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돈(李燉)
[생졸년] 1568년(선조 1)~1624년(인조 2) / 향년 56세
조선 중기에, 형조정랑, 사헌부지평, 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진보(眞寶). 초명은 이향(李享). 자는 광중(光仲), 호는 호봉(壺峰). 아버지는 참봉 이원회(李元晦)이다. 이공(李珙)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1년(선조 3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형조정랑·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사간원헌납을 역임하였으며, 헌납으로 있을 때 정인홍(鄭仁弘)을 논척하다가 경상도 영해부사로 좌천되었다.
1612년(광해군 4)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에 돌아가 형 이혁(李爀), 동생 이환(李煥)과 한방에서 동거하면서 화락(和樂)하게 지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성균관직강이 되었고,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영천군수에 재직 중 병사하였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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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조 학사집(鶴沙集)
처사 이공 묘갈명병서(處士李公墓碣銘幷序)
서애(西厓) 유 선생(柳先生)은 생질(甥姪) 네 명이 있는데, 모두 문학과 행실로 영남에서 이름이 알려졌다. 생질 중에 맏이 이돈(李燉)은 자(字)가 백명(伯明)이고 여주 이씨(驪州李氏)이다. 비조(鼻祖) 이벽(李璧)은 고려 때에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다.
3대가 지나서 좌찬성(左贊成)을 지내고 시호가 문절공(文節公)이고 호가 기우자(騎牛子)인 이행(李行)은 우리나라에서 태산북두(泰山北斗)의 명망을 받았으며 문집이 세상에 전하고 있다. 또 4대가 지나서 이사필(李師弼)이 있는데 공에게 고조가 된다.
증조 이태(李迨)는 사도시 부정(司䆃寺副正)을 지냈고, 조부 이원충(李元忠)과 부친 이윤수(李潤壽)는 모두 덕을 감추고 벼슬하지 않았다. 어머니 풍산 유씨(豐山柳氏)는 관찰사(觀察使)를 지내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된 유중영(柳仲郢)의 딸로, 융경(隆慶) 임신년(壬申年, 1572, 선조 5)에 공을 낳았다.
공은 효도와 우애가 천성에서 나왔는데, 임진년(壬辰年, 1592, 선조 25)의 극심한 난리와 계사년(癸巳年, 1593, 선조 26)의 심대한 기근을 만나고 부친과 모친의 상을 당했을 때에 장례와 제례에 정(情)과 예문(禮文)을 지극하게 갖추었고, 아우와 누이동생을 보살펴서 자라 독립하게 하자 향리에서 크게 칭찬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한 번 보면 다시 읽지 않았고, 주산(籌算)을 잡지 않고서도 군대에 쓰이는 비용을 터럭만큼도 실수함이 없어서 사람들이 쓰기에 알맞은 인재라고 칭송하였다. 서애(西厓)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점점 내외(內外)ㆍ빈주(賓主)의 분변을 알았고 과거(科擧)공부를 일삼지 않아 쓰임이 어긋나서 곤궁하게 살다가 죽었다.
우복(愚伏, 정경세) 정 선생(鄭先生)이 시를 지어 곡하기를,
단정하고 전아하여 바른 법도 있었으니 / 端恭雅飭有章程
이런 서애 장인 집에 이 생질이 마땅하네 / 此舅門庭合此甥
묻지 않아도 가르친 공을 알겠고 / 不問可知薰炙力
교유하여 인색한싹이사라졌네/ 與交能解鄙吝萌
라고 하였다.
아, 공을 안 사람은 우복(愚伏)이다.
공의 임종이 천계(天啓) 임술년(壬戌年, 1622, 광해군 14) 11월에 있었으니 향년이 겨우 51세였다. 12월에 용궁현(龍宮縣) 남쪽 구미(具美)의 청산 묘향(卯向) 언덕에 장사 지냈다. 첫째 부인 예안 김씨(禮安金氏)는 이조 참판 백암(栢巖) 김륵(金玏)의 따님으로 단정하고 장중하여 부덕(婦德)이 있었다.
만력(萬曆) 갑오년(甲午年, 1594, 선조 27)에 죽었으나 난리로 인하여 영천(榮川, 영주)에 임시로 장사 지냈다가 이때에 이르러 옮겨와서 합장하였다. 둘째 부인 권씨는 첨지(僉知) 권문계(權文啓)의 따님이다. 김씨 부인은 외아들 장무(長茂)를 낳았고, 권씨 부인은 장영(長榮)ㆍ장발(長發) 두 아들과 권목(權霂)에게 시집간 딸 하나를 낳았다.
