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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제가 스티븐 킹을 읽을 때가 오리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짐작했습니다. 하트 인 아틀란티스, 드림캐쳐, 쇼생크 탈출, 미저리, 샤이닝, 캐리, 돌로레스 클레이븐 등의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봤을 뿐이지 책은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던 저는 먼저 그의 자전적 이야기 On Writing(유혹하는 글쓰기)을 읽으면서 슬슬 몸을 풀기 시작했죠. On Writing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성실하고 기본적인 자세를 때돈을 번 베스트셀러 작가가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라 감동적이었습니다. 그곳에 언급된 그의 장편소설을 읽고 싶다는 마음을 충분히 들게 했어요.
솔직히 그의 무서운 작품들을 무섭게 좋아하리라는 두려움이 있어서 길고 긴 장편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한 때에, 스티븐킹의 최신 단편집 “Everything's Eventual"과 거의 초반단편집의 번역본 ”스티븐 킹 단편집(Night Shoft)/김현우 옮김 황금가지“가 어느새 제 책상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상한 순서로 영어와 한글로 된 두 책을 번갈아가면서 읽었는데 막 Night Shift를 다 읽고 책을 덮은 뒤에 이런 생각이 드는 군요. ‘이건 완전히 문학 교과서야.’
네, 그렇습니다. 이제 그의 장편의 세계로 빠져 들겠지만(지금 제 앞에는 1,100 페이지 짜리 페이퍼백 ‘IT’이 놓여져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단편집은 굳이 호러/미스테리 소설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글쓰는 기본기는 바로 이런 것이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요. 문학에서 장르문학-특히 공포나 스릴러 판타지가 푸대접을 받는 이유는(특히 우리나라에서) 문학적으로 완성되지 않았다라는 점 같은데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어보면 여느 문학소설과 비교해 봤을 때에도 손색이 없는, 오히려 뛰어난 문학성을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문학성’이란 스토리를 엮어나가는 능력을 이야기합니다.
초반엔 그저 그런 이야기-환상특급이나 무서운 이야기 TV프로에 나오는 에피소드처럼-로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부기맨’, ‘트럭’, ‘가끔 그들이 온다’, ‘벼랑’에 이르러서는 장난이 아닌데..로 느껴지고 ‘금연 주식회사’, ‘옥수수밭의 아이들’,‘사다리의 마지막 단’에 이르면 거의 감동의 수준까지 오릅니다. 아마도 TV나 만화, 다른 영화소재로 쓰인 소설을 금방 눈치 채실 거예요. 특히 담배를 피면 아내를 전기충격하고 심지어는 손가락도 자르게 만드는 금연주식회사의 이야기는 꽤나 유명하고 옥수수밭의 아이들과 벼랑 등은 비디오나 환상특급 TV시리즈에서도 본 것 같은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하나하나 스토리는 말하지 않을게요. 아마 여러분도 한 번쯤은 읽어볼 테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호러나 판타지 같은 장르적인 소재를 어떻게 하면 실생활과 가까운 레벨까지 끌어내려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뱀파이어 전사나 언더월드 따위의 설정은 지나치게 만화적이라서 사람들에게 비주얼 이외의 충격은 주지 못합니다. 결국 사람들이 itch 하게 긁어주는 것은 ‘가족’이야기 그리고 ‘생명’을 담보로 한 이야기라는 결론이죠. 이 단편집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서문을 써준 죤 D맥도널드-아주 유명한 추리소설, 펄프작가죠-의 말대로) 아이러니 하게도 무서운 괴물이 나타나는 이야기가 아닌 ‘사다리의 마지막 단’입니다. 목숨을 끊은 여동생과 바쁜 생활로 인해 그녀를 찾아가보지 못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눈물을 충분히 적실 수 있을 만큼 슬픈 결말로 치닫습니다.
어떻게 보면 스토리 진행에 힘을 쓴 나머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형성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비평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보세요,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가 캐릭터이고 등장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건 단편소설이고, 이와 같은 단편소설집을 스티븐 킹은 이미 너 댓개나 냈으니 우리는 교과서처럼 읽고 공부할 따름입니다.
-스티븐 킹 단편집(Night Shift), 옥수수 밭의 아이들 외/ 김현우 옮김