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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의 족보 11:10~26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5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6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데라의 족보 11:27~32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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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셈의 족보입니다. 셈은 홍수 후에 아르박삿을 낳습니다. 셈의 자손인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습니다. 하란은 롯을 낳고 우르에서 먼저 죽습니다. 아브람의 아내는 사래, 나홀의 아내는 밀가입니다. 아브람과 사래,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 했던 데라는 하란에서 거류하다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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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4: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그럽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이 셈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갈대아 우르라는 땅이 우상을 섬기는 지역이었고 거기서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택한 것이 아브람이 잘났다거나 특별히 다른 사람보다 의인이거나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노아의 홍수 때처럼 심판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적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은혜로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런 세상!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처럼 높아지기를 꿈꾸며 우상을 섬기는 것이 보편화된 세상 가운데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떠나서 하나님의 훈련 여정에 동참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되어져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11:31절에 의하면 정작 갈대아 우르를 떠나기로 결정한 사람은 누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아버지 데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지만 아브람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에 의해서 하란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지도 않았고 즉각적으로 순종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아브람을 하나님은 부르시고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12:1절의 상황은 어찌 보면 다시 한번 하나님이 아브람을 재촉하시는 장면처럼 보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찰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은혜로 불렀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만한 환경도 자격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성품 적으로도 그렇게 잘 준비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우유부단하고 타협도 많이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열심히요 은혜가 아브람을 불러 아브라함으로 만들어 가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를 은혜로 부르신 하나님은 아브람을 또한 은혜로 부르셔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우리의 출신이나 성품이나 학력이나 외모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다 네피림의 정신을 따르는 사람들, 용사요 유명한 자들의 계보를 따르는 사람들,
니므롯의 지도아래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신실하게 반응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훈련을 잘 마쳐 가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저는 이것을 늘 견고함이라고 불러왔습니다. 변함없음입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함을 잃지 않는 삶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장 소중하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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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32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이름을 내려는 자들을 흩으신 바벨탑 사건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일입니다
온 천지가 심판 아래 있는데 하나님이 셈의 후손을 선택하셔서 노아와의 언약에 따라 덮어줌의 은혜를
아는 자 ,구원을 얻는 자들을 열거하십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 셈의 후손을 다시 거론함으로서 이 계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시고자
하시는 것을 알게하십니다
셈의 족보를 통해 이름만 읽을뿐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였는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셈의 후손을 이어 가지만
뭘 하고 살았는지? 전혀 기록 없는 사람들 이름을 보게하십니다
유명하지 않은 이름들을 한 던어가 귀한 성경 지면에 적어주심으로 이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는 중요한
통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우리 이름을 내자 하는 사상이었는데~ 셈의 후손들은 단순히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르고
평범하게 살다가 죽은 ~지극히 평범한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평범한 삶이 비범한 삶입니다
우리 교회들이 이 땅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여도 그저 예수 믿은 한 사람이라는 이름만 있어도 이것이
얼마나 복되고,좋은 일인지 알게하십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우리 이름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에 가치를 두고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나의 이름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구원하시는 주님을 믿는 사람답게 하루 하루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살아 가는 이것이 믿음의 삶인 것을 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직계 가족으로 초점을 맞추고 계십니다.
데라는 세 아들을 낳는데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 아브람은 사래와 결혼하였으나 자식이 없고, 나홀은 밀가와
결혼하여 갈대아의 다른 이름인 바벨론에 계속 살았고, 하란은 아들 롯을 낳고 바벨론에서 아버지 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아브람의 가족이 바벨론에서 살다가 하란으로 옮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길을 떠나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하나님이 지시 하실
땅을 바라보고 떠나게하십니다.
이렇게 그저 하나님만 바라보고 가라 하시는 곳으로 떠나라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니 참 어렵습니다
바벨론 땅에 그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셔도 되실텐데 떠나라는 것입니다.
