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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학 산 (舞 鶴 山 761,4m)
(창원 적현로 마산항 제5 부두 부근에서 바라본 무학산 전경)
우리나라 100대 명산의 반열에 오른 무학산은 학이 춤을 추듯 날개를 펼친 모습의 지형을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면은 동쪽을 향하는데 학봉능선의 학봉이 무학산의 백미이고 남북으로 길게 벋어 밤 밭 고개에서 정상을 거쳐 중리삼거리까지 무학산 종주길 13km에 이른다. 본명은 무학산 이지만 조선시대의 저명한 학자들의 시문을 보면 두척산 (斗尺山) 이라 고도했다. 이는 합포만의 합포, 신포, 월포, 창포, 가포등 어촌에서 생산된 해산물과 내륙의 농산물을 물물 교환하던 마재(斗尺)고개 아래 반짝 시장 두척동이 있다. 내륙에서 접근한 옛 사람들이 이 두척계곡을 통해 정상으로 올라 일명 두척산이라 불린 듯하다. 한편 일본 원정을 위해 몽고군이 무학산 기슭 합포만에 주둔하여 무학산 기슭에 군마를 방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구한말 일본의 식량수탈로 식량 공출을 위한 수레를 끌던 말들을 무학산에 방목 하여 무학산은 마산(馬山)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정상에서면 맑은 날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 사천 와룡산, 의령 자굴산, 창녕 화왕산, 불모산등이 두루 보이고 창원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산 아래 해안선이 조개의 모습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합포만이 조망되고, 거제와 부산 가덕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도 조망된다. 진달래가 붉게 물드는 봄이면 홍학(紅鶴), 푸른 잎이 짙어지면 청학(靑鶴), 억새가 익어가는 가을이면 황학(黃鶴), 눈이 내리는 겨울은 백학(白鶴)이 된다.
봄맞이 무학산 둘레길 종주
나는 오늘 아침 08시에 집을 나섰다. 참 좋은 날씨다. 아파트 단지 안에 산에서 뽑아낸 지하수 한 병을 담았다. 아파트 후문 계단을 올라서면 산복도로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바로 앞에 만날 고개로 가는 등산로이다. 오늘은 무학산 둘레길 종주라 밤 밭 고개로 향했다. 집에서 밤 밭 고개까지 찻길 700m, 걸어서 10분 거리다. 길을 가며 집에서 5분 거리의 월영 대가 생각났다. 비록 지금은 초라한 모습의 월영대지만 월영동 해운동의 이름은 해운(海雲)이 남긴 발자취가 아니겠는가?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 ) 선생이 가야산으로 들어가기 전 살았던 이 마을에 사는 것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해질녘 황혼에 물든 뜬구름을 보았는가? 그는 뛰어난 학자였을 뿐 아니라 인품이 고와서 지금도 고운피부, 고운치과 등의 상호나 고운 옷 등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 선생을 비롯 저명한 학자들은 평생에 꼭 한번은 찾고 싶었던 월영대다.
고운이 세상을 떠 난지 600년이 지났건만 사가정 서거정(四佳亭 徐居正1420~1488) 선생은 고운의 숨결이 남은 월영대를 찾았다.
월영대(月影臺)
月影臺前月長在 (월영대전 월장재) 월영대 앞에 달은 아직도 높이 떠 있건만 月影臺上人已去 (월영대상 인이거) 월영대 위에 사람은 이미 가고 없네 孤雲騎鯨飛上天 (고운기경 비상천) 고운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뒤 白雲渺渺尋無處 (백운묘묘 심무처) 구름만 아득하여 찾을 곳이 없구나! 孤雲孤雲眞儒仙 (고운고운 진유선) 고운이여, 고운이여 그대는 진정 신선 같은 선비 天下四海聲名傳 (천하사해 성명전) 천하사해에 널리 이름을 전하리라!
