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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봉생맨과 함께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봉생맨
이번 주가 지나면 이제 봉생병원을 떠나야 합니다.
1995년 3월에 입사를 해서 어느 덧 17년, 제 나이 51세니 딱 1/3을 봉생과 함께 한 것 같습니다.
봉생 병원에서의 17년은 정말 뭐라고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희노애락, 우여곡절의 연속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7년을 함께 한 봉생이라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이나
그러지 못하고 글로써 인사를 대신하는 점 너그러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봉생병원을 떠나기에 앞서 그 동안 미쳐 말씀드리지 못한 일이나 소회를 말씀드리고
용서를 구할 건 구하고 또 오해가 있었던 부분은 풀어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이 편지를 올립니다.
우선 두 가지 일에 대해서 용서를 구합니다.
첫째 지난 동구청장 선거는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제가 지나친 것 알고 한 일 맞습니다.
당직자들에게도 분명히 밝혔고 그래서 원장님 전화 받고는 바로 중단하였습니다.
다만 그 당시 선거는 이미 승패가 결정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원장님께서 알고 계셨듯이 사실 승부가 안 되는 선거였지요),
또 한 가지는 선거운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원장님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풀게 해줄 기회가 있어 원장님께 해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생각 하고 있습니다.
둘째, 제가 Facebook에 그와 같은 내용을 올린 건 원장님 입장에서는
충분히 심기가 상하셨으리라 생각하고 이 부분도 사과를 드립니다.
다만 원장님께서 FTA 를 찬성하던 안하던 반대 입장 사람들의
원성을 살 수도 있는 역할을 지신 것은 저 개인적으로 좀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제가 사표를 낸 것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성급한 일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냥 충분히 넘어 갈 수도 있는데 제 성미에 제가 넘어 간 것이지요.
그렇지만 제가 사표를 내놓고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보니
철회도 힘들 것 같고 또 철회를 부탁한다하더라도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은 들더군요.
무슨 느낌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전혀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원호 과장을 비롯한 전 신경과 과장들이 아주 간절하게 부탁을 하더군요.
이틀 동안 그런 간곡한 부탁을 받고 철회를 하기로 마음 먹고
그 다음 주 월요일 행정원장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냉정한 표정으로 사표가 처리가 되었다는 얘기를 하셨지요.
그 순간 저는 마음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그런데 과장들이 다시 부탁을 하더군요.
개인 병원에서 그런 사표 처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저번 이동호 정형외과 과장은 사표 처리도 되고
봉생 원보에 퇴직 기사가 났는데도 계속 근무하지 않았느냐
제발 정원장님께 한번만 철회 전화를 해 달라며 부탁을 계속 하길래 제가 그랬습니다.
내가 봐서는 이미 되돌릴 수 없다 그런데 과장들 뜻이 그러니
한번 전화는 드려 볼게. 하지만 만약 안 되면 내가 무슨 꼴이 되냐
그랬더니 과장들 모두 사표를 쓴다고 하더군요
(사실 과장들 모두가 사표를 써서 철회를 한들 제가 무슨 낯으로 다시 근무를 하겠습니까?
철회 부탁을 드린 것은 저로서도 정말 싫었지만 후배들이 너무나도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한번은 하겠다 한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믿지도 않았고
또 그러지도 말라고 해 놓고 그 다음 날 제가 정원장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는 아시는 대로 사표는 철회가 안 되었고
이 부분에 대해선 제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낸 사표를 정상적으로 처리한거니 당연한 일처리가 맞는 것이지요.
그러고 나서 저는 무척 바빴습니다.
아시다시피 병원도 알아봐야하고 준비도 해야 하니 말입니다.
또 한 가지는 1월부터 3월까지 예약된 환자들은 어찌하나,
그리고 연구하고 있는 환자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가
1개월만 연기를 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기로 한 거지요.
그러면 1월 환자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연구 환자도 손제용 과장에게 인계를 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구정도 있고 등등의 이유로 부탁을 드리기로는 했는데
사실그 당시 느낀 분위기로 봐선 저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과장들에게는 말씀은 드릴껀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안 될 것 같다고는 말해두었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역시 원장님이 아시는 대로입니다.
