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스터가 사르트르의 '철학적 정신분석'을 응용해 만든 ‘철학적 자서전’은 한 사람의 삶을 실존철학적으로 성찰하며 서사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여기서 실존철학적 성찰이란 가치관, 도덕관이나 불안과 위기, 변화, 자유, 죽음, 부조리, 절망, 책임, 삶의 의미, 자아에 대한 생각 등 실존적인 문제들을 실존철학자들의 관점과 해석을 참조하여 살펴보는 작업이다.
이하는 P님이 <실존철학상담 입문>의 10장의 연습문제를 하며 작성한 철학적 자서전 쓰기 연습입니다. '철학적 자서전'을 상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인 것 같아 작성자의 허락을 받고 공유합니다.
나는 아버지의 일로 자주 전학을 다녔다. 초등학생 때 1학년, 3학년, 5학년 마치고 전학을 갔다. 나는 잦은 전학에도 학교생활에 무리 없이 적응했다. 하지만 내 동생은 그렇지 못했다. 동생은 2학년, 4학년 마치고 전학을 갔는데, 3학년 때와 5학년 때 반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나는 동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그럴 때마다 동생네 반이 체육을 할 때 친구들과 같이 동생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혼내주었다. 내 친구들에게 나는 굉장히 정의로운 아이였다. 반에서 괴롭힘당하는 친구를 가만히 보지 못했고, 스스로 정의의 편에 있으려고 노력했다. 학교라는 사회는 부조리했다. 당시 나에게 있어서 정의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그 방법이 무엇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성인이 되고 신학대에 입학했다. 나는 공동체 생활에 잘 적응하는 학생이었다. 나는 편 가르기를 싫어했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갈등을 대화로 해결하려고 했었다. 신학을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서로를 헐뜯는 것이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말로 곧잘 친구들을 설득했고 갈등을 중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모습이 때때로 무의미한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신학대학이라는 특성상 나의 행동은 정의로운 행위로 비추어졌다. 동기와 선배로부터 나의 정의로움에 칭찬받을 때면 스스로 으쓱하기도 했다.
나는 군 생활을 육군 훈련소에서 조교로 근무했다. 당시 나는 ‘내가 상병이 되면 폭언과 구타가 없는 생활관을 만들겠다’라는 신념이 있었다. 불합리하게 폭언과 구타가 일어나는 군 생활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병이 되어서 그것을 실현하고자 노력했고, 실제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폭언과 구타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병 정기휴가를 복귀하는 날 일이 발생했다. 내가 휴가를 복귀하는 날, 이등병 하나가 취침 시간 이후에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과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면담을 거절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당직병에 의해 일찍 일어난 나는 5층에서 투신한 후임을 발견했다. 헌병대의 수사가 진행되었지만, 부대 내에 폭언과 구타행위를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일은 외부 언론사에 제보가 되었고, 부대 해체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나는 중대장님과 대대장님과 각각 면담했고, 한 명이 총대를 메면 부대 해체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영창에 갔다 오면 전역까지 편하게 있을 수 있을 것이며, 영창도 15일로 군 복무 기록에 남지 않는 선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당시의 나는 내가 영창에 가는 선택이 전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의라고 생각했다. 투신했던 병사가 천주교 신자였고 내가 부대 내에 상담 병사였기 때문에 나에게 직무 유기가 있다는 죄책감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영창에 있는 동안 해당 병사가 깨어났고, 구타와 가혹행위를 한 병사들이 지목되었다. 그들은 실형을 선고받았고, 내가 돌아왔을 때는 부대가 해체되어 있었다.
