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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마령(七魔令)의 금제
"아… 모를 일이다. 아버님께서 왜 그리 칠마를 높이 평가하고 있단 말인가?"
대검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버님은 대무신공을 십성 이상 익히셨다.
칠마 모두가 한꺼번에 덤벼도 단 일초로 쳐죽일 수 있을 것이다
. 대체 일개 사마의 무리들이 어떠한 마공을 익혔기에 아버님께서 저런 두려움을 준단 말인가?'
대검제는 칠마의 힘을 간과했다.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천 년 전, 정의무성이 대무신공의 원류인 천무신공(天武神功)의 창시자
천무자(天武子)와 격돌해 양패구사(兩敗俱死)한 일곱 마두의 절기를 수록한
절대마경이 바로 칠마경(七魔經)이었다.
칠대사마가 그 칠마경의 진전을 이은 것임을 모르고 있었다.
정의무성이 청년 시절 기연(奇緣)으로 천무경(天武經)을 얻지 못했다면
이미 천하는 칠마경의 마공에 지배되었을 것이다.
대검제는 대무신국 안에서 태어나 바깥 세상으로 나가 보지 않았기에 견식이 아직 좁았다
. 또한 대무신공에 대한 절대적 신뢰로 부친인 정의무성을 무신으로 여기기에
칠마 정도를 과소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칠마 중 어느 누구라도 대무신국 안의 정의무성 다음 가는 고수를
백 초 안에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대무신국의 두 번째 고수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대무신국에는 수많은 기인이 있으나 모두 허수아비와 같은 존재였다.
다른 사람들과 싸운다면 쉽게 이길 수 있는 고수임에는 틀림없으나
칠마에 비한다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의 무공뿐이었다.
칠마의 마공은 천하에서 단 한 가지 대무신공으로만
가볍게 이길 수 있는 아주 악랄한 마공이었다.
심마지안(心魔之眼),
음마지장(淫魔之掌),
태양마지수(太陽魔之手),
현음마지지(玄陰魔之指),
비마지신(飛魔之身),
검마지검(劍魔之劍),
그리고 선마지선(扇魔之扇)이 당금 천하의 칠대마절(七大魔絶)이라는 것은
정의무성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대검제가 부친의 기행(奇行)에 대해 신비감과 경외감을 느끼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고막을 때리는 울음소리가 있었다.
"으― 앙―!"
무천룡이 울음을 터뜨리며 눈을 번쩍 떴다.
무천룡의 얼굴은 대검제의 모습과 아주 비슷했다.
아름다운 형용이고 깨끗한 피붓빛이었다.
검미(劍眉)라 할 만한 날카로운 눈썹과 봉목(鳳目)같이 서글서글하고 맑은 눈빛이 특히 뛰어나 보였다.
무천룡이 크게 울며 사지를 틀자 대검제가 몸을 휘청였다.
"하하, 녀석! 세 살박이에 불과하거늘 벌써 아비의 힘을 능가한단 말이냐?"
대검제는 호탕하게 웃으며 무천룡을 안아들고 몸을 일으켰다.
무천룡은 울음소리를 멈추려 하지 않았다.
세 살의 아이라면 제법 말을 하고 한껏 뛰어다닐 나이였지만
무천룡은 이제 막 태어난 몸이라 할 정도로 어리게만 보였다.
아이는 태어난 지 천 일이 지나서야 겨우 세상을 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이리라.
무천룡은 이제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터득하는 탁월함을 보일 것이고
, 다른 사람이 오십 년 궁리해야 밝혀낼 수 있는 것을
단 하루만에 깨달을 수 있는 천하기재의 진면목을 발휘할 것이다.
무천룡의 우는 모습은 아주 귀여웠다.
그 아이에게 대무신국의 장래가 걸려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착하고 고운 모습뿐이었다.
"하하…아버지가 너를 위해 새 옷을 지어 놓았다. 함께 가자꾸나."
대검제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한순간도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보름이 지났다.
