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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불법이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견고대비심(堅固大悲心), 아주 견고한 대비심, 대비심이 아주 견고할 것 같으면은
則能愛樂甚深法이니
곧 능(能)히 심심법(甚深法)을 애락(愛樂)한다. 사랑하고 즐기게 된다.
그 심심법이 뭡니까? 궁극적 차원, 우리 참마음의 세계. 한마음 속에 부처의 경지가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진여법성, 진여자성의 세계입니다. 그걸 이제 우리는 참사람, 차별 없는 참사람이라고도 하고 여러 가지 표현을 하는데, 거기에서 모든 게 생겼기 때문에 그 우리 한마음에서 사실은 52위 지위점차도 그 속에 있는 거요. 그게 심심법이라. 심심법을 우리가 이해해야지 다른 거 가지고는 부족해요.
(2) 二地
若能愛樂甚深法이면 則能捨離有爲過니라
二地
그다음에 또 이지(二地)는 이제 이구지(離垢地)라 그래. 떠날 이(離)자, 때 구(垢)자 번뇌를 떠난다 이런 뜻입니다. 환희심이 생기고 나면 그다음에 뭐요? 다른 생각 아무것도 없어. 다른 속된 마음 가질 겨를이 없어. 속된 마음 가지지 않는 게 이구(離垢)야. 때를 떠난다. 세속적인 어떤 그 가치라든지 그런 온갖 잡스러운 마음 다 떠나는 거라. 그게 이구지인데
若能愛樂甚深法이면
불법에서 말하고 있는 미쳐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 마음의 이치, 진여자성의 이치 그것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애착하고 즐기게 될 것 같으면은, 그런 도리를
則能捨離有爲過니라
곧 능(能)히 유위(有爲)의 허물을 버리게 된다.
유위(有爲)는 뭐요? 우리 오온(五蘊)의 나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또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오온 이런 그 현상적인 나에 대한 그런 그 생각을 떠나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게 이제 어떤 역사적인 나, 오온의 나.
예를 들어서 심심법(甚深法)이 태양이라면은, 오온은 구름이라. 태양을 감싸고 있는 구름이야. 구름은 잊어버리게 돼. 그러면 저절로 아무리 구름이 많이 끼었다 하더라도 ‘아 구름 저 너머에는 태양이 있어. 구름 네가 아무리 그렇게 해봐야 언젠가 몇 시간 안 가서 다 벗겨질 거야. 그러면 태양이 찬란하게 빛난다.’ 이렇게 이해하는 거예요. 그게 불법(佛法)입니다.
우리가 뭐 늘 뭐 안좋은 세월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좋은 세월도 많잖아요. 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아주 찬란한 태양이 떠서 정말 환희로운 그 봄을 구가하듯이 이런 시간이 있잖습니까.
그런 면을 우리 삶에도 그렇고 우리 마음의 문제, 진리의 문제도 그러한 것을 같이 생각하는 것 그게 이제 오온법을 떠나는 거, 구름의 경계를 떠나는 그게 이제 이구(離垢) 번뇌를 떠나는 이치다.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3) 三地와 四地
若能捨離有爲過면 則離憍慢及放逸이니
若離憍慢及放逸이면 則能兼利一切衆이니라
三地와 四地
그다음에 제3은 삼지(三地)와 사지(四地) 그랬어요. 삼지는 발광지(發光地)라. 빛을 발한다 이 뜻입니다. 또 사지는 염혜지(焰慧地)라. 아주 빛나는 지혜, 불처럼 빛나는 지혜 이런 뜻이에요. 염혜. 발광지, 염혜지. 삼지는 발광지고, 빛을 발한다 하는
그 스님들이 삭발해 가지고 아주 삭도로 머리를 반짝반짝하게 깎고 나면은 “아따 발광한다.” 그래요. 아주 그 빛이 나잖아요. 그런 그 이게 경전에 근거하지 않는 불법이 또 있어요. 구전불법 그렇습니다. 구전불법, 구전불법 속에는 그런 이야기들도 있어요.
염혜라고 하는 것도 불꽃 염(焰)자, 지혜 혜(慧)자인데, 지혜가 불꽃처럼 환희 타오른다 이 말이여.
불교에는 제일 많이 강조하는 게 지혜와 자비죠. 자비 지혜 지혜 자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② 若能捨離有爲過면
유위(有爲)의 허물하는 것은 오온 또 현상 이것만 매달리고 거기에만 집착하는 이러한 허물을 사리(捨離) 떠나버린다면은
則離憍慢及放逸이니
곧 교만심도 떠나게 되고 게으름도 떠나게 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게으를 까닭이 없어요. 지혜없는 사람이 게으르지 지혜있는 사람은 방일(放逸)하지 아니해요.
이 참 부처님도 열반에 드시면서 출가한 제자들에게 “너희들 방일하지 마라. 절대 게으르지 마라.”라고 이렇게 이제 부탁했습니다. 인생은 한정돼 있어요. 살아보면 긴 것 같지마는 한정돼 있습니다. 너무 무리할 것은 아니로되 무리해서 생명을 재촉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생명유지하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는 부지런히 공부해야 돼요.