전역하고 나서 이 사건에 대해 새로운 의미들을 부여했었다. 폭언과 구타를 없애겠다는 나의 행동에는 미약하게나마 긍정적인 영향력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구타의 발생도 내가 15일 휴가를 간 기간에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중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영웅이나 되는 것처럼 이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나의 희생은 무의미했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군대를 전역하고 6개월간 아르바이트해서 필리핀으로 4개월간 언어 연수를 다녀왔다. 나는 군대의 일을 잘 극복하고 지나간 것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3학년에 복학했을 때, 나는 군대의 일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외면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주위로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나는 나의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단체의 일에는 최소한의 관심만 기울였기 때문이다.
학부를 마칠 무렵 나는 대전 신학대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해외 선교에 꿈을 품게 되었고, 보다 공동체 생활을 중요시하지 않는 선교회로 적을 옮겼다. 서울 신학대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간 나의 행로에서 내가 앞 만 보고 살고 있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당시의 나는 과거를 다시 성찰했고, 공동체 생활에 잘 적응했던 학부 2학년 때의 나로 돌아가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20대 후반의 나는 군 생활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여전히 혼자가 편했고 가능한 공동의 일을 담당하거나 책임질 필요가 있는 일은 회피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석사과정을 마치고 필리핀에 선교 교육받으러 갔다. 외국인으로 많은 배려를 받아 공동체의 일에 책임지는 역할을 피할 수 있었다. 내가 아프고 다칠 때마다 주위 학생들은 나의 편의를 봐주었다. 그리고 내가 손가락을 다쳤을 때, 나는 내가 그동안 공동체의 약자의 역할이었고 주위에서 많은 보살핌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세상의 정의라는 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의는 부조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에 지친 영혼을 보살피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의’였다. 초등학생 시절 나에게 정의는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었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신학대학에 들어가서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의의 방향도 ‘약자의 보호’에서 ‘단체의 평화’로 확대되었다. 여기에는 성인이 되었다는 책임감과 신학 공부의 영향, 개인적인 기도 생활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군대에 가서는 정의 실현이 한 사람의 노력과 희생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상병이 되고 나서 내가 속한 소대에 구타행위를 근절하려고 했다. 그리고 부대가 해체될 위기에서도 자신을 희생하려고 했다. 하지만 후임들은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구타행위를 했고, 내가 이루었다고 착각했던 정의는 나만의 착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나의 정의는 개인의 도덕 생활에 국한되었다. 선교회로 옮기고 필리핀에 가서야 나는 정의에 원동력이 ‘지인의 보호’, ‘영웅 심리’, ‘자기 위안’이 아니라, ‘나와 같이 부조리를 마주하고 있는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의에 대한 나의 가치관 변화는 각각 세상과 단체의 부조리를 대하는 나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눈앞의 부조리를 부조리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나는 내가 세상을 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세상의 부조리는 인간의 힘으로 충분히 제거가 가능한 것이었다. 군 생활 이후에 나는 부조리를 외면하려고 했다. 세상은 본래 부조리하니 나만 잘 사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사르트르는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을 통해 부조리를 대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했다. 로캉탱은 부조리를 마주하다가 존재라는 것이 본래 매스꺼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는 진정한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
카뮈 또한 시지프 신화에서 삶의 부조리에 대해 말한다. 삶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으며, 삶은 본래 부조리한 것이다. 인간은 이를 벗어나기 위해 비인간적인 노력을 하지만, 참된 인간으로서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법은 이성을 통해 세계의 부조리를 마주하는 것이다. 카뮈에 따르면 현재의 삶에 충실함으로써 부조리한 삶에 맞서서 대항할 수 있다.
실존철학자들의 이해를 통해 내가 발견한 정의는 그것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지난 삶을 반성하면서 지금 철학상담가가 되겠다는 나의 목표도 내가 단순히 철학을 좋아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설정하게 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부조리에 지친 영혼을 돌보아주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
↳ 수련감독의 촌평:
그간 배운 철학상담의 개념을 참조하며 지난 삶을 의미있게 잘 정리했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위 글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는 철학적 개념으로 짐작할 수 있어서 이 글 자체가 하나의 철학적 자기서사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