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예악 사상((禮樂思想)>/구연식
예술의 목적은 인간의 올바른 품성을 기르며, 도덕적 교훈이나 모범을 제공하여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도덕적 성숙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술은 감정을 순화, 심리적 안정과 즐거움 부여, 공간과 소통의 매개체로서 인간 상호 간 교류의 수단으로 법과 도덕이 치유하지 못한 심리적 정화 역할을 해야 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유희를 즐기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여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유희인(遊戱人)이라고 한다. 도덕과 예술의 상호보완성을 강조한 주(周) 나라의 예악(禮樂) 사상, 그리스의 선미(善美) 사상, 칸트의 미(美)는 선(善)의 상징이다, 그리고 정약용의 윤리적 음악관 등은 예(禮)의 전형적인 도덕만으로는 올바른 인간 정립이 어려워 악(樂)의 조화를 강조한 선현들의 설파(說破)였다.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 규범 중에서 강제력으로 규정하고 어기면, 처벌을 강요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독일의 옐리네크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성현들은 바람직한 세상 추구를, 도덕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 삶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도덕을 기반으로 하는 개인의 양심과 선한 의지만으로는 세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위정자(爲政者)들은 법의 카테고리를 씌워 세상과 인간들을 다스렸다. 그런데 법은 외형적인 행동만 규제하지, 행동을 유발하는 의식은 규제하지 못했다. 더 강력한 형벌과 교정(矯正) 시설에 감금해도 ‘흰 개 꼬리를 굴뚝에 삼 년을 넣어도 도로 흰 개 꼬리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 교정학자(矯正學者)들은 사회질서와 교정학의 괴리(乖離) 현상에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헤겔은 변증법(辨證法)에서 사물이 운동하는 과정에서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으로 인해 자신을 부정하게 되고, 다시 이 모순을 지양함으로써 다음 단계로 발전해 가는 논리적 사고법을 설명하며, 역사와 인간 정신의 발전에 대한 이해를 제시했다.
황량한 지평선에 사다리처럼 쭉쭉 뻗어 누워있는 철로 끝이 붙어있거나, 한 눈으로 들어오는 시원하고 가물가물한 가로수 길 끝이 붙어있다면, 기차나 자동차가 그곳에서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런데 미술의 원근법 표현에서는 실제로 만난 것처럼 가공의 만난 점을 소실점(消失點)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만나서는 안 되지만 가상의 세계에서는 소실점으로 처리하여 무한의 상상력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물리적 평행선은 좁힐 수 없지만, 심리적 평행선은 얼마든지 좁힐 수 있는 정반합의 원리이다.
노(魯) 나라의 공자(孔子)는 어려운 출신 성분을 극복하고 신분 상승 목표로 장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인문 과목과 무예 등을 습득하여 30대에 이미 훌륭한 스승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노나라의 재판관이며 최고위 관직인 대사구(大司寇) 등 공직을 맡아 참여했으나, 정치적 생명은 길지 못했다. 정치의 좌절에 십 수 년을 천하철환(天下轍環)으로 망명하다가 결국 고국으로 돌아와 예(禮)와 악(樂)으로 사람을 교화하여 인(仁)을 실현하는 후학을 양성했다.
규범과 도덕만으로는 바람직한 세상을 펼칠 수 없으며, 참된 삶을 구현할 수 없으므로 진실한 인간다운 삶의 추구와 실현에 몰두했다. 공자는 예(禮)에서 사람이 서고 악(樂)에서 사람의 인격이 완성된다. 즉, 명랑한 사회는 건전한 문화와 예술에서 이루어진다. 그중에서 예와 악의 조화를 추구하는 예악사상(禮樂思想)을 역설했다. 예는 전형적인 규범으로 천차만별인 사람들의 개성을 정해진 틀에 익히며 행동을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거부하거나 역 효과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악(樂)은 크게 음악(音樂)과 회화(繪畵)로 구분할 수 있다. 음악과 회화는 각자의 처지에서 보면 피사체(被寫體)로써 수동적이다.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피사체를 능동적으로 바꾸어 자기화(自己化) 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예술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 그리고 용기와 온화함을 주기도 하며 때로는 성냄, 좌절, 비관 등을 억제하고 새로운 삶의 의욕을 주기도 한다. 무미건조하고 반복적 지시와 명령적 학습에 의존하는 예(禮)에 비해 예술은 강요도 학습 능력이 없어도 원초적 본능으로 우리의 심성을 쉽게 순화되어, 바른 사회와 바른 삶의 구현에 예와 더불어 정반합의 원리이며 소실점의 감명이다.
우리는 예(禮)에서 지치고 망가진 삶을 악(樂)에서 보충하며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행동하고 있다. 예술의 도덕주의(道德主義) 자 플라톤(platon)은 예술의 존재 이유는 ‘선(善)을 권장하고 덕성(德性)을 장려하는 데 있다.’라고 하였다. 현대 사회는 각종 매스컴과 최첨단의 음향기기와 영상매체가 발달하여, 눈을 크게 뜨고 귀를 바짝 기울이면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음악과 미술을 무한정 접할 수 있다. 행여 잘못된 예술이 못된 인성으로 물들게 할지 기우(杞憂)가 된다. 인간의 바른 삶은 예(禮) 와 악(樂)을 정반합으로 절충하여 소실점으로 승화된 예악사상(禮樂思想)을 권장해 본다. (2024,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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