밤밭 고개
밤 밭 고개다. 예곡동 율곡마을, 옛날 밤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무학산 종주길(밤밭고개~만날고개~대곡산~정상~시루봉 갈림길~중리역, 13km 4시간40분소요)과 둘레길(밤밭고개~만날고개~완월농장~서원곡~앵지밭골~봉화산 석전사거리 분기점~두척동~중리역, 23km 6시간30분소요)이 시작되는 곳, 여기서 남쪽 능선을 타고 1시간 가면 가포동 국립마산결핵병원에 내려선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 그 병원이 바로 1960년대에 유행했던 대중가요, 반야월 작사 가수 권혜경(1931~2008)이 부른 “산장의 여인”의 무대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내” 강원도 두메산골의 풍경이 그려지지만 사실은 가족마저도 발길을 끊을 수밖에 없는 격리된 병원생활이 산장처럼 느껴졌던 처지를 노래한 것이다. 가난과 질병은 쌍두마차다. 가난하기 때문에 질병이오고 질병이 오므로 가난해 지는 것, 그때 폐결핵환자는 1급 법정전염병으로 분류되어 지금의 암환자보다도 더 흔한 치명적인 병이었다. 권혜경은 충북청원군 남이면 외딴산골에서 노랫말처럼 외롭게 살다가 갔다.
밤 밭 마을 뒤 능선 길로 오른다. 숲이 좋은 능선에 올라서니 저 아래 해운초등학교에서 확성기로 동요 곡이 울려 퍼진다. 문득 이일래 (李一來 1903~1979) 선생이 1928년에 지은 동요 “산토끼”가 생각났다.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본다. 노인과 어린아이와 산토끼는 약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가 신묘년(辛卯年) 토끼해가 아닌가? 창녕이방초등학교 재직 시 아동들을 데리고 학교뒷산에 야외 학습을 갔을 때 지었단다. 산에서 산토끼를 만난 아이가 산토끼에게 묻는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로 가느냐? ” 그때 산토끼가 대답한다. “산 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토실토실 알밤을 주어서 올 테야.” 참, 평화로운 정경이다. 지상의 천국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기록에 의하면 교회 성가대 지휘자(1936~1945)로 봉직하기도 했는데 악보원고에는 동요답게천진스럽게 부르라고 주문했다. 흔히 씩씩하게, 흥겹게, 장엄하게 하라고하는데 조금 특이하다.
만날고개 유래비
숲이 우거진 능선 길을 따라 2.7km, 30분 만에 만날고개에 도착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산 60번지다. 무학산의 산바람과 합포만의 바닷바람이 만나는 곳, 월영동을 비롯한 신 마산 일대의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만날고개의 유래는 이렇다. 고개 너머 감천 골 윤진사댁 서른 넘은 반신불수 외아들과 월영마을 가난한집 처녀와 행상인의 중매로 혼인을 했는데 몇 해 안가 남편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하고 만다. 청상과부가 된 그녀는 친정어머니와 이 고개에서 모녀 상봉을 하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편백림 삼림욕장이다. 편백에서 발산하는 피톤치드 향은 폐렴균과 구강염을 일으키는 카디다 균의 탁월한 살균효과가 있고 비염, 아토피성 피부염에도 효과가 있다.
(만날고개 시비)
만날 고개에서 합포만을 내려다본다. 앞이 탁트여서 속이 시원하다. 해안선이 조개의 모습을 닮았다 해서 합포만(合浦灣)이다. 지금은 해안 매립으로 해안선이 변형되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가곡 이은상시인이 작시한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라고 노래한 “가고파„의 고향 합포만은 이제 호수 같은 느낌이다. 봄의 햇살이 가득한 고갯길을 내려간다. 주변의 봄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마주오던 등산복 차림의 중년여성이 꾸벅 절을 하면서 사장님 산에 오셨어요?했다. 얼떨결에 예, 반갑습니다. 하고 지나치는데 신호등처럼 기억이 깜박깜박했다. 둥근 테 모양의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 코와 입만 보이고 눈은 보일 듯 말듯했다. 잠시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지 않고서 하면서 확인하려 뒤돌아보는데 그녀도 동시에 뒤돌아봤다. 그때 그녀는 저요, 종가집요하고 소리쳤다. 그제 서야 알았다. 불고기 식당이다. 일 년 전 월영동에 이사 올적 그 집에서 한 두 차례 식사한 적이 있는데 아는척 해주니 고맙다. 다음에 식사할 일이 있으면 그 집에 또 가야지 생각했다.
(학봉에서 내려다본 완월농장 다락밭 주변의 풍경)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대곡산에서 흘러내린 산등성이를 넘어 완월농장 지대다. 무학산 기슭의 대표적인 다락밭지대다. 이 일대가 말을 방목하던 곳이다. 한때 군마(軍馬)도 방목했고 거마(車馬)도 방목했다, 그래서 무학산은 곧 마산이고 마산(馬山)이 무학산(舞鶴山)이다.
