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전탑 답사 결과 (14-18차:연번 209회차)
산성 답사 대신 떠난 신라 전탑 답사여행은 대전선사박물관에서 출발한다.
08:00 출발 예정시각을 20분이나 지나서 떠난 답사 버스는 선산IC에서 나와 바로 인근의 죽장사지의 5층 모전석탑으로 향한다.
심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논의 벼를 보면서 이르른 곳에 신라 석탑의 모습을 본다. 석가가 해탈했다는 보리수나무 사이로 보이는 석탑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이 주는 경건함에 빠진다. 일렬로 늘어선 주춧돌이 그나마 제자리가 아니라는데서 아쉬움이 있지만 그런대로 남아서 옛절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새로 지은 대웅전에서 탑과 함께 내려다 보는 앞 조망맛이 일품이다.
다시 찾아간 곳은 마늘 산지로 유명한 의성의 빙산사지 석탑
경북8승지의 하나라는 빙계계곡에 있는 모전석탑을 둘러보고 빙혈, 풍혈에서 더위를 식힌다.
빙산사라는 절 이름이 붙은 이유를 잘도 설명해주는 시원함이다.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이제 본격적인 전탑을 답사한다.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은 해체 복원 공사중이라는데 직접 찾아본다. 해체 현장에서 보는 옛 탑의 모습을 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물론 익산미륵사지에서도 본 바 있지만, 역시 의미있다. 심주로 들어있는 나무의 형해도 이채롭지만 탑 속을 흙으로 석회를 섞어서 판축식으로 다져 넣었다는 관계자의 해설에서 토성의 판축법을 연상시켜본다. 산성 답사와는 무관해보이는 전탑 답사에서 좋은 관련성을 얻는다.
이어서 안동역 구내에 있는 운흥동 5층전탑을 찾아나선다.
탑옆의 당간지주도 본다. 당간지주의 위치가 옮겨졌다는 말에 실망한다. 당간지주의 위치와 탑의 위치, 금당의 위치가 질서 정연하였을 터인데, 철도 부설탓인지, 민족문화 말살의도 였는지 아무튼 뒷맛은 씁쓸하기만 하다.
단체기념사진도 찍고는 법흥동 임청각과 법흥사지7층전탑을 보러 간다.
임란전의 현존 건물로는 강릉 선교장의 가옥과 더불어 안동의 임청각 둘 뿐이라고 하는데 철로 건설이라는 미명하에 건물의 상당부가 헐렸다는 말을 듣고는 일제의 교활한 민족문화 말살 시도에 전율을 느끼면서 동시에 이웃한 법흥동 법흥사지 7층 전탑을 본다.
오후 5시 반이 되어서 버스는 대전으로 돌아간다. 서산으로 지는 해의 붉은 일몰 광경을 보면서 북상주 IC를 지나 남상주IC 옆으로 해서 구병산 남쪽기슭에 있는 속리산 휴게소에 잠시 들렸다가 대전 출발지로 돌아오니 저녁 7시 40분이 되었다.
7층전탑의 기단부의 조각상과 고아원에 있다가 지금은 광복회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독립운동가 후손의 뒷이야기와 임청각의 모습을 가슴에 품고서 집으로 돌아온다.
대전선사박물관에서 버스는 출발 08:20분
첫 답사지인 죽장사지 5층석탑 : 선산 IC를 나오자 왼쪽으로 죽장리 마을로해서 들어간다.
보리수 나무에 가린 석탑
모전석탑(벽돌탑을 모방한) 형태의 5층 모습 : 5층 석탑으로는 국내 최대형이라는데 통일신라 시 작품
옥개석 윗면이 층층진 모습이 모전석탑임을 증명한단다.
5층석탑 한편에는 옛 절터에서 사용되었을 주춧돌의 모습이다.
빙산사지 석탑을 찾아가는 길 : 의성군립공원인 빙계계곡 : 경북 8승지의 하나란다.
모전석탑 형태의 빙산사지 5층석탑. 석질이 고운 모래로 된 사질암이다.
모서리 끝을 살짝 치켜든 솜씨가 일품이다.
5층석탑의 감실 바닥에 있던 대석은 따로 빙혈 입구 옆에 있다.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빙혈과 풍혈이 있어서 빙산사라는 이름을 가진 것일까?
의성탑리 5층석탑은 해체 복원중이라 못 보고 대신 사진으로만 대한다.
조탑동 5층 전탑 보수공사장을 찾아서
금강역사상이 감실 좌우를 지키고 있고, 감실 안으로는 심주인듯한 나무가 보이는데...
보구언작업중인 내부를 들여다 보고, 공사 담당자의 설명도 듣고...
대정(大正)이라는 일제시대의 연호도 보고, 그들의 보수 증거를 확인한다.
탑 중앙부에 남아있는 나무 심주와, 속채움은 흙으로 석회를 섞어서 판축식으로 다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토성 판축방식이 탑에도 적용되고...
사진으로 보는 5층 탑의 연도별 모습
안동역 우측에 있는 안동 동부동 5층 전탑
옥개석이 기와지붕 형태로 되어 있다.
좌측에는 당간지주와 받침석이 있는데, 당간지주의 위치가 본래의 자리에서 옮긴 것이란다.
벌림사지로 추정되는 곳에 있는 전탑과 당간지주
2층 남면에 인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고성이씨 종택이 있는 곳에 임청각이 있고, 법흥사지 7층 전탑이 있다. 철로 옆으로
옥개석 윗부분에 일부분이나마 기와 지붕형태가 보인다.
기단부에 새겨진 조각들(*조각상 주변의 구멍 자국들은 총탄 자국인지, 아니면 별자리를 새긴 것인지...???)
임란 이전의 한옥으로는 강릉 선교장과 더불어 임청각 뿐이란다.
고성 이씨인 독립운동가이신 석주 이상용선생의 고택이다. 사당채, 남자들의 공간인 임청각의 군자정, 안채, 노비들의 바깥채, 남자 노비들의 행랑채 등으로 구획되어있다.
낙동강의 푸른 물을 바라보며 당호를 임청각이라 지었다는데, 앞에는 철로가 가로막고 있다. 지맥과 혈기를 끊을 목적으로 일제가 못된 짓을 했다. 곳곳에서 이런 흔적을 보게된다. 남원 황산대첩비 파괴도 그렇고,
군자정 앞에서 기념 사진도 찍는다.
군자정(君子亭)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뒷산인 영남산(映南山)이 푸른 낙동강 물위에 비치는가.
철길이 가로막혀 풍치를 망친다..
임청각(臨淸閣)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사 가운데 " 登東 而 舒嘯 臨淸流而賦詩"
(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에서 따왔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