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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공지및 등록신청 스크랩 [장흥군] 이청준, 한승원 문학길
갈대 추천 0 조회 313 16.11.30 09: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이청준·한승원 문학길

기존 문학 탐방길과 연계하고 두 문학가의 작품 속 배경을 반영하여 자연친화적 탐방길로 조성

코스 : 한승원 문학비 ↔ 한승원생가 ↔ 한재공원 ↔ 면소재지 ↔ 천년학세트장 ↔ 선학동(산길) ↔ 이청준 생가 및 묘소
※ 총연장 : 12.5km


 

 


 

  • 이청준 문학길

 

  • 1. 회진면 버스공용정류장(터미널)

미백(未白) 이청준은 1939년 3월 9일 장흥 대덕면 진목리(現 회진면 진목리)에서 아버지 이남석(李南石)과 어머니 김금례(金今禮)의 5남 3년 중 4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전까지 주로 “참나무골”이라 불렸던 진목리는 유독 고향을 테마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던 이청준에게 ‘애증’이 함께하는 ‘어머니’로서의 땅, ‘삶과 문학의 바탕이 되는 곳’, ‘떠돎의 첫 행로가 시작된 곳이자 그것을 마감한 귀향지’이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서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광주로 떠날 때까지 12~13년 동안의 유소년 시절을 보내게 된다.(백재희, 순천대, 이청준 연보 중)

2008년 7월 31일 타계한 이청준의 문학의 고향이자 창작의 산실인 회진면은 한국현대소설문학의 성지처럼 회자되고 있다. 이청준, 한승원으로 대변되는 걸출한 작가의 작품들이 회진면의 산하와 서정, 시물과 사람들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청준의 소설들, 연작소설 『남도사람』, 『흰옷』, 『여름의 추상』, 『해변 아리랑』, 『새와 나무』, 『축제』, 『눈길』, 『음화와 양화』, 『석화촌』, 『키 작은 자유인』 등 주옥같은 작품들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가는 이를 배웅하는 손짓, 눈길이 아쉽고 오는 이를 기다리는 마음이 반가움으로 설레는 회진면의 버스 정류장, 이 길목은 이청준 문학과 조우할 수 있는 시발점일수도 있을 것이다.

 

 

  • 2. 노력항 집인 삼거리(회진면 소재지 - 덕도 방향)

한반도의 정남진항에 위치한 건강한 생명의 땅 정남진 권력이며 해안선의 경관이 빼어난 회진면 덕도.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제주도행 뱃길로 각광을 받고 있는 ‘노력항’으로 이어지는 이곳에서는 하늘과 바다와 낮고 정겨운 산봉우리와 함께 이청준 문학의 행로를 조망할 수 있다. 회진포구의 전경이 시선에 들어오고 이청준이 유년 시절에 수학하던 대덕동초등학교(現 회진초등학교)와 작가의 통학길을 굽어보면 이청준의 소설들이 태동한 이야기 길이 되어 다가오는 것 같다.

 

 

  • 3. 선학동의 유채밭

연작소설 ‘남도사람’은 이청준 문학의 백미이다. 『서편제(1976)』, 『소리의 빛(1997)』, 『선학동 나그네(1979)』, 『새와 나무(1980)』, 『다시 태어나는 말(1981)』 등 다섯 편의 소설이 각기 독립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연작을 이루고 있다.

남도사람 연작은 이를테면 그런 나무의 삶(그쪽을 우선해서 본)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새와 나무의 관계에 대한 나의 행복스러운 꿈이, 그리고 그 나무 쪽 삶에 대한 무력하나마 허심탄회한 꿈이야말로 저간의 언어질서를 기초로 한 우리의 생명과 삶의 자유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문학적 확인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작가노트 중)


