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지금 아주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 합니다.
꽃을 좋아한다고 늘 저만큼 꽃을 꽂지 않은 분들 앞에서
"저 아마 십년 정도 꽂았을 거에요."
하면 그분들 눈 동그랗게 뜨고 대단하다는 제스춰를 보일 때마다
정말 제 자신이 기특해 맘 속으로, 겉으로 우쭐했던 거 사실입니다.
요번 일본에 간 일은 여행이 아니라
일본의 "신이께노보파"라는 큰 꽃꽂이 파 의 95주년 창립총회겸 전시회에 참석해서
우리나라의 꽃꽂이를 자랑하는 사절이었습니다.
그렇게 큰 국제적 잔치에 초대받아 간 것이 제겐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갈 때의 설레임대로 전 자랑스러움으로 자신만만했습니다,
가자마자 가방을 풀고 바로 전시회장에 가서 꽃을 꽂기 시작했습니다.
서둘러 완성을 하고 전시회를 둘러볼 때부터
제 가슴은 아무도 모르는 부끄러움을 담기 시작했지요.
되지도 않은 한자와 영어를 섞어 구사하며 대화를 하는 도중
일본의 전시회원들은 삼십년은 기본이었고
그것릉 꽃을 꽂는 자세에서 그대로 풍기는 향내였습니다.
그들은 꽃을 다루는데 열매하나 꽃잎 하나조차 조심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꽃을 보석 다루듯 하며 온몸에서 풍기는 꽃꽂는 우아한 모습에서
저절로 화도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회의 창립자 가족은 손자까지 이어지는 세대를 뛰어가는 꽃가문이었습니다.
한가지 일에 일생을 걸고 자손 대대로 전해 주는 그들의 자부심이 부러웠습니다.
전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이 모습을 얘기하고
또한 저 자신 닮아가도록 노력하리라 다짐 했습니다.
전시회가 끝나고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통역을 해주는 분의 말씀으론
꽃꽂이 세월 육십년 이상, 오십년 이상, 삼십년 이상을 차례대로 시상했는데
육십년 이상 시상자만도 예닐곱은 되었습니다.
아흔 일곱이라는 할머니작가는 소녀처럼 고왔고
수줍은 웃음까지 생기있어 보였습니다.
전 아직도 육십년이 되려면 태어난 때부터 십여년이 남아 있습니다.
꽃꽂이하며 일생을 살아도 육십년 되기는 틀렸습니다.
제가 가지 못할 경지가 거기 있는 겁니다.
육십년 앞의 십년 ....
저 서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오금이 저렸습니다.
얼마나 했느냐고 누가 물을까 싶어 숨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그도 잠시 전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꽃꽂이 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도 가르칠 수 있는 처지이니
하느님 미리 제게 그런 일 있을 줄 알고 미리 재물을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제가 넉넉해 보여 엄청 돈많은 집 딸에 엄청 많이 벌어들이는 줄 알았다가
그저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젬마, 난 젬마가 엄청 부자인 줄 알았다!"
이리 말해서
"저 정말 부자인데요?"
했더니 그분 아주 어이없어 하시며
"젬마는 부자는 아니야. 부자처럼 살 뿐이지...."
해서 절 머쓱하게 하셨습니다.
그래도 전 하고 싶은 일을 다하고 사니 부자인 게 확실합니다.
제 분수에 맞지 않은 일은 바라지 않고
사정이 허락하는 한 모두 누리고 삽니다.
이제 제가 꽃을 가르치기로 작정했으니
머잖아 꽃을 전하는 즐거움과
그들로부터 배우는 삶도 전하게 되겠지요.
가르치는 게 배우는 거라는 건 잘 알거든요.
전 그렇게 새로운 후배스승을 만나 육십년 세월을 꽃꽂을 겁니다.
꼭 그렇게 할 겁니다.
일본에서 단 한명의 제자를 삼십년 넘게 가르친 멋진 스승의 얘기도 들었거든요.
제가 육십년을 저와 제 제자를 통해서라도 채우는 꽃사랑 인생이 되기를 기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