서장으로 떠난 대무신왕 정의무성은 돌아오지 않았고
대검제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살이 만들어졌다.
'칠마가 정녕 아버지께서 예측하신 대로 절대마두로 성장했단 말인가?'
대검제는 부친의 안위에 침식조차 잊을 정도였다.
그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무천룡의 웃음소리였다.
"아버지…아버지…!"
무천룡은 희디흰 이를 드러내며 웃기를 좋아했다.
언제나 웃는 눈가에는 어린 아이답지 않은 지혜의 빛이 떠돌았고
꺾이지 않을 기백의 힘이 비쳤다.
"아… 아버지, 할아버지는 어… 언제나 돌아오셔?"
보름 사이 말을 거의 다 배워 대검제의 소매를 붙잡고 물음을 던지는 무천룡은 금포를 걸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린 정의무성이라 할 만 했다.
"곧 돌아오실 게다."
대검제가 무천룡의 머리를 쓰다듬자,
"할…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무천룡이 싱긋 웃으며 서쪽 하늘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출생이 남과 다르고 살아온 삼 년이 남과는 완전히 다른 아이 가 무천룡이었다.
전례가 없는 출생이고 전례가 없는 천일개정대법의 수련자이기에
그의 장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보름이 지나 한 달이 되었다.
삼경(三更)의 교교한 달빛이 항상 봄기운을 간직하고 있는 입마령 아래
분지 안의 소국(小國) 대무신국을 밝게 비추었다.
세 살박이 소년 무천룡은 여느 아이와는 달리
달빛이 흐르는 꽃 그늘 아래에서 눈을 말똥말똥거리며 달 구경 하기를 좋아했다.
"……."
무천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라면 어머니의 품 안에 안겨 새근새근 잠잘 시각이었으나
무천룡은 아이답지 않게 잠을 많이 자지 않았다.
그가 달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야릇한 새 울음소리와 함께 달을 반으로 가르며 날아드는 금붕 한 마리가 있었다.
"아… 대무금붕이야! 난… 알 수 있어."
무천룡이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으음…!"
허공에서부터 답답한 신음소리가 들리며 전신을 피로 물들이고 있는 금포노인 하나가
휘청이며 새 등에서 떨어져 내렸다.
지면에 한 치 깊이의 족인(足印)이 새겨졌다.
금포노인은 세차게 몸을 떨었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금포노인의 옷을 적시고 있는 피는 이미 말라붙었고,
피묻은 옷에는 십여 군데 찢어진 부분이 있었다.
금포노인은 무천룡에게 오장 떨어진 곳에 떨어져 내린 후 한동안 눈을 감고 운기행공을 했다.
노인과 무천룡 사이의 오장 거리는 꽃으로 뒤덮였다.
'대무금붕을 타고 오신 분이니…
분명 내가 아직 만나 뵙지 못한 할아버지이야. 할아버지가 왜 다치셨을까?'
무천룡은 금포노인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때, 그의 뒤쪽으로 다가와
땀에 젖은 손바닥을 무천룡의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는 백의문사 하나가 있었다.
아버지 대검제였다.
"하아, 아버지시다."
"용아야, 저 분이 바로… 네게 할아버지가 되시는 분이시다."
대검제의 얼굴 표정이 참담해 일그러졌다.
'아버님이 저리 크게 다치신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 아버님이 말씀하신 대로 칠마의 무공이 이미 마신지경이었단 말인가?'
대검제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대무금붕이 울며 날아드는 소리를 알아듣고
급히 달려나온 길이었다.
정의무성은 서서 운기행공을 마치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한 달 전에 비해 훨씬 쇄잔해 보였다
. 칠마와의 비무 때문인지 그렇게도 고강했던 내공의 힘이
오성 가량 흐트러진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아버님, 돌아오셨군요!"
대검제가 격동을 참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묻지 마라."
정의무성은 뚝 잘라 말한 후 이형환위(移形還位)로 오 장을 미끄러져
무천룡 바로 앞에 이르렀다.
"허허… 많이 컸구나. 한 달 동안에 소년이 되었어."
