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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지난주 고려대학교 사범대학을 나와서 개그우먼으로 활동하던 박지선 씨가 37세의 나이에 어머니와 자살을 택해서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녀는 지병이 있기는 했지만 상당히 밝은 편이었습니다. 더구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그녀가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한편으로 아쉽습니다. 아무튼 모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 하심이 있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착한 사람에게 시련이 닥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착한 사람은 시련도 피해가야 할 것과 같은 감정이 우리에게는 있는데 말입니다.
미국의 랍비이자 신학박사 해럴드 쿠시니는 첫아들을 불치병으로 잃은 후에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라는 책을 집필했습니다. 신앙인으로 신학박사로 평생을 착하게 살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그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어린 아들이 불치병에 걸렸을 때 큰 절망과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빠졌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왜 죄 없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며, 왜 선량한 사람들에게 이유 없는 고통이 닥치기도 하는가?”
오랜 세월 이러한 물음을 거듭하면서 그는 서서히 자신의 생각이 더 넓어져 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에, “신이 선량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한 것이 아니다”라는 답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왜 고통을 당하는가?”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고통을 어떻게 의미 있게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신에 대한 감사의 역할과 진정한 의미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해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선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차별 없이 이런 일이 생긴다면 하나님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막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재앙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인내심을 줍니다. ”
그가 말하는 것이 다 옳은 말인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앙과 같은 고통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인도 모를 슬픔이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박지선 개그우먼이 남에게 웃음을 주는 직업을 가지고 살면서 많은 웃음을 남겼지만 결국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는 일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의 말씀을 읽고 이해하고, 마음에 새기며, 입을 통해서 고백하는 삶을 살았다면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쉽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2년 정도를 머물며 그 주변인 소아시아 각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제자훈련을 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아마도 에바브라와 빌레몬과 같은 이들이 골로새에 교회를 세우며 가정교회처럼 그렇게 이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곳에 이단의 사상이 심각하게 들어오고 있으며 그것을 아는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를 통해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단단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들은 세상에 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다시 태어났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면 하늘에 마음을 두고 하늘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죽었으며 이제 새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전에는 분한 생각, 화를 내는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 선하지 못한 말들을 하며, 거짓말을 하였을 것이나 이제는 새로워져야 하며, 너그럽고 친절하고 겸손함과 온유함과 인내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그리스도 인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인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면서 그들에게 감사에 대한 이야기를 세 번이나 합니다. 그것은 옛사람과 새 사람의 다른 점일 것입니다.
먼저 15절에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쉬운 성경에는 이 구절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받은 평화로 여러분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십시오.”
아내는 박지선이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제가 이지선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서 그녀가 왜 왜 왜 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 속에 감추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지선은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이던 2000년 7월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3도 화상을 입고 30번이 넘는 수술과 재활 치료 끝에 삶을 되찾았습니다. 그녀는 사고 이후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 시작됐다는 내용을 담은 에세이 ‘지선아 사랑해’를 펴냈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난 2013년 9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시련에 빠진 이들에게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지선은 2016년 6월 미국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지선 씨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12년 간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2017년에 한동대학에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감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누구를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훈을 얻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항상 감사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세상에서의 고난과 환란을 충분히 이기고도 남을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가 식어진다면 결국은 옛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끊어진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입으로 만 아버지라고 고백할 뿐 진심으로 그의 자녀의 관계가 되는 것을 부정한다는 뜻입니다.
감사는 훈련입니다. 감사 감사 감사하다 보면 감사할 일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잊었던 감사가 떠오른다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감사하는 사람에게 가장 약하다고 말입니다. 그에게 져주신다고 말입니다. 그를 더 기억하고 그를 주목하여 돕는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말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과 같은 뜻일 것입니다.
두 번째 바울은 시와 찬양과 신령한 노래로써 감사한 마음을 하나님께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바울은 이 글을 그들에게 쓰면서 다윗을 생각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다윗이 그렇게 시와 찬미와 신령한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자신 역시 찬양과 하나님께 신령한 노래를 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그렇게 찬양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길을 걸으며 사랑스러운 골로새 교인들에게 축복된 길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바울의 진심 어린 마음이 담겨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복음성가 중에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찬송을 부르세요. 찬송을 부르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찬송을 부르세요
기도를 드리세요. 말씀을 들으세요. 서로 사랑해요. 감사를 드리세요.
