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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1981년 11월 상좌인 진현스님(왼쪽), 철웅스님(오른쪽)과 함께 제주도 만행에 나선 일현스님(가운데). |
일현스님의 수첩에는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절에서 염불공양을 하는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바쁠 때는 마곡사에 돌아오지 못하고 보름이고 한달이고 전국을 만행해야 할 정도였다.
이틀 또는 사흘간 예수재를 봉행할 때도 흔들리지 않고 지치는 것도 없이 염불을 하던 일현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환희심이 생겼다.
스님의 상좌들은 “우리 스님이 예수재에서 불공을 하는 것을 보면 특히 새벽녘에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면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회고한다.
160cm 정도 되는 작은 키였지만 염불할 때의 목소리는 그 어떤 장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우렁찼다는 게 스님의 염불을 들은 이들의 기억이다.
진철스님(전 마곡사 주지)의 말이다. “일현 큰스님의 염불은 단지 목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소 정진하시던 수행의 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밤을 새워 염불을 하고도 목소리가 변하지 않겠습니다.”
일현스님은 세속의 일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직 염불하고 정진하는 것외에는 신경을 끄고 살았던 것이다. 스님에게 있어 염불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방편이었으며, 정진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1968년부터 1971년까지 마곡사 주지를 하게된 것도 당신의 뜻보다는 주위의 권유때문이었다. 몇차례나 주지 소임을 맡지 않으려고 했지만, 조계종 총무원과 문도회에서 일현스님을 마곡사 주지로 모셨다.
재미난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스님은 ‘순사(경찰)’가 오면 다락방으로 몸을 피했다. 잘못한 것은 없지만 순사와 마주치는 일을 그 어떤 일보다 싫어했다. 순박한 스님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염불의 공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일현스님은 상좌와 후학들에게 염불을 잘 해야한다고 가르쳤다. 스님의 육성이다. “중이 되어서 탁자밥을 내려 먹을줄 모르면 아무 소용도 없다. 염불을 일념으로 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좋지만, 스스로에게도 엄청난 공덕이 된다. 이 말 잊지 말고 명심해라.” 탁자밥을 내려 먹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은 불단이나 제사상에 올려진 공양을 받기 위해선 염불을 잘 모셔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곧 수행자로서 위의를 잃지 않고 정진해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상좌인 진현스님은 “은사스님은 호의호식 한적 한 번 없고, 호강한 일도 없으신 분”이라면서 “그러나 수행자로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어른”이라고 밝혔다.
일현스님은 상좌를 공부시키는데 무척이나 엄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다정하고 포근하게 대해주었지만 상좌에게만큼은 ‘가혹할 정도’로 엄격했다. 상좌가 잘못이라고 하면 대중들이 있거나 없거나 ‘죽비공양’을 내렸다.
불가에서 경책을 상징하는 죽비를 건네주는 게 아니라, 죽비를 회초리 삼아 따끔하게 야단을 친것이다. 눈물이 쏙 날 만큼 혼이 난 상좌 가운데는 은사스님에 게 ‘섭섭한 마음’을 가질 정도였다. 하지만 상좌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어른의 뜻을 알게 된 후에는 오히려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했다.
일현스님 상좌인 철웅스님(대전 고산사 주지)은 “우리 스님은 늘 염불과 주력을 하셨던 분”이라면서 “우리 조계종단에서 은사스님처럼 염불을 잘 하신 어른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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