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백석
내가 언제나 무서운 외갓집은
초저녁이면 안팎 마당이 그득하니 하이얀 나비수염을 물은 보득지근한 복족제비들이 씨굴씨굴* 모여서는 쨩쨩쨩쨩 쇳스럽게* 울어 대고
밤이면 무엇이 기왓골에 무릿돌*을 던지고 뒤 울안 배나무에 쩨듯하니* 줄등을 헤어 달고 부뚜막의 큰솥 작은 솥을 모조리 뽑아 놓고 재통*에 간 사람의 목덜미를 그냥그냥 나려눌러선 잿다리* 아래로 처박고
그리고 새벽녘이면 고방 시렁에 채국채국 얹어 둔 모랭이* 목판 시루며 함지가 땅바닥에 넘너른히* 널리는 집이다
* 씨굴씨굴: 수두룩하게 많이 들끓어 시끄럽고 수선스런 모양.
* 쇳스럽게: 카랑카랑하게.
* 무릿돌: 많은 돌. 길바닥에 널린 잔돌.
* 쩨듯하니: 환하게.
* 재통: 변소.
* 잿다리: 재래식 변소에 걸쳐 놓은 두 개의 나무.
* 모랭이: 함지 모량의 작은 목기.
* 넘너른히: 이리저리 제각기 흩어서 널브러뜨려 놓은 모습.
백석의 시를 제대로 읽어 내기위한 3대 요소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1)구수한 평안도 사투리의 맛과 의미해석 2) 민족의 공동체 의식의 심화가 슴베이는 시적 구조 3) 토속적인 소재를 선택 한 향토색 짙은 서정의 세계를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라라 본다. 여기에 주요한 요소 하나를 덧댄다면 시의 서사가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어 읽는 재미가 동화처럼 쏠쏠한 추억으로 안내한다는 것이다. 이 시도 그와 같은 특징을 전형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외갓집을 언제나 무서웠다고 회억한다. 역설(paradox)이다. 그만큼 외갓집은 어린시절의 그리움과 추억이 흘러넘치는 마음의 고향집 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화자는 ‘초저녁→밤→새벽녘’으로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초저녁이면 복족제비들이 울어 대고 밤이면 ‘무엇’이 무릿돌을 던지고 새벽녘이면 목판 시루나 함지가 땅바닥에 흩어져 널브러뜨려져 있는 집이 바로 화자가 떠올리는, 그리운 그리고 마음에 품고 싶을 만큼 무서운 외갓집인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 외갓집에 관한, 이제는 잃어버린 옛 추억이 떠오르는 우리 모두의 유년시절 외갓집을 풍경화처럼 소환하게 한다. 우리의 외갓집은 어떤 모습일까? 시에 들어 있는 몇몇의 단어가 시를 읽어 가는데 어려움을 주지만, 그것을 읽어 내면 고향땅 외갓집의 이미지가 쉽게 다가오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