내가 살기 가장 조건 좋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은 이미 위험한데도
하나님께서 불러 내시는 것입니다
나를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영벌에서 영생으로의 부르셨습니다
아브람을 문명 발생지인 초승달지역 사람이 살기 좋은 그곳에서 나오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듯 ~
하나님이 택한 자라면 가장 안주하고 배두드리며 사는 곳에서 불러 떠나게하십니다
안주하고자한 곳에서 부르셨으니 더 좋은 곳으로 인도 받는 줄 알았다가 된통 뒤집어지고 엎어지면서 가다보니,투덜 거리며 울고 불고 안 가겠다 드러눕기도 하면서 내 힘이 아닌 주님 잡은 손이 나를 놓지않고 오다 보니,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가는 모양새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하신 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 말씀의 위력인것을 알게됩니다.
세상이 좋고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추구하던 나를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게 하시고 그 아들의 나라를 찾아
나서게 하시는,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나는~이제 나의 의지와는 정 반대로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몰아가시는 것입니다.
데라는 아들 아브람과 함께 하려고 같이 떠나기는 했는데 하란에 머뭅니다
세상이 좋아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우르에서 우상을 섬겼는데 하란에서도 우상을 섬기는 곳이
많았기에 익숙하고 잘하는 것이 있는 곳에 머물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안주하고 싶고 안전하다 여기는 곳이 내발로 복을 차는 곳이 될 수 있다는 것 생각하게하십니다.
날마다 떠날 준비를 하다 떠나라 하시면 머뭇 거리지 말고 떠날 수 있는 믿음을 구합니다
롯은 고아이기에 삼촌 아브람이 거두어 주니까 싫던 좋던 아브람을 따라 나섰을 것입니다.
이것이 롯에게는 복 입니다
비록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불행이 그에게 있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복의 통로로 세우신
아브람에게 붙어 있었던 것이 롯에게는 복 입니다.
없는 것 ,사라진 것에 연연해 하며 아쉬워 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그 일로 온 복을 세는 지혜자 되기 원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아이를 못 낳는 것이 수치였는데~아이를 못 낳는 사래가 아브라함을 따라 나섰다가
나중에는 열국의 어미가 되는 것처럼 복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 딱붙어가면 수치가 변하여 자랑이 되고
불임이 물러가고 잉태하는 복있는 자, 복을 나누어주는 자 됩니다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 아버지!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과 그 뜻을 더욱 풍성히 알도록 눈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강과 복을 은혜로 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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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셈의 족보 (10-17절)
바벨탑 사건으로 노아의 후손이 둘로 나뉜다. 믿음의 족속을 괴롭히는 '함'과 부유함은 누리며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는 야벳이 하나로 묶이고, '셈'이 홀로 믿음의 족보를 이어간다. 육적인 부요가 타락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구원받아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적인 복을 구해야 함을 알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얻어야 할 면류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의 바벨탑이 무너지는 사건으로 자기 죄를 봐야 한다. 죄는 육체와 영혼에 영향을 마치기에,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구원의 족보를 이어갈 수 있다. 죄 때문에 흩어짐을 당해도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 '낳고 낳았더라'의 족보를 이어가게 된다.
●구원의 족보를 이어가고자 내가 깨닫고 회개해야 할 죄는 무엇인가? (10절)
2. 낳고 낳았더라 (18-26절)
함과 야벳처럼 세상에서 유력한 자가 되어 끼리끼리 모여 살면, 흩어짐의 사건이 말씀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명한 자 같으나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을 유명한 자로 세우신다'. 바로 셈의 아들 중에서 '아르박삿'을 택해 '믿음의 조상 아브람까지 구원의 족보가 이어지게 하신 것처럼' 말이다. '함과 야벳의 족보'가 2대에서 끝난 것에 비해(10:1-20) '셈의 족보'는 10대까지 기록되는데, 이는 '셈의 후손' 중에 '대단한 인물이 없어도 믿음을 물려준 것이 가장 편한 업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본문에 유명하지 않은 자들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하나님은 이처럼 '각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기만 해도' 그 역할을 감당하게 하시며 '생명의 족보에 오르게' 하신다.