장무(長茂)는 아들이 없어 장영(長榮)의 둘째 아들 만엽(萬葉)을 후사로 들였다. 장영은 만령(萬齡)ㆍ만엽(萬葉)ㆍ만종(萬宗)ㆍ만년(萬年) 네 아들과 이망구(李望久)ㆍ안기형(安基迥)에게 시집간 두 딸을 두었다. 장발은 외아들 현(鉉)과 세 딸을 두었는데, 장녀는 전오복(全五福)에게 시집갔고 나머지는 아직 어리다.
사위 권목(權霂)은 5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 다섯은 아직 어리고 큰딸은 박태로(朴台老)에게 시집갔고 한 딸은 아직 계례(笄禮)를 올리지 않았다. 내외의 손자와 손녀와 증손 남녀를 합하면 40여 명이 된다. 명은 다음과 같다.
기우자의 후손이자 / 胤胄騎牛
서애의생질로 / 宅相西厓
덕이 있으나 장수하지 못했으니 / 有德不壽
운수가 조화롭지 않았네 / 有運不諧
구미촌의 푸른 산에 / 具美山靑
꽃다운 이름이 묻히지 않으리라 / 芳名不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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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태산북두(泰山北斗):
원문의 산두(山斗)는 태산북두(泰山北斗)의 줄임말로, 태산처럼 높이 숭앙하고 북두칠성처럼 우러러 존모한다는 뜻이다.
《당서(唐書)》〈한유열전 찬(韓愈列傳贊)〉에 “한유가 작고한 뒤로 그의 말이 널리 행해져서, 학자들이 그를 태산북두처럼 우러러
받들었다.[自愈沒, 其言大行, 學者仰之如泰山北斗云.]”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02] 인색한:
《논어》〈태백(泰伯)〉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만약 주공의 재주와 아름다움이 있더라도 가령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나머지는 볼 것
도 없다.[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03] 단정하고 …… 사라졌네:
《우복집》별집(別集) 권1에 제목이 〈만이백명(挽李伯明)〉으로 되어 있고, 칠언율시 중 수련(首聯)과 함련(頷聯) 부분이다.
그리고 문(門)이 계(階)로, 해(解)가 석(釋)으로, 비린(鄙吝)이 인교(吝驕)로 되어 있다.
[주04] 생질(甥姪):
원문의 ‘택상(宅相)’은 보통 외손을 가리키지만 간혹 생질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돈(李燉)은 서애의 누이 아들로 서애에게는 생질이
된다. 진(晉)나라 위서(魏舒)는 어려서 외가인 영씨(寧氏)에게 양육되었는데, 집의 풍수를 보는[相宅] 사람이 “귀한 외손이 나올 것
이다.[當出貴甥.]”라고 예언하였는데, 훗날 위서가 사도(司徒)에까지 올랐다.《晉書 卷41 魏舒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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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處士李公墓碣銘 幷序。
西厓柳先生。有甥四人。俱以文行知名嶺表。其長諱燉。字伯明。驪州李氏。鼻祖諱璧。高麗翰林學士。三世而至左贊成。諡文節公。號騎牛子。諱行。負東方山斗之望。有文集。行于世又四世而有諱師弼於公爲高祖曾祖諱迨司導寺副正。祖諱元忠。考諱潤壽。皆隱德不仕。妣豐山柳氏。觀察使贈領議政諱仲郢之女。以隆慶壬申生公。孝友出於天性當壬。辰劇亂癸巳。大飢。遭內外艱。葬祭以禮情文備至。撫弟妹以至成立。鄕里嘖嘖。幼聰警於書史。過眼不再讀。不執籌算。軍國需用。無毫髮爽人稱適。用之才受業厓門。稍知。內外賓主之辨。不事擧子業。用是齟齬。窮以歿。愚 伏鄭先生以詩哭之曰。端恭雅飭有章程。此舅門庭合此甥。不問可知薰炙力。與交能解鄙吝萌。嗚呼。知公者愚伏也。公之卒。在天啓壬戌十一月。享年纔五十一。十二月。葬龍宮縣南具美之靑山卯向之原。前配禮安金氏。吏曹參判柏巖金公諱玏之女。端莊有婦德。萬曆甲午卒。因亂權葬于榮川。至是奉遷而合窆焉。後配權氏。僉知諱文啓之女。金氏一子長茂。權氏二子。長榮,長發。一女權霂。長茂無子。以長榮第二子萬葉後。長榮四子。萬齡,萬葉,萬宗,萬年。二女。李望久,安基迥。長發一子鉉。三女。長全五福。餘幼。權霂五男。皆幼。二女。長朴台老。一未笄。內外孫男女。曾孫男女合四十餘人。銘曰。
胤胄騎牛。宅相西厓。有德不壽。有運不諧。具美山靑。芳名不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