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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 Korea 100대명산 붉은 치마를 두룬듯~德遊赤裳山 가을story- 02, 2024년 10월 20dlf 기록 한문희총대장, |
이 시대 白頭大幹과 명산명소를 탐사하고 있는 자유인의 英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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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100대명산 제1기~91회차 덕유적상산 종주기록실, ►일시: 2024년 10월 20일(일요), 기록: 총대장, 이형도 外24명 ►명산숲길: 무주치목마을P~굴다리~치목마을~송대~적상사고지~적상호~안국사~안렴대~적상산정상~향로봉~삼거리~정상산성 서문지~장지영장군묘소~느티나무~주차장 ►도상: 10.2km, 실제: 11.2km, 5:10분소요, -07:18분, 양재역 1번출구 70m – 수협은행 앞 출발, -08:00시, 안성휴게소, 월드VIP28인승 이용, -09:48분, 무주 덕유산 치목마을(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1387-1) 주차장, -09:55분, 치목마을회관((지번) 적상면 괴목리 1320-2, -10:00시, 치목마을 등산로입구 진입, -10:41분, 송대폭포, -11:23분, 적상사고지(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산 117-5), -11:43분, 적상호반 제방왕복, -11:53분, 안국사 부도전(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산 184), -12:02분, 안국사일주문(國中第一淨土道場)(赤裳山安國寺),, -12:06분, 안국사 본사찰, -12:18분, 안렴대(按廉臺), 청렴한 거대암반의 안렴대, -12:27~12:57분, 적상산3거리에서 점심, -13:02분, 적상산(赤裳山 1034m), 붉은 치마의 산, -13:08분, 고사목(괴목), -13:14분, 3거리 이정목 서창마을2.8km +향로봉 0.7km, -13:25~13:40분, 향로봉(香爐峰 1024m), -13:55분, 3거리에서 강창열대장과 산제(山祭), -14:07분, 적상산성(山城) 서문지(西門址), -14:14분, 장도바위(將刀岩), -14:45분, 이정표(향로봉1.4km+서창마을1.4km), -13:10분, 서창마을 산문입구 산행마침,(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입석), -15:10~25분), 장지현 장군묘소 참배, 420년 노거송, 느티나무 견학, ►에필로그: 100대명산 90회차, 월출산산행에서 약간의 의견충돌로 인해 격한 언성이 있었으니 황망한 일들이 아닐 수가 없다, 산은 거기에 있어 우리들은 편안히 오고가며 찾아들고 위안을 찾고 있지만 정착 위로와 상처를 어루만져야하는 우리들이 상처를 남기고 있으니 큰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 없으니 심히 유감 아닌 유감들이 신령님과 상처 입은 분들에게 죄만 서럽고 송구할 뿐이다, 적상산과 향로봉 중간지점 성지(誠之)에서 정성을 다한 예절로 산제(山祭)를 모시며 안전제일주의와 긍정에 화목을 접목한 마음속 기원을 드리고 나니 복잡했던 기분이 와해지며 21기 동료들의 해맑은 사랑이 힘을 돋게 하였다, 붉은 기운이 넘치는 점토성 바위들이 띠를 이루어 붉운 치마를 상징하는 적성산의 유래처럼 붉은 색채는 정열의 상징으로 힘을 솟게 하는 기운이 있다하여 선조들도 선호하던 적상산이다, 7~800고지 정상에 산정호수가 있으니 적상호이다. 서편과 남쪽으로 바위군웅이다면 동북은 토산으로 이루어져 낙엽송과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고산에 수량도 풍부해 산정호수까지 있다 또한 산세 또한 적상산성(사적146호)과 어울림의 산성이 고려시대 거란족의 칩입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이곳 산성의 보호막이 피해를 피 할수 있도록 하였으니 또한 삼국의 치열한 국경전이 있을 만큼 군사 요충지였던 적상산이며 안국사를 위주로 수많은 암자들이 호국정신의 도량으로 또한 조선의 4대사고지에서 이곳 적상산성 5대사고지로 하였으니 기운이 성스런 땅이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교차하며 인사를 나누고 아직 초동 잎이 더 많은 단풍이 약 1주일 정도면 상징적 단풍명산의 위용이 될 성싶다, 긴팔과 보온성 자켇들이 주류를 이룬 쌀쌀한 날씨가 무겁게 느껴지지만 올 여름 하도 폭염과 전쟁을 치룬 사람들이라 마냥 해피한 기운들이 참으로 보기 좋다. 나도 덩달아 덕유 적상산을 노래하며 하산하니 서창마을 장지현장군께서 1592년 몸소 기침하시며 맞아주시고 장군송(將軍송) 420~520년수령의 노거송과 느티나무도 바람 따라 춤을 추시네, -모두 수고들 하셨습니다. 다음산행 완주 대둔산에서 만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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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 적상산(赤裳山 1.029m)<명산을 찾아서> ●소재지: 전북 무주군 적상면 ●개요: 赤裳, 다홍치마 입은 너 참으로 곱구나…전북 무주군 적상산 전북 무주군 안성면에 자리한 적상산은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에 제격인 산이다. 