●생명의 족보에 오르고자 지금 내가 머물러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그 자리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36절)
3. 데라의 족보 (27-32절)
'데라'는 4대 문명의 발생지인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겼다. 그러나 구원의 족보를 이어가려면 우상숭배에서 돌이켜야 한다. 부모가 우상을 섬긴다면, 지혜롭게 복음을 전하는 적용을 해야 한다. 한편 데라는 아들 하란이 죽자, 큰 슬픔에 빠져 하란에 머물며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기를 지체한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 도시에서 살다가 자녀도 잃고 소명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결국 '아브람'은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에야 하란을 떠날 수 있었다. 이처럼 '인간적인 미련과 사사로운 정이 구원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이 최고의 우선순위이기에 우리는 '구원의 걸림돌을 분별하고자 기도'해야 한다.
●우리 가정의 구원을 방해하는 걸림돌은 무엇인가? (31절)
기도하기
흩어짐의 사건을 당했더라도 생명 낳는 구원의 족보를 이어가고자 먼저 내 죄를 보고 돌이키게 하옵소서.
세상에서 이름을 알리기보다 내가 머물러야 할 자리에서 구원을 위해 묵묵히 섬기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저희 가정의 구원을 방해하는 인간적인 미련과 사사로운 정을 분별하여 적용하게 하옵소서. 아멘.
오늘의 중보기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무명한 자 같으나 믿음으로 유명한 자가 되어 생명의 족보를 이어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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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0-26절 인류는 반역했지만, 하나님은 신실하게 구원의 역사를 진행해가십니다. 셈의 족보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함의 자손들처럼 특별한 문명의 발전을 이루거나,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건축물을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낳고 지내고 낳았다는 말만 되풀이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평범한 이들의 삶을 통해 특별한 일(구원의 역사)을 행하십니다. 이들은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들(3:15)이며, 이들에게서 아브라함이 나오고, 다윗이 나오며, 메시아가 오실 것입니다. 오늘 나의 믿음으로 순종하는 평범한 일상도 하나님의 역사에 하루가 될 것입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7,28절 아브람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후에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본향으로 삼습니다. 아브람은 그곳에 하나님이 계획하고 지으실 성을 소망합니다(히 11:10). 이 소망은 이삭과 야곱, 요셉,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이 되었고, 모세와 여호수아의 소명이 되어 마침내 하나님 백성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각자 태어난 고향이 있지만, 그곳이 궁극적으로 돌아갈 본향은 아닙니다. 우리 존재가 시작된 곳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이고, 돌아가 안식할 곳도 하늘에 있습니다. 지금은 여전히 소망 가운데 있지만,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으니(요 14:2) 머잖아 그 성취를 보게 될 것입니다.
29,30절 이 족보의 마지막 계승자인 아브람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라는 특별한 언급은 ‘낳고…낳았다’는 말로 이어진 셈의 계보에 단절과 긴장을 야기합니다. 사래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지금까지 셈의 자손들이 이어져온 것이 자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계획 아래 있는 일임을 암시합니다.
장차 사래의 불임으로 아브람의 후손이 단절되는 위기가 왔을 때, 이 일을 통해 아브람과 사래의 믿음은 연단받게 될 것이며, 약속하신 복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미 주신 일상의 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감사함으로 누리되, 허락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알고 잠잠히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기도
목적 없이 방황하지 않고, 본향을 소망하며 믿음의 길을 온전히 걷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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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벨렉을 중심으로 하는 셈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탑은 스스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표출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벨렉의 족보는 여인의 후손으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열망이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언약의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클라인 교수님은 창세기 11장의 족보가 창세기 5장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11장 10-26절은 창세기 5장과 동일한 기본 구조를 가진다.
이것이 보여주는 바는 창세기 11장 10-26절이 창세기 5장의 마지막에 기록된 족보-노아의 아들 셈으로부터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에 이르는 족보-가 대표하는 언약 공동체를 그 주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홍수 이전 세계에서 언약 공동체를 보존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홍수 이후의 시대에도 증거 된다. 바벨탑 사건에서 드러난 인간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언약 공동체는 이 땅에 보존되었으며 예언적 언약 약속의 역사는 그 축복-약속을 받는 셈에서 약속된 언약의 수혜자인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데라의 아들인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었을까요? 과연 그들은 새로운 민족을 이룰 만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자였을까요? 여호수아 24장 2절을 보면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생지로서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바벨탑을 세웠던 사람들처럼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던 가정에서 아브라함이 태어났고 그런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가셔서 그들을 언약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선한 사람이고, 구원받기에 합당한 사람이어서 우리를 하나님의 공동체로 부르셨나요?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똑같이 하나님 없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살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은혜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합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의 삶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기쁨을 풍성히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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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는 삶 -
셈의 족보가 다시금 소개되고 있습니다. 특징은 10장에서 생략된 벨렉의 가계가 소개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데라는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습니다. 하란은 롯을 낳고 우르에서 먼저 죽고, 아브람은 사래와 나홀은 밀가니 라고 하는 하란의 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임신을 하지 못합니다.