"헤헤… 할아버지군요.?
무천룡이 맑은 목소리로 말하자 정의무성의 피로에 찬 얼굴 가운데
달덩이같이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오…이 아이는 나의 분신이다!'
정의무성은 무천룡의 목소리에 회춘의 기쁨을 느꼈는지
한참 미소짓다가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용아야, 네게 이것을 보여 주겠다."
정의무성이 품 안에서 금패(金牌) 하나를 꺼내 무천룡의 작은 손에 쥐어주었다.
그 위에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글씨를 읽을 줄 아느냐?"
정의무성이 다정히 묻자 무천룡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직 몰라요, 할아버지. 하지만 조금 더 있으면 할아버지 앞에서 이 글을 읽을 수 있어요."
"허헛…그래야지!"
정의무성이 웃으며 금패를 가리켰다.
가로 한 치, 세로가 세 치이고 두께가 일푼 정도 되는 금패의 표면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전면과 후면 모두에 글이 새겨져 있는데 전면에 쓰인 글은 단 세 글자였다.
〈 七魔令(칠마령) 〉
뒤에 새겨진 글은 제법 장문이었다.
〈 칠마가 칠마령에게 대고 맹세한다
. 칠마령을 다시 취하지 못하는 한 영원히 중원(中原)으로 들어가지 않으리라. 〉
그 곁으로 칠마의 서명이 있었다.
정의무성은 금패를 돌려가며 그 글을 읽어준 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이것은 일곱 명의 노마두가 직접 만들어 내게 바친 것이다.
이것을 얻기 위해 한 달 간 너를 떠났었다."
"그들이 할아버지를 다치게 했어요?"
"그렇다."
"치이, 할아버지를 다치게 하다니…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무천룡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작은 주먹을 꼬옥 쥐었다.
"허허… 서운해 하지 마라. 할애비가 이 정도로 다쳤지만 그들은 사지 중 하나씩을 잃었다.
그리고 이 치욕적인 물건을 만들어 내게 바쳤다
. 할아비는 이긴 것이지 진 것이 아니다."
"그래도 그들을 혼내 주겠어요."
"허허… 할애비는 이제껏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때를 잘 만난 탓이지.
칠마가 할애비보다 먼저 태어나 초절한 내공을 가졌다면
할애비는 정의무성이란 별호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무천룡은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아…할아버지는 정말 강하시군요."
"칠마는 아주 강하다.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단 한 사람 이 할아버지뿐이란다."
"정의무성의 표정이 다소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너무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용아가 약속해 준다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것이다."
정의무성이 쭈그리고 앉아 무천룡의 어린 손목을 꼭 쥐었다.
무천룡이 맑은 눈빛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어떤 약속인데요?"
"너만이 할 수 있는 약속이다."
"할아버지, 어서 말씀해 주세요."
"오냐, 할애비가 너와 하고 싶은 약속은
할애비가 지니고 있는 모든 절기를 너의 것으로 해 달라는 것이다."
무천룡은 아이답지 않게 힘차게 대꾸했다
"그 일은 이미 잘 알고 있어요.
용아가 대무신공의 두 번째 주인이 될 운명이라고 아버지께서 항상 말씀해 주셨어요.
용아는 그것을 꼭 제것으로 해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작정이에요."
"고맙구나. 너를 믿겠다."
정의무성은 무천룡을 뜨겁게 포옹하고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몸을 일으켜 대검제를 호명했다.
"아들아!"
"예, 아버님!"
"칠마를 금제시키는 일은 일단 성공했다
. 십만 초를 싸워 그들을 패배시킬 수 있었다.
그들의 거취를 서역 당고라산(唐姑喇山) 안으로 한정지었고
칠마령을 만들어 내게 바치게 했다."
대검제는 저으기 안심했다.
"과연 아버님이십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일은 아니다
. 칠마는 그 사이 십만 명 이상의 마도고수(魔道高手)들을 부하로 두었다."