(서원곡의 봄 풍경)
이곳을 지나 학봉 아래로 접근했다. 송림이 울창한 솔 숲길이다. 이윽고 학봉능선 갈림 길이다. 둘레 길은 직진을 해야 한다. 첫 단추를 잘 꾀어야 하는데 한 발짝 발을 잘못 들여놓으면 그 결과는 엄청나다. 좌측은 학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우측 10m아래는 너른 마당인데 거기서 서원곡 입구와 통일동산 그리고 자산약수터로 하산하는 곳이다. 직진하여 50m 가면 서원곡주차장으로 통하는 차도가 나오고 정면에 둘레길 안내표시판이 보인다. 서원곡이다. 서원곡에는 계곡양쪽에 정상에 오르는 길이 있다. 등산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길이다.
(앵지밭 골과 사진정면 뒤로 천주산)
계곡을 건너 또 하나 산줄기를 넘으면 앵지밭 골이다. 옛적 앵두나무가 유난히 많았던 아늑한 산촌마을이다. 숲이 좋아 살고 싶은 곳이다. 여기도 편백림 삼림욕장이 있다. 평상도 여럿 있고 화장실도 있어 피곤한사람 여기서 하루쯤 쉬어가면 좋겠다. 갖고 온 빵 한 개 와 음료수하나로 점심을 때운다. 11시다. 오늘의 행로의 절반 가까이 왔으니 배고프면 먹는 것이 산행하는 사람의 점심시간이다.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저기 자작나무도 보인다. 회원천 상류 계곡을 건너면 봉화산 기슭이다. 능선을 따라 끝까지 가면 봉화산(烽火臺; 경상남도 기념물 제157호) 석전사거리 분기점이다. 옛날 석전삼거리로 산복도로가 하나 더 생기면서 석전사거리가된 것이다. 낮12시다. 여기서 봉화산을 거처 정상까지 4.6km 두 시간 거리요, 둘레길 중리역까지는 8.5km 2시간30분 거리다.
두척계곡에서 바라본 두척산(무학산)
출발이다. 30분을 가니 회성동이다. 이 길은 편백림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숲이 좋다. 산새들의 합창이 들린다. 아마도 다섯 종류가 넘을 듯하다. 예상치 못한 산새들의 노래에 피로를 씻었다. 13시에 둘레 길은 사유지를 피해 두척동(斗尺洞)마을 경로당 앞으로 내려섰다.옛 적 물물 교환하던 시절 내륙에서 온 곡식과 합포만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물물 교환하던 시장터 곧 두척이다. 거래를 할적에 곡식은 말(斗)로 재고 물고기는 자(尺)로 쟀다. 말(尺)과 말(馬)은 분명 뜻이 다르다. 이곳에 낙남정맥이 지나는 고개가 있으니 지금도 말(斗)로 잰다 해서 말재고개라는 뜻이 변하여 마재고개라 부른다. 이 고개 동쪽은 천주산이고 서쪽은 무학 산록에 속한다. 혹자는 이 고개를 마현(馬峴)이라 억지 해석을 하는 이도 있으나 그것은 오해다. 남쪽에 떨어지는 빗물은 합포만으로 흘러들고 북쪽에 떨어지는 빗물은 광려천을 통해 낙동강에 합류한다. 옛적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합포만 일대에 인구가 많지 않을 적에 내륙지방 사람들은 접근성이 좋은 이곳 두척계곡을 통해 주로 무학산에 올랐다. 때문에 조선시대에 고운의 숨결을 찾아 왔던 잘 알려진 수다한 학자들의 시문을 통해 보면, 무학산을 일명 두척산이라 칭했음을 이상히 여기지 않음은 그 때문이다.
