탈길을 오르면 아파트 단지 입구 옆의 작은 출입구로 들어선다. 아파트 단지에 속한
작은 놀이터,그곳의 쉼터 뒤편으로 작은 산길이 보인다. 산길은 숲속으로 줄창 이어질줄 알았더니
공장지대 한복판으로 산객을 인도한다. 산꼭대기까지 공장건물들이 들어 찬 것이다.
초행에 정맥길을 따르자면 한참을 이리저리 휘둘릴 것이다. 북아프리카의 유명한 미로의 카스바라면
유유자적 즐기면서 헤맬만도 하지만 이곳은 화공약품 냄새와 철 용접하는 냄새가 코를 찌르니
심성이 즐거움하고는 거리를 두고 싶을 것이다. 꺼림직한 냄새를 뒤로하고 산길을 오르고 내려가기가 무섭게 산길은 이내 널찍한 아스팔트 도로와 가구들이 밀집해 있는 상가 단지안으로 이어진다.
이속(離俗)과 세속(世俗)사이를 뻔질나게 들랑거리는 셈이다.아마도 부산시계(市界)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이런 짓거리가 간헐적으로 거듭될 것이 틀림없다.
멀리 바다 건너 을숙도가 조망되는 것을 보니 비교적 높은 이곳 정맥 산등성이 고개까지 삶의 터전이
들어 선 것이 실감이 된다. 인적이 드문 비교적 한산한 가구단지,멀뚱멀뚱 상인들의 무표정한
시선을 느끼며 단지를 벗어나면 능선 주변까지 작은 따비밭을 옹기종기 일궈서 푸성귀를 심어놓은
모습에서 농부들의 심성을 읽을 수 있겠다. 키작은 소나무가지 사이로 감천만이 평화롭다.
조선소의 대형크레인이 우뚝하고 해변을 따라 줄줄이 늘어서 있는 아파트 단지며 산업시설에
활기가 잔뜩 묻어있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오르니 서너개의 운동기구가 놓여있고 초로의 사내 두분이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얘기에 정신이 팔려서 여러 산꾼이 들이 닥쳐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이곳 봉우리는 동네 뒷동산 정도의 하잘 것 없어보여도 명색은 해발149.6m의 봉화산이라고
표기돼있다. 작은 소나무 일색인 산길은 여늬 마을 뒷동산 같은 분위기, 연이어 나무가지 사이로
시가지의 역동성이,부산 앞바다의 다양한 풍광이 산객을 다독인다. 아스팔트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구평고개, 구평고개에서 정맥은 막바로 도로를 가로 지르며 맞은편으로 이어진다.
작은 소나무들의 숲길은 널찍한 헬기장으로 이어지고 주능선의 우측 산허리를 끼고 산길이 나있다.
주능선으로는 철조망이 둘러쳐져있다. 철조망 너머에는 군부대 시설들이 주둔해 있으므로
불가피하게 철조망을 둘러친 모양이다. 예비군 교육시설물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예비군 교육장으로 들어섰다면 날머리인 괴정고개는 바로 턱 밑으로 다가 왔다는 얘기 아닌가.
해동고교 후문쪽으로 발길을 계속하면 이내 괴정고개가 있는 대로변으로 정맥은 꼬리를 내린다.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를 찾아보아야 한다.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십여분 진행을 하니
뉴코아 백화점 앞 도로변에서 목을 빼고 식구를 기다리는 버스가 눈에 띤다.
네시간 정도 소요가 된 이번 산행은 당일 산행으로는 난이도가 높지 않은 관계로 비교적 짧게
느껴진 산행이었지만 대도시의 시가지를 번갈아 오가며 산행을 이어나간 것이 유별난 산행 경험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사하구 괴정동 뉴코아 백화점앞에서 오후4시가 넘어서야 버스는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먼 귀경길을 감안 한다면 주마가편을 서둘러야 할게고, 인파가 번잡한 도시 번화가
한복판에서 노숙자 무료배식 하듯이 뒷풀이 식사를 벌일 형편이 되지 못한다.별수없다.
복잡한 부산시내를 벗어나 도로휴게소 주차장 마당을 잠시 염치불구 빌려서 후딱 해치우는 수밖에는
딱히 해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대도시 부산시내를 벗어나 비교적 교통 소통이 원활한 외곽으로
벗어나는데 한 시간 이상이 소요가 되었다. 허겁지겁 게눈 감추 듯,해거름을 넘긴 시각이니
당연히 출출하기도 할 것이다. 땅거미가 지고 가로등 불빛이 서서히 비춰지기 시작 될 무렵이 되서야
본격적인 귀경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이렇게 당일 산행으로 낙동정맥을 주파하려면 부산시내를
벗어나는데 걸리는 날도 사오일은 걸릴 것은 불문가지.그러니 부산에는 장똘뱅이 처럼 봇짐을 지고
몇번 더 찾아들어 갈 것이다. 그리운 내 형제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부르는 조용필의 애끓는"돌아와요
부산항에" 가 아니더라도 두어 주가 지나면 또다시 부산을 찾을 예정이니,
부산 갈매기들에게 부산항 주변에서 오륙도 돌아가는 뱃길을 바라보며 서글프게 마냥 목놓아 울지나
말라고 위로전문이나 보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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