사방이 험한 바위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단풍이 붉게 물들면 마치 계단 위에 단풍나무를 치장한 듯 장관을 이룬다. 절벽 주변에 유난히도 빨간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철이면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것 같다고 해 적상(赤裳)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덕유산 국립공원에 속하며 한국 100경 중 하나로 꼽힌다. 850~1000m 높이의 봉우리들이 마주하고 있지만 무주군 지역이 고원지대여서 실제로는 높은 느낌이 아니다. 도보뿐만 아니라 차량으로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 일대는 흙으로 덮인 토산(土山)이라서 나무숲이 매우 울창하다. 동쪽과 서쪽·북쪽에서 금강 지류인 무주남대천의 첫 물줄기가 시작된다. 적상산에는 단풍나무뿐만 아니라 소나무도 많아 주위의 바위와 잘 어울린다. 인근에는 어디에나 감나무가 많아 가을 정취를 돋운다. 적상산은 단풍명산과 더불어 역사적으로는 군사상 천혜요새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첫 오름이 평탄한 반면 산허리가 절벽으로 둘러싸여 산세가 험준한데다 물이 풍부해 방어상 유리한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에 오르면 사적 146호로 지정된 적상산성을 구경할 수 있다. 석축 둘레는 1만6920자(5127m), 높이는 7자(2.1m)에 달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폐허가 되고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축조를 건의했다고 전해지나 조선시대의 여지승람 기록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 이 기록에 따르면 조선 세종때 체찰사(體察使) 최윤덕이 이곳을 답사하고 반드시 산성을 쌓고 보존해야 할 곳이라고 건의했으며 인조때 산성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는 산성 안에 국내 5대 사고(史庫·나라의 역사기록과 문서를 보관하는 곳)의 하나인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가 세워졌다. 성내에는 또 안국사와 호국사도 있다. 이 사찰들은 나라의 안위를 빌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특히 호국사는 1614년부터 건립된 적상산사고를 지키기 위해 세워졌다. 1627년의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에는 사고에 있던 서책들을 산 정상부의 안렴대(鞍簾臺) 아래 험준한 절벽 밑 굴에 숨겨두기도 했다. 상원사와 중원사 등도 비슷한 시기에 지어져 무예승을 양성했다. 지금은 울창한 숲 사이로 흔적만 남아 있다. 요충지였던 탓에 적상산은 신라와 백제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기도 했다. 적상산성이 축조되기 전인 고려시대 거란족이 침입했을 때 인근 수십군현의 백성들이 살해당했지만 이곳 사람들만은 안전했다고 전해진다. 볼거리도 많다. 최영 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 길이 막히자 긴칼로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장도바위를 비롯해 장군바위·처마바위·천일폭포·송대폭포 등이 등산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의 정상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로 내려다 보여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안렴대란 명칭은 거란 침입이 있었을 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 경향신문/산림청/발본 평지같은 산 정상에서 산정호수도 볼 수 있다. 적상산 분지(해발 800m)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양수 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댐인데 '적상호'라 불린다. 무주읍에서 산정호수까지는 포장도로가 뚫려 산행을 하지 않더라도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인근에 무주리조트와 무주구천동이 자리해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제격이다. ●산길 코스: ►종주코스: 치목마을 ~ 송대폭포~사고지~적상호반~안국사 부도전~ 일주문~안국사~안렴대~적상산~ 향로봉~3거리~산성 서문터~장도바위~서창마을~, 기타: 장지현장군 묘소 참배, 느티나무 괴목500년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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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 탐사 주요 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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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성(赤裳山城) 산세의 유리함 때문에 1374년(공민왕 23) 최영(崔瑩)의 요청으로 적상산성이 축성되고 거란병과 왜구의 침략 때에는 근방 여러 군의 백성이 이곳에서 항전하였다..
