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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장사찰자료실 스크랩 경주지역의 마애삼존불 4 - 삼릉골 선각6존불. 윤을곡 마애삼체불좌상
소윤당 추천 0 조회 54 13.12.21 20:1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경주지역의 마애삼존불 4

 남산 삼릉계 선각6존불. 윤을계 마애삼체불좌상

 

 

삼릉계곡은 입구에 아달라왕(傳阿達羅王), 신덕왕(神德王), 경명왕(景明王) 세 개의 왕릉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의 여러 골짜기 중에서 가장 많은 불교 유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계곡으로 총길이는 1.84㎞이며,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계곡에는 10곳의 절터와 11기의 석불상,  6존선각불이 있으며 수많은 석탑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삼릉계 선각6존불

 

 

 

 

 

 

선각6존불이 있는 삼릉계 제3사지는 동쪽으로 언덕 위에 병풍을 둘러 놓은 듯한 바위가 동서로 길게 있고 이곳에 선각삼존불입상과 선각삼존불좌상이 있는 곳이다.

현재 건물지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선각된 바위면에 약 10㎝ 크기의‘ ’형 홈이 있어 이곳에 목조가구를 설치하여 법당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선각삼존불좌상 앞에는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는 옥개석편이 있다.


 


 

언덕 위에 병풍을 둘러 놓은 듯한 바위가 동서로 두 곳에 있다. 서쪽 바위는 높이가 약 4m이고 너비는 3.58m, 동쪽 바위는 서쪽 바위면에서 3m 뒤에 서쪽 바위와 같은 방향으로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높이는 역시 4m 정도이고 너비는 7.27m 이다. 남향한 바위면은 거칠게 다듬고 동서쪽에 각각 삼존상을 새겨 전체 6구의 불보살상이 있다

즉 동 서쪽의 바위에 각각 3존불이 있는데 동쪽면에 새겨진 삼존불은 중앙에 설법인(說法印)을 맺은 여래상이 넓은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반면 좌우의 보살상은 서 있는 형식이며, 반대로 서쪽면의 삼존불은 본존은 입상이지만 좌우의 협시는 본존 쪽으로 무릎을 꿇고 꽃 쟁반을 받치는 특이한 형식이다.

이러한 대조적인 구도는 간결하면서도 우아한 필치와 함께 보는 이로 하여금 물결이 흐르듯 율동적인 동세(動勢)를 느끼게 한다. 간결한 필치의 여래상은 모두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대의를 걸쳐 풍만한 신체 볼
륨이 여실히 드러나지만 동쪽면의 여래좌상은 다소 살찐 모습이어서 대조를 이룬다.

반면 보살들은 늘씬한 신체에 화려한 장식과 율동적인 천의(天衣)가 유창한 곡선으로 표현되었는데, 본존쪽으로 몸을 틀거나 무릎 꿇은 자세가 자연스러워 암각불화로서의 회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곳의 선각육존불은 다듬지 않은 자연 암반 위에 자유로운 필치로 그린 그림을 선각으로 새겼으니 조각(彫刻)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림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들은 면적(面的) 이 아닌 선적(線的) 인 것이며 양감(量感)(Volume) 이 없다.

 

신라에서 선각의 마애불은 8세기 말~9세기 초에 조성되기 시작하는데, 경주 남산 삼릉계곡선각육존불과 경남 함안 방어산마애불(801년) 등이 대표적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석가삼존불

 

 

 

석가여래삼존불은 동쪽에 위치한 바위면에 있는 삼존불이다

본존 석가여래는 넓은 연꽃 위에 앉아 계시고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은 본존의 양 옆에 서 있다.

석가여래상은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큼직한 육계에 얼굴은 원만하고, 목에는 三道를 두 줄의 선각으로 표현하였다.

