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몽골 방문한 佛사진가, 나무 상자에 갇힌 여인 찍어 "유목 민족의 이동형 감옥"
머리를 산발한 여인이 뒤주처럼 생긴 사각형 나무 상자에 갇혀 있다. 주변은 인적 없이 드넓은 초원. 덩그러니 놓인 상자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여인은 구멍 밖으로 얼굴과 왼손만 내민 채 필사적으로 자물쇠를 만지고 있다.
지난 7일 강인욱 경희대 교수(북방고고학)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이다. 중국으로부터 갓 독립한 1913년 몽골을 방문한 프랑스 사진작가 스테판 파스가 찍었고 1922년 5월 내셔널지오그래픽지에 실렸다. 당시 사진 설명에는 '우르가(현재 울란바토르) 근처에서 아사형(餓死刑)을 당하는 여인'이라고 써 있다.
- 뒤주에 갇혀 아사형(餓死刑)을 당하는 몽골 여인. 1913년 몽골을 방문한 프랑스 사진작가 스테판 파스가 찍었다. 뒤주 주변에 음식 그릇이 놓인 것으로 보아 실제로 굶겨 죽이지는 않은 듯하다(왼쪽 사진). 영화‘사도’에 등장하는 뒤주. /강인욱 교수 제공·쇼박스 제공
강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요즘 영화 '사도' 때문에 뒤주가 주목받고 있는데 원래 이런 처벌법은 유목민들의 고유 풍습이다. 평생을 유목하며 떠도니 우리가 생각하는 감옥 시설이 있을 리 없고 북방 민족들은 뒤주같이 생긴 나무 상자를 '이동형 감옥'으로 사용했다." 강 교수는 "스테판 파스의 사진 설명과 달리 뒤주 주변에 음식 그릇이 놓인 것으로 볼 때 굶겨 죽이려는 목적보다는 일정 기간 가두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며 "이 시기 몽골에서 쓰인 일반 뒤주는 낙타의 등짐에 싣기 좋게 정사각형으로 만들었다. 사진 속 뒤주는 사람을 가두기 위해 일부러 만든 것 같다"고 했다. 몽골에선 언제부터 '뒤주 감옥'이 쓰였을까. 연구자들은 "몽골에서 뒤주가 형구(刑具)로 쓰이기 시작한 건 청나라(만주족)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현재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는 몽골국립역사박물관 민속관에는 커다란 뒤주 한 점이 전시돼 있다.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일종의 형구(벌 주는 도구)로 쇠고랑, 채찍과 함께 전시돼 있다"며 "몽골이 청나라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17~19세기 몽골 지역에서 '뒤주 감옥'이 만들어지고 고문이 행해졌다"고 했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영조도 이 같은 유목민 풍습을 알았을까? 강인욱 교수는 "영조가 유목민 풍습을 따라서 처벌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 같은 사형법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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