작가가 고백한 창작의 이야기로 가까워지는 ‘남도사람’의 소설 현장은 ‘산저마을’과 ‘이화진 마을’, 그리고 ‘공지산’ 봉우리와 짙푸른 바다의 물결이 조화롭게 승화되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가끔은 소설 속의 인물도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선학동’으로 바꿔 부르는 것은 물론 산하의 공간에 유채꽃을 심어 봄날의 화사한 유채꽃의 향연을 연출하고 가을의 달밤에는 소소한 메밀꽃의 축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마을 사람들과 회진면의 계절이 합일되어 문학이 화두를 공유하는 이 따으이 기운이 범상치 않은 것은 이청준의 소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4. 회진면, 영화 ‘천년학’ 세트장

비로소 그 맞은편 산줄기가 한 마리 학으로 물이 마른 포구 위를 천천히 날아오르는 모습을 눈앞에 역력히 그려볼 수 있었다.

“오라비에게 나를 찾게 하지 마시오.
전 이제 이 선학동 하늘에 떠도는 한 마리 학으로 여기 그냥 남겠다 하시오...
그게 그 여자가 내게 남긴 마지막 당부였소.
그리고 그 여잔 아닌게아니라 이 한 마리 학으로 날아 올라간 듯 그날 밤 홀연 종적을 감춰갔고 말이오.......“
이청준, 『선학동 나그네』, 2007, 열림원

한국문학의 웅숭깊은 상징으로 표현되는 이청준의 소설은 한국영화계의 거장인 임권택 감독과의 영상작업으로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서편제’, ‘축제’에 이어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는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하는 ‘천년학(2007)’이었다. 빼어난 영상미로 한국 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천년학’은 이청준의 소설 현장에 세트를 짓고, 주변 서정들을 담아 촬영 되었다. 하여 한국 문학과 영상이 만난 문학과 영화의 명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 5. 진목리 갯나들(후등, 작가의 묘소 입구)

“아름다워라 이청준” 임철순(한국일보수필)이 남긴 이청준을 향한 조문의 한 구절이다. 한국문학사에 도도한 문학혼을 남김 지성적인 작가 이청준은 2008년 7월 31일 폐암으로 타계한다.

인성과 문학으로 고향을 사랑하던 이청준의 뜻을 따라서 그의 묘소는 고향마을 회진면 진목리 갯나들 후등에 미련하였다. 그가 없어서 허방한 사람들, 그의 문학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뜻을 모아 1주기 추모 행사를 치르고 그의 문학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헌정하였다. ‘이청준 문학자리’로 명명된 이 조형물은 이청준 문학을 사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명소가 되고 있다. 그 길목에 이청준의 오랜 친구가 남긴 조사의 글과 함께 동행 한다.

그의 평생은 삶에서 고상했으며 뜻에서 고원했으며 인품에서 고매했고 작가로서 한국 문학의 최고였으며 무엇보다 세상에 대해 겸손하고 따뜻했습니다. 그는 남도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보편을 지향하며 고뇌하는 지성인이었고, 한국의 현대인이었지만 옛것을 익히고 사랑하며 오늘의 새로움을 알아내려는 장인의 정신이었으며, 그리하여 척박한 이 땅에서 태어난 윤택한 세계인이었고, 그럼에도 그의 몸의 열기와 이 땅의 깊이가 하나가 되는 집요한 우리의 토박이 정서였습니다. (김병익, 조사, 2008)

 

 

  • 6. 대덕읍 삼거리(소설 「눈길」 속의 정류장)

이청준은 ‘내 소설의 기둥은 어머니’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소설 「눈길」 은 그중에서도 어머니와의 한스러운 이야기를 쓸어담은 가장 빼어난 단편 작품으로 꼽힌다. 눈 내리는 어느 새벽 아들은 홀연히 길을 떠나고 어머니는 아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가슴과 가슴으로 울면서 교감하는 것은 지난한 어머니를 원망하는 아들, 그 아들에게 속내를 드러내 보이고 싶은 어머니의 애잔함이 소설로 화해되어 다가온다.