✔ 부름 받은 우리의 삶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 지혜와 권능으로 역사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10~26절).
오늘 본문의 특징 첫 번째는 창세기 5장에서 아담부터 노아까지 모두 10명의 자손의 이름이 소개되었는데, 본문에서도 노아의 아들 셈으로부터 아브람까지 10명의 자손이 소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오늘 본문에서는 ‘죽었다’라는 표현이 반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절망적 표현 보다는 생명의 탄생과 미래에 대한 희망에 초점을 맞추면서 아브람까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아르박삭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12~25절)... 홍수 전후를 비교해 볼 때, 첫 아이의 출산 연령이 낮아졌다는 점(5:21,25)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수명이 급속하게 단축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에벨은...사백삼신 년을 지내며...벨렉은...이백구 년을 지내며...’(17,19절)... 인간의 수명은 후대로 갈수록 낮아져 모세 시대에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거의 7~80세에 이르게 됩니다(시90:10). 이는 홍수로 인한 지구의 기후 변화와 바벨탑 사건으로 인한 인간들의 생활 습관의 변화의 탓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바벨탑 사건을 통해 온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셈의 후손으로 구원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인간의 지혜와 한계를 뛰어 넘는 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삶 가운데서도 새로운 인생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나의 인생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돌보심의 결과입니다. 내 인생을 세밀한 뜻과 계획 가운데로 인도해 오셨음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과 환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내 삶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알고, 지혜와 권능으로 역사하심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음을 믿기에 결코 실패하지 않는 인생임을 고백합니다. 현실의 벽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 영원한 본향으로 인도하심을 소망해야 합니다(27~28절).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의 세 아들을 다시 한 번 반복해서 소개한 후에 이어서 롯의 출생이 언급되는 것은 아브람과 롯에 대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28절). 하란은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자신의 출생지인 갈대아의 우르에서 죽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비옥한 지역으로 상업, 천문학, 점성술등이 발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뛰어난 고대 문명과 아울러 우상숭배가 성행하였던 곳입니다. 아브람이 세상적으로 볼 때, 이런 풍요한 고향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황량한 곳으로 향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과 섭리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풍요와 화려함을 바라고 있다면 온전한 헌신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넓은 문을 버리고 좁은 문을 선택하여 힘겹게 살아가는 이유 역시 이 땅이 완전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좋은 곳에서 휴가를 즐기다가도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에 있기에 이 땅에 영원한 소망을 둘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돌아갈 영원한 본향을 소망하는 사람이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 절대적 주권으로 역사하심을 기대해야 합니다(29~30절).
아브람은 이복동생(20:12)인 사래와 나홀은 하란의 딸인 밀가와 각각 결혼을 하였습니다(29절). 이런 혈족간의 근친결혼은 지리적 제한성과 순수 혈통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당시로서는 일반적 관습이었습니다. 이 결혼은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내산 율법이 주어진 때로부터는 엄격히 규제가 되었습니다.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30절). 믿음의 조상으로서 신앙의 가게를 이어가야할 아브람과 사래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불임에 대한 기록은 언약의 씨라 할 수 있는 이삭의 출생이 전적인 하나님의 개입에 의한 것임을 밝혀주는 전조가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인류 구원이라는 거창한 계획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브람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구원의 통로가 될 만한 자격이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열국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내 자신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자격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또한 통로로 삼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믿습니다.
내 힘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을 통하여 모든 일들을 이루어 가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매일 매일 역사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내 인생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마음껏 누릴 최고의 날이 바로 지금입니다...
