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총과 민예총
해방과 더불어 문화계도 새로운 모색의 시기에 접어든다
1940년부터 해방 전 까지 창씨개명으로 시작된 한글 말살 정책으로
일제에 의해 한글을 쓰지 못하고 일본어로 말하고 쓰기를 햇던
암울한 암흑시대에 수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잠적 햇던 지하에서 일어나
활동을 하기 시작한것이다
절치부심 참고 참으며 인내하던 문인들이
활발한 활동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필연적으로 문화단체들이 생긴다
문인 협회 미술 협회 국악 협회 등등
그야말로 해방공간에 우리말로 된 우리정서를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표출한 시기가 도래 한것이다
그렇게 서로 각개 약진으로 발전하다
또 한차례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각단체도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그중에서도 소위 프로 문학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행보였는데
강점기때나 戰前전전 문학시대에서 진보적 성향을 가진
많은 예술인들이 북쪽을 선택한것이였다
그것은 주로 해방전 카프 문학 동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 이였다
그러다 전쟁이 끝나고 이합집산을 거치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다
정부에서 문화인 등록을 한다
재미있는것은 그 당시 문화인은 문인위주로 해석하다보니 화가나 기타 문화예술인은 설자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당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그림 물감등이 외화낭비라는 이유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속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문화단체가 한곳에 모이기 시작하더니
1961년 총문화단체 결성 준비위가 구성되고
1962년 극작가 유치진을 초대 회장으로 한국 문화단체 총연합회가 발족한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줄여서 말하는 예총의 시작이고 그이후 모든 문화 예술단체는 이곳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문인협회 결성
해방이후 임의단체로 활동을 하다
예총 탄생을 계기로 문인협회도 그당시 원로 문인들이 모여
정식 사단법인을 등록 하고
1962년 늘봄 전영택을 초대 이사장으로 선출
그 이후 한국 문화계의 대표 단체로 발전하며 수많은 문인을 배출 한다
그런 60년대 모색의 시기를 지나
70년대 영자의 전성시대를 필두로 대중 문학(소위 상업주의 문학)과
순수 문학의 치열한 문학 논쟁들 그 싸움에 해답은 없엇지만
신문 지상에서 양 세력간 무수한 의견 다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나고 보니 그시절은 그래도 그런 예술혼이 남아 잇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이런 논쟁 자체도 없으니 어쩌면 지금이 그시절보다 문학은들은
더 힘들지 모르겠다
그런과정속에 70년대초 한국 문인협회는 내부적인 분열을 격는다
분열의 원인이야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문단의 보수화와 진보 작가 그리고 정치성을 띤 작가들의 대거등장이
그중에 한 가지 일것 이다
그렇게 진보계열이 나가 만든 단체가
오늘날 민족예술인 총연합회<약칭 민예총>이다
민예총에 관하여
민예총을 말하기 전에
민예총 소속 작가회의 전신격인 자유실천문인협회부터 말하겠다
우리세대에는 꽤나 익숙한 이름 일것이다
각종 성명서 발표와 민주운동에 앞장선 단체 이다 보니
그시절 9시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던 버드나무 까페와함게
약칭 자실로 표현되는 자유실천문인협회도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치른다
그럼 실천문인협회는 어찌하다 생긴것인가
사실 자실도 문인협회 설립과 그 생명을 같이 한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말이 아닐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모이는 어느 곳 이나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진보적 성격이고 어떤 이는 보수적 성격이고
또 어떤 이는 그런 것 자체를 생각 하지 않는
말 그대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작게는 친구 계모임에
크게는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처럼 국가운영에 영향력을 행사 한다
문인단체도 이와 같아서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자기 앞 가름에 바쁘던 문인들도
자기 문학의 정체성을 생각하고 현실을 고민을 하다
특히 4.19를 계기로 현실에 참여 해야한다는 자각이 생긴 문인들이
하나둘 생기며 세칭 참여 문학이 태동하기 시작 하는데
그 선두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시인 김수영 선생이 서있다
