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영화 ‘파묘’는 꽤나 영리한 영화이다. 영화를 두고 글을 쓰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야기가 촘촘하게 하나 하나 다 연결돼 있어 어느 한 군데라도 톡 건드리면 줄거리 전체가 공개되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된다. 특히 무덤 속에서 나온 악귀의 정체를 건드리면 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 궁금증이 확 꺾이게 될 것이다. 영화평론가가 지켜야 할 룰 중에는 영화의 정체를 관객들이 직접 찾아 내고 또 그 의미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는 게 있다. 먼저 나서서 이 배는 어떻고, 저 감은 어떻다는 둥의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유도등을 켜기 위해서 몇 가지의 키워드를 사용할 수는 있다. 영화 ‘파묘’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와 전혀 상관이 없는 얘기지만 알아서 새겨 읽고 생각하면 된다.
영화 '파묘'의 한 장면
신라호텔 영빈관은 남산 지맥을 끊는 자리라는 류의 이야기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호텔인 신라호텔은 영빈관(迎賓館 : 귀빈을 모시는 환영장소, 파티 장소)으로 유명하다. 윤석열도 대통령 취임식을 여기서 했다. 그런데 이 신라호텔의 영빈관은 일제의 조선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당 자리였다. 박문사라고 했다. 영빈관의 자리는 한양 성곽이 이어지는 4개의 산, 인왕-북악-낙산-남산 중에 낙산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길의 복판이다. 이 자리는 응당 안중근을 모시는 기념관이 지어져야 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오랜 주장이다. 그런데 왜 이토 히로부미 사당이었던 박문사 부지가 신라호텔로 넘어갔느냐. 1966년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공화당을 창당하기 위한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했다. 박정희는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불법적인 수단을 총동원했는데 그중 하나가 일본 마쓰이 그룹과 공모해 사카린 약 55톤 분을 밀수한 삼성 이병철 회장의 불법행위를 눈감아 주는 대신 막대한 뒷돈을 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병철에 대한 보증과 사례로 영빈관 대지를 양도해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영빈관은 일본 제국주의가 당시 대한제국의 맥을 끊고 특히 남산의 정기를 끊기 위해서 만든 박문사 터에 세워진 것이다. 한국에 지관, 풍수지리사가 있듯이 일본의 음양사가 한 짓이다.』
자, 영화 ‘파묘’는 이런 류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영화가 신라호텔 영빈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얘기라는 건 결코 아니다. 박정희와 삼성이 관련된 것도 절대 아니다. 그냥 그런 류, 그런 분위기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영화에는 주요한 캐릭터가 세 명, 아니 네 명이 나온다. 풍수사, 곧 지관인 김상덕(최민식)과 장의사인 고영근(유해진)이 있다. 무당은 이화림(김고은)과 윤봉길(이도현) 두 명이 나오는데 누나와 박수무당 동생이다. 눈치 빠른 관객들은 극중 인물들의 이름 중 ‘윤봉길’에 눈길이 갈 것이다. 장례사 고영근의 장의 숍(shop) 이름은 ‘의열 장의사’이다. 이쯤 되면 밝힐 것은 다 밝힌 셈이 된다.
영화 '파묘'의 한 장면
비벌리 힐즈와 원주 깊은 산에 얽힌 사연 찾는 박수무당 ‘윤봉길’
배경은 바로 지금이다. 미국 LA, 그것도 비벌리 힐즈에서 살고 있는 어떤 노인과 그의 손자가 이상한 병에 걸린다. 손자의 형, 먼저 태어난 아이는 아예 이유도 없이 죽는다. 돈이 너무 너무 많은 이 부자 집안은 한국에서 용하다는 무당인 화림을 부른다. 당연히 봉길이 따라 간다. 그 자신이 ‘귀신’인 화림은 악귀의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이들 가족이 조상 묫자리를 잘못 썼다면서 이장을 권한다. 묫자리를 새로 알아 보기 위해서는 풍수사와 장례사를 써야 하고 당연히 돈이 많이 들 터.
이 부자 집의 조상 묘, 그러니까 지금 희귀병을 앓고 있는 손자의 증조부의 묘는 강원도 어딘가에 있는데 부호의 선산이라고 하기에는 기이할 만큼 깊고 어두운 골짜기에 있다. 지관인 김상덕은 단박에 악지(惡地) 중에 악지임을 안다. 무당 화림은 관 속 악귀를 빼내기 위해 유인 굿을 벌이고 사람들은 무덤(묘)을 깨고(파) 관을 꺼낸다. 그런데 우연찮은 일, 정확하게는 영안실 관리인의 욕심이 관 뚜껑을 열게 만든다. 당연히 이때부터 온갖 심상치 않은 죽음이 이어진다.