95년도 입사한 이래 저는 환자와 병원 직원을 정말로 내 가족이나 친척처럼 위했습니다.
제가 꿈꾸는 세상은 가슴이 따스한 세상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이 말을 외쳤고 나중에 이 말이 곧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과 같은 의미라는 걸 알았지요.
그래서 저는 입사 후 병동직원에서부터 청소하는 아주머니
그리고 그 당시의 경비 아저씨들까지 일일이 챙겨드렸습니다.
또 환자가 돈이 없어 검사를 못 받거나 약을 탈 돈이 없으면 저는
서슴없이 제 월급에서 공제를 하거나 의약 분업 후에는
약국에 전화를 해서 제가 약값을 댈 테니 약값을 받지 말라고 해 놓고
매주 약국을 순회하면서 약값을 결제해 왔습니다.
그리고 누구 보다 항상 먼저 인사를 했고 어느 직원들에게나 항상 부드럽게 대했습니다.
제가 거의 유일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는 아마도 행정원장님께만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여러 부서에서 어떤 불합리한 일들이 생기면
밑에서는 거의 해결이 안되거든요.
그러면 저는 올라가서 행정원장님께 항의하곤 했지요.
그러면 행정원장님은 다 들어주시고 해결을 해 주시곤 했습니다.
행정원장님과는 사실 다른 문제로 대립이 된 적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과장 때문에 약간 의견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건 이해를 시켜드렸습니다.
다만 유일하게 월급 협상을 할 때는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행정원장님이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그건 너무나도 정당한 투쟁이었습니다.
원장님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요
어느 순간 누구 누구의 월급이 공개되는 사건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항의를 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올해 월급 협상에서는 단돈 3십인가 5십인가를 올려 준다고 하더군요.
저는 정말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말이 나오지 않더군요.
작년 한해 특진료만 1억이 넘게 들어오는 상황인데 그 정도 인상이라니요.
그래서 박차고 일어선 겁니다.
따라서 월급 협상시의 실랑이는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또 그동안 제가 밑의 과장들을 다 뽑았고 심지어 내 보낼 때는 저 보고 내 보내라고 하시면서
제가 밑의 과장들 월급에 조금 관여를 한다고
그걸 자존심으로 생각하시는 처사는 저로서는 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사실 입사 초반엔 월급 협상시에는 하도 밑의 과장 월급 인상이 적어서
차라리 제 월급을 깍고 밑의 과장 월급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구구절절 말씀을 드리는 건 월급 협상시의 실랑이는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신경과월급이 최고 오른다, 다른 과는 동결이다,
노순기월급이 최고다 해놓고 막상 열어 보면 그게 아니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데 어떻게 순순히 도장을 찍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월급 협상을 하면서 아무 이의도 없이 그냥 싸인만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다른 과장님들 모두 저나 이원호 과장은 2.5는 받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를 받으니 저렇게 일들을 하지 이렇게 생각을 하나 봅니다.
행정원장님께서는 2006-7년부터는 정상화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예 최근 1-2년은 어느 정도 오른 거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그 전에는 당연히 정상화가 안되었다는 얘기이고
그렇다면 그 이후는 최소 수년간은 정상보다 더 받아야 당연하다는 얘기도 되지요.
또 하나는 제가 그렇게 투쟁을 하지 않고 그냥 순순히 도장만 찍었다면 그나마도 안됐을 것이지요.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을 드리는 건 저와 행정원장님의 관계에 대해 설명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당연한 댓가를 바라는 거지 더 이상을 원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월급을 당당하게 받아서 좋은 일을 하려 함이지
개인적인 치부를 하기 위함은 아님은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 가지 갈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사례 하나를 들어 보겠습니다.
〔몇 년 전 월급 협상의 한 조건으로 저에게 도움을 주는 병원 간호사 한명을 저에게 약속했습니다.
즉 epilepsy coordinator 로서 간질 환자 history taking과 WADA test 도 도와주고
전반적인 간질 관련 일을 도와주기 위해 뽑았고 삼성의료원에 1개월 연수도 보냈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연구도 도와 주고요.