초대교인들은 종종 밤이 새도록 찬미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희들도 얼마 되지 않은 과거에 그렇게 찬양하며 손뼉 치며 영광을 돌리며 기뻐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기억나실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며, 우리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또한 지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골로새 교인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렇게 시와 찬미와 찬양을 드리며 하나님께 감사하면 놀라운 일이 생기기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성환 겨자씨 이야기 예화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방사성 종양학과’ 이런 학과가 있는 줄 내가 악성종양이라는 병에 걸리고서야 알았습니다.
병원 지하층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없는 통제된 구역에 근무하는 당신들이 지하의 침침함처럼 나는 왠지 어둡고 무서웠습니다.
나 혼자 옷 벗고 치료대 위에 누웠을 때 빙 둘러선 흰옷 입은 당신들이 아무리 친절을 베풀어도 난 겁에서 놓여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점심시간에 병원 로비에서 방사선 종양학과 직원들의 특별찬양을 들으며 끝까지 당신들의 기도와 찬양을 따라 하다가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 쌓였던 두려움과 서러움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당신들은 나랑 똑같은 찬양을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이 날 위해 보내주신 치료하는 천사들입니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어느 분의 편지에서]
구약에 역대하를 보면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에 놀라운 일이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모압과 암몬 자손이 쳐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당시 왕은 여호사밧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과 맞서 싸울 힘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가 한 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배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렇습니다.
대하20: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20: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20: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하나님께 감사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찬양의 주제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적들을 물리쳐주었습니다. 그리고 기쁨이 온 성에 넘쳤습니다.
옛사람이 아닌 새 사람은 시와 찬미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예수님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그렇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대한 불교 정토정의 교육국장과 포교국장을 지낸 혜공 스님 이야기입니다.
사소한 문제가 큰 사건으로 번지면서 8개월간 김해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도서를 대출받아 불경 등을 읽었는데, 하루는 도서를 대출해 주는 담당 교도관이 신약성경, 선다싱 전집, 불교에서 기독교로 등의 도서를 가져왔습니다. 스님은 불교에 관한 책을 읽기를 원했는데 왜 다른 종류의 책을 주느냐, 하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교도관의 말이 “지금 신청하신 불교서적이 없습니다. 그럼 다음에 보시든지” 스님은 기독교 서적을 반입받고 보니, 그날따라 기분이 좋지 않아서 ‘나무관세음보살’을 3000번 하고 잠을 청했으나 통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그 이튿날 스님 생각에 ‘성경책도 한번 읽어보자’ 하고 읽어 가는데, 누가복음 7장의 ‘나인성 과부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에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되듯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불교의 화엄경에도 석가모니 ‘구지라 성가’에서 많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젊은 과부의 죽은 외아들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과부가 부처님에게 아들을 살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때 석가모니가 “인생에게 죽음은 항상 있는 법, 너무 슬퍼하지 마라.”하고 위로했습니다. “부처님, 제발 아들을 살려주세요” 하고 과부는 계속 간청을 했습니다.
“그럼 마을로 내려가서 사람이 죽지 않았던 집에 들러 쌀을 조금씩 공양받아 아들에게 죽을 끓여 먹여라.” 과부는 한 번도 죽음이 없었던 집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강성환 겨자씨 이야기/ 예화 중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복음서를 통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의 삶인지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과 박해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의 기준을 예수님으로 삼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라면 코로나 19에 어떻게 행동하시며 어떻게 말하셨을까? 하고 답을 됩니다. 그것은 매우 감사할 일입니다. 이렇게 우울하고 힘들 때에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그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기에 감사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세상의 삶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남들처럼 세상에서 성공하고 그리고 세속적인 즐거움을 위한 가치관을 가지고 그렇게 자녀들을 가르치며 본인도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기쁨 구원의 소식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근본이 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가운데도 많은 그리스도 인들이 고난을 오히려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길을 걸으며 감사했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비우고 내려놓으면서 감사하였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감사를 빼앗지 못한 것입니다.
다음 주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오히려 더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새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자녀 된 우리들 역시 이럴수록 더 감사하며 시와 찬미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감사를 빼앗기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