“한참 멍하니 서 있는데, 휙 불어온 찬바람에 정신이 되돌아오더구나. 정신이 들고 나니 돌아갈 길이 새삼 허망스럽지 않았겠냐. 지금까지 그래도 저하고 나하고 둘이서 함께 해쳐 온 길인데, 그 막막한 눈길을 늙은 것 혼자서 되돌아서려니.... 거기다 아직도 날은 어둡지, 그대로는 암만해도 길을 되돌아설 수가 없어 정류소를 찾아 들어갔더니라. 한참 동안 정류소 안 나무 걸상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려니 그제야 동녘 하늘이 훤해져 오더구나. 그래서 서두를 것도 없는 길을 혼자 나섰는데, 그때 일만은 언제까지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구나.”

여기 대덕읍 삼거리에 나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던 주막 겸 정류소는 그 자취를 감추었지만 「눈길」 의 주인공들이 눈 내린 새벽길 속에서 나누었던 애정을 회상하게 해준다.

 

 

  • 7. 천관산 문학공원 - 입로

큰 산 꼭대기 구룡봉에서 바라본 세상은 끝없이 넓었다. 남으론 작은 동산 같은 그의 마을 뒷산 너머로 남해의 푸른 바다가 아득히 하늘을 이어가고 북으로는 수많은 산들이 부연 연무 속으로 겹겹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무소작 씨」, 천관선 문학공원>

작가 이청준에게 있어서 천관산은 물리지 않은 화두였다. 천관산은 그의 소설 속에서 다양한 형용으로 묘사 되었다. 귀향길이면 어김없이 천관산을 경유하였다. 그리고 ‘천관산 문학공원’을 정원처럼 사랑하면서 지인들에게 자랑 하였다. 그의 소설은 ‘큰 산 꼭대기 구룡봉’에서 바라본 세상이기도 했다.

 

 

  • 8. 진목리 입구

- 고향의 순수
유년의 땅에 와서는 많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다. 잃어버린 것 가운데서도 순수한 공포감 같은 것을 되찾게 된다. 수로에 잠겨 밤길 을 따라오는 물 속의 달, 집 뒤안까지 검게 다가선 뒷산의 깊고 우뚝한 밤그림자, 그런 것들은 공연히 나를 섬짓섬짓 무서움에 떨게 한다. 무더운 여름밤의 서늘한 바람기, 하늘에 가득 찬 밤별들과 별똥별, 시골 야밤의 광대무변한 정적과 침묵…. 그런 것들도 공연히 나를 섬짓거리게 만든다…. 까닭 없는 공포감. 까닭이 없으니 공포감은 순수하다. 그러니 내가 이 유년의 땅에서 순수란 공포감을 되찾아가는 것은 내 잃어버린 옛날의 순수 자체를 되찾아가고 있는 것 한 가지인지 모른다….
「여름의 추상」(작품집 『시간의 문』, 1982)

「눈길」, 「나무 위에서 잠자기」, 「새와 나무」, 「여름의 추상」, 「축제」, 「심지연」, 「소리의 빛」, 「개백정」이 풍성한 이청준 문학의 산실이 바로 ‘진목리’이다. 한반도의 남녘에 있는 이 소박한 마을은 한국 현대소설의 성지로 알려지고, 이청준과 그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 부호의 표기는 단행본의 제목은 『』, 단편 소설의 제목은 「」, 그 외 강조하고 싶은 인명, 지명 등은 ‘’등으로 구분하여 표기

 


 

  • 한승원 문학길

이 가파른 한승원 문학길은 한승원의 단편소설 <어머니>의 주인공과 장편소설 <아버지와 아들>의 주인공들이 오르내린 길이다. 한승원은 이 가파른 고갯길을 <아버지와 아들>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소나무 숲길은 좁은 데다가 가팔랐다. 돌자갈이 많이 깔려 있어 미끄러웠다. 이 해변 지방 사람들의 말대로 ‘싸묵싸묵’ 오르거나 ‘깐닥깐닥’ 올라야 했다. 주철은 고향에 살면서 뼈의 마디가 굵어졌고, 그러는 동안 이 고개를 넘을 만큼 넘어본 터였다. 그 고개야 말로 ‘깐다악 깐다악’ 오르거나 ‘싸무욱 싸무욱’ 오르거나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면서 호흡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 1. 회진 버스 터미널 앞 시비