오늘도 지혜와 권능의 삶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므로 어두운 세상 가운데 복음의 빛을 비추는 사명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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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도움
셈의 후예가 다시 소개되고, 이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데라의 족보가 기록됩 니다. 흩어짐을 면하려던 바벨 성 사람들이 강제로 흩어져서 혼란 중에 빠진 것과는 달리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의 계보에서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복을 따라 질서 있고 순조롭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또한 빠른 족 보의 진행 마지막에는 아브람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데라의 자녀 정도 로 밖에 소개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어 구속사의 큰 흐름을 말씀하신 이후에 비로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성경의 초점이 맞 춰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현시점에서 마무리 되는 셈의 후예 마지막 대수에서 데라를 언급하여 그 아들들 가운데 아브람이 장자로 태어난 것은 큰 의미를 가집니다. 셈의 후예가 아브람 다음으로는 아직 진전되지 않 기에 아브람에게 일어날 일에 구원의 축이 있음이 암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오늘의 기도
1.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가장 평안한 길임을 온전히 깨닫게 하소서.
2. 우리 가정이 셈의 후손과 같이 오직 하나님만 섬기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최초의 인간을 만드셨을 때 죽음이 없이 영원히 사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인간에게 들어옴으로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악한 인간들이 분명한 삶의 목적 없이 오래 사는 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은 천국을 모르기에 하는 말입니다.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인간을 지면에 흩으신 것이 은혜인 것처럼, 인간의 수명이 줄어든 것 또한 은혜입니다.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 ,
바벨탑 대신 십자가를 통해 하나 되는 길을 준비하셨으며 인간의 수명을 조절하신 하나님의 분명하신 섭리와 계획하심을 신뢰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천국 백성 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하늘소망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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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32 인류 구원을 위해 택하신 한 사람
계속해서 족보에 대한 말씀이다.
아담의 족보가 있었고 하나님이 다 심판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 입은 한 사람 노아와 그 가족만이 살아 남았다.
노아의 족보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되로 셈과 함과 야벳이 온 지면에 넓리 퍼졌다.
함의 자손 가운데 반역자 니므롯의 주동으로 벽돌을 굽는 신 기술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을 쌓았다.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온 지면에 흩으셔 버렸다.
오늘은 다시 노아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 셈의 후예로 족보가 이어진다.
홍수 심판 이후에 이어지는 족보들이다.
오늘 본문에는 크게 두 족보로 나누어 진다.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10)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을 위한 족보가 어떻게 이어 졌는지
말씀이 계속 설명해 주시고 계신다.
셈(10), 아르박삿(11), 셀라(12), 에벨(14), 벨렉(16,18), 르우(19)
스룩(20), 나홀(22), 데라(24), 아브람(26)으로 이러진다.
셈의 자손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나왔다는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서
셈부터 계속해서 누구를 낳고 몇 살에 또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지냈더라라고
반복적으로 지루하게 기록하고 계신다.
두번째 중요한 또 하나의 족보가 나온다.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27)
데라의 자손은 아브람, 나홀, 하란이다.(27)
세 쌍둥이를 낳은 것은 아닌 것 같은데 70세에 낳았다고 한다.(26)
하란은 아비 보다 먼저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다.(28)
성경에서 아버지 보다 먼저 죽은 최초의 인물은 하란이다.
나홀은 하란의 딸인 밀가와 결혼을 했다.(29)
삼촌과 결혼을 한 모양이다. 최초의 근친결혼인 것 같다.
아브람은 사래와 결혼을 했고(29)
사래는 잉태치 봇하므로 자식이 없었다.(30)
자식이 없다는 말씀은 참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진 시대이다.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으로 자녀가 태어나는 시대이고
또 하나님도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기 때문이다.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는데 하란 땅에 머물러 버린다.(31)
데라가 아브람의 가족만 데리고 나오고 나홀의 가족은 데려오지 않은 것 같다.
아버지 데라도 갈대아 우르에서 205세에 하란에서 죽었다.(32)
오늘 본문 가운데 10대에 걸친 셈의 수직적인 족보가 있다.
노아의 3 아들 가운데 셈이 핵심 이였듯이
셈의 족보 가운데 가장 핵심은 10대째 나오는 아브람에 있다.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이 오늘 본문에 있는 아브람이다.