"예에? 십만 명씩이나요?"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부하들이 이미 중원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검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중… 중원으로 진출했단 말입니까?"
"그렇다, 그들은 중원의 요소에 비밀분타를 만들었는데
그 수는 놀랍게도 천 개 소 이상이다."
실로 엄청난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 천하기인들이 대무신국에 은거해 있는 동안 칠마의 세력이 그렇게까지 방대해진 것이다.
"칠마는 내게 패배해 당고라산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나
그들의 힘은 당고라산을 넘을 수 있다.
그들의 수족 같은 부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아버님?"
정의무성은 뒷짐을 쥐며 꽃밭을 거닐었다.
"몇 년은 안심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처하지 않으면 칠마의 무리가 중원을 지배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 사실 삼 년 전 삼밀사를 중원으로 보낸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대검제는 부친의 놀라운 혜안에 감격하고 말았다.
"아…!"
"삼밀사는 이 년 후 돌아올 것이다.
너는 그들이 돌아와 즉시 정예고수 일백을 데리고 중원으로 갈 수 있도록
이후 이 년 간 준비해야 한다."
"어떤 신민들을 말입니까?"
"젊은 고수 일백을 추려 이 년 동안 비기(秘技)를 전수시켜라
. 삼밀사가 돌아오면 그들에게 딸려 중원으로 나가 칠마의 전인들을 소탕케 할 수 있게 말이다."
정의무성은 그제서야 심복의 계획을 말한 후 무천룡을 안아들고 거처 무성전으로 들어갔다.
대검제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아버님은 너무도 위대하시다. 아…
내가 너무도 부족해 아버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점점 죄스럽기만 하군."
***
다시 이 년이 지났다.
무천룡의 나이 다섯 살이었다.
그의 씩씩한 기상은 대무신국의 어떤 소년보다 더한 정도였다.
그는 이미 천 권의 책을 읽었고, 시부(詩賦)를 지어 벽을 장식해 놓을 정도였다.
나이가 더할 수록 콧날이 오똑해져 출중한 인물은 훨씬 더했고
단순호치(丹脣皓齒)는 천상의 옥동처럼 보였다.
그가 자라는 사이 정의무성은 한 가지 대역사(大役事)를 시작했다.
〈 칠겁관(七劫關) 〉
장차 무천룡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 거대한 지하별부(地下別府)는 지옥과 같은 곳이었다
. 그 안에는 일곱 개의 관문(關門)이 설치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언제고 무천룡이 안으로 들어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것이었다.
정의무성이 칠겁관을 세우는 동안 대검제는 대무신국의 젊은이들 일백에게
십파(十派)의 절학을 전수해 정예고수로 만들어 놓았다.
그 일은 비밀리에 이행된 일이었다.
하지만 대무신국은 천룡태자의 탄생 이후
오십여 년의 고루한 분위기에서 탈피했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했다.
오십오 년 전 천하를 굴복시켰던 업적을 다시 이룩할 것인가.
노기인들의 마음이 들뜰 대로 들뜨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 백 정예고수를 키우는 저의가 천하에 군림하자는 것이 아니고
칠마에 대한 공포를 없애자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대무신국 신민들은 자신들만이 무적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런 자존심은 오만의 경지를 넘어서 옹고집이라 불릴 정도가 되어 있었다.
대무신국이 아닌 사람들을 풀잎 끝의 이슬로 여기는 마음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서장에 숨어 세력을 확대시키고 있는 칠마의 진면목을 정확히 모르기에
다소의 방심은 어쩔 수 없었다.
***
둥― 둥― 둥―!
대무신국의 정적을 깨뜨리는 고성과 함께
대무신국 안으로 들어서는 삼 인의 노기인들이 있었다.
오 년 전 대무신국을 떠난 삼밀사가 예정된 오 년을 중원에서 보내고
대무신국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의 표정이 아주 어두웠다.
중원에서 벌어진 어떠한 일이 대무신국의 삼밀사를 긴장시켰는지는
삼밀사가 돌아온 지 한 시진도 안 돼 대무신국 안에 파다하게 퍼졌다.