흰 억새꽃너울 저 너머
한승원

보랏빛의 천관산 천왕봉 저 너머의 푸른
겨울하늘로 연을 띄우던 우리들 가운데서
이제 자네는 먼저 떠나가고
나 홀로 남았네
꽃길 밟고 무지개다리 건너던 시절을 뒤로 하고
미세한 숯가루처럼 쏟아지는 어슬어슬한 땅거미 등에 지고
발가벗은 여체들의 열병식 같은 은사시나무 숲길 따라
선학동해변으로 돌아가던 자네의 머리 위로
눈썹달과 개밥바라기 별 서역으로 사라지고
물을 머금은 별빛이 안개비처럼 쏟아지네
나는 머지않아 밟아갈
천관산 산록의 황갈색 상수리나무숲으로 난
자드락길 앞에 서 있네
줄 끊어진 우리의 연들이 가뭇없이 사라져 가고
한여름 밤 별똥들이 신화처럼 떨어져 쌓이던
천관산 억새밭의 흰 꽃 너울
저 너머를 바라보며.

 

 

  • 2, 덕산 마을 앞길

한승원의 소설은 고향 마을 덕도의 어둠과 빛이 직조한 것들이다. 그는 자기 소설 80퍼센트가 바다 바람과 파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술회했다. 지금 이 한승원 문학길은 그의 주인공들이 넘어 다닌 길이다. 회진 파출소가 육이오 때는 회진보안서였다. 해방 직후 이데올로기 갈등이 처참하게 일어났을 때 남로당원들이 끌려간 길이고, 반동자로 몰린 사람들이 끌려간 길이기도 하다. 한승원의 서정어린 소설 <앞산도 첩첩하고>의 주인공 달병이가 한스러운 목소리로 앞산도 첩첩하고를 부르며 간 길이고, 대하소설 <동학제>와 <그 바다 끓며 넘치며>의 주인공들이 대덕장터와 회진파출소로 몰려간 길이다.

 

 

  • 3. 한재고개

이 한재고개는 한승원의 소설작품들 가운데서 신화적인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낸 공간이다. 그는 <신화(神話)> 연작을 썼는데, 거기에는 여신 같은 존재인 순이가 등장한다. 그 세상에서는 순이의 표정과 차림새와 행동에 따라 풍년이 들기도 하고 흉년이 들기도 한다. <동학제>의 주인공들은 한재산의 북편 천관산 쪽의 골짜기에서 은거했는데, 그 까닭으로 인해 그곳은 아직도 ‘도둑골’이라고 불리고 있다. 또한 장편소설 <아버지와 아들> 가운데 ‘겨울 폐사’ 이야기는 온전히 그 도둑골과 한재산 꼭대기를 무대로 하여 쓰여진 것이다.

 

 

  • 4. 고개 아래 야영장

발목이 묻힐 정도로 눈이 쌓였다. 절골로 가는 자드락길은 미끄러웠다. 흰 눈이 어둠의 농도를 묽게 해주고 있었지만 주철은 눈구덩이에 발을 헛디디고 거꾸러지기도 하고 미끄러져 뒹굴기도 했다. 속세를 버리고 새하얀 눈의 세계로 접어든 듯 두렵고 불안했다. 이제 그는 전에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하늘은 검고 우중충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주철은 눈사람처럼 온몸에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주언이란 놈은 왜 하필 이날 밤 이 폭설을 무릅쓰고 험준한 절골엘 갔을까. 주언이는 경찰의 끄나풀이 틀림없다. 절골에 숨어 있는 윤길을 붙잡으러 간 것이다. 그놈은 왜 기어이 조카뻘 되는 윤길이를 제 손으로 붙잡아 넣으려고 갖은 획책을 다하는 것일까.

- 장편소설<아버지와 아들>중의 “겨울 폐사”중에서

 

 

  • 5. 시비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
한승원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
그 한복판에 수직으로, 수직으로만 상승하고 있는 새 아닌

한 마리가 거기 있어서입니다,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하나가 거기 떠 있어서입니다,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내가 최후에 남겨야 할 말 아닌

하나가 거기 있어서입니다.