법의는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가사를 입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엄지와 검지를 맞댄 설법인(說法印)이며 왼손은 무릎 위에서 손바닥을 펴 배 앞에 댄 선정인(禪定印)이다

 

왼쪽의 문수보살은 바위 표면의 절리로 인해 마멸이 심하여 모습을 잘 알 수 없으나 연꽃 위에 서서 오른손은 설법인으로 가슴에 들고 왼손은 아래로 드리운 채 천의(天衣)자락을 잡고 있는 듯하며 얼굴은 여래쪽으로 돌리고 있다

 

오른쪽 보현보살은 두광을 갖추고 연화대좌 위에 서 있는데, 오른손은 들어 손등을 위로 하였고 왼손은 늘어뜨려 군의자락을 가볍게 잡고 있다. 두 발은 발꿈치를 중심으로 좌우로 향하고 있다. 상반신은 나체이며 군의를 입고 있는데 허리 아래에서 띠로 묶었다.

 

두 보살은 모두 구슬을 꿴 목걸이를 걸고 팔과 손목에 팔찌를 끼웠을 뿐 상의는 입지 않았다.

두 보살이 여래쪽으로 비스듬히 향하고 있음으로 바위 분위기는 아늑하게 표현되어 있다

 

 

 

아미타삼존불

 

 

 

 

석가삼존불에서 약 3m 앞의 바위 절벽면에 선각되어 있는 아미타삼존불은 석가삼존불과 반대로 본존여래가 연꽃 위에 서 있고 양쪽 협시보살은 연꽃 위에 앉아 있다.

삼존 모두 원형의 두광과 복련의 연화대좌를 표현하였다

 

아미타여래불은 둥근 얼굴에 목에는 두 줄로 된 삼도를 표현하였고 오른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가슴에 들고 왼손바닥은 위로하여 배 앞에 들고 있다. 가사는 우견편단우견으로 몸에 걸쳤는데 신광(身光)은 없고 두광(頭光)만 원으로 나타나 있다. 

둥글면서 벌어진 어깨는 강건한 느낌을 주면서 허리는 매우 가늘게 표현하였다.

 

좌우협시보살상은 각각 꿇어앉은 자세로 본존을 향하여 꽃 공양을 하고 있는 자세이다. 형태로 보아 활짝 핀 연꽃으로 보인다. 두 보살은 모두 둥근 구슬목걸이를 걸었고 팔과 손목에는 팔찌를 끼었다. 어깨에는 얇은 천의를 걸쳐 있으며, 천의자락이 나부낀다.

 

왼쪽의 관세음보살상은 여래쪽으로 향해 윤왕좌(輪王座 ;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는 법)로 앉아 꽃 쟁반을 들었고 오른쪽 팔 아래에 천의 자락이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

오른쪽의 대세지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반대 모습으로 앉아 역시 꽃 쟁반을 들고 있다.

본존여래가 앉아 있고 협시보살들이 서 있는 예는 보통 있지만, 여기 처럼 여래가 서 있고 보살들이 앉아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생전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많이 부르고 착한 일을 한 사람이 죽으면 아미타 여래가 보살들을 데리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맞으러 지상으로 하강한다. 그때 여래는 서고 보살들은 앉는데 이러한 모습을 내영아미타상(來迎阿彌陀像)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 바위면의 삼존상은 '내영아미타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미타래영(阿彌陀來迎)이란  아미타불이 직접 그의 권속과 함께 마중해서 서방극락으로 맞이해 간다는 염불왕생신앙(念佛往生信仰)에서 나온 것이므로 그 모습을 염불하는 중생을 맞이하거나 인도해 가는 모습이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이 삼존불의 자세는 정면을 향한 여래상을 향해 보살이 공양하는 장면이어서 이를 아미타래영(阿彌陀來迎)의 장면으로 보기는 어렵다

 

 

선각육존불이 있는 바위 위에는 홈을 파서 물길을 돌려놓았고, 기둥을 세웠던 흔적과 주변에 기와편이 흩어져 있어 바위 상면에는 가구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각삼존불좌상 앞에는 파손이 심한 탑재가 있다. 크기는 65×65㎝로 낙수면은 모두 결실되었다. 옥개받침도 2단만이 남아 있고, 전체 높이는 22㎝이다. 현재 이곳에는 다른 탑재가 없어 원래 상류의 사지에서 굴러 떨어진 탑재로 추정된다

 

 

선각육존불상 남편 굴바위
육존불에서 50m 정도 내려와 등산로 남편에 높이 1.7m?폭 2.5m?깊이 3.5m 되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굴이 있는 바위가 있다. 바위 앞쪽으로는 2m 폭의 석축을 1m 정도 쌓아서 감실을 놓아두었고, 굴 내부의 왼편으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제단을 볼 수 있다.