그런데 이 간호사가 제 개인적인 연구를 하는 것을 상사가 알고 나서부터
이 간호사를 자꾸 몰아붙입니다.
왜 병원에서 월급 받으면서 개인적인 일을 하느냐고 다그치며
그리곤 저에게는 전달하지 말라고 하지요.
그러면 그 간호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울면서 저에게 하소연만 합니다.
그리고 제가 해결을 해 줄까 하면 그러지는 말라고 하지요.
무섭다면서요.
이런 일들이 자꾸 반복이 됩니다. 참 어이가 없습니다.
그냥 저에게 왜 병원 직원에게 개인적인 일을 시키느냐고 한마디만 물어 보면 모든 게 해결이 되는 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혹은 충분히 들 수가 있기 때문에 저에게 당당하게 묻고
제가 해명을 해도 의혹이 풀리지 않으면 행정원장님께 문의를 해 보면 바로 문제가 해결되는데 말입니다.
결국은 마지막까지 가서 제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상황까지 몰렸고
결국은 행정원장님을 찾아 뵙고나서야 일이 바로 풀렸지요.
이런 일들이 생기면 저는 저대로 화가 나서 마구 따지지요〕.
저는 병원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항상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일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얼마 전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신경과장의 방이 하나
없어서 진료가 없으면 돌아가면서 옛날 방사선과장의 자리에서 대기를 하다
응급실이나 근전도실로 불려가곤 합니다.
그런데 방사선과 과장님이 들어오시면서 그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하길래
우리는 5층 구석진 곳으로 가고 그 자리를 비워 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밑의 과장들이 저에게 항의를 하더군요.
우리가 선임이고 이미 쓰고 있는데다 5층으로 가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니 현재 그 자리를 쓰겠다구요.
그리고 이런 의견을 이미 행정원장님께 통보를 했다구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그래도그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선임이지만 그래도 일을 하는 사람이 우선이 아니냐
우리야 그 곳이 대기 장소이지만 방사선과는 하루 종일 일을 하는 장소이니
우리가 양보를 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설득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방사선과 윤과장에게 전화가 와서
어찌된 일이냐고 따지길래 제가 설득을 시켜서 이미 해결이 되었다고 했지요.
나중에 밑의 과장들이 저에게 웃으면서 농담처럼 한마디 하더군요. 제가 자기들 편이 아니라구요〕
저는 지금 참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처음 병원 들어오기 전에 어느 선배가 돈 주는 만큼만 일하라고 한 말도 새삼 떠오르고,
병원에 근무하던 중에는 어떤 선배님이 병원을 떠날 때 저에게 직접 오셔서
넋두리처럼 하신 말씀도 생각나 씁쓸합니다.
그 당시에는 마음에 와 닿지 않았지만 지금에야 그 선배님의 심정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
제가 경솔했던 점을 인정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17년간 봉생병원을 위해 성심성의껏 일해 온 것보다 더한가,
그리고 얼마나 잘못했으면 1개월만 연기해달라는 마지막 간절한 부탁
(그것도 환자와 병원을 위한)도 냉정하게 거절당하는 비참함을 맛보아야 하는가.
저는 그 부탁이 거절 당하는 순간 정말로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이게 그렇게도 늘 봉생에서 들어 왔던 봉생가족에 대한 처사란 말인가
내가 생각하는 가족과 봉생이 생각하는 가족은 정말로 같은가.
이렇게 저를 대하면 내가 봉생을 떠나서 정말로 영원한 봉생 가족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저는 모든 카페와 당에서의 닉네임이 봉생맨입니다. 이젠 바꿔야겠지요)
17년간 봉생에서 일을 하면서 제가 생각하는 가족과 원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가족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같지 않겠냐라고 생각을 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지금껏 제가 생각해 왔던 가족과는 달랐었나 봅니다.
안타깝고 서운하기까지 합니다.
제가 들은 얘기로는 제가 해고된 이유가 진료외적인 문제로 설명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정치적인 문제는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고 저는 그건 아니라고 당관계자들에게도 단언했습니다.
