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소
본당보다 작은 교회 단위.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에 미사 집전은 관할 본당에서 방문하여 이루어지며,
미사가 안될 경우 공소 회장을 중심으로 첨례 혹은 공소예절이 행해진다.
웬만한 본당보다 공소가 역사가 더 오래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과거의 흔적, 기도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보며 앞으로 어떤 활용이 가능할지 고민할 수 있다.
앞으로 소개되는 내용은
오안드레아 님의 블로그 My Life , 순례 & 여행 에서 가져왔습니다.
자료를 사용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이치리 공소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서이천로61번길 37
1930년대 설립되었고
지금의 공소 건물은 1986년에 축성한 것임.
이천성당 관할
정갈하게 청소가 되어있고 건물상태가 좋아 관할본당과
관계가 잘 형성된 느낌.
공소회장이 잘 관리하시고 지역신자들도 함께한다는 느낌.
2. 고초골 공소
수원교구
관할 본당: 원삼 성당
국가등록문화재 제708호
고초골 공소는 천주교 수원 교구 내 한옥 공소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고초골은 1820년경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산중에 모여들면서 생긴 교우촌이다.
그런데 고종 3년(1866) 병인박해로 이곳에 숨어 살던
천주교인들은 붙잡혀 순교하였고 마을은 불타 없어졌다.
고종 23년(1886) 조선과 프랑스의 ‘조볼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어
조선에 선교의 자유가 허락되자 이곳에 다시 천주교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기도 및 집회 장소로 사용할 공소를 마련하였다.
현재 공소 건물은 1891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인근 문촌리의 안기선 전 천안군수 댁에서
누에를 치는 데 쓰던 건물을 옮겨서 지었다고 한다.
공소 건물은 현재도 미사 장소로 이용하고 있고,
주변에는 피정 장소가 조성되어 있다.
이는 근대 천주교가 정착하면서
한옥 건물의 기능과 형태가 변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원삼면 고초골이 연고지인 병인박해 순교자
* 박 바르바라(여,17세, 충청 면천 출생, 용인 고초골 거주, 1867.1.10 서울서 교수)
* 신 안드레아(남, 65세, 충청 덕산 출생, 용인 고초골 거주, 1867.1.20. 서울서 교수)
* 유근심 치칠로 (남, 39세, 고초골 출생, 1867.5(음) 체포, 해미에서 순교)
* 유근심 치칠로의 아내(여, 고초골 출생, 1867.5(음) 체포, 해미에서 순교)
* 유근심 치칠로의 제수(여, 32세, 고초골 출생, 1867.5(음) 체포, 해미에서 순교)
▼ 고초골공소 피정의 집
3. 사리틔 공소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서리로 208
1791년 겨울 신해 박해로 체포된 권일신(F.하비에르, 1742~1792, 권철신의 아우)이
1792년 봄 유배길을 떠나다가 도중에 말죽거리에서 객사하였다고 한다
권일신이 객사하자 그의 후손들은 고향인 양근(양평)에 그를 안장하고
박해를 피해 사리틔 하반 마을(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로 이사해 살면서 형성된
교우촌에 생겨난 공소로 권일신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다.
사리틔공소 초대 회장이며 공소 강당을 지은이는
1860년대 호조판서 조일의 손자인 조면(바오로)이다.
70여 년 정에 발견된 항아리 안에는 기도 책과 묵주알이 있었다고 하며
이곳에 성명 미상의 성직자가 거처했다고 한다.
원래 공소는 초갓집이였으나
1977년에 기와집으로 재건축해서 현 건물로 봉헌된 한옥 공소이다.
'ㄱ자형'의 구조는 공간적으로 남녀의 자리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공소 앞 인물 조각상이 감동적인데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미상의 성직자를 표현한 것인지, 하느님의 종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인지..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공소다.
☞ 내가 태어나 자란 마을에서 3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공소로
어릴 때 국민학교 서리친구들 집에 가끔 놀러가기도 한 동네다.
당시는 천주교에 대해 잘 몰랐지만 부모님이 ,저기 천주학쟁이 간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고 우리집안 족보를 보니
조상들이 사기막골이라는 곳에 많이 묻히신 것을 최근에 알았다.
먹뱅이라는 곳도 김대건 신부님 흔적이 남아있고
미리내 넘어가는 길목이라는 점에서
내가 자란 곳이 교우촌이라는 것을 알게되자
덩달아 나의 신앙심이 한 뼘 정도 자란 느낌이다.
4. 퉁점골공소(터)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35번지
관할본당: 능평 성당
퉁점골은 천주교 병인박해(1866~1873)때 독실한 교우 심흥섭(요셉)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하고 동료들을 모아 이룩한 교우촌이다.
교우들은 생계를 위해 퉁쇠(거친 놋쇠)를 만들어 출하했는데,
이후 퉁쇠를 만들던 골짜기라 하여 ‘퉁점골’로 동네 이름이 명명되었다.
1882년 서울 명동성당 관할이었고, 왕림본당 구역으로 재편되어
1900년 신앙공동체를 발전시켜 ‘퉁점공소’가 되었다.
한때는 300여명 교우들이 판공을 했고,
이 땅에 신앙의 꽃을 피우기 위해 헌신한 신앙 선조들이 오가던
우리나라 남쪽 지방 선교의 다리 역할을 했던 교우촌이다.
지금도 공소를 지키고 있는 유마르타 자매님의 말씀에 의하면,
자매님 나이 17세에 6.25동란이 일었났고 22세에 이곳으로 시집왔으며,
공소 강당은 6.25전쟁으로 파손되어 강당 건물은 본인도 보질 못했다고 한다.
공소의 강당은 전쟁으로 없어졌지만 시어른과, 남편
그리고 아들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도 관리하고 있다.
사진의 종은 시조부님이 종을 마련할 당시에
소한마리를 팔아서 독일에서 수입해서 마련한 것이란다.
5. 강하공소
퇴촌성당 관할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왕창부로길64번길 1
1996년 양평본당에서 퇴촌본당 관할로 분가된 공소는
10여 년 동안 컨테이너에서 시작하여 2007년 기공식을 갖고
2008년 9월28일 최덕기 주교 집전으로 봉헌준공식을 가졌다.
하늘자리 피정의 집도 함께 봉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