중원에 삼대사건이 있었다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였다.
첫째 사건은 정사오기(正邪五奇) 중 하나이고
인망을 한몸에 받았던 천약선자(千藥仙子)가, 신비고수들의 습격을 받고 쓰러져
인심(人心)이 아주 흉흉해졌다는 것이었다.
정도(正道)가 땅에 떨어졌다고나 할까?
한갓 영약 때문에 천하의 기인 하나가 쓰러진 것이다.
정의무성이 중원에 있었을 때라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패륜무도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어두운 장래를 말하는 사소한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더 무서운 일은 가공할 거마단체의 출현이었다.
〈 지옥궁(地獄宮) 〉
지옥궁의 주인은 정사오기의 하나인 흑면제군(黑面帝君)으로 그 힘이 실로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대무신국 안의 고수를 능가하는 고수가 지옥궁 안에 무수하다는 것이 삼밀사들의 보고였다.
참으로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옥궁은 수많은 고수를 강호에 풀어 드넓은 강호 곳곳에 분타를 만들고 살겁을 자행했다.
천하의 대세가 정에서 사(邪)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하는 단적인 증거였다.
세 번째 놀라운 일은 대무신국이라는 위대한 이름이
중원인들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는 사실이었다.
자신들의 존재가 잊혀졌다는 사실은 명예를 가장 높이 생각하고 있는
대무신국의 신민들로서는 분노며 수치였다.
그들이 단 한시도 중원을 잊은 적이 있었던가?
더욱 분개한 일은 칠마가 서장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정의무성에게 패해 도망갔던 칠마가 살아 세력을 만들었다!
― 정의무성이 너무 오만해 칠마를 죽이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의무성이 칠마를 죽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소문이라 하지만 무림의 수호신 정의무성까지 매도되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들 울분을 금할 수 없었다.
삼밀사의 회국(廻國)이 불러일으킨 흥분의 바람은
삼밀사가 새벽이 되었을 때 일백 젊은 고수들과 함께 훌쩍 사라져 버리며 다소 가라앉았다.
정의무성과 대검제는 삼밀사가 하루도 머물지 않고 되돌아간 일에 대해
일언반구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시작이 있었다.
무림십절(武林十絶)이 천룡태자(天龍太子)에게 절기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십절은 각기 육 개월씩은 천룡태자와 지내기로 내정되었다.
제일 먼저 천룡태자의 스승이 되는 영예를 안은 사람은 서절(書絶)이었다.
그는 천룡태자에게 다섯 가지 필체를 가르쳤고 손을 가볍고 빠르게 놀리는 비결을 전수했다.
서절이 익힌 학문과 절예는
한 사람이 일생 동안 공부해야 겨우 이어받을 수 있는 아주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천룡태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천룡태자는 서절에게서 넉 달 간 글쓰는 법을 배운 후 서절보다 더 뛰어난 글을 쓸 수 있었다.
천룡태자의 진가가 그 일로 인해 대무신국 전역에 소문나게 되었다.
신동(神童) 귀재(鬼才)!
서절은 할당된 육 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스승의 지위를 화절(畵絶)에게 인계해야 했다.
그러나 화절 역시 사 개월을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천룡태자에게는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소.
화절이 천룡태자가 그린 산수도(山水圖)를 쳐들고 한 말은
일각이 되기 이전 대무신국의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또다시 넉 달이 되어서 천룡태자는 금절(琴絶)의 열여덟 가지 곡조(曲調)를 석 달 만에 배웠다.
천룡대자에 대한 소문이 금절에서 기절(碁絶)로 바뀌었다.
두 달이 못 되어 기절은 천룡태자와의 반상대결(盤上對決)에서 번번이 패배해 흑(黑)을 쥐게 되었다
. 다시 한 달이 지나자 기절은 흑돌 네 개를 놓고서야 겨우 천룡태자와 바둑을 겨룰 수 있게 되어
스승 자리를 떠났다.
