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도토리
최 양귀
흰색 도토리는 우리 집 필수품이다. 책상 위 투명한 병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집안 구석구석 대청소에 안성맞춤이다. 걸레 대신 창틀에 쌓인 먼지 제거와 베란다 바닥청소에 제격이다. 가벼운 오물 제거 때는 물에 씻어 재사용도 가능하다. 사용 후엔 그대로 버리면 된다. 일상의 부산물이라 바로 버릴 수 있으나 조금만 생각하면 유용한 물건으로 사용할 수 있다. 구입비용이 없고 재활용으로 지구환경을 살린다.
어느 날 우연히 남편이 사용하는 서랍을 열어보았다. 칸칸이 자동차 열쇠, 키 작은 화장품, 면봉, 손톱 깎기와 같은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 놓여 있다. 그 사이사이 빈틈 공간마다 흰색도토리가 동글동글 빚어져 동짓날 팥죽 새알심처럼 쌓여 있었다. 아주 작은 것에 집착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였다. 정리되어 있어야 할 물건에 뒤섞여 있는 모양새가 깔끔하지 않아서다. 쾌적한 서랍정리를 방해하는 것을 왜 보관하는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비닐봉지에 몽땅 담아 베란다 한쪽에 숨겼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이 눈에 띄지 않으면 되찾을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시간이 꽤 흘러도 묻거나 찾으려는 기색이 없다. 소중하지 않은 것을 왜 서랍에 두는지 생활 습관에 문제가 있는지 유심히 지켜보기로 했다.
저녁 식사 중 국물이 식탁에 떨어지자 얼른 일어나 식탁 의자 방석 한쪽을 살짝 들더니 손을 넣어 흰색도토리를 꺼냈다. 곧바로 음식국물을 깨끗이 닦고 태연히 식사를 마쳤다. 남편 몰래 방석을 확 들어 보니 흰색 도토리 여러 개가 여기저기 납작한 모양으로 깔려 있다. 그의 행동이 점점 궁금해져도 모른척했다. 그는 설거지를 할 때도 마지막 정리는 이것으로 싱크대 주변의 물때를 닦고 거실이나 실내 바닥의 떨어진 오물도 닦았다. 그가 앉는 의자 방석 아래에는 식탁이든 책상이든 어디나 납작한 흰색도토리가 들어 있었다. 책상 서랍에 보관한 것이 사라진 것을 알고 이젠 사용하는 의자 밑에 숨긴 것 같다. 어디에서 이것을 가져 올까?
퇴근 길 바지주머니가 볼록볼록하다. 다람쥐가 가을에 식량을 땅속에 저장하기 위해 입 안 가득 도토리를 물고 있는 모습 같다. 걸음걸이도 좀 어색해 보인다. 실내복으로 옷을 입으면서 주머니 속을 털어 흰색 도토리를 책꽂이 사이사이에 넣는다. 책상서랍에 차곡차곡 저장하다 이것이 사라진 것을 눈치 채고는 잠시 말린 후 사용하는 의자 방석 밑에 두고 필요 할 때 사용한 것 같다. 다람쥐는 겨울식량을 땅속 어디에 묻었는지 몰라 상수리나무의 번식을 돕는다지만 방석 밑이나 책꽂이 사이사이에 두고 주변의 먼지나 오물을 제거하는 데 활용하는 것이 흥미롭다.
자초지종이 궁금하였다. 가끔 방석을 들추고 흰색 도토리 같은 걸 사용하는 모습이 다람쥐가 겨울 양식을 저장했다 먹는 모습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직장이나 밖에서 손을 씻고 일회용 종이수건으로 손의 물기를 닦은 후 휴지통에 바로 버리는 것이 아깝단다. 쓰레기통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단다. 자신이 사용한 것이라도 쫙 펴서 잠시 말린 후 동글동글 말아 보관했다가 오물 제거하는데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안에 걸레 대신 활용하면 물과 일손을 줄이며 환경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깨끗한 걸 재사용하니 일거양득이다 며 함께 사용하자고 했다.
가끔 종이수건 사용 후 물기 있을 때 차량핸들을 닦거나 눈앞의 먼지는 닦아보았지만 집에까지 들고 올 생각을 못하였다. 자원 활용 정신이 한발 앞선 것인가. 물기 묻은 종이를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것은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다. 순간순간 물기를 말리는 것도 복잡해 보인다. 그래도 계속 흰색도토리가 집안에 쌓인 것을 보면 비닐봉지에 몽땅 담아 창틀의 오래된 먼지를 닦고 바로 버릴 때는 편리하다. 가끔 휴지로 훔쳐야 할 상황에 사용 할 수 있어 이것을 찾게 된다. 점점 이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청소용 걸레는 면 재질이라 한번 사용하면 세제로 깨끗이 씻고 햇볕에 말려 재사용한다. 걸레질을 제대로 하려면 세제와 인력과 수돗물의 사용이 뒤따른다. 반면 흰색 손 휴지는 일반 휴지에 비해 견고하다. 부드러운 먼지를 제거한 것은 물에 살짝 씻어 재사용하고 버리면 된다. 일회용으로 바로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 아니라 각자가 기지를 발휘하여 두세 번 사용해도 된다. 오늘도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는 휴지가 가까이에서 손길을 기다린다.
도토리묵 주인공 도토리는 건강식품이다. 우리 집 흰색 도토리 재료도 산에 사는 나무다. 두 도토리는 유용하게 본연의 의무를 다한 후에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는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다른 하나는 사람의 위생을 책임진다. 둘의 고향과 본향은 같다. 흰색도토리 냄새가 향기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