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주일 2024년 1월 21일
마르 1:4-20.
지금이 분별할 그때
올해 연중 주간에 우리는 마르코복음의 말씀을 듣습니다. 마르코복음을 상징하는 동물이 포효하는 사자이듯,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담대히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니 그 생생한 삶의 현장을 상상력과 지력을 동원하여 읽고 듣는다면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성서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 즉 복음입니다.
성서의 심장인 복음을 깊이 묵상하며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묵상할 주제는 시간 즉 때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때가 다 되어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라고 선포하십니다.
헬라어로 때 혹은 시간을 뜻하는 단어는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입니다.
그런데 그 의미는 대조적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일상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이고, 카이로스의 시간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나에게만 허락된 기회를 뜻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때가 다 되었다고 하신 말씀은 물리적인 때가 아닌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할 때 즉 카이로스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때 해야할 일을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까지만 하고 내일부터는 달라지겠다는 나약한 본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변혁의 시기에 우리가 먼저 할 일은 회개와 믿음입니다.
늘 자신을 성찰하고 하루하루 다르게 살겠다고 다짐한다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때는 있는 법이고,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은 축구 경기와 달라서 전반전과 후반전이 균일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전반전을 뛰는 선수일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결정적인 ‘때’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이어야 할까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의 인생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마음가짐으로 항상 살아야겠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가 나(우리)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때라는 자세로 사는 것이 ‘회개하고 믿음으로 사는’ 삶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에 비로소 갈릴래아에 오셔서 복음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요한의 활동이 끝난 후에 비로소 활동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묵상할 두 번째 지점입니다.
요한의 때가 가고 예수님의 때 즉 진리의 때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요한의 때가 무엇인지 묵상합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금욕적이고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고행을 마다하지 않았고, 세례의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비윤리적인 일을 저지른 헤로데에 대하여 꾸짖음으로 왕의 미움을 사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헤로데의 일이 하느님의 가르침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고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요한의 때는 진정한 복음의 때가 아니었다는 가르침을 새겨야 합니다. 요한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례자 요한으로 상징되는 것은 사람의 계획, 율법, 선의의 행동 등입니다.
하지만 이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정결, 금욕, 정의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의 의를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모든 성서의 주제와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진리와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이 잡힌 뒤에 활동을 시작하셨다 함은 인간의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고, 복음과 진리의 시대,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장엄한 선포입니다.
예수님의 때는 나(인간)의 힘으로 좋은 계획을 세워 충실하게 일을 수행하여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생각을 버렸을 때 비로소 도래합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힘과 능력을 내려놓는 순간이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활동하시는 때가 됩니다. 인간의 교만과 탐욕이 사라지는 순간 예수님의 때가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때를 식별하는 것만큼, 온전히 믿고 맡기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첫 번째 제자’를 묵상합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기에는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이 명료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어부였고 그물과 함께 일하던 아버지도 남겨 둔 채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첫 번째 제자로 부르셨다는 의미를 묵상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없었다면 복음은 시작되지 못했습니다.
제자를 부르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활동이 사람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그리고 교회공동체 선교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지점이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 교회라면, 핵심은 예수님에게 있고 그 핵심을 실천하는 기능은 사람이 합니다.
가끔 핵심과 실천이 뒤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약의 역사 전체를 살펴보면 결국 사람을 통해 하느님의 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선포되고 실행됩니다.
제자가 있었기에 복음과 진리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제자를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때를 실천할 귀중한 자원이 생겼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남은 그 하나에 대한 포기입니다. 그물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만을 신뢰하는 교만을 의미합니다. 이를 내려놓고 따라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희망과 가능성을 보았을 것입니다.
지금 이때를 잘 파악하는 지혜와 미루지 말고 결단하고 실행으로 옮기는 용기를 구합니다.
지금이 우리에게는 분별할 때입니다. 결단할 때이고, 고백하고 주님을 따라나설 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어 당신의 복음과 진리를 세워 나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늘 깨어 기도하며 올바로 서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이 우리의 고백과 결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