다섯 번째로 천룡태자의 스승이 된 사람은 정절(政絶)이었다
. 그는 여섯 달을 채운 유일한 스승이었다.
정치학은 천룡의 어린 나이로 잘 알기 힘든 오묘한 것이기에 여섯 달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 그 다음은 산절(算絶)이 가르쳤고 일곱 번째로 의절(醫絶)이 천룡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의절은 과거 천하제일의(天下第一醫)라 불린 사람이었다.
그는 화타(華陀)와 편작(片雀)에 비길 만한 의술을 갖고 있었다.
또한 연단(煉丹), 침(針), 구(銶)는 물론이고
점혈(點穴)과 금나수(擒拿手)에 남들이 부러워할 성취를 이룬 인물이었다.
의절은 영광스럽게도 육 개월이라는 기간을 훨씬 넘긴 일 년을
천룡태자의 가르침에 쏟을 수 있었다.
그는 천룡태자가 어떤 환자라도 맥을 짚고
그 자리에서 약방문을 지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을 보고서야 흡족해 하며
스승의 지위를 독절(毒絶)에게 전수했다.
독절은 과거 사천당문(四川唐門)의 사십구대(四十九代) 문주(門主)였던
천비독존(千臂毒尊)이었다.
그는 천하의 독을 다 만들 수 있는 재간꾼이었다
. 그리고 독발린 암기(暗器)를 던지는 데 있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었다.
동시에 설흔여섯 가지 종류가 다른 독암기를 던질 수 있는 재간은
천비독존만의 유일한 재간이었다.
그러나 칠 개월이 지나자 그는 독문일절(毒門一絶)이라는 지위를 내놓아야 했다.
― 과거 마도제일독(魔道第一毒)으로 노부를 능가했던 만독마(萬毒魔)라면 모를까
노부는 독절(毒絶)이라는 자리를 태자에게 줄 수밖에 없다.
독절은 이런 말을 하며 천룡태자를 기문진(奇門陣)의 대학자(大學者) 기문절에게 안내했다.
기문절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학문에 있어
정의무성 다음 가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천룡태자에게 일원(一元)에서 양의(兩儀), 양의에서 태음(太陰),
태양(太陽), 소음(小陰) 소양(小陽)의 사상(四象)이 나오고
그것이 팔괘(八卦) 육십사효(六十四效)로 변화하는 것을 원리로 삼는
기문진학을 팔 개월에 걸쳐 전수했다.
천룡태자는 그가 친 어떠한 기문진이라도 능히 뚫을 수 있는 실력이 되어서야
마지막 스승 기관절(機關絶)을 보게 되었다.
노반(魯般)의 죽은 혼이 다시 태어나 기관절이 되었다는
과거의 도왕(盜王)이자 천수자(千手子) 신투(神偸)는 기관학의 제일인답게 아는 것이 많아
천룡태자의 그칠 줄 모르는 학문에의 정령을 충족시켜 주었다.
기관학은 기문학과 많은 연관을 갖고 있었다.
천룡은 육 개월이 되기 전 기문절에게 배운 기문진식과 기관절에게서 지식을 합해,
세상에 아직 존재한 적이 없는 신묘한 기관을 창조해 기관절을 쩔쩔 매게 하였다.
마침내 십절(十絶)의 모든 가르침이 완수되었다.
십절의 학문을 한 사람이 전수받는다는 것이 꿈에서 현실로 바뀌는 날
대무신국이 생긴 이래 가장 큰 연회가 베풀어졌다.
대무신국의 태자라는 존귀한 지위에 있는 무천룡은 연회의 주인공이 되어
의관을 정비하고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쪽에는 정의무성이 있고,
그의 왼쪽에는 현재의 국왕인 대검제가 앉아 만면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
상왕과 현 국왕이 어린 태자의 좌우에 배석했다는 것은
그만큼 태자 무천룡의 위치를 격상시켜 주는 안배이기도 했다.
세 사람이 앉아 있는 곳에서 세 계단 아래에 넓은 연회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대무신국 사람은 하나도 빠짐없이 참석했고
, 산해진미(山海眞味)가 상다리를 휘어지게 했다.
