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생겨나는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줄 아셨을 텐데 그걸 왜 만들어 놓으셨을까? 또한, 하나님이 확실한 감시망을 만들어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따먹도록 가만히 두셨을까? 그러고는 죄를 지었다고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시고는 그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는 수고를 하셨을까? 아기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 부모는 아기가 위험한 곳에 갈까 봐 눈을 떼지 못한다. 사람도 그러한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왜 하와가 선악과를 따려고 하는 그 순간 나타나서 ‘멈추어라’ 하지 않으셨을까? 그랬다면 인류의 불행도 안 생기고 예수님이 오셔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왜 가만히 계시다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나서야 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하고 부르셨을까? 이런 의문은 불신자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핑곗거리가 되기도 하며 신학적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악을 방임(放任)하셨거나 악을 조장(助長)하셨는가 하는 논쟁까지 나아갈 수 있다. 복음 전도에 방해 거리가 될 수도 있고 믿음이 약한 신자에게는 시험 거리가 될 수도 있는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알면 이것은 시험에 들 문제가 아니라 무한히 감사하고 감격할 사안임을 알 수 있다. 문제의 해답은 ‘자유 의지’라는 네 글자로 설명이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면서 사람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자유 의지”이다. 사람의 좁은 생각으로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로봇처럼 만들어 하나님의 프로그래밍 대로만 움직이도록 하셨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아서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처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격체로 만들어 사람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원하셨다. 그래서 강제로 혹은 저절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결심하여 순종하라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대하신 것은 사탄이 와서 어떤 거짓말을 해도 그 유혹에 솔깃해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사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거짓말을 거부하고 오로지 하나님만 신뢰하고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그런 성숙한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대하신 자발적 사랑을 세상에서 벌어지는 한 상황과 비교해서 생각해보자. 조선 시대 왕들의 이야기를 보면 때로 어떤 왕이 평민처럼 옷을 입고 세상을 살피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왕이 순박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왕궁 안에는 왕의 권세를 탐내어 왕의 성은을 입기를 갈망하는 수많은 여인이 있다. 그런 가짜 사랑에 진저리가 난 왕이 세상에서 마음에 쏙 드는 순박한 여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왕은 아무 여인이나 자기 여자로 삼을 수 있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도 왕비로 삼을 권세가 있었다. 하지만 그 경우 왕비가 된 여인은 자발적으로 왕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왕이 신분을 과시하며 평민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가기보다는 정성을 다해 구애해서 그 여인의 자발적인 사랑을 얻어낼 때 그 사랑이 진짜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사람에게 원하시는 사랑과 순종도 바로 그러하다.
우리 하나님은 처음부터 선악과를 만들지 않아서 유혹의 요소를 없애거나 선악과가 있어도 절대로 따먹지 못하도록 감시를 잘해서 사람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신뢰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런 사랑을 원하셨다. 그런데 인류는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하나님 대신에 사탄을 선택했고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죄인이 되어 버렸다. 이쯤 되면 하나님은 크게 화를 내시고 에덴에서 추방이 아니라 인류를 멸망시켜버리셔도 된다. 노아 시대 홍수 때에도 노아 가족조차 안 남기도 몰살시킬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다시 기회를 주시고 결국에는 독생자를 보내어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마련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는 나를 떠나지 말고 오랫동안 사랑하자.”(호 3:3)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죄를 지을 줄 알면서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자발적인 사랑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하며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른다.
첫댓글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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