이 『화엄경』같은 이런 위대한 불법 만나고 우리가 한순간이라도 그렇게 이제 게으름을 피운다고 하는 것은 참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 하다못해 염불이라도 하던지, 『화엄경』 한 구절이라도 외워가지고 뭐 약찬게라도 외우든지, 법성게라도 외우면서 그 이치 속에 깊이 침잠하든지 그게 가장 바람직한 어떤 방일을 떠나는 일이죠.
若離憍慢及放逸이면
교만(憍慢)과 그리고 방일(放逸)을 떠날 거 같으면은
則能兼利一切衆이니라
일체(一切) 중생들과 함께 이익하다. 나도 이익하고 그도 이익해. 딴사람 이익하고 나도 이익해.
여기에 이제 교만과 방일을 떠난다고 하는 말은 결국은 보살행 한다는 뜻입니다. 보살행. 보살행 할 거 같으면은 뭐요? 첫째 남도 이익하고 나도 이익하고. 겸리(兼利)가 그겁니다. 너와 내가 같이 이익하다.
그래서 내가 늘 인불사상(人佛思想)을 강조하면서 당신은 부처님 이런 말을 이제 쓰는데, 모두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은 그도 이익, 행복하고 섬기는 나도 또한 행복하다. 이게 겸리입니다. 겸하여 이익하다. 그래야죠. 겸하여 이익해야 합니다. 내 혼자만 이익하면은 그건 불교적인 관점에서 이익이 아니죠.
이타자리(利他自利) 이타자리를 많이 강조합니다. 남을 먼저 이롭게 하면은 내가 따라서 이로워진다. 내가 따라서 이로워진다.
(4) 五地
若能兼利一切衆이면 則處生死無疲厭이니
若處生死無疲厭이면 則能勇健無能勝이니라
五地
그다음에 제오지(弟五地)는 난승지(難勝地)인데, 이기기 어려운 지위다 그래요. 난승지, 오지.
③ 若能兼利一切衆이면
일체(一切) 중생들과 겸(兼)하여 이익할 것 같으면은
則處生死無疲厭이니
생사(生死)에 처(處)해도, 생사에 처해도 피렴(疲厭)이 없다. 피곤하지 않는다. 싫증을 내지 않는다.
보살은 그렇습니다. 중생들과 함께 살고 중생들과 함께 더불어 죽고 또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 이렇게 사는 것이 보살의 기본적인 정신입니다. 그래도 그것을 싫어하지 안 해요.
그런데 아라한(阿羅漢)들은, 소승들은, 소승들은 그것을 싫증을 내. 피곤해해. ‘또 어떻게 태어나노? 이 고통스럽고 저 많은 중생을 내가 어떻게 제도할쏘냐? 아니고 피곤해서 나는 더 이상 태어나기 싫다.’ 그런 교리가 많이 있습니다.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는
내가 『화엄경』의 특징이 바로 그런 점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보살은 끊임없이 태어나기를 바라고, 소승 아라한들은 다시는 태어나기 싫어해요. 여러분들 태어나기 싫어한다고 안태어 나집니까? 안태어날 수가 없어요. 태어나게끔 돼있어.
그런데 얼마나 그 인도라고 하는 나라 그 열악한 곳에서 40도, 50도 그 뜨거운 그 뜨거운 나라에서 정말 태어나고 싶지도 않은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거는 잘못된 생각이요. 싫어서 그렇지. 싫은 마음에서 그런 생각이 나온 것이지. 안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싫어도 태어나야 돼요. 우리는 싫어도 태어날 수 밖에 없도록 돼있어.
우리가 지수화풍 사대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인연을 이 우주에 모든 것과 인연을 함께 했습니까? 사람하고 인연은 말할 것도 없고, 지수화풍 춘하추동 사시절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우리가 함께 했습니까?
내가 뭐 베풀기도 하고 내가 받기도 하고 받고 베풀고 받고 베풀고 받고, 이러한 세월을 우리가 많이 살아왔기 때문에 빚이 많습니다. 우리는, 서로 빚을 갚고 빚을 지면서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 육신도 마찬가지고 영혼도 마찬가지여. 육신 여러분들 되돌려줘야 합니다. 그동안 뭐 온갖 그 저기 저 음식 자시고 이렇게 살아왔는데, 그 남은 육신 뭐 재로 돌려주든지, 흙으로 돌려주든지, 거름으로 돌려주든지 어떤 방법으로 지수화풍으로 다 돌려줘야 되요. 뿔뿔이 흩어져서 돌아가게 돼있어. 일부러 돌려줄려고 안 해도 저절로 지수화풍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몸은
그렇게 돼있는 게 말하자면은 모든 존재의 이치입니다. 참다운 이치예요. 그게 진리라. 그래서 여기에 생사(生死)에 처(處)해서 피렴(疲厭)이 없다. 그래야 돼요. 우리는 또 좋은 인연 만나서 또 태어나서 다시 만나자. 기억은 할지 안할지 모르지마는 아마 틀림없이 같이 만날 거야. 왜냐? 인연을 깊이 맺었는데 안만나고 누굴 만나겠어요?