정의무성은 실로 수년 만에 만조백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그 동안 무성전 지하에 칠겁관을 세웠다는 것은
대무신국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오늘의 연회는 칠겁지관이 완성되었음을 축하하고
무천룡이 무림십절의 모든 절예를 터득했음을 축하하는 성대한 연회였다.
잔치의 주인공인 무천룡의 양뺨은 사과같이 붉었다.
그는 귀엽고 영리하게 생긴 십세 소년이고
, 태자답지 않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소년이었다.
여러 사람들에게서 칭송받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는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는 무천룡의 모습은
신선도 안의 옥동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가 태어나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칠음절맥(七陰絶脈)의 신체였다는 것을 말한다면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옥같이 고운 피붓빛, 총명한 눈동자와 오똑한 콧날, 굳게 다물어진 입술
, 무천룡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과 신선함뿐이었지
사악하고 병든 것은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중인은 정의무성과 무천룡을 번갈아 살피며
조손(祖孫)이 판에 박은 듯 닮았다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했다.
무천룡은 아버지 대검제의 연약한 기색을 조금도 이어받지 않은 건강하고 씩씩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 기질은 정의무성의 진취적이고 패도적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 대검제 쪽의 온화하고 순수한 것이었다.
정의무성과 대검제의 장점 만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으니 가히 인중룡(人中龍)이 기세였다.
연회가 시작되자 정의무성이 무천룡을 일으켜 세운 후 중인을 향해 창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천룡태자는 오늘 이후 대무신공(大武神功)을 전수받을 것이오.!"
"오…!"
중인의 입가에 함박 웃음이 만들어졌다
. 무천룡태자의 천일개정대법을 위해 각기 하루 동안의 호법이 되었던
일천위사의 즐거움은 그 중에서도 가장 컸다.
"천룡태자는 칠 년 후 대무신국의 전권(全權)을 이어받을 것이오.
그리고 본국은 천룡태자의 영도 아래 천배 발전하게 될 것이오."
정의무성이 웃음 짓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일어났다.
"만세― 천룡태자 만세―!"
"대무신국의 모든 것을 천룡태자에게 바쳐
천룡태자를 무림제일인(武林第一人)으로 만듭시다!"
연회장은 곧 흥청망청한 분위기로 화했다.
이 날의 연회를 위해 대무신국의 주고(酒庫) 안에 있던 모든 술이 꺼내어졌으나
모든 사람을 취하게 하기에 부족한 감이 있었다.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 구수한 음식 냄새와 짜릿하고 향긋한 주향(酒香)이 뒤범벅이되는 가운데
주흥이 무르익었다.
삼경(三更)이 지났다.
천룡태자는 대신들에게 잔을 권하고 대신들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반나절 이상을 보냈는지라 양 뺨에 홍조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숨결에는 취기가 깃들여 있지 않았다.
무천룡의 나이 이제 열 살이었으나 주량으로 따질 때 무천룡을 능가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천룡은 천일개정대법으로 탈태환골한 후
극독(極毒)을 먹는다 해도 소화시킬 수 있는 해독력(解毒力)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러니 어찌 향기로운 술을 마시고 취할 수가 있겠는가.
무천룡은 대무신국의 신하들이 자신에게 무한한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주연을 통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두 어깨가 무겁구나. 이 작은 몸에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내게 대무신국의 모든 것을 거신단 말인가?'
무천룡은 표정과는 달리 그리 밝은 기분은 아니었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없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그런 내심을 밖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금기(禁忌)와 같은 일이었다.
― 태자란 의연해야 할 지위이다.
그리고 너는 아주 특수한 신분을 지니고 있어 어떤 일에 접해서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대검제가 항상 하던 가르침이었다.
천무룡은 술잔을 불끈 쥐었다.
'나는 의연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정신력을 기르는 일이다
. 정신력을 길러야 할아버지께서 내게 기대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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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즐독 허고 갑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