(두척계곡의 봄 풍경)
둘레 길은 생각보다 길이 꼬불꼬불하고 사유지가 많아서 불필요하게 길이 멀어졌다. 50m 거리를 가는데 100m을 걸을 때도 있다. 산길은 도상거리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둘레길은 사유지를 피해서 마을로 내려왔다가 오르는데 잠시휴식을 취하고 다시금 산길을 찾아 나선다. 숲속 길로 오르는데 숲속에 외딴집이 보였다. 참 좋은 곳에 산다 싶었는데 개두마리가 요란하게 짓는다. 지팡이를 휘~ 휘~ 둘러보았지만 그래도 덤빈다. 작아도 강아지는 아닌 것 같다. 계속 덤비면 개 값 물어줄 각오하고 걷어차 버리려 했다. 이집은 결점이 하나 보인다. 집 뒤로 고압송전선이 지나고 있다. 다시 산으로 계속 올랐다. 등산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다. 두척동은 계곡이 3개 있는데 마지막 구슬골 하나를 더 거처야 한다. 구슬골 저수지 옆으로 등산로가 있다. 이 길이 낙남정맥 길이다. 지리산 영신봉(靈神峰)에서 분기한 낙남정맥이 함안 여항산(餘航山)에서 무학산 정상을 거쳐 진달래명산 천주산(天柱山)을 지나 김해 신어산(神魚山)까지 이어진다. 경전선 철도와 남해고속도로가 지나는 마재고개는 무학산과 천주산의 경계가 된다. 진달래 명산으로 알려진 천주산은 동원 이원수선생이 작시한 “고향의 봄”의 배경무대가 되는데 문학 동인으로 인연을 맺은 그의 부인 최순애여사는 고향의 봄 보다 1년 앞서 동요 “오빠생각”을 작시하기도 했다. 다시 정상에서 중리역으로 이어지는 능선분기점까지 오른다. 정상까지 5.2km 중리역 0.6km이다. 이제 5분만 걸어 내려가면 중리역이다. 둘레길 연중 최적기는 꽃들이 만개하는 4월10일 이라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오늘 참 좋은 산행을 했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아름다운 소풍을 했다. 능선 길을 타고 내려가니 중리역이다. 14시40분,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2011년 4월6일 수요일 대체로 맑음)
진달래 만개한 무학산 산행
(서원곡 입구 관해정)
(서원곡의 봄)
오늘 등산기점 교방천 상류 서원곡 입구 관해정(觀海亭) 앞이다. 원래 이름그대로 정면으로 마산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정자인데 지금은 고층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뜰 앞에 수령360년 된 노거수 은행나무가 있다. 서원골 계곡은 두척계곡, 감천계곡과 더불어 무학산의 3대 계곡의 하나다. 이곳에 최 고운을 기려 후세 사람들이 세운 서원이 있었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 서원은 없어졌어도 지금도 사람들은 서원곡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개가 있다. 계류를 중심으로 양편에 계곡길이 있고 또다시 좌우능선에 능선길이 있다. 무학산이 진달래 명산으로 알려지면서 봄철에 가장 많이 찾는다. 이때 외지에서 온 관광버스는 주말이면 대형주차장이 혼잡하여 산복도로 갓길 주차가 일반화 되고 있다.
(서학사의 봄 풍경)
오늘은 참 오랜만의 산행이다. 2월 태백산 눈꽃산행을 한 이래 무학산 진달래꽃 산행이 처음이다. 09시10분 이곳을 출발하여 느긋하게 산행을 할 참이다. 꽃잎이 눈꽃처럼 하얗게 깔린 벚꽃터널 길을 뚫고 어슬렁 어슬렁 올라 서학사(棲鶴寺)다. 필시 학이 깃들만한 곳이다. 다시 올라 관해정으로부터 1km 거리요, 정상까지 2,2km 거리가 남은 달맞이고개다. 진달래 꽃 산행을 왔는데 달맞이 고개 주변에는 진달래는 이미지고 철쭉꽃이 만개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않음은 무학산의 봄은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18°c 이상의 날씨가 3일 이상 계속되면 철쭉이 개화하고 20°c 이상의 날씨가 3일 이상 계속되면 철쭉이 만개한다.
(서원곡 동릉의 진달래)
서마지기 평전에서 달맞이고개를 지나 능선을 따라 지맥이 이어지는 노비산(鷺飛山)은 백로 떼 들이 합포만 갯벌에 먹이를 찾아 몰려다니다가 내려앉아 잠시 쉬어갔던 산이다. 거기다 강남(양자강이남)갔던 제비까지 경쟁적으로 몰려와 이 산 언덕 민가에 갯벌을 물어다 둥지를 틀었다. 그래서 인근 원주민들은 지금도 일명 제비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노산 이은상(鷺山 李殷相)선생의 호가 이 산에서 비롯되었다. 노산은 이곳 노비산 아랫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노비산 언덕에 올라 마산 앞바다를 내려다봤다. 훗날 노산이 작시한 가곡 “가고파”의 무대가 바로 여기다. 지금은 고층건물이 앞을 가려 호수같이 잔잔한 그의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은 보이지 않는다.