이 한 사람을 기록하기 위해서 셈 부터 10대에 걸친 기록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에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보석처럼 중요하지만
왕관에 박힌 보석 처럼 더욱 빛나는 한 사람이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이 왜 셈의 가문에서 아브람을 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왜 하필이면 불임 부부를 택하셨는지 알 수는 없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왜 갈데아 우르를 떠난는지에 대한 설명도 본문에는 없다.
왜 가나안에 가다가 하란 땅에 머물러 버렸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불임부부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이다.
지금 내가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이 선택하시면
그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져 간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셈의 족보와 데라의 족보를 봅니다.
족보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이 땅에 태어남이 아니요
나의 능력으로 자녀를 출산한 것이 아님을 봅니다.
오직 당신의 은혜요 섭리임을 고백합니다.
모든 주권이 주께 있음을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왜 불임 부부를 선택해서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게 하시는지
왜 고향 땅을 떠나 가나안으로 부르시는지
그런데 왜 중간에서 머물러 버리는지 나는 알 수없지만
당신의 온전한 구속의 은혜를
온 인류를 구원하실 당신의 크신 계획하심을 찬양합니다.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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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의 족보(11:10~26)
하나님은 새 시대를 여실 때마다 한 사람을 택하십니다. 아담은 인류의 시조이고,
노아는 홍수 이후 새로운 인류의 시조이며,
아브라함은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세계 민족의 계보에 나온 셈의 족보와 달리 여기서는
셈 자손 중 아르박삿 가문에만 초점이 맞춰집니다. 아르박삿은 셈이 홍수 이후 얻은 첫아들로
그의 출생은 새 시대가 왔음을 알립니다.
아르박삿 이후 수명이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나홀과 그 아들 데라에게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나홀은 148세에 일찍 죽었고, 데라는 70세라는 늦은 나이에 첫아들을 낳았습니다.
녹록하지 않은 삶을 살았을 데라 가정으로부터 바벨탑 이후의 암흑을 비추는 한 줄기 서광이 나타납니다.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람에서부터 인류를 구원하실 큰 계획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 적용 질문
나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 데라의 족보(11:27~32)
이스라엘의 출현은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데라는 뒤늦게 아들 세 명을 얻었지만
하란은 결혼 후 자녀를 남긴 채 일찍 죽었고,
아브람은 결혼했지만 자식이 없었습니다. 데라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향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도중 하란에 머물다가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습니다. 데라는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살지 못한 셈입니다.
아브람의 형제 나홀은 8명의 아들을 두었고, 첩을 통해 낳은 아들도 더 있었습니다(22:21~24). 그
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생육하고
번성하기 힘든 불임 부부를 택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 시작된 것입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아브람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불임이나 경제 위기 등 최근 가정이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요? 그 문제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음을 믿나요?
오늘의 기도
셈의 족보에서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 역사의 섭리를 봅니다.
저 역시 은혜의 계보에 드는 특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게 맡기신 영의 자녀들과 육의 자녀들을 눈물과 기도로 양육해 온전한 구원을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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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10-26절은 셈의 족보입니다.
셈의 족보는 셈 – 아르박삿 - 셀라 – 에벨 – 벨렉(세상이 나뉘었음) – 르우 – 스룩 – 나홀 – 데라 – 아브람으로 이어지는 족보입니다.
창세기 11:27-32절은 데라의 족보입니다.
데라의 족보는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데라가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막내 아들 하란은 롯을 낳고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이 세워진 지역입니다.
하란이 죽고, 이제 남은 아브람과 나홀 모두 장가들었습니다. 아브람의 아내는 사래,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였습니다. 그때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임신하지 못해서 자식이 없었습니다. 데라가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손자 롯과 며느리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가려고 길을 가다가 하란에 도착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나라에서 살던 데라가 어떤 과정을 통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기 전에, 그보다 먼저 데라를 불러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데라는 거기서 205세까지 살다가 죽었습니다. 데라가 70세에 아브라함을 낳았으니까 데라가 죽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35세였습니다. 여기까지가 데라의 족보입니다. 데라 족보는 사실 아브람 이야기의 서론입니다. 사실 데라 족보의 주인공은 아브람입니다. 이제 누구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