감실 옆으로 연결된 바위면에도 민속신앙이 행해진 흔적이 있고, 감실이 놓인 석축 앞으로 4m 정도의 넓은 단이 있다

 

 

윤을곡 마애삼체불좌상

 

 

 

 

 

포석정을 지나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오르는 골짜기가 윤을곡이다. 윤을곡을 이곳 사람들은 유느리골이라 부른다. 450m 정도 올라가다 보면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왼쪽 길가에 윤을곡 마애불좌상을 안내하는 자그마한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난 산비탈 길을 따라 70m 정도 오르면 산등성이에 남산 성벽이 허물어진 채 있다. 성벽 밑 산비탈에는 많은 바위들이 솟아 있는데, 그 중 조금 커 보이는 바위가 마을사람들이 삼신바위라고 부르는 불상이 새겨진 바위이다

 

바위는 높이 3m이고 너비 6m 가량 되는데, 묘하게 'ㄱ'자형으로 절벽을 이루고 솟아있으며 넓은 면은 2.5m로 남향이고 좁은 면은 90cm 넓이로 서향을 향하고 있다.

넓은 면에는 2구의 여래좌상이 새겨져 있고 좁은 면에는 한 구의 여래좌상, 이렇게 3개의 상이 새겨져 있어  마애삼체불좌상( 磨崖三體佛坐像)이라고 한다.

 

마애삼체불좌상은 바위를 40∼50㎝ 안으로 깎아 면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부조를 하였는데 모두 약한 돋을새김을 하였고, 특히 넓은 바위면의 안쪽 두 불상은 안쪽을 파고 밖을 선을 돌리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9세기 경주 지방의 불상 가운데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은 남산 윤을곡(潤乙谷) 마애삼불(磨崖三佛) 뿐이다. 이 마애불은 그동안 고려시대의 마애불로 알려졌으나, 근래에 북쪽 면 본존불의 왼쪽 어깨 위에서 '태화 9년 을묘(太和九年乙卯)'라는 명문이 확인되어 신라 흥덕왕 10년(835년)에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기년명이 있다고 해서 이 불상이 당시 조각사의 기준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넓은 띠로 표현된 광배나 변형된 수인, 대의 속에 가려진 가부좌한 발 등에서 이 마애불은 통일신라 조각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고 조각 수법도 치졸하여 얼굴은 형식적이고 무표정하며 신체 비례도 부자연스럽고 옷주름에는 질서가 없다. 전체적으로 신라 말기의 조야한 양식이 두드러진다

 

이 마애불을‘마애삼존불’로 부르는 이도 있지만, 이는 본존불 좌우에 보살상이 협시한‘삼존불(三尊佛)’이 아니라 세 여래상이 나란히 배치된‘삼불 또는 삼체불(三體佛)’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석가여래좌상

 

 

            

 

남향으로 있는 벽면에는 왼쪽에 석가여래좌상이, 오른쪽은 약사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석가여래는 꽃잎마다 보상화가 새겨져 있는 두겹 연꽃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다.

오른손은 위로 들고 왼손은 아래로 들어 설법하는 모습인데, 얼굴은 좁고 길며 육계는 크고, 두툼한 큰 귀는 어깨에까지 드리워져 있다. 깊이 패어진 아래 눈두덩이나 큰 입은 서향한 여래상을 많이 닮고 있다.