(정상 아래 서마지기 평전의 진달래)
다시 능선 길을 따라 좌우로 서원골과 앵지밭골을 감상하며 정상으로 올랐다. 봉화산 능선 분기점이 가까워지자 능선 길은 온통 만개한 진달래군락지가 펼쳐졌다. 705봉 팔각정 전망대가 보이고 무학산정상부가 보이더니 만개한 서마지기 평전의 진달래군락지가 펼쳐졌다. 서마지기 평전은 정상동편에 펼쳐진 진달래 군락지다. 학교 운동장처럼 생긴 서마지기 평전을 제외한 주변 1천여 평이 넘는 진달래 군락지는 10년 전 마산시에서 억새밭에 대대적으로 진달래나무를 심어 가꾸어 이제 명실공히 진달래 명산에 올랐다.
(365계단에서 내려다본 서마지기 평전)
산 아래는 평년기준 3월23일경에 진달래가 개화하나 금년은 3월12일에 개화가 시작되고 4월18일 경에 만개하는 서마지기 평전에는 4월7일에 만개했다. 같은 무학산이라도 고도에 따라 개화시기가 이처럼 차이가 난다. 기상상태에 따라 개화시기가 다소 차이가 난다. 지대가 높은 서마지기 평전에는 이따금 개화직전에 동해를 입기도 하는데 금년은 꽃샘추위가 심하지 않아 동해 없이 10일 일찍 개화했다. 꽃도 풍작이 있다. 가까이 살았어도 오늘처럼 탐스럽게 만개한 진달래를 보기는 처음이다. 무학산 진달래 산행은 서마지기 평전에 기준을 맞추어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정상 동쪽사면 365계단 주변의 진달래)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학교 운동장처럼 생긴 서마지기 평전 주변은 만개한 진달래가 펼쳐지고, 구름 한 점 없는 오늘같이 좋은날에 그러나, 평일이라 텅 빈 운동장처럼 조용하다. 날마다 오늘같이 좋은 날이기를 바라며 정상을 향해 365일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 자꾸만 내려다 봤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만 해발700m 가 넘는 고지에 추위와 찬바람에 흔들리며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다니 그저 마음이 즐거울 뿐이다.
(낙남정맥의 최고봉 무학산 정상의 풍경)
(무학산 등산안내도)
마침내 11시10분 무학산정상이다. 표지석이 있고 무선통신 중계탑 있고 산불 감시초소가 있다. 정상에 서면 마산항과 창원시가지 멀리 거제도가 보인다. 맑은 날은 지리산 천왕봉, 합천 가야산, 창녕 화왕산, 밀양 가지산, 사천 와룡산, 고성 두류산, 의령 자굴산, 가까이는 창원 불모산과 천주산 등이 조망된다. 무학산은 낙남정맥(洛南正脈)이 백두대간 지리산 영신봉에서 분기하여 지리산 남부능선을 따라 청학동뒷산 삼산봉을 지나서 지리산 권을 벗어나면 김해 신어산에 이르기까지 낙남정맥 상에서 최고의 명산이다.
(무학산정상에서 내려다본 감천계곡과 건너 광려산)
(안개약수터 풍경)
정상에서 남릉을 타고 내려서 탑봉 동쪽 사면의 진달래 군락지도 볼만하다. 학봉능선 삼거리에서 서쪽 감천계곡 쪽으로 100m 정도 내려서면 무학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안개약수(眼開藥水 621m)터가 있다. 설에 의하면 이 물을 마시고 이 샘물로 씻으면 눈병도 낫고 소경도 눈을 뜨게 한다는 전설이 있는 샘물로 등산객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약수터이다. 안개약수를 마시고 다시 학봉능선 삼거리다. 여기서 남릉과 학봉능선이 분기한다. 남릉을 타면 만날재로 내려가고 동릉을 타면 학봉으로 간다. 학봉능선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이정표가 없는 여러 개의 갈림길이 있는데 자칫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갈수도 있으니 주의 할 필요가 있다. 어디로 내려가든지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분명한데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갈 것이면 신경을 써야한다.