영화 ‘파묘’는 오컬트인 척한다. 심령과 악귀, 주술, 부적이 난무하고, 주문(呪文)을 발바닥에 쓰고(王자를 손바닥에 쓰듯이) 얼굴 전체에 먹으로 글귀를 새긴다. 악령에 맞서기 위함이다. 주인공들은 무덤 안에서 뭐가 나오든 자신들은 모른 척, 이장비나 잘 챙겨서 한몫 보면 그만일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에’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김상덕은 우주공학을 공부하러 유학을 갔다가 결혼 때문에 귀국하는 딸과 후손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상덕은 풍수지리와 우주공학이 삼라만상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연관이 있는 학문이라고도 말한다. 그런 ‘자신들은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풍수지리와 우주공학, 과거와 현재는 깊은 관계를 갖는다. 그건 늘 그렇다.
더 깊이 파헤쳐 맞닥뜨린 악령, 두려움에 떠는 주인공들
그래서 이들 넷은 무덤을 더 깊게 판다. 더 깊이. 더 더 깊이. 그러자 무덤 안에서 악귀의 실체가 나온다. 주인공들은 무덤 안에 깊이 묻혀 있던 비밀의 실체에 가깝게 접근하게 되고 자신들이 ‘마침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악한다. 죽음을 늘 가깝게 두고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악령의 실체를 보고 무서움에 부들부들 떨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철혈단과 관련이 있다. 철혈단은 1920년대 상해에서 조직된 독립무장단체이다. 그 활동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풍수지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을 찾아내 무엇(쇠막대기)인가로 끊어 내는 활동을 했으며 매우 비밀스럽고 신비하게 점에서 점으로 이어지는 조직으로 구성되고 운영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화 지식인이 이끈 조직이라기보다는 무속신앙에 기반한 조직으로 짐작되고 있을 뿐이다.
영화에서는 무덤이 있는 골짜기 봉우리 아래 길목에 보국사라는 절이 나온다. 국가를 지킨다는 의미, 곧 ‘보국’하기 위해서 세운 절이다. 그러나 보국이란 것도 과연 언제 보국하느냐가 관건이다. 어떤 나라, 어떤 정권, 어떤 권력자를 보국해 내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보국사는 전국에 걸쳐 세워져 있고 강원도에는 원주에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배경은 강원도 원주이다. 원주가 어떤 산세(山勢)를 뒤로 두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영화의 모든 실마리가 풀린다. 정기를 끊는 행위, 뭔가를 파내는 행위, 일본 음양사와 한국 풍수사, 보국사가 목격한 오랜 세월의 비극과 비리, 그 아수라 등등이 영화 ‘파묘’의 줄거리를 구성하고 있는 줄기이다.
무엇을 위한 보국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영화
영화를 만든 감독 장재현(<검은 사제들> <사바하>)은 지난 몇 년의 한국사회를 바라보면서 그 내면(무덤 안) 깊숙이 큰 문제(악귀)가 묻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시원은 미(未)청산이다. 깔끔하게 정리를 했어야 하는데 그걸 놔두고, 놓아 주고, 감추고, 가리고, 가해자가 더 잘살게 해주고 했던 많은 일들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건 악령이나 귀신만큼 무서운 진실의 실체이자 존재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그같은 사회 정치 문제를 하루빨리 빼내고 굿을 펼쳐서 세상 밖으로 이장(移葬)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 안에 악귀 같은 병폐가 숨어 살아 숨쉰다는 건 진실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파묘’는 오컬트 공포영화지만 무서운 장면 때문에 무서운 영화는 아니다. 우리 안에 담겨져 있는 공포의 실체를 새삼 느끼고 목격하게 한다는 점에서 정치·사회·역사적 공포심을 갖게 만드는 작품이다. 하여, 이 영화의 테마는 바로 “역사는 승리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옳은 자의 것이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한국은 오컬트 영화조차 역사가 올바른 자의 것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건 무서운 일이 아니라 정의로운 얘기이리라. ‘파묘’는 뜻밖에도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