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잊고 버릴 때 적멸의 문 열려 / 청담 큰스님
나는 평생 염불을 해서 아흔까지 장수도 하고, 병도 앓지 않고,
꼬부라지지도 않고, 그리고 가는 날짜까지도 안다.
너희들도 그랬으면 좀 좋겠느냐.
두 달이고 일 년이고 드러누워 똥을 받아내고 한다면 그 무슨 꼴이냐.
부디 신심(信心)으로 수행해라.
세간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시작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과 사회진출을 하는 과정이 성장이다.
그래서 졸업한 학교가 있고, 배운 지식이 있다.
그렇지만 불법을 배우는 것은 불법의 맨 첫 자부터,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부터 배울 것도 수도할 것도 없는
무소득(無所得)을 목표로 한다.
중생들이 탐(貪)·진(瞋)·치(癡) 삼독주(三毒酒)에 취해
육체만 나인 줄 알고 이해타산하고 온갖 아상(我相)·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에 집착하여 복잡한 세상을 만든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탐·진·치의 삼독주에서 깨어나라.
육체가 나라는 생각을 버려라. 나다, 남이다 하는 것은
관념이고 없는 것이다”는 법문을 하신 것이다.
이것이 아공(我空)이다. 번뇌망상, 온갖 지식과 경험을 쌓아 법은 이렇고,
땅의 이치는 어떻고, 인간 사회의 도리는 이런 것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서로 죽이려 하고, 전쟁을 하고 그런다.
그러나 네가 생각하는 그런 하늘도 없고, 그런 땅도 그런 인생도 없고,
그런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고, 네가 생각하는 그런 몸뚱이도 없다는
도리를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법공(法空)이다.
부처님의 법공은 진리를 듣고 나서 여태까지 지식을 다 놓아버리고,
온갖 생각이 끊어지면, 본래 있던 적멸(寂滅) 그 자리가 나타난다.
마치 구름이 벗겨지고 나니 본래 있던 밝은 달이 나타난 것과 같아서,
아예 없던 달이 구름 벗겨지고 나서 새삼스레 생긴 것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아아, 이제 알았구나”하고 깨달았다는 생각이 있게 된다.
그래서 이 깨달았다는 생각마저 놓아 버리는 것이 구공(俱空)이다.
오래 익혀 온 모든 지식과 사상과 고집물을 남김없이 모조리 버려야 한다.
유마거사(維摩居士)는 “나는 모든 소유를 다 버렸노라”하였다.
《법화경》에는 “과거 20년 동안의 설법은 우선 집안의 똥이나 치우게
한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것은 이 마음 가운데 지니고 있던
모든 생각과 소견이나 일체 주의 주장을 몽땅 버리게 하신 말씀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도 자기의 본래 마음자리가 곧 도인 것을 잊어버리고,
도리어 이 마음이 곧 부처인 것을 부정하고,
드디어 달리 따로 법을 구하여 깨달으려고 한다.
온갖 공을 들여 갖은 수행을 다 닦아서 점차 도를 깨쳐 가자고 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억만 겁을 부지런히 닦아도
영원히 불도(佛道)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