(작은 학봉 정상 서편에 위치한 십자바위)
학봉능선을 타고 내려와 작은 학봉이다. 학봉은 암봉으로 된 두 개의 봉우리 중에 동쪽 것이 학봉 정상이고 서쪽 것이 작은 학봉이다. 작은 학봉정상부 서편에 십자바위가 있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인들의 기도소리가 끊이질 않았던 이 바위는 동서남북으로 정확하게 갈라져있는데 이 바위에서 일사각오(一死覺悟)로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평양형무소에서 순교한 애국지사 주기철(朱基徹1897~1944)목사가 평양 산정현교회로 부임해 가기 전 마산에 있을 적 일제의 압제로부터 이 민족을 구원해 달라는 구국기도를 드렸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에 기념비 하나, 안내판 하나도 세우지 못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무능함을 보는듯하다.
(학봉정상에서 내려다 본 서원곡)
(학봉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마산항과 돝섭 마창대교 뒤로 거가대교)
작은 학봉에서 내려와 학봉(鶴峰397m)정상이다. 학봉은 무학산의 백미로 춤추는 학의 머리에 해당된다. 두 개의 암봉과 학봉 주변에는 봄이면 군락을 이루며 붉게 타는 진달래는 학의 벼슬과도 같다. 무학산 정상부가 정면으로 올려다 보이고 마산항이 가까이서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학봉정상으로부터 조금 내려오면 학봉전망대가 있다. 마산항을 내려다보는 데는 최고의 위치에 있다. 시가지 건물의 창문이 들여다 보일듯하게 한결 가까워지고 호수 같은 마산항과 그 가운데 떠있는 돝섬 해상공원과 마창대교가 가까이 보이고 그 뒤로 멀리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巨加大橋)도 보인다. 이 전망대에서 휘엉청 밝은 보름달이 뜨는 밤에 내려다보는 마산항의 야경은 참으로 멋지다.
(추산공원 마산박물관 앞의 조각상)
가파른 능선 길을 내려와 너른 마당에 이르고 직진하여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산복도로가 지나는 길가에 있는 통일동산 쉼터이다. 산복도로 횡단보도를 건너 추산아래 소방도로를 따라가면 다락 밭쪽으로 추산공원에 오르는 길이 여러 개가 나온다. 추산(騶山)은 벚나무와 아카시아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정상에 팔각정이 있고 회원현 성터가 있다. 그 아래로 창원시립 마산박물관과 문신미술관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옛 문헌에 기록된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최 고운이 머물다간 월영대를 찾았던 13인에 13기의 시비가 있다. 서울 남산에 남산공원이 있듯 추산에 추산공원이 있다. 내가 오늘 산행에서 서원곡 입구에서 산행종료를 해도 될 것이지만 여기까지 연장한 것은 시비 앞에서 30분을 머물며 선현들의 시를 감상하기 위함이었다. 무학산과 합포만이 만나고 나무꾼과 어부가 만나는 해변 언덕의 월영대다. 고운(孤雲)과 해운(海雲)이라는 두 개의 호를 가지고 달을 사랑했던 최선은 가고 없지만, 문창후(文昌侯)라는 시호를 빌어 창원(昌原)의 지명이 생겨났으니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저녁놀에 붉게 물든 뜬구름처럼 고운 삶을 살았던 그를 사모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월영대를 찾았던 소감을 농포 정문부 (農圃 鄭文孚1565~1624)선생은 이렇게 시로 남겼다.
月影臺 回顧 (월영대 회고)
太白山南智異東 (태백산남지리동) 이곳은 태백산남쪽 지리산동쪽이라 還珠勝致似壹蓬 (환주승치사일봉) 환주의 빼어난 경치가 봉래산 같네 人家籬落千年碧 (인가리락천년벽) 인가의 무너진 울타리는 천년을 흐르고 官舍門庭百日紅 (관사문정백일홍) 관사 문 앞에는 백일홍이 붉었는데 元將候風行省消 (원장후풍행성소) 원나라장수 기풍 날리던 행성은 사라졌고 崔仙愛月古臺空 (최선애월고대공) 달을 사랑하던 최선의 옛 대가 텅 비었네 只今留興漁樵唱 (지금유흥어초창) 지금은 어부와 나무꾼의 노래만 남았고 一半平分屬醉翁 (일반평분속취옹) 나머지 절반은 술 취한 늙은이 몫이 라네!