첫 시집 < 달나라기행 1959년 출간>은
지금까지 서정적인 시와 모더니즘을 표방한시가
주류를 이루는 상황에서 참여시의 기치를 내걸고 나온 첫번째 시집이다
그때는 그야말로 배고픈 현실을 고민하고
좀더 좋은 세상을 위해 문인들이 나서야 된다는
지극히 순수한 참여일지도 모를일이지만
516 군사 혁명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바뀐다
획일적 군사문화와 자유로운 혼을 가진 예술인의
만남은 시작부터 당연히 비극으로 다가온 것이다
전쟁중 수많은 진보 문인 예술가들의 자진이든 강제든 월북으로 인적 자원이 부족하던 남족이였는데 또 다시 문인들은 갈림길에 서있는 형국이 되였다
침묵을 할것이냐
아니면 현실에 맞추어 글을 쓸것이냐
그것도 아니면 저항을 할것이냐의 기로에서 방황하게 된것이다
그중에
보수적인 문인은 현실에 따라 글을 쓰기도하고
또 다른 문인은 시대 또는 체제 저항적인 글을 발표하는데
김수영시인이 <현대식 가교><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풀>등을 발표 함으로
본격적인 참여 문학(저항문학)의 지평을 연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하는데
바로 필화 사건이다
인류학적으로 볼 때 짧은 시기에 유래가 없는 변화를 격다 보니
많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그만큼 본격적인 현실 참여(저항)문인들도 바빠진다
필화에 연루된 문인들도 늘어나며
구속과 재판으로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었던 시기
문화계 뿐 아니라 온 국민이 열병을 앓았던 병
일면 잘살아보자는 구호와
일면 민주주의가 아니면 죽음을 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기치 속에
벌여졌던 무수한 일들
그중에 문인관련 사건 두 가지를 이야기하면
시인 천상병의 동백림 유학생 간첩단 사건과
소설가 한수산의 신문연재소설 필화사건이 있다
천상병은 그 후유증으로 정신병이 생겨 내내 고생을 하셨고
한수산은 일본으로 망명 아닌 망명을 하고
그 문화주간이던 시인 박재삼은 중정에 다녀온 뒤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기에 이른다
(두 사건의 내용은 생략)
그런 크고 작은 일들이 반복이 되다보니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십시일반 돈을 모금해
구속된 문인 사식이라도 넣어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또 무료 변호사도 섭외해야 하고
재판과정을 지켜보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는데
그시절 다들 어렵고 또 지방에 가족들이 거주하는 경우도 많아
서울에 거주하는 진보적인 문인들이 그 일들을 하게 된다
그중대표적인 문인이
지금은 고인이 되신 관촌 수필로 유명하신 소설가 이문구 선생과
(어떤분은 그때 마음 고생 많이 하여 이른 연세에 고인이 되였다고도 함)
시인 고은선생이다
그런 문인들이 1974년 11월 15일 청진동 귀향 다방에 모여
발기모임을 갖고 18일 발족한 단체가
바로 자유 실천문인 협회 인것이다
그 면면을 보면
대표에 고은 신경림 염무웅 조태일 박태순 황석영 양성우
조해일 조선작 송영 이시영 송기원 윤흥길 그리고 연락책 이문구 등등
그당시에는 몇분 빼놓고 20대 30대 주로 젊은 사람들이였는데
지금은 전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인들로 성장했다
자실을 발족 하게 된 요인으로는 김지하 선생의 담시<오적>이 문제가 되어
구속 된것이 직접적 계기이지만 새로운 단체의 결성 분위기는 한참전 부터 내재해 있었음을 알것이다
그날 이후 문인들의 구속소식과 성명서 발표등이 텔레비젼 뉴스에서 무수히 들려왔고
그럴수록 진보 문인 지식인들의 결속력은 더욱 강해져 갔다
그렇게 시인을 석방하라는 문학인 101인 선언부터 시작된 운동이
시간이 흐를수록 주도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게 되고
구속과 석방이 반복되고 실천은 민족작가회의로 이름이 바뀌고
미술계에서는 걸개그림으로 유명한 박불똥등이 민족 미술협회를 한국미술협회와는 별도로
조직 하기에 이른다
그러다 드디어 어느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사회분위기 속에
모든 진보 문화인들이 실천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자리에 모여
1989년 민족예술 작가회의 창립총회를 여니
오늘의 민예총이 탄생한다
그전까지는 지향하는 방향과 사고가 틀려도 모두 예총 산하에 있었는데
이제 정식으로 예총과는 결별을 하고 따로 살림을 꾸리게 된것이다
그렇게 쭉 시간이 흐르다 김대중정부에서 활동영역이 넓어지더니
노무현정부 들어와서는 각종 문화예술관련 단체장이 예총소속예술인에서
민예총소속 예술인으로 거의 대부분 바꾸게 된것이다
이제 드디어 예술인단체도 경쟁시대로 접어 들어간것이다
예총과 민예총 문인협회와 민족작가회의-최근에는 앞의 민족을 빼고 대신 한국을 넣어
한국작가회의라 부른다-
무엇이 선악(1개단체와2개단체)인지는 모르겠고 무엇이 바른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우리나라 대표적 문화 단체의
설립배경을 의견 없이 그리고 작품과는 관계없이
행적등의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대략적으로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