그 미워해도 만나게 됩니다. 미워하는 인연도 큰 인연이에요. 그 보통 인연 아니야. 사랑하는 것만 인연이 아니에요. 미워한 것도 인연이라. 그래서 그런 인연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만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이치를 알 때 인연을 좋게 지어야 되요. 백 번 양보하고 겸손하고 하심하고 그래서 인연을 좋게 지어야 되요. 또 만나니까. 어쩔 수 없이 또 만나게 되니까. 우리는 좋은 인연을 맺고 나쁜 인연은 가능하면은 풀고 가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 생사에 처하되 피렴이 없다.
若處生死無疲厭이면
생사(生死)에 처(處)하되, 죽고 사는데 우리가 함께 하지마는, 함께 하면서 그것을 피곤해하지 아니한다. 싫어하지 아니하면은
則能勇健無能勝이니라
곧 능(能)히 용건(勇健)해서, 아주 용맹하고 강건해서 능히 그를 이길 사람이 없다.
왜냐? 저 사람은 생사를 두려워하지 아니해. ‘아 그래 죽어도 또 태어나니까. 나는’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그 감당하겠습니까. 나는 죽어도 상관없다 말이야. 의롭게 죽고 보살행하다 죽는다면은 그거는 틀림없이 내가 이 원력에 의해서 또 태어날 거니까 염려할 게 없다. 이렇게 용기백배한 사람을 누가 감당하겠냐고요. 그래서 용건 해서 능히 이길 사람이 없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요. 보살은 정말 이거 보살정신이 이런 말속에 아주 그 농후하게 깔려있잖습니까.
(5) 六地
若能勇健無能勝이면 則能發起大神通이니
若能發起大神通이면 則知一切衆生行이니라
六地
그다음에 제육지(第六地)는 이제 현전지(現前地)라 그래. 나타날 현(現)자, 앞 전(前)자 앞에 나타났다 현전지.
④ 若能勇健無能勝이면
만약에 용건(勇健)해서 능(能)히 이길 이가 없을 것 같으면
則能發起大神通이니
곧 능(能)히 큰 신통(神通)을 일으킨다. 큰 신통을 일으키죠. 겁 없는 사람이, 보살행하고 봉사활동하고 남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 사람은 곧 큰 신통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큰 신통을 일으키는 일이에요. 그게 그거야말로, 그래서 능히 대신통(大神通)을 일으킨다.
若能發起大神通이면
만약 능(能)히 큰 신통(神通)을 일으킬 것 같으면은
則知一切衆生行이니라
곧 일체중생(一切衆生)의 행(行)을 알게 된다.
모든 중생들이 신통을 일으키고 봉사활동하고 보살행하다보면 중생과 더불어 늘 함께 하니까. 중생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환히 알게 돼있어. 저절로 알게 돼있어.
그 뭐 자기 그 한마음만 잘 다스리고 산 위에 혼자 조용히 그렇게 아무 활동도 없이, 만나는 사람도 없이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지 관심 없이 그렇게 사는 사람은 나중에 보살행 하고 싶어도 세상에 어두워서 못해. 세상에 대해서 아무 아는 게 없고 중생들이 무슨 마음을 가졌는지 아는게 없어서도 제대로 못해요. 중생들을 속속들이 아는게 중요합니다. 그래 중생행(衆生行)을 곧 알게 된다. 그랬습니다.
(6) 七地
若知一切衆生行이면 則能成就諸群生이니
若能成就諸群生이면 則得善攝衆生智니라
若得善攝衆生智면 則能成就四攝法이니
若能成就四攝法이면 則與衆生無限利며
若與衆生無限利면 則具最勝智方便이니라
七地
그다음에 이제 우리 한마음 속에 제칠지(第七地)가 있는데, 그것은 이제 원행지(遠行地) 그래요. 멀 원(遠)자, 행할 행(行)자. 멀리까지 간다 그랬어요. 그건 게송도 여러 개가 있네요.
⑤ 若知一切衆生行이면
만약 일체중생(一切衆生)들의 행(行)을 알게 된다면은
則能成就諸群生이니
중생을 아니까 중생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아니까 곧 능(能)히 그 중생들을, 제군생(諸群生) 군생이란 말도 역시 중생이란 말이니까. 모든 중생들을 성취(成就)하게 된다. 성숙하게 된다. 잘 말하자면 중생들을 교화하고 성숙시키게 된다 이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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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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甚深法이 태양이라면은, 五蘊은 구름.
보살은 끊임없이 태어나기를 바란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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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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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_()()()_
🙏🙏🙏
고맙습니다_()()()_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