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마음속에 간직하고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그 근처에 가더라도 시간에 쫓겨 아쉽게 번번이 그대로 지나치고는 했었다
그런데
어느 경매싸이트에 을수골 입구에 매물이 나와 여행가는 기분으로
평일(2/3)에 시간을 내어 다녀왔다
(을수골 입구)
(경매싸이트에 나온 물건)
을수골은 계방산(1,577m)에서 흘러 내린
어리목골, 큰피약골, 작은피약골과
오대산(1,563m)에서 발원한 큰대산골, 작은대산골등이 모여
이룬 장장 30리의 꼬불꼬불한 유장한 계곡이다
골짜기가 을(乙)자를 그리며
수없이 굽이돈다고 해서 을수(乙水)골이라고 불린다
어디든
깨끗한 계곡에서만 산다는 열목어(천연기념물) 역시 이 계곡에서 보호받고 있으며
숱한 희귀 어종이 맑은 물속에서 논다고 하지만
지금은 차가운 얼음밑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겠지,
수량이 워낙 풍부해 장마철에는 접근이 불가능할 만큼 물이 불어난다고 한다
갈수기인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억새사이로 보는 얼음판은 굉장히 넓고 단단히 얼어
썰매터로는 이 이상좋은 곳도 없겠다
올 겨울 눈보기가 힘들었지만
이 곳은 이미 많은 적설량을 보이며 해발 700m고지에서 햇빛에 녹지도 않고
하얀 눈이 쌓인채 그대로 있다
56번 국도 광원교에서 7.2Km 지점까지 비포장이며
산불 예방 기간과 피서철에는 자연 보호를 이유로 차량통행이 금지 되는 곳이지만
한 겨울 이곳은 괴괴하고 적적하기만 하다
찻길이 끝나는 곳에 성황당이 보인다
1:50,000분의 지형도를 들여다 보니
이곳에서 어리목골과 갈골이 갈라지는 합수점까지 약5km 정도
차량으로 더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여기까지 들어오면서 길 옆 눈 쌓인 곳에 빠져 20분간 발버둥을 친
기억으로 아무도 안 밟은 눈 길로 선듯 들어서기가 두려워진다
지난 1월 2일 인제 소뿔산 off-road에서 과도한 사용으로
아직까지 병원에 있는 윈치(winch)를 오늘 장착하지 않았기에
더욱더 진입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마
을수골에 내린 이 눈은 4월까지 그대로 쌓여 있을 것이다
윈치없이 오를 생각이 없다
흰 옷 입은 겨울산은 산에 오르는 내게 말없이 저항을 한다
애마가 눈 속에 빠지면 속수무책이다
봄이 되기 시작하면 숲 속의 흰 눈은 녹아 나무 뿌리로 스며들고
지붕 위에 흰 눈은 처마밑으로 눈물처럼 떨어지겠지
성황당이 있는 지점부터 오대산국립공원 지역이므로
국립공원측에서 무속행위를 금지 한다는 팻말을 갖다놓았다
지형도를 살펴보면
5km의 소롯길을 따라 계곡 깊숙히 들어가면 계방산 동쪽 안부에 이르러
서쪽 능선을 타고 계방산 정상으로 오르거나
남쪽 골짜기로 내려가 방아다리 약수로도 갈 수 있겠다
또한
비경의 어리목골 계곡을 끝까지 치고올라
소계방산(1,456m) 정상과 계방산 정상 사이를 스쳐 수청골로 하산 가능하지만
독도법을 익힌 사람외에는 산 속에서 헤매이기 십상이란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은 곳이니
그 얼마나 좋을까 올봄 수청골로 하산하는 산행을 해봐야겠다
성황당을 뒤로 하고 다시 내려오기로 작심했다
그 흔한 새소리 들리지 않고 주위가 너무 조용하다
어느 나라건 새들이 떠나면 산야는 겨울이 된다던데 그 말이 실감이 난다
겨울 눈이 새들이 떠난 자리를 온통 하얗게 덮었다
남는 것은 눈 밭에 새겨진 새들의 발자국뿐이고
나 역시 얼어붙은 산 속에 내 발자국만 남겨 놓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것 같다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힌 을수골은 침묵으로 가라앉고
맑은 개울은 얼어붙은 채 묵상을 한다
이 곳 을수골은
정감록에 나와 있는 십승지중 피장처 가운데 한 곳이다
을수동 바로 옆이 "달둔"인데
이 달둔은 3둔 4가리중 한 곳이다
3둔은 월둔, 달둔, 살둔이고
4가리는 적가리, 연가리, 아침가리, 명가리이다
"가리"는 좁은 계곡에 손바닥만한 작은 밭을 말하며
산속에서 풀뿌리, 돌멩이 캐며 살아가야 했던 화전민들의 질곡한 삶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을수동에 남은 흙집)
정감(鄭鑑)이 조선의 산수를 살펴보고 썬다는 예언서가 "정감록"인데
이 책은 조선왕조 대한 불만으로 가득찼다
"조선은 곧 망한다. 왕은 무능하고 사대부는 부도덕하고
관리들은 부패했기 때문이다.