 

 

  • 6. 아래 번덕지(전망 좋은 곳, 마을이 다 내려다 보이는 곳)

이곳은 한재 고개 밑에 있는 ‘아래 번덕지’라는 쉼터이다. 장에 갔다가 한재 고개를 넘어온 사람들이 쉬는 곳이고, 한재 고개에서 땔나무를 해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쉬는 곳이다. 소를 뜯겨 가지고 오는 목동들도 소 고삐를 잡은 채 쉬는 곳이다. 한승원 소설의 주인공들도 이 길을 오르내리다가 자리에서 쉬곤 했다. 이곳은 이 고장 역사의 쉼터이다. 의병들도, 동학군들도, 경찰들도 이 길을 지나다녔다. 군대엘 가려면 이 길을 오갔다. 이 마을 청소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큰세상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밟고 넘어가는, 많은 이야기가 수런거리는 길이다.

 

 

  • 7. 한승원 선생의 생가

소설가이자 시인인 한승원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그는 1939년 음 8월26일 아버지 한용진과 어머니 박귀심 사이에서 9남매 중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의 역사적 현실과 숙명에 천착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초기에는 남해 바닷가의 풍경을 토착어가 살아있는 작품으로 표현함으로써 삶에 대한 토속성과 한(恨)의 세계를 다루다가 나중에 인간의 내면심층을 파고들었다. 명덕초등학교 장흥 중고등학교를 거쳐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김동리에게 배움. 1968년 <대한일보>에 <목선 木船>이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

<까치노을><폐촌><포구의 달><해변의 길손><그 바다 끓며 넘치며> 등은 고향 남해 바닷가를 반복적으로 다루었다. 그에게 남해 바닷가는 한국근대사가 압축된 곳이며, 그 안에 존재하는 억압과 해소를 표출하는 원형상징적인 공간이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바다와 마찬가지로, 운명에 구속된 채 그에 맞서는 과정에서 비극을 구현함으로써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운명과 대면하는 상태를 지향하고 있다. 그가 구사하는 토속적인 언어는 삶의 구체적인 감각과 섬세함을 극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후 그는 '생명력'을 주제로, 인간 중심주의적 문명에 대한 반성과 극복에 관심을 쏟고 있다.

주요작품에 <다산><불의 딸><포구><아제아제바라아제><아버지와 아들><해일><동학제><원효> <피플 붓다> <초의>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한승원 중단편전집>(전7권)을 발간하였다.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 별><우주 색칠하기> 시집 <열애일기><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달 긷는 집> <사랑하는 나그네 당신>산문집 <차 한 잔의 깨달음> <한승원의 글쓰기 비법 108가지><한승원의 소설쓰는 법>등이 있다.

한국소설문학상(1980), 대한민국문학상(1982), 한국문학작가상(1983), 이상문학상(1988)·현대문학상(1988), 현대불교문학상(2001),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2002) 김동리 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1998년 넓바우 선창에 문학현장비를, 2006년 장흥군 안양면 여닫이 바닷가에 시비 30기를 세웠다. 현재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 <해산토굴>에서 집필중이며 아들 한동림과 딸 한강이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 8. 옹달샘

그 어떠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의 뿌리가 깊은 옹달샘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 물을 마시고 자란 한승원은 서울에서 살 때, 위장병을 심하게 앓았는데, 이 옹달샘의 물을 마시면 좋아질 듯싶어 천릿길을 달려와 거듭 마셨는데 씻은 듯이 좋아졌다고 한다. 여름철에는 옹달샘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실로폰 소리 같다. 그 물 소리를 들으면 시심이 솟는다. 여름철에는 수박 참외를 담가놓았다가 먹었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길어 나른다. 오염되지 않았고, 물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또 하나의 소문이 났는데, 자주 와서 이 물을 마시면 시와 소설을 잘 쓰게 된다는 소문이다.