만약 그게 맞다면 이 사실을 어느 기자가 알면
아마도 어느 병원 원장이 정치적인 이념차이로 누구를 짤랐다고 대서특필하겠지요.
그렇다고 제가 환자에게 소홀했던 것도 아니고 직원들에게 못했던 것도 아니구요
(다행히도 제가 떠난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아시고 눈물을 흘리면서 진정으로 남아 주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저를 기억해 주시는 직원들이 많아서 저는 행복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환자를 적게 보는 것도 아니구요
(최근엔 예약외 신환을 받지 않는데다 응급실에서 해방 되면서 좀 줄었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지금쯤이면 응급실이나 토요일진료는 면제 받으라고 하는데
아직도 저만 토요일은 격주로 근무합니다.
그런데 좀 씁쓸합니다.
제 진료를 신청해서 어쩔 수 없이 저에게 몰리는 환자들을 좀더 원만한 진료를 위해
밑의 과장들에게 골고루 돌아가게끔 했는데
그걸 그만두면서까지 환자들을 진료 하고 실적을 높이면 해고가 되지 않을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런 생활들을 계속할 것인가.
우리에겐 젊어서 고생하고 그 댓가로 나중에 주어지는
열매도 누릴만한 여유를 가지만 안 되는가 등등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제가 왜 아무런 정상 참작도 못 받고 해고 되었는지
그 이유를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어느 경우든 제가 더 이상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그게 세상 인심이니까요.
그리고 제가 사표를 낸 건 맞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내가 이 병원에 들어 와서 진짜로 후회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아나?
내가 너희들과 같이 좋은 후배들을 뽑았다는 것이 이제 와서야 후회가 되네
첫째는 너희들과 헤어지는 것이 안타깝고
또 한 가지는 이렇게 좋은 너희들이 남아 있으니
설사 내가 무슨 억하심정으로 봉생이 잘못되기를 바란다고 해도 그게 되겠나?
차라리 좀 못난 후배를 뽑았더라면
내가 나가서 봉생이 잘 안되면 통쾌하기라도 할 것이고
또 내가 나가면 무너지니 아예 해고시킬 엄두도 못 내겠지.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제?
저는 이제 떠나갑니다.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습니다.
아직도 저의 심장은 뜨겁고 환자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일에 대한 열의로 가득하니까요.
막상 글로써 인사를 대신하려 했는데
막상 쓰다 보니 생각지도 않은 여러 가지 일들과 생각들이 뒤엉켜
본의 아니게 넋두리를 늘어놓은 모양새가 되어 버렸습니다.
혹시 이런 일들로 인해 또 다른 불편한 심기의 이유가 될까 저어됩니다.
혹 그러시다면 너그러이 이해를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건승을 빕니다.
2011년 12월 28일 이른 새벽에. 신경과 과장 노순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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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꼬옥 10분만 정독 하여 읽어 보세요...~~^^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가 ...자신의(17년 근무)한 병원 주인(병원장) F,T,A 날치기 주역인 한나라당 정 의화에게 마지막 남긴 편지 입니다 ...^^
사람사는세상 ...
살맛나는 세상은 언제나오려나 가슴답답합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거라는 희망을 안고 ....
언젠가는 그런 날 꼭올겁니다~~^^*
봉생맨님께서 봉생병원을 떠나시는군요.
봉생병원을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분인데......
어떤 꿍꿍이가 있어서 그 분을 내치시는건지는 모르지만
정의화, 그 이름 기억하렵니다
함께 근무했던 한사람으로써 많이 공감함니다...
정의화 원장님은 등잔 밑이 너무 많이 어둡습니다
정확하게 말할 것 같으면 몇 안되는 간신배들로 싸여 있다고 보면 ....
몇 안되는 분한테만 잘 보이면 출세하는게 현 봉생 병원의 현실입니다 ...
어떤 한 분은 부하직원을 동물취급 할뿐만 아니라 원칙도 없이 기분내키는대로 행동합니다
외모는 커져 가지만 속은 곪아터졌습니다
이글을 올리는 이유는 봉생을 사랑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