(몽고정의 모습)
추산공원에서 계단 길을 타고 내려와 옛 마산항 철길을 걸어 돌아 몽고정이다. 학봉능선 끝자락에 옛적 말을 풀어먹이던 추산(騶山)이 있고 추산공원 아래 물 좋은 마산의 상징 몽고정(蒙古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82호)이 있다. 우물 뒤로 마산항 연결 철도가 개설되고 주변에 건물이 들어서는 등 주변 환경의 변화로 수량이 줄고 수질이 나빠져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몽고정은 고려 말(1281년) 중국 원나라 세조가 2차례에 걸친 일본정벌에 실패한 후 남해안 방어를 위해 옛 이름 환주산(還珠山)인 추산에 군사를 배치했다. 이때 려몽연합군(총사령관 충렬공 김방경 金方慶 1212~1300)이 마실 물을 위해 우물을 판 것이 오늘날 몽고정이다. 본시 고려정(高麗井)이었던 것을 1932년 일제가 우리의 역사를 말살하기위해 몽고정이라는 이름으로 비를 세워 지금껏 몽고정이라 부른다. 무학산이 서북풍을 막아 기후 좋고 물 좋은 마산은 그래서 지금도 장류와 주류산업이 발달해있다. 봄이면 동백, 매화,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수다한 봄꽃들로 꽃동산을 이루는 무학산이다. 14시30분, 여기서 오늘 산행을 종료했다.
오늘 노정은 원점회기 형으로 서원곡 입구 관해정~서학사~달맞이고개~705봉 팔각정~서마지기 평전~무학산정상~탑봉~안개 약수터(621m)~개나리 동산(학봉능선 삼거리)~완월동 삼거리~학봉~너른 마당~통일동산~추산공원~몽고정, 거리 8,6km, 5시간 20분소요.
2014년 4월9일 수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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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학산의 봄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무학산의 봄은 여느 산에 봄 꽃들보다 다양합니다.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봄꽃들이 다투어 피지요.
황사가 많은 봄이 아니면 조망이 빼어납니다.
이렇게 해설을 곁들인 정성어림 답사기를 보니 다시 새롭게 보입니다.
무학산 일대기가요.....감사합니다.
격려를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창원에 35년을 살았으니까 제 인생의 절반을 넘게 살았고요
그래서 비교적 잘 아는 편이지요.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못한 것 같습니다.
대학때..딱한번..마산 서원곡 아래로..
아구탕이였는지..ㅋㅋ
천주산도..인근이군요..
좋은 경치...늘 감사합니다!
자주뵈오니 반갑습니다.
저도 아구탕은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구찜은 가끔씩 먹어보는데요,
제게는 조금 매운 듯 합니다.
천주산은 두척동 마재고개에서
2시간30분 정도면 오를 수있는거리지요.
한 번 다녀 온곳인데요
가을 이라서 봄꽃 구경을 못했네요
해설과좋은사진 잘보았습니다 , 고맙습니다 ^*^
무학산 산행을 계획하신다면 크게 세가지로 촛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물론 기상상태에 따라 개화시기가 다소 변동이 있을수 있습니다만,
다양한 봄 꽃들을 보실려면 4월10일경 둘래길을 종주를 하시고,
서마지기 평전 진달래 군락지를 감상하실려면 4월20일경,
조망을 목적으로 하실려면 날씨가 차가운 겨울철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60년대 중반에 마산고등학교를 다녔기에,
舞鶴山 이름만 들었는데도 가슴이 설레네요.
산에 감싸여 우리 학교가 있었고,
조금 떨어져 같은 산자락 아래에 마여고와 성지여고가 있었지요.
등하교길에 마주치던 그 하얀 교복의 단발머리 소녀들도 지금은 할머니가 다 되었을 텐데,
그래도 기억 속에서만은 아직도 풋풋한 젊은 모습으로만 살아있으니,
'산이 좋아'님이 주신 뜻밖의 선물이라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비불님! 반갑습니다.
아!그러셨구요. 당시 마산고는 경남의 명문이였지요.
마산은 전국 7대 도시의 하나이기도 했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