 

 

  • 9. 앞메 잔등

이 앞메 잔등은 한승원의 문제작으로 부상한 그의 소설 <폐촌>의 무대 현장으로 가는 길목이다. 한승원은 그 소설 속에서, 이 잔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 언덕을 앞메 잔등이라고 불렀다. 한창 김 채취에 바쁜 겨울철 같은 때 무거운 김구럭을 짊어지고 넘는 사람이면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숨을 헐떡거리게 되고, 그러다가는 쿨룩쿨룩 하고 기침을 한두 차례씩 하게 마련인 잔등이라 하며 ‘기침고개’라고도 불렀다. 그 잔등은 새끼를 한 배도 낳지 않은 암소의 늘씬한 허리처럼 잘록해 보였는데, 그것은 그 잔등을 가운데 두고 동과 남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 둘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앞메 잔등 길을 따라 나아가면 넓바우 포구가 나오는데, 그곳 선창에는 이 마을 주민들이 세워놓은 <한승원 문학 현장비>가 서 있다.

 

 

  • 10. 넓바우 선착장

천관산과 우산도와 금당도와 고흥반도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이 넓바우 포구는 한승원의 바다문학의 현장이다. 신덕마을 주민들에 의해 ‘한승원 문학 현장비’가 세워졌다. 한승원의 대표적인 바다 소설 ‘갈매기’ ‘폐촌’ ‘그 바다 끓며 넘치며’ ‘낙지 같은 여자' '우산도' ’동학제‘ ’해변의 길손‘ ’갯비나리’ 등의 이야기가 이곳을 무대로 해서 쓰여졌다. 이 넓바우 선창은 한승원이 젊은 시절에 마을 주민들과 함께 목선을 타고 다니면서 김양식을 했던 곳이다. 한승원은 그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수많은 소설들을 쓴 것이다. 그는 <내 소설 8할은 고향 바닷바람에 의해서 탄생된 것이다>라고 술회한다.

 

 

  • 11. 노력항 - 득량만 바다

이 노력항 부두 밖의 사방으로 펼쳐진 득량만 바다는 이곳 태생인 한승원의 소설문학의 한 현장이다. 그는 그의 소설 <갈매기>에서 이 바다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백합꽃같이 흰 날개를 나비처럼 부드럽게 저으며 갈매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날아오고, 눈을 떠도 날아왔다. 비 오려고 우중충한 때에 들끓는 하루살이떼처럼 어지럽게 날아오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바다낚시 가는 친구를 따라나서면서부터 내 머릿속에는 온통 갈매기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는 곳이 하필 고향바다이기 때문이었을까. 내 고향 덕도 앞의 득량만은 마치 큼직한 호수 같은 바다로, 쪽빛 에나멜 수천 드럼을 퍼부어놓은 듯 짙푸르렀다. 그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는 티 없이 맑은 처녀의 혼령이 된 새처럼 맑고 깨끗했다.”

소설가 한승원의 생가는 장흥군 회진면 신덕리에 있다.

 

 

  • 12. 노력항으로 진입하는 입구의 공원

이곳은 한승원의 소설 <물보라>의 무대이다. 건너편에는 노력도가 있고, 이 언덕 밑에는 새우양식장이 있다. 이 소설에는 바다가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바다가 푸르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바다는 항상 쪽빛이 아니다. 하늘이 쪽빛일 때만 그 하늘빛을 흉내 내느라고 쪽빛이다. 구름이 끼어 있을 때는 연한 회색이 되기도 하고, 바람이 많이 불 때는 잉크색이 되기도 하고, 남보라 색이 되기도 하고, 새벽 같은 때는 은회색이 되기도 하고, 바야흐로 해가 떠오를 때는 황금색이 되기도 했다. 달이 둥실 떠오른 때에는 물속에 수천억 개의 흰색 등불을 밝혀놓은 것처럼 훤해지기도 했다. 바다는 수시로 얼굴색을 바꾸곤 했다. 숨을 쉬고 생각하고 화를 내고 심술을 부리며 꿈틀거리는, 살아 있는 거대한 어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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