나라가 망할 때는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중략.....
그럴때 때를 놓치지 말고 "십승지"에 들어가 목숨을 보존하고 자식을 길러...
그 곳은 병화, 흉년이 안들.... "
십승지는 정감이 조선 땅에서 고른 열 군데의 전략적이며
하늘의 가호를 받을 수 있는 신앙적인 성지였다
철종대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삼정(三政)의 문란으로 민심은 더욱 피폐되고 과중한 세금으로 백성들은
야반도주하여 화전민들이 늘어났다
십승지는 화적들의 본거지가 되기도 하고
농민전쟁 후로는 동학당 패잔병들의 피신처가 되기도 했고
6.25전쟁때에는 빨치산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6.25전쟁 때 많은 이들이 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그 후 1976년 정부의 화전민 정리사업때 거의 다 떠났다고 한다
이 곳에서 흙과 나무로 집을 짓고 모여 살았던 이들은
지금은 거의 다 떠났다
홀로 남은 집들은 떠난 사람들을 기다리다 지쳐 허물어져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웠다
사라진 것은 그들과 집만이 아니다
자연에 대한 영험스런 기운도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
몇 해전부터 사람이 사라진 이 곳에
다른 모습을 띄기 시작한다
자연휴양림이 생기고 민박집도 많아지고
통나무를 차곡차곡 쌓고 그 사이에 진흙을 채워넣은 귀틀집이 아닌
현대식으로 지은 집들이 많이 늘어났다
옛 집을 헐고 시멘트로 집을 짓고
길을 이리저리 내면서 아스팔트로 덮고 빈집들은 전원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도시 사람들의 소유로 변하고
대기업은 악법 가운데 하나인 국제경기지원법을 이용해서
소유하고 있는 임야에서 국제적 단위의 운동경기를 치른 후
땅을 용도변경해서 높은 이익을 챙기려는 일들이 왕왕 벌어진다
열흘 안팍의 행사를 벌이면서
천년만년 보존 되어야 할 자연이 한 순간에 망가진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국제 잼보리대회를 개최하면서 설악산 학사평이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린
주목과 소나무로 덮인 덕유산이 망가졌다는 사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제 거의 걷지 않고도 오를 수 있는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 끝자락에는 커피숍과 레스토랑이 세워져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명상의 길이다
땅을 투기의 목적으로 보는 데에만 혈안이 된 이들,
이 땅들이 배겨날 수 있을까
이 땅은 자연이며 우리가 사는 국토이다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온통 순백의 하얀 눈은 햇빛에 의해
눈이 부시게 반짝이며 시야를 흐리게 한다
첫댓글 멋진 설명이 없었음..그냥 한 시골의 수수한 모습들이 었겠네... 많은 상식을 주어 고맙네요..학교때 고문시간 생각 나고 덕분에 좋은 여행 감사감사...
영철아 어제오늘 간현 판대리에서 얼음하고 지금막집에왔다... 경매에 나와있다구... 웬만하면 사버려라... 그리구 너 글솜씨가 전문여행가보다 한수위다... 우리카페에 스포츠&레져 전문위원으로 위촉함... 짝짝짝... 우리 친구들도 알겠지만 영철이는 Tennis는 아마추어수준은 이미넘었고..
암벽등반에.. Off road 또한 매니어로서 명실상부한 스포츠맨이지...
우리 모두 건강을 챙겨서 ridge가 가이드로 앞장서면 모두 따라 나서자. 볼거리와 함께 역사 공부 곁들이는 현장실습과 하산후에 챙길수있는 재밌는 2차 내지는 3차도 은근히 기대할 수있겠다. 우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