1614년(광해군 6)에는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를 건립하고 《조선왕조실록》 등을 보관하였다. 적상산성과 적상산사고를 지키기 위하여 1643년(인조 21)에는 호국사(護國寺)가 세워졌다.
최영 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 길이 막히자 긴칼로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장도바위
♠의병장 장지현(張智賢 1536~1593)장군, 장지현(1536∼1593)의 본관은 구례(求禮)이고,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삼괴(三槐)로 영동읍 매천리에서 태어났다. 당쟁이 심화되자 관직에 진출의 뜻을 포기하고 향리에서 문무에 힘써 그 명망이 높았다. 1590년(선조 23) 전라병사 신립(申砬)장군의 추천으로 그 부장(部將)이 되었고, 이듬해 감찰에 올랐으나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2,000명을 모아 관군과 합세하여 추풍령에서 1만여 명의 왜적과 싸워 김천방면으로 물리쳤다. 그러나 곧 금산방면에서 공격해 온 왜군의 협공을 받아 사촌동생 호현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다. 나라에서는 장군의 높은 뜻과 애국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순국한 장군을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하였고, 정려되었으며, 영동의 화암서원(花巖書院)과 무주의 죽계서원(竹溪書院)에 배향되었다. 장지현 장군 순절비와 사당은 순국지인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사부리에,1994년 12월 30일 충청북도의 기념물 제96호로 지정 건립되었다. 사당은 자손이 살았던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1978년 사당을 건립하였고 묘소는 무주군 적상면 사창리 서창마을에 모셔져 있다. 묘소에는 400년이 넘는 노거수(老巨松) 소나무가 있고 묘지아래 마을에는 500살 된 느티나무(槐木)들이 있다, |
서창소나무 향토문화유산 제2호,
수령420년생으로 주변 식생과 잘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몸통둘레 2.5미터 소나무 높이(키) 8미터로 2갈레 큰 몸통형이다.
적산산성 서문에 위치한 서창마을에 소재하고 1592년 임진란 때,
큰 공을 세운 장지현장군 묘소에 수문장처럼 당당히 서 있다.
서창마을 520년 느티나무 제9-8-36호 기념물,
무주군 적상면 사창리 서창마을에 소재한다. 이곳 표석에 전문이 있어 옮깁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이렇게 서 있습니다.
이 땅에 일어났던 모든 재난속에서도
오직 당신을 위해 의연히 서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아끼고 사랑해 주신다면
당신과 당신의 후손들 곁에서 억겁을 살으렵니다.
' 가슴 찡한 槐木의 사랑(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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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하나 남기는 센~스,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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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덕유 적상산 STORY- 사진 이모저모 사진첩 - 03 이어집니다.
다음삼행: 100대명산 11월 3일 호남의 소금강 "대둔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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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audio src="https://blog.kakaocdn.net/dn/cE52Hz/btskuXjkuWp/2qLN3mEqHeuZRIq6GgA0cK/tfile.mp3"autoplay loop>
"The Sound Of Silence (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침묵의 소리 (원곡 싸이먼 가펑클) 팬플루트"</audio>
<힛트 팝>- 침묵의 소리 (The Sound Of Sil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