 

통견으로 입은 가사자락은 역시 무릎을 덮어 두 발을 가렸고 가사깃 사이로 넓게 드러난 가슴에는 군의를 동여맨 끈 매듭이 드러나 보인다. 가슴은 양감이 없는 편이어서 빈약해 보인다

머리 뒤와 몸체 뒤에는 굵은 선으로 둥글게 두광과 신광을 나타낸 모습도 서향한 여래상과 같은데 이 불상에는 화불이 새겨져 있지 않고 옷주름이 선명하여 생기가 도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서향한 불상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이 불상 왼쪽에 '太和乙卯九年(태화을묘9년)'이라는 명문이 있다. 태화 9년은 신라 42대 흥덕왕 10년(835)에 해당되는데, 태화 9년을 이 불상을 조성한 절대연도로 보고 있다.

 

 

약사여래상

 

 

 

사실적으로 새긴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왼손에 약 그릇을 들고 오른손은 엄지와 둘째 손가락을 짚어 무릎 위에 얹어놓은 아주 부드러운 자세로서 약합(藥盒)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로 추정한다.

 

오른쪽 석가여래불보다 조금 작으며 얼굴이 길고 턱이 각져 있지만 미소를 띠어 부드러운 인상이다. 육계는 나지막하고 얼굴은 둥글며 눈은 가느스름하고 두 뺨에는 살결이 풍성하여 미소를 머금은 다정한 모습이다.

가사는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입었는데, 그 자락은 역시 무릎을 덮고 있다. 광배는 주형으로 얇게 파고 두 줄의 둥근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나타내었다.

앞의 두 불상은 표정이 없고 딱딱한데 비해 이 불상은 살결이 풍성하고 옷주름이 부드럽고 생기 있을 뿐 아니라 표정이 상냥하여 훌륭한 조각솜씨를 보이고 있으나 상체에 비해 하체가 너무 높아 비례가 조금 맞지 않는 것이 흠이다.

 

불상 높이는 64cm, 무릎너비 60cm 크기이다.

 

 

두 불상 머리 위에는 길게 홈을 파서 빗물이 앞면에 흘러내리는 것을 막아 물길을 돌려놓았다.

 

 

 

서향을 향하는 바위에 얇은 돋을 새김으로 나타낸 여래좌상이 있다.

세 구의 불상 가운데 조각솜씨가 가장 떨어지는 이 불상은 연꽃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앉아 왼손에 보주를 들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배에 대고 있다. 갸름한 얼굴에 육계가 크게 솟았고 깊이 패어진 눈썹 아래 두 눈두덩이가 둥그스름하게 나타나 있다.

코는 길고 입도 비교적 크게 생겼고, 귀는 두툼하고 크게 보이며 목에는 한겹 주름이 나타나 있다.  통견의 법의는 가슴이 넓게 드러나 있고 옷자락은 무릎을 덮어 발을 가리고 있다.

 

머리와 몸체 뒤에는 굵은 선으로 둥글게 두광과 신광을 나타내었는데 각각 2체씩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다.  얇은 돋을새김으로 표현된 이 화불들은 앙련(仰蓮) 꽃송이 안에 들어앉아 있는 듯이 보인다. 옷자락이 무릎을 덮고 있는 모습이나 선정인(禪定印)을 한 손의 표현이 매우 서투른 점등을 보아 장인의 솜씨로 보기 어렵다

불상의 높이는 75.5cm, 무릎 너비는 65cm이다.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로 보는이도 있지만 남쪽면에 약사여래좌상이 있으므로 보생여래로 보는 견해가 많다. 보생여래는 대일여래의 평등성지로 부터 나온 여래로서 실갗이 금빛이며 네 보살을 거느리고 일체의 재물과 보매를 맡고 있는 여래라고 백과사전은 설명하고 있다

 

 

이 삼체불의 주위에 많은 기와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주변에도 건물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데, 법당 안에는 아미타여래가 모셔져 있지 않을까 한다. 이 바위에 새겨진 세 불상과 아미타여래를 합하면 사방불(四方佛)이 되기 때문이다.

  

윤을곡 마애불좌상은 언뜻 보면 그다지 내세울 게 없어 보이는 마애불이지만, 조성연대가 확실한 신라불상으로서 가치가 높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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