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에세이】
황토 화단 맨발 걷기와 ‘폐지 수거 할아버지’
― “당장 손수레에 담아도 좋을 ‘쉬운 설명’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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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에세이】
황토 화단 맨발 걷기와 ‘폐지 수거 할아버지’
― “당장 손수레에 담아도 좋을 ‘쉬운 설명’이 필요해요.”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ysw2350@hanmail.net
황토 화단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 그중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인상 깊은 분들도 많다.
● 사탕을 건네주며 “오늘도 건강해 보이십니다”라고 꼭 먼저 인사하는 목사님이 그러했고,
● 언제 만나도 밝은 얼굴로 “오늘도 행복이 넘쳐 보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국가유공자 모자를 쓴 자원봉사 ‘노란 조끼’ 할아버지도 그러했다.
어디 그뿐인가.
● “선생님이 부러워요. 저도 시간을 내서 선생님과 함께 황토 맨발 걷기를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전통찻집 여주인도 그러했다.
언제 만나도 앳된 소녀처럼 생글생글 웃는 전통찻집 아주머니는 누구보다 맨발 걷기 효과에 대한 상식이 풍부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계족산 황톳길’을 다녀본 분이다.
나 역시 계족산 황톳길을 다니다가 시내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황토를 사다가 내 집 화단에 깔았다.
계족산 황톳길을 손바닥(?)만큼 내 집에 옮겨놓은 셈이다.
▲ 계족산 황톳길 - 필자가 즐겨 찾았던 ‘건강관리 명소’다.
▲ 학생들이 “어르신 놀이터!”라고 이름 붙인 우리 집 황토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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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은 뜻밖의 폐지 수거 할아버지가 내게 다가왔다. 그동안 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고물이나 폐지를 수거하느라 내겐 전혀 관심의 눈길을 주지 않았던 어르신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같이 황토 화단에서 맨발 걷기를 하시는데 어디가 좋은가요?”
손수레를 끌고 노상 바쁘게 골목을 누비는 어르신이지만 오늘은 평소 궁금했던 것에 대해 작심하고 물어보시는 듯했다.
어떻게 답을 드리면 좋을까? “어디가 좋으냐”고 물으셨으니 그에 합당한 답을 드려야 할 텐데 한마디로 설명이 어렵다.
“좋은 데가 많아요. 우선 기분이 좋아져요. 황토를 밟으면 머리가 맑아지고요. 혈액순환이 잘 되니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것을 느껴요. 각종 질병 면역력에도 좋다고 하네요.”
하지만 나의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기분이 좋아진다”라는 것도 손에 잡히는 표현이 아니다. ‘면역력’이란 말도 추상적이다.
‘혈액순환’은 이해하기 쉽지만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라는 말 역시 당장 ‘돈이 되는 폐지’처럼 손에 잡히는 표현이 아니다.
‘신진대사(新陳代謝)’란 무엇을 말하는가. ‘섭취한 영양물질을 몸 안에서 분해하고 합성하여 에너지를 생성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질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작용’이다.
어르신은 나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더니, 다시 묻는다.
“허리 아픈데도 그걸 하면 낫나요?”
그렇다. 바로 그거다. 할아버지가 정작 알고 싶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의학용어나 학술적인 설명이 아니라 어느 특정 부위 아픈 증상이 당장 어떻게 좋아지느냐에 있다.
가령 현대의학으로 어쩌지 못하는 난치병이 나았다든지, 만성 요통처럼 고질병이 치유됐다든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설명이 듣고 싶은 것이다.
“저도 만성 요통으로 오랜 세월 고생 많이 했어요. 물리치료도 받아봤고요. 그런데 황토 맨발 걷기 이후 놀랍게 좋아졌어요.”
그러자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딘가 좋아지니까 그렇게 매일같이 황토 밟기 맨발 운동을 하시지요.”
▲ 매일 같이 일상화한 황토화단 맨발 걷기 - 많은 분들이 말을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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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수거 어르신과 모처럼 건강정보를 나누고 헤어지려고 하니 뭔가 아쉬웠다.
어르신에게는 당장 돈이 되는 폐지 수거가 중요하지, ‘허리 치유는 나중’이라는 표정이 읽혔기 때문이다.
허리가 아파도 참고 손수레를 끌어야 하는 할아버지의 처지를 생각하면 나는 얼마나 호사를 누리고 사는가.
‘건강관리’라는 것이 좋은 줄은 알지만, 저 어르신이 보기엔 나의 모습이 혹여 부러움을 넘어 사치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내가 어르신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것은 건강 상식을 설명해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돈이 되는 폐지가 먼저다.
마침 어르신에게 드릴 폐지가 내 집에 수북이 쌓여 있다. 처분해야 할 책도 수백여 권 있다. 폐지 수거 할아버지가 가장 반가워하는 ‘신문지’도 수개월 분 치가 쌓였다.
어르신에게 이것을 내드렸더니, “고맙습니다”라는 인사 말씀을 세 번이나 거듭하셨다.
황토 화단에서 ‘맨발 걷기 운동’하는 나를 사치스럽게 보진 않는 것 같았다. 어르신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맨발 걷기 운동을 시작할 것처럼 보였다.
어르신이 내게 보내주시는 따뜻한 눈빛.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응원의 미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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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7.
마음은 즐겁게, 몸은 가볍게, 대화는 유익하게!
황토화단에서 스마트폰 노트로 일상적으로 기록하는
‘윤승원의 황토